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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경주 양성자-포항 전자-대전 중이온, 의 좋은 ‘가속기 삼형제’

2021년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이 완공되면 한국은 명실상부 가속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이미 세계에서 3번째로 완공돼 활약 중인 양성자가속기와 4세대 방사 광가속기에 이어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들 가속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속기 삼형제’로 활약하게 된다.

 

양성자가속기의 핵심 시설인 선형가속장치 내부. 가운데 보이는 작은 구멍으로 양성자가 이동한다.

 

 

가속기 삼형제’를 소개합니다


탄생 순서로 따지면 가속기 삼형제의 맏형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경주에 지은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의 대용량 선형양성자가속기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2012년 말 설비 구축을 완료했다. 2013년부터 시운전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 정상 가동했다. 그 뒤 추가 연구시설과 관리시설 구축이 이어졌고, 올해 4월 5일 최종 준공됐다.

 

둘째는 포항가속기연구소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양성자가속기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2015년 완공된 뒤 2016년 시운전을 거쳐 2017년 중순부터 실전에 투입됐다.

 

 

라온은 삼형제 중 나이로 따지면 막내 격이지만, 작동 원리를 놓고 비교하면 ‘무게감 있는 동생’이라 할 수 있다. 양성자 가속기는 가장 가벼운 수소 원자의 핵인 양성자를 이용하고, 방사광가속기는 양성자보다 훨씬 가벼운 전자를 활용하는 가속기다. 반면 라온은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자를 이용해 만든 중이온을 쓴다. 가속시키는 대상 측면에서 보면 가장 무게감이 있는 셈이다.

 

세 가속기는 ‘노는 물’도 조금 다르다. 양성자가속기와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활약하는 주무대가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 단위의 세계라면, 중이온가속기는 이보다 100만 배 더 작은 펨토미터(fm·1fm는 1000조 분의 1m) 단위의 세계를 탐구한다. 세 가속기가 함께 가동되면 한국은 최첨단 기술의 영역인 나노과학과 펨토과학 연구에서 앞서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주특기’를 비교하면, 첫째인 양성자가속기는 ‘미다스의 손’이다. 물질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양성자를 가속해 목표물에 충돌시키면 양성자가 그 물질에 들어가면서 물질의 성질이 변하게 된다. 산소 등 여러 원소로 이뤄진 물질의 경우 산소 원자의 핵에 양성자가 충돌해서 산소 원자가 탄소 원자로 바뀔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전체 물질의 성질도 변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양성자가속기는 신소재 개발에 많이 쓰인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매의 눈’에 비유할 수 있다.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처럼 나노미터 단위의 작은 물질의 내부를 3차원으로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나노미터 세계의 변화 양상을 펨토초(fs·1fs는 1000조 분의 1초) 단위로 분석할 수 있어 마치 ‘동영상’처럼 생생한 관찰이 가능하다. 따라서 분자생물학 연구와 신약 개발 등에 적격이다.

 

막내 라온은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새로운 원소를 찾는 연구부터 핵과학 연구, 중성자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모사하는 연구 등 다양한 기초과학 연구에 활용할 수 있고, 신소재와 반도체 개발, 핵폐기물 처분 관련 응용과학 연구에도 다방면으로 요긴한 역할을 한다.

 

 

 

 

경주 양성자가속기


양성자가속기는 2002년 계획이 시작돼 2012년 설비 구축이 완료됐다. 그 뒤 활용 연구시설 등을 짓는 과정이 이어져 올해 4월 5일 최종 준공식을 했지만, 연구는 2013년부터 꾸준히 진행돼 왔다.


양성자가속기는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뒤 핵인 양성자를 전자기장으로 가속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양성자를 빛의 속도의 약 43% 수준인 초속 13만km까지 가속시킬 수 있다.

 

양성자가속기라고 하면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지대 지하에 설치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방식과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LHC는 둘레가 27km에 이르는 원형가속기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양성자를 쏴서 가속시키다가 두 양성자를 충돌시켰을 때 나타나는 반응을 연구한다. 이때 원자핵을 구성하는 쿼크 등 소립자들이 튀어나오는데, 2012년 이런 방식으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를 처음 발견했다. 현재는 우주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물질인 암흑물질의 흔적을 찾고 있다.

 

반면 경주 양성자가 속기는 길이가 75m인 선형가 속기다. 또, 양성자와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가속된 양성자를 다양한 종류의 목표물에 충돌시키는 방식을 쓴다. 충돌 에너지가 수 TeV(테라전자볼트·1TeV는 1조eV)에 이르는 LHC에 비하면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1만 분의 1 수준인 100MeV(메가전자볼트·1MeV는 100만eV)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속시킬 수 있는 양성자의 수 측면에서는 LHC가 매우 적은 수준인 반면 양성자가속기는 초당 1경 개의 양성자를 가속시킬 수 있을 만큼 월등히 앞선다. 김귀영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장은 “특별히 고에너지가 필요 없는 대신 많은 양의 양성자 공급이 필요한 물질 분석 및 물성 변화 등의 응용과학과 산업 분야 연구에서 활용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경주 양성자가속기의 선형가속장치. 원통형 탱크 내부에 설치된 금속관 사이로 전기장의 힘을 이용해 양성자가 가속력을 잃지 않고 빔라인까지 전달되도록 해주는

 

 

의료, 산업, 응용과학 일꾼


현재 양성자가속기는 연간 200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신소재 개발과 의료용 동위원소 개발 등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용 동위원소의 경우, 현재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필요한 구리(Cu)와 스트론튬(Sr), 악티늄(Ac)의 동위원소를 생산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구리의 원자번호는 29번으로 양성자와 중성자 수가 각각 29개다. 따라서 양성자와 중성자 수를 더한 질량수는 58이다. 하지만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하면 질량수가 67인 구리의 동위원소를 만들 수 있다. 중성자 9개가 더해지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질량수가 67인 구리는 암 치료에 쓰이며, 질량수가 82인 스트론튬은 심근경색 진단에 활용되는 동위원소”라고 설명했다.

