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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우주 기원부터 암 치료까지 라온이 이끌 연구 4

한국형 중이온가속기의 이름은 ‘라온(RAON·Rare isotope Accelerator complex for ON-line
experiment)’이다. 풀이하자면 중이온 빔 가속부터 희귀동위원소 생성, 이를 이용한 실험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가속기 시설이라는 의미다. 동시에 라온은 ‘즐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 단어이기도 하다. 라온에는 실험시설 7개가 붙는다. 가속기를 통과한 입자가 검출기와 충돌한 뒤 생을 마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생명(입자)으로 태어나고, 이들의 존재가 7개 실험시설에서 확인된다. ‘즐거움’을 연구할 라온의 과학자들을 만났다.

 

 

문창범 중이온가속기 이용자 협의 회장

 

● 한국 첫 노벨상 기대주 ‘코리아늄’ 찾는다


“‘코리아늄’의 발견, 한국 첫 노벨상 배출 등 라온에 거는 기대는 높습니다. 라온을 이용해 실험할 과학자들은 라온이 기초 과학부터 응용과학까지 두루 활용될 수 있는 실험시설을 갖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5월 8일 충남 아산 호서대에서 만난 문창범 중이온가속기 이용자협회장(호서대 전자디스플레이공학부 교수)은 이렇게 말하며 라온 건설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라온의 실험시설 7개 중 우선 구축되는 실험 장치는 되튐분광장치(KOBRA), 대수용다목적핵분광장치(LAMPS) 그리고 질량측정장치(MMS) 등 3개다. 이후 순차적으로 7개 장치가 모두 구축될 전망이다.

 

 

중성자별 대신 지상에서 핵합성


라온은 구축 단계부터 주기율표에서 ‘코리아(KOREA·한국)’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원소를 발견할 수 있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코리아늄’은 라온으로 발견할 미지의 새로운 원소를 부르는 가상의 이름이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가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원소에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붙인 것처럼(폴로늄·84번), 주기율표에는 게르마늄(독일·32번), 프랑슘(프랑스·87번), 아메리슘(미국·95번), 니호늄(일본·113번) 등 국가의 이름이 들어 간 원소들이 5개 있다. 100년이 넘는 핵물리학 역사 중 한국과 관련한 이름을 가진 원소는 하나도 없다. 한국 과학자가 발견한 원소도 전무하다.


문 협회장은 “식물이 물, 이산화탄소, 태양빛을 흡수해 포도당이나 녹말을 만드는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한다면, 희귀동위원소를 이용해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핵합성’이라고 볼 수 있다”며 “결국 가속기는 우주에서 중성자별의 역할을 대신해 지상에서 원소를 합성해낼 수 있는 실험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핵합성의 이론적 토대는 1896년 증명됐다. 영국의 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입자를 가속시켜 질소 입자에 충돌시키면 질소 입자가 산소 입자의 동위원소로 변환된다는 실험에 성공하면서다. 가령 원자번호 6번인 탄소(C)는 양성자 6개와 중성자 6개를 가진 원소다. 이보다 많은 중성자를 가지게 되면 동위원소가 된다. 만약 중성자를 2개 더 가진 탄소동위원소(C-14)는 자연적으로 베타붕괴를 통해 원자번호 7번인 질소(N)의 동위원소가 된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이런 변화가 생기려면 무려 4680년의 시간이 걸린다. 중이온가속기로는 몇 차례 실험으로 가능하다.

 

여기에는 라온의 질량측정장치(MMS)나 동축레이저분광장치(CLS)가 쓰인다. 이들 장치는 희귀동위원소의 질량이나 크기를 정밀하게 측정해 원소를 구별하고, 핵의 특성을 규명해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는 데 사용된다. 문 협회장은 “원소를 다른 원소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가속기는 현대판 연금술사로 불린다”고 말했다.

 

라온 구축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가속기 이용자 모임은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2012년 ‘중이온과학연구협의회(현재의 중이온가속기이용자협회)’로 출발해, 지난 5월 11일 사단법인으로 발족했다. 협회는 라온의 설계에도 관여했다. 개념설계부터 라온을 이용할 협회 소속 과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규모와 사양을 정한 만큼, 라온에 대한 애정이 크다.

 

문 협회장은 “그간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에 라온을 활용한 연구 방안을 제공하고, 향후 활용도가 높은 가속기가 구축될 수 있도록 협업해왔다”며 “당초 순수과학 연구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협회 소속 과학자들의 의견이 반영돼 응용과학 분야까지 라온의 활용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부지매입비를 포함해 라온에는 총 1조4456억 원이 투입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2012년 발간한 ‘국가대형연구시설 총람’에 따르면 투자규모 50억 원 이상 100대 대형 연구시설은 공동 활용이 86%, 단독 활용이 16%를 차지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제작한 연구시설이 활발하게 이용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맞춤형 장치 개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협회는 국제기관과의 공동연구, 빔 타임 배정을 위한 논의 등을 진행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협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미래의 젊은 과학자를 육성하는 일이다. 문 협회장은 “라온의 성공 여부는 전문인력 양성에 달려있다”며 “아무리 훌륭한 시설이 마련돼도 그것을 이용할 과학자의 능력과 실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활용시설은 빛을 바랜다”라고 말했다.

