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쾅쾅. 갑자기 연구실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 달려 있던 형광등이 떨어지며 깨진 조각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전자부품 박스를 얹어 놓은 선반은 힘없이 쓰러졌다. 이윽고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본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 시를 덮쳤다. 도호쿠대 ‘스페이스 로보틱스 랩(Space Robotics Lab)’은 그때 막 달 탐사차(로버)의 첫 번째 모델을 완성한 참이었다. 연구실을 이끄는 요시다 카즈야(吉田和哉) 항공우주공학부 교수는 “다행히 로버는 망가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무게 10kg 로버, 500m 이동 성공
요시다 교수는 달 탐사 로버를 개발하는 ‘하쿠토(HAKUTO)’ 팀을 이끌면서 유명해졌다. 하쿠토는 일본 신화에서 달에 산다는 흰 토끼의 이름이다. 하쿠토 팀은 총 상금 3000만 달러(약 330억 원)가 걸린 구글의 민간 달 탐사 경연대회인 ‘루나 X프라이즈(Lunar XPrize)’에서 2018년 1월 최종 결승 진출 팀으로 뽑혔다.
당시 최종 결승에는 미국의 ‘문 익스프레스(Moon Express)’, 이스라엘의 ‘스페이스IL’, 인도의 ‘인더스(Indus)’,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연합팀인 ‘문 시너지(Moon Synergy)’를 포함해 총 5개 팀이 올랐다.
요시다 교수는 “루나 X프라이즈에서 제시한 미션은 달에 착륙한 뒤 달 표면에서 500m를 이동하며 고화질 사진과 영상을 지구로 전송할 로버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올해 3월 달 표면과 환경이 유사한 돗토리(鳥取) 현 모래사장에서 필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로버가 500m를 이동할 수준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1969~1972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아폴로 프로그램’을 통해 여섯 차례 유인 달 착륙에 성공하며 달 표면에서 암석과 자갈, 토양 등 총 382kg의 샘플을 지구로 가지고 왔다. 이를 통해 달 표면이 매우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쿠토 팀이 개발한 로버는 자동차처럼 네 바퀴로 움직인다. 달의 부드러운 흙 속에 바퀴가 파묻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바퀴에는 넓적한 톱니를 달았다. 길이 58cm인 몸집에 비해 바퀴 지름을 20cm로 크게 설계한 것도 안정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바퀴에서 지면과 닿는 부위의 폭은 7cm, 날개 높이는 2cm다.
요시다 교수는 “로버는 경사각이 최대 25도까지는 오르막길도 문제없다”며 “초속 10cm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본인 몸집만 한 돌도 부드럽게 타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로버의 첫 번째 모델이 나온 이후 지금의 형태로 진화하기까지 수차례 개조가 이뤄졌다. 달 지형과 유사한 울퉁불퉁한 화산 지대에서 구동 시험을 진행하며 촘촘하게 박혀있던 톱니를 10개로 대폭 줄였다.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등 가벼운 소재로 만들었던 본체는 달의 방사선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탄소강화섬유로 대체했다. 현재 로버 무게는 10kg이다.
로버의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도 중요하다. 빛의 3원색인 적색, 녹색, 청색(RGB)을 구분해 앞에 놓인 장애물의 형체를 파악하는 것 외에 심도(Depth) 센서를 추가해 장애물을 3차원으로 인식하게 했다.
요시다 교수는 “로버는 360도 회전하는 ‘RGBD 카메라’를 탑재하고 달 표면을 돌아다니며 탐사할 것”이라며 “로켓에 로버를 실어 발사할 때 엄청난 열과 진동이 발생하는 만큼 열챔버 시험과 진동 시험도 완료했다”고 말했다.
아이스페이스, 2020년 달 궤도선 발사
루나 X프라이즈는 최종 결승 진출팀을 선정했지만 상금을 받은 팀은 없다. 루나 X프라이즈가 제시한 미션을 달성한 완벽한 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쿠토 팀의 달 탐사 계획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우주 벤처인 아이스페이스(ispace)가 지구와 달 사이를 오가는 ‘달 셔틀’로 로버를 상용화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스페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하카마다 다케시(袴田武史)와 요시다 교수가 의기투합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하카마다 CEO는 “어릴 때부터 ‘스타워즈’를 굉장히 좋아한 ‘우주 덕후’였다”며 “대학에서 우주공학을 전공한 뒤 우주기술을 상업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요시다 교수의 달 탐사 로버 개발 계획을 듣고 아이스페이스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이스페이스는 루나 X프라이즈 종료 이후 하쿠토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Reboot)는 의미에서 ‘하쿠토-R’로 이름 붙였다. 현재 아이스페이스에는 미국, 유럽 등 13개국 출신 엔지니어 7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요시다 교수는 하쿠토-R 프로젝트의 기술책임 및 경영위험전문관리임원(CRO)을 맡고 있다.
