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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오류에서 찾은 혁신의 실마리 주사터널현미경

현대 물리학은 무한히 넓은 우주로 나아가는 한편 아주 작은 미시세계를 파고들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미시세계를 관찰하는 도구는 현미경입니다. 17세기 광학현미경을 발명하면서 인류는 처음 세포를 발견했고, 1931년 전자현미경을 개발하면서 바이러스처럼 작은 물체도 관측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81년에는 주사터널현미경(STM)을 개발하면서 원자를 구분해 관측할 수 있는 분해능을 얻었습니다. 원자를 시각화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현재 STM은 매우 높은 정밀도로 원자를 측정하고 제어할 수 있습니다. 초기의 STM은 원자의 배열만 시각화할 수 있었지만, 스핀 분극(SP·spin polarized)-STM이 나오면서 원자의 위치뿐만 아니라 각각의 원자가 가진 스핀의 방향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2014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것으로 STM의 측정 범주를 획기적으로 넓힌 연구를 다루고 있습니다. doi: 10.1126/science.1251682

 

 

터널링 전류로 원자까지 보여준다


논문을 이해하기에 앞서 필요한 배경 지식을 짚어봅시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약 5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입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에른스트 아베가 만든 공식에 따르면 광학현미경이 구분해 관측할 수 있는 물체의 최소 크기는 파장의 절반입니다. 약 250nm보다 작은 크기의 대상을 가시광선으로 관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광학현미경의 렌즈를 아무리 조합해도 0.1nm 수준인 원자의 이미지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파장이 0.1nm 정도인 X선을 쓰면 어떨까요. X선은 물체 표면에서 반사되지 않고 그대로 투과해버립니다. 투과한 빛의 회절 패턴을 분석해 원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는 있지만, 시각적 이미지를 얻을 수는 없죠. 참고로 전자현미경은 빛 대신 투과성이 낮은 전자를 사용해 높은 해상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STM은 기존의 현미경과는 원리가 전혀 다릅니다. 빛이나 전자 대신에 아주 작은 탐침을 물체 표면에 접근시킵니다. 이때 물체와 탐침 사이에 전압을 걸어주면 ‘터널링 전류’가 흐릅니다. 터널링 전류는 고전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양자역학적 현상입니다. 터널링 전류는 물체 사이의 거리에 매우 민감하게 변하는데, 그 덕분에 표면에 부딪히지 않으면서 높이를 매우 정밀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탐침이 물체 표면을 이동하면서 터널링 전류의 지도를 완성합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원자를 구분할 수 있는 해상도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탐침이 자화(magnetization)돼 스핀을 가지고 있다면 터널링 전류는 어떻게 변할까요. 표면 원자의 스핀 방향과 같다면 터널링 전류가 증가하고, 반대면 감소합니다. 이 현상을 ‘스핀 분극 터널링’이라고 합니다. 이를 이용하면 물체 표면의 높이 정보와 스핀 방향의 정보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스핀 탐침을 만드는 데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자성을 가진 철이나 니켈을 탐침으로 쓰면 좋겠지만 물성이 좋지 않아 적합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탐침으로 쓰던 텅스텐 탐침에 자성 물질을 인위적으로 코팅하면 탐침 끝의 스핀을 제어하기 어려워져 역시 사용이 어렵습니다.

 

 

반복되는 오류 속에서 새로운 현상을 찾다


피터 왈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상태연구소 교수팀은 널리 쓰이는 텅스텐 탐침을 가진 STM을 활용해 비초전도성 텔루륨화철(Fe1+yTe)의 구조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의 X선 회절 실험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구조 계산법인 DFT계산에서 예측했던 원자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❶). 원자는 정사각형으로 배열돼 있었습니다. 하얗게 보이는 부분은 결합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은 철 원자들이 표면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험을 하다 보니 자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원래 예상했던 이미지가 찍히다가 어느 순간 다른 이미지(❷)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탐침을 사용해도 이런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연구팀은 이 현상을 깊이 파고들었고, 곧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범인은 바로 흡착된 철 원자였습니다. 두 그림을 보면 철 원자의 개수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합에 참여하지 못한 철 원자가 표면을 스캔하는 도중 탐침에 달라붙은 것입니다. 그 결과 스핀을 가지고 있는 철 원자 때문에 표면의 스핀 구조도 같이 검출된 것이죠.


처음 탐침을 넣었을 때는 자성이 없는 상태라 정상적으로 원자의 배열을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측정이 계속되면서 철 원자가 탐침에 달라붙었습니다. 그 결과 원자 배열뿐 아니라 원자 각각의 스핀 방향이 더해진 이미지를 얻게 됐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철 원자가 텅스텐 탐침을 스핀을 읽을 수 있는 효율적인 스핀 탐침으로 만든 셈이죠.


사실 대학원에서 실험을 하다 보면 알지 못하는 실수로 오류가 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결과 역시 일종의 오류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인 만큼 이를 묻어두고 예상했던 결과만 공개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실제 STM 이미지는 탐침 끝의 원자 배열에 민감하기 때문에 ❷의 이미지를 단순한 탐침의 변형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를 단순한 탐침 오류로 치부하는 대신 원인을 집요하게 파헤쳤고, 그 결과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투고할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방향의 변형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 그 원인을 파악했고, 결국 원자의 자기 구조에 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는 스핀 탐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전까지 스핀 탐침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는데요. 이 논문이 발표된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이 방법을 이용해 스핀 탐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과학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답을 구하는 끈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미지의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논문처럼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돌파구를 바로 그 난관에서 만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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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해룡 포스텍 물리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
  • 에디터

    이영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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