20세기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항간에는 그의 지능지수(IQ)가 200을 넘는다는 얘기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IQ 검사를 받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전기회사를 설립한 아버지를 통해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을 접했고 관심도 많았다. 성적도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신경쇠약을 겪기도 했다.
그간 심리학자들은 줄곧 사회와 환경 변화에 대한 인간의 행동에 근거해 지능을 설명하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수학과 과학 문제는 귀신같이 풀어 내면서도 학교생활에는 적응 못 한 아인슈타인의 지능을 마냥 뛰어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능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지능과 IQ는 같은 뜻으로 써도 될까.
CHC 이론과 다중지능이론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주변을 인식하고 여기에 맞춰 행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지능이 고도화됐다고 하는 것은 그 어떤 동물에도 없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언어나 문자를 이용해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해 방법을 찾아낸다.
지능을 정의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이론은 ‘커텔-혼-캐롤(CHC) 이론’과 ‘다중지능이론’ 두 가지다. CHC 이론은 심리학자 레이먼드 커텔에서 시작됐다. 커텔은 1971년 일반적인 인간의 지능(일반지능)을 유동 지능과 결정 지능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유동 지능은 지식을 빨리 획득하고 새로운 상황에 효율적으로 적용하는 능력이며, 결정 지능은 경험과 학교 교육, 문화 등으로부터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의미한다. 유동 지능은 신속한 의사결정이나 비언어적 내용과 같은 친숙하지 않은 과제를 수행할 때, 결정 지능은 사전 지식을 통해 통찰력을 발휘할 때 나타난다.
지능에 대한 커텔의 이런 분류를 세 층으로 계층화한 것이 CHC 이론이다. 여기에 따르면, 지능의 최상위층에는 일반지능이 있다. 중간층에는 유동 및 결정 지능, 일반 기억 및 학습 지능, 넓은 시각 및 청각 인지 지능, 처리 속도 등 일반지능을 발휘하기 위한 8개의 광범위한 특수 지능이 있다. 최하위층에는 추론과 언어 지식, 말소리 구별, 시각 기억력, 공간 파악력 등 69개의 구체적인 특수 지능이 포함된다.
한편 다중지능이론은 발달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 미국 하버드대 인지및교육학과 교수가 1983년 발표한 저서 ‘마음의 틀: 다중지능 이론’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ISBN 10:0465024335
가드너 교수는 언어, 논리수리, 공감, 신체 운동, 음악, 대인관계, 자기이해, 자연친화 탐구 등 지능이 8가지 종류의 다중지능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9년에 도덕지능을 추가했다.
두 이론은 공통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이 발휘하는 지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인간은 물리적, 문화적,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경우 더 지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최근에는 환경, 경험, 과제 수행 등 세 영역이 복합적으로 지능을 구성한다는 ‘삼위일체 이론’도 제기됐다.
동물의 인지행동과정을 연구하는 이인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지능에 대한 여러 이론이 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한 가지 정의가 있다”며 “지능은 특정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하는 모든 지식과 기술의 집합이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IQ 검사는 미 해군 선발용에서 시작
현재 개발된 각종 지능 검사법은 인간의 지능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을까. IQ가 상위 2%에 포함되는 사람만 회원으로 받는 멘사(Mensa) 시험은 어떨까.
멘사 시험은 8개의 영역에 일정한 규칙으로 놓인 도형을 제시하고 나머지 1개 영역에 들어갈 그림을 맞추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45개 문항을 30분 안에 풀어야 한다. CHC 이론으로 보면 최하위층에 속한 특수 지능 몇 가지를 확인하는 셈이다.
만약 영화 ‘타잔’의 주인공이 이런 멘사 시험을 치른다면 어떨까. 그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적화된 지능을 갖췄겠지만, 도형은 본 적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타잔의 지능이 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미 해군이 장병을 선발할 때 최소한의 지적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지금의 IQ 검사의 토대가 됐다”며 “요즘은 전문가가 언어나 사고, 문제 풀이 능력 등을 다각도로 측정하는 방식의 지능 검사가 개발됐지만, 그조차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면접을 치르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A와 우물쭈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B가 있다. 이것만으로 A가 B보다 지능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말하기 능력으로만 봤을 때는 A가 지능이 뛰어나고 업무도 잘 할 것 같지만, 실제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B가 좋을 수도 있다”며 “창의성, 사회성을 만드는 ‘행동하는 지능’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고 측정하는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바위왕도마뱀, 6까지 숫자 셀 수 있어
인간보다 지능이 낮은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의 지능도 엄밀히 말해 잴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파충류는 ‘무뇌충’으로 불렸다. 몸집에 비해 너무 작은 뇌를 가져, 뇌가 없는 것과 같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포유류용으로 개발된 지능검사법을 파충류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2008년에 출간된 ‘파충류 및 양서류 백과’를 보면, 존 필립스 미국 샌디에이고동물학회(현 샌디에이고동물원) 박사팀이 1999년 길이 2m의 거대한 아프리카산 바위왕도마뱀을 방에 가두고, 달팽이 네 마리를 모두 찾아서 잡아먹으면 방문을 열어 다음 방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실험을 설계한 사례가 있다.
바위왕도마뱀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을 즈음, 연구팀은 달팽이를 세 마리만 넣고 동일한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달팽이 세 마리를 모두 먹으면 문이 열리고 다음 방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바위왕도마뱀은 문이 열려도 방을 이동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바위왕도마뱀이 숫자 개념을 알고 있으며, 달팽이의 숫자를 늘려가는 실험을 추가로 진행한 결과 바위왕도마뱀이 6까지 셀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ISBN 10:012785602
바위왕도마뱀은 다른 파충류의 둥지를 털어 알을 먹고 산다. 같은 지역에서 사는 동물들이 낳는 알이 최대 6개였기 때문에 더 많은 수를 셀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딱 그 수준의 지능이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이 교수는 “동물의 지능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능검사법은 사실상 없다”며 “꾸준한 연구를 통해 하나씩 알아가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