하쿠토-R 프로젝트는 2040년까지 10단계에 걸쳐 달을 탐사할 계획이다. 단계마다 M1부터 M10까지 구체적인 임무도 설정했다. 요시다 교수 랩이 로버 개발을 완료하면서 M0 단계는 이미 완수했다.
아이스페이스는 2020년 달 궤도에 탐사선을 보내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M1), 2021년 달 표면에 로버를 착륙시켜 본격적인 탐사를 벌일 계획이다(M2). 아이스페이스는 이를 위해 스페이스X와 계약을 맺고 ‘팰컨9’에 로버를 실어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키모토 슈헤이(秋元衆平) 아이스페이스 홍보책임자는 “로버를 싣고 달에 착륙할 착륙선 개발도 거의 끝났다”며 “달 착륙선은 무게 약 350kg으로 4개의 발로 달에 착륙한 뒤 로버를 달 표면으로 내보낸다”고 설명했다.
로버와 특수한 줄로 연결돼 크레이터의 깊은 바닥까지 탐사할 수 있는 ‘마이크로 로버’도 개발이 완성 단계에 다다랐다. 요시다 교수는 “2021년 달 표면 탐사의 일차적인 목표는 물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1kg인 마이크로 로버를 크레이터 바닥에 내려 보내 지금껏 인류가 가지 못했던 달의 새로운 지역을 탐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카마다 CEO는 “2040년 달에 1000명이 거주하는 ‘문 밸리(moon valley)’를 건설하는 것이 아이스페이스의 목표”라며 “이 즈음이면 연간 1만 명이 지구와 달을 오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 탐사 비용 10분의 1로
2021년 아이스페이스가 개발한 달 착륙선이 달 표면에 안착하면 민간 기업 최초로 달 착륙 기술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얻는다. 최근 아이스페이스는 이런 발전 가능성에 공감하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3대 통신사인 KDDI, 일본항공(JAL) 등 13개 기업은 아이스페이스에 총 10억5000만 엔(약 105억 원)을 투자한다.
가장 큰 투자자인 KDDI의 경우 아이스페이스와 통신 기술 연구도 진행한다. 아키모토 홍보책임자는 “KDDI는 지구와 달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안테나를 달에 설치하고, 데이터를 압축해서 전송하는 기술 등을 개발하는 데 관심이 많다”며 “로버가 달에 착륙해 지구와 교신할 때도 통신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카마다 CEO는 “하쿠토-R 프로젝트는 지구와 달을 오가는 ‘달 셔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의 정부나 민간 기업이 필요로 하는 탑재체를 달에 실어 나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이스페이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우주 기술 개발의 화두 중 하나는 저비용이다. NASA,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 등 정부 기관이 달에 궤도선이나 착륙선을 보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 5000만 달러(약 560억 원) 이상이다.
요시다 교수는 “아이스페이스는 이론적으로 달 탐사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며 “그간 우주는 특별한 사람, 특별한 장비가 있어야 탐사할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뉴 스페이스 인더스트리’가 성장하면서 비용은 줄이고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우주산업 민간화에 속도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NASA도 민간의 우주산업 참여를 확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주정책 지침에 따라 향후 미국의 달 탐사를 민간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추진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NASA는 2018년 11월 29일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할 민간기업 입찰 후보 9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아이스페이스도 여기에 포함됐다. 아이스페이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산하 랩에서 출발한 국방, 우주 등 첨단기술 분야의 비영리 기업인 드레이퍼(Draper)와 팀을 이뤄 참가했다. 여기서 선정된 기업에는 향후 10년간 최대 26억 달러(약 2조9000억 원)가 투입된다. NASA는 2019년 바로 달 탐사를 시작해 해마다 두 차례씩 총 20회에 걸쳐 달 탐사를 벌일 계획이다.
하카마다 CEO는 “NASA, JAXA 등은 아이스페이스의 미래 고객”이라며 “하쿠토-R 프로젝트를 통해 달에 정기적으로 로버를 보내면서 지구와 달을 오가는 운송업을 하루 빨리 정착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