 

 

 

 

 

홍병식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 빅뱅 3분 후, 태초의 우주를 엿본다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하면 태초의 우주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5월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만난 홍병식 물리학과 교수는 ‘라온’이 핵과학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핵과학은 라온의 가장 중요한 활용 분야로 꼽힌다. 7개의 실험장치 중 되튐분광장치(KOBRA), 대수용다목적핵분광장치(LAMPS), 핵데이터생산장치(NDPS) 등 3개가 핵과학 연구에 쓰인다.

 

 

빅뱅 3분 뒤 상황, 가속기에서 재구성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우주는 팽창을 거듭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시공간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밤하늘을 수놓는 별과 은하는 물론, 지구와 인간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시작됐다. 가속기를 이용하면 희귀동위원소의 충돌 과정에서 원소가 생겨나고, 별이 탄생한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 이중 라온이 주목하는 것은 빅뱅 직후 약 3분이 지난 뒤부터의 시간이다.

 

표준모형에 따르면 빅뱅으로 인해 우주에는 12개의 기본입자와, 힘을 매개하는 4개의 입자가 탄생했다. 이들이 결합하며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고, 또 이들이 결합해 원소가 탄생했다. 수소(H)와 헬륨(He) 등 우리에게 친숙한 원소가 탄생까지 4~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홍 교수는 “라온은 원소가 탄생하는 순간을 엿볼 수 있는 장치”라며 “라온을 통해 원소 생성의 근본 원리를 밝힌다면, 결국 세상 만물이 생겨난 과정을 규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주 탄생을 관찰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강력한 에너지다. 기본입자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수 TeV(테라전자볼트·1TeV는 1조eV) 수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인공적으로 가장 큰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다. 2015년 사상 최고 출력인 13TeV를 기록했다.

 

원소 탄생의 순간을 엿보는 데는 이보다 낮은 수 MeV(메가전자볼트·1MeV는 100만eV)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라온은 최대 핵자당 200MeV의 에너지를 내도록 설계됐다. 홍 교수는 “유럽의 거대강입자가속기가 태초의 기본입자를 연구하는 장치라면, 라온은 이들이 합성돼 만든 태초의 물질을
찾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120~130번대 무거운 원소


우주 탄생 과정에서 수소가 모여 별이 됐다. 그리고 별은 수소를 태워 다른 원소들을 만들었다. 별이 일종의 ‘원소 제조 공장’인 셈이다. 하지만 수소로부터 시작된 반응으로는 원자번호 2번인 헬륨(He)부터 26번인 철(Fe)까지 상대적으로 가벼운 원소의 탄생과정만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금, 은, 납 등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중성자별 내부에 있는 중성자로만 이뤄진 고밀도 핵물질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열쇠로 여겨진다. 이를 위해 라온은 태양을 대전 유성구 정도의 크기로 축소한 수준의 고밀도 중성자별 내부 상태를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희귀동위원소 빔을 이용하면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를 제어할 수 있다. 이 과정에는 LAMPS가 사용된다. 일부러 중성자가 많은 원소를 제작해, 무거운 원소가 생겨난 과정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홍 교수는 “이런 식으로 주기율표 118번까지의 원소가 발견됐고, 대부분 가속기를 이용해 얻은 성과”라며“라온을 통해서는 120~130번 대의 무거운 원소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다량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한다고 해서 무거운 원소가 무한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컵에 물을 계속 따르면 결국 넘쳐흐르듯, 우주에는 더 이상 큰 원소가 존재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중성자별은 이런 원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라온의 희귀동위원소 빔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KOBRA는 이런 한계를 넘어선 원소의 특이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홍 교수가 라온 완공 이후 가장 먼저 계획하고 있는 실험 역시 KOBRA를 통해 중성자별이 한계를 넘은 원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을 밝히는 것이다.


홍 교수는 “한계를 넘어선 원소는 일반적인 원소와는 구조가 상당히 다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라온을 통해 이런 원소의 특이 구조는 물론 이들 원소가 만들어질 수 있는 핵력까지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가속기 이용자들 “라온 완공 기다려”


홍 교수는 그간 CERN,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미국 미시간주립대,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 등이 보유한 가속기를 두루 이용해 연구를 진행해왔다. 타국이 보유한 연구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에 실험계획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실제 실험을 하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연구시설은 한정돼 있고, 사용하려는 연구자들이 많은 만큼 순서를 기다려야한다. 더욱이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전력비가 높아진 일본 이화학연구소가 중이온가속기(RIBF)의 운영 기간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연구자들의 연구 병목 현상은 더 심해졌다.

 

홍 교수는 “가속기를 보유한 기관이 실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10위 안에 들어도 몇 년씩 기다려야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며 “세계적으로 가속기 이용자가 포화상태인 만큼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핵과학자들이 라온의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용 중앙대 물리 학과 교수

 

● 시대 뛰어넘을 신소재 찾는다


“철의 발견으로 인류의 문명이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바뀌었듯,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물질의 발견은 인류 문명을 한 단계 도약시킬 기회가 될 겁니다.”