 

양성자 빔을 이용해 다이아몬드의 발색을 바꾼 연구 사례도 있다.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연구진은 수 년 전 저렴한 다이아몬드에 양성자를 쪼여 양성자의 양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노란색에서 초록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한 바 있다.

 

원리는 이렇다. 양성자와 충돌한 탄소 원자의 일부가 자리를 이탈하면서 빈자리(격자 결함)가 생기고, 이 공간이 빛의 일부 파장을 흡수한다. 특히 빨간색 파장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보이게 된다.

 

반도체 안정성을 확인하는 데에도 양성자가속기가 요긴하게 쓰인다. 현재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공동으로 각 기업에서 개발한 반도체가 우주에서 날아오는 양성자와 중성자 등 이른바 우주 방사선(cosmic ray)에 영향을 받아 오류를 일으킬 확률 등을 검사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반도체 회사의 고객인 자동차회사나 빅데이터 기업 등은 반도체의 신뢰도를 확인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어 반도체 회사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현미경 듀오’로 활약 가능


양성자가속기는 ‘중성자 현미경’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양성자를 물질의 원자핵에 충돌시키면 원자핵에서 중성자들이 방출되는데, 이 중성자를 다른 물질에 쪼이면 마치 현미경처럼 물질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중성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핵에 맞고 경로가 틀어진 것이나 에너지가 변한 정도를 확인해서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의 종류와 배열 방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양성자가속기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함께 ‘현미경 듀오’로 활약할 수 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역시 나노미터 단위의 미시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으로 쓰이는데, 방사광과 물질 내부 전자의 반응을 통해 구조를 보는 원리로 양성자가속기와는 다르다. 서로 장점이 다른 셈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물질 내에 있는 무거운 원자들을 잘 찾는 반면, 양성자가속기는 수소처럼 가벼운 원자를 잘 찾는다. 김 센터장은 “하나의 물질을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양성자가속기를 모두 이용해서 관찰하면 어디에 무거운 원자들이 있고 어디에 가벼운 원자들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전경. 지붕에 ‘PAL-XFEL’이라고 표시된 건물에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들어 있다. 길이가 무려 1.1km에 이른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2015년 구축된 뒤 2017년부터 기초 및 응용과학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2011년 건설을 시작해 2015년 완공됐다. 시운전을 거쳐 2017년 중순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투입됐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가속기 삼형제 중에서 가장 가벼운 재료인 전자를 활용한다. 전자기장을 이용해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전자가 휘어질 때 방출되는 방사광(X선)을 실험 대상에 쪼이는 방식이다. 가속기의 길이는 삼형제 중에서 가장 긴 1.1km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만드는 방사광은 파장이 0.1~6nm에 이를 정도로 매우 짧다. 그래서 생물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등 나노미터 수준의 물질을 분석할 수 있다. 일종의 ‘X선 현미경’인 셈이다. 강태희 포항가속기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병원에서 쓰는 X선 촬영과 유사한 파장의 빛을 쓰지만, 빛의 세기가 다르다”며 “X선 촬영은 세기가 약하지만 가속기는 빛을 강하게 쪼여서 물질 내부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동하자마자 ‘사이언스’에 논문 게재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본격 가동을 시작하자마자 세계적인 성능을 인정받았다. 가동 이후 첫 연구자가 된 앤더스 닐슨 스웨덴 스톡홀름대 물리학과 교수팀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실험 결과를 ‘사이언스’ 지난해 12월 22일자에 게재한 것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선형가속기 터널 내부에 설치된 가속장치. 전자총에서 나온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10GeV(기가전자볼트·1GeV는 10억eV)의 에너지를 가지게 하는 길이 780m의 장치다.

 

 

 

연구팀은 물 분자 구조의 변화를 연구했다. 물은 4도에서 가장 밀도가 큰 상태가 되는데, 이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강물 위는 얼어붙지만 강바닥은 얼어붙지 않아 물고기들이 살 수 있다. 그간 물이 이런 특성을 갖는 원리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적 가설만 존재했는데, 닐슨 교수팀이 펨토초 단위로 변하는 물 분자의 구조를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관찰하면서 이유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물을 과냉각시킨 뒤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 크기의 물방울을 만들어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X선을 쪼이면서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펨토초 단위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연구팀은 가볍고 무거운 두 가지 구조의 물 분자가 동시에 존재하며, 두 상태가 서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러 가설 중 두 구조의 물 분자가 공존하면서 4도 이하에서는 가벼운 구조의 물 분자가 늘어난다는 ‘LLCP(Liquid-Liquid Critical Point)’ 모델을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강 수석연구원은 “닐슨 교수팀은 미국과 일본에 있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모두 사용했지만 포항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실험한 뒤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물질 내부를 분석하는 데 특화된 장비다. 물의 분자 구조 뿐 아니라 생물학, 재료공학, 신약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현재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본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성능을 칭찬한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양성자가속기, 그리고 중이온가속기는 연구에서 시너지를 낸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가속기 건설에 필요한 첨단 기술을 국산화하고, 다양한 분야에 관련 기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가속시키는 입자는 다르더라도 가속기 구축에 필요한 핵심 기술들은 기본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강 수석연구원은 “가속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토목과 건축, 제어, 진공, 전자 등 여러 분야에서 고도의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며 “양성자가속기와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하면서 터득한 기술적인 노하우를 중이온가속기 라온과 공유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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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기타

    [기획· 진행] 권예슬, 최영준 기자
  • 기획

    [공동기획]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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