 

5월 4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에서 만난 최광용 물리학과 교수는 ‘라온’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물질의 새로운 특성을 규명해 인류사에 기록될 신소재를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라온의 실험장치 중 뮤온스핀완화기는 초전도, 나노자성체, 위상물질, 이차전지 물질 등 새롭고 특이한 물질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고안됐다.

 

 

초고속카메라로 물질 관측


뮤온은 우주의 근간이 되는 12개의 기본입자 중 하나로 전자보다 약 206배 무겁다. 자연 상태에서 뮤온의 평균 수명은 2.2마이크로초(μs·1μs는 100만 분의 1초) 정도다. 우주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양성자가 수십km 높이의 대기권과 충돌할 때 뮤온이 생성된다. 라온은 이런 뮤온을 인위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장치다. 일종의 ‘뮤온 공장’인 셈이다. 양성자를 가속해 흑연에 충돌시키면 일차적으로 파이온(π)이 만들어진다. 이후 파이온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뮤온 빔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생성된 뮤온 빔은 물질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내부 상태를 파악하는 비파괴검사에 쓰인다. 물질 내부에 삽입된 뮤온은 사라지는 과정에서 양전자를 생성한다. 이 양전자의 신호를 받아 분석하면 물질의 물성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뮤온이 일종의 염탐꾼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설
명했다.

 

비파괴검사는 중이온가속기 외에 다른 종류의 가속기에서도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포항가속기연구소가 운영 중인 3세대 및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운영하는 양성자가속기로도 가능하다. 방사광가속기는 빛을, 양성자가속기는 중성자를 이용해서 물질의 내부를 살핀다.

 

라온에서 생성되는 뮤온 빔의 장점은 물질의 전자기적인 특성을 높은 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뮤온 빔의 에너지를 조절해 물질 내부 깊이에 따른 물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 교수는 “비유하자면 방사광과 양성자가 일반 카메라라면, 뮤온은 시료를 층층이 나눠 각 층을 재빠르게 촬영할 수 있는 초고속카메라에 해당한다”며 “각각의 기술을 상보적으로 활용한다면 재료의 특성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실험은 신물질의 발견을 도와 새로운 전자기기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까지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반도체는 18개월마다 두 배씩 성능을 높여 왔다. 이제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이 1980년대 슈퍼컴퓨터보다 우수한 성능을 나타낸다. 하지만 현재 사용하는 반도체는 회로를 더 이상 집적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2020년이면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뮤온을 활용하면 이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정보 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 컴퓨터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전력 소모를 줄인 전자기기 개발도 가능하다. 최 교수는 “극한 상황에 놓이면 본인도 알지 못했던 성격이 나오듯, 물질을 극저온이나 극저압 등 극한 환경에 두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성질이 나타난다”며 “뮤온으로 이런 극한 물성을 탐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최초 뮤온 빔 연속 생산 가능

 

현재 물질의 성질을 확인하는 뮤온 빔 생성 시설을 갖춘 국가는 세계적으로 5개뿐이다. 스위스, 캐나다, 일본, 영국, 중국 등이 뮤온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중 일본, 영국, 중국의 뮤온 빔은 상대적으로 해상도가 떨어진다. 뮤온 빔이 100나노초(ns·1ns는 10억 분의 1초) 동안 다발 형태로 나왔다가 끊어지고, 다시 나오길 반복하기 때문이다. 뮤온 빔을 연속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시설은 캐나다와 스위스에만 있다.

 

최 교수는 “연속적인 뮤온 빔을 사용하면 물질을 탐색하는 해상도가 최대 수천 배까지 향상된다”며 “라온이 완공되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최초로 연속 뮤온 빔을 형성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적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비파괴검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스위스는 중성자가속기, 방사광가속기, 중이온가속기를 운영하며 물성 연구용 ‘가속기 삼총사’를 모두 갖췄다. 스위스는 인구 1만 명당 발표하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수가 39.9편(201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물성을 분석할 다양한 거대 시설을 갖춘 것이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신소재 후보는 무궁무진하다”며 “특히 물성과학 분야는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만큼 라온에서 나온 결과물에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윤 충북대 의대 교수

 

● 새로운 방사선 암 치료법 찾는다

 

인류가 방사선을 이용해 암을 치료해 온 역사는 꽤 깁니다. 라온의 희귀동위원소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인류의 건강에 기여할 겁니다.”

 

5월 8일 충북 청주 충북대에서 만난 박우윤 의대 치료방사선과 교수는 라온을 통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3차원 공간에 희귀동위원소 빔을 균일하게 조사할 수 있는 장치인 빔조사장치(BIS)가 쓰인다.

 

 

부작용 줄인 암 치료


방사성동위원소가 치료에 활용된 역사는 꽤 길다. 일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가 처음 임상연구를 시작해 1994년 세계 최초로 의료용 중입자가속기(HIMAC)를 개발했다. 의료용 중입자가속기는 탄소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장치다. 이후 가속된 입자를 몸속 암세포에 충돌시켜 종양을 사멸한다. 이때 초당 10억 개가 넘는 입자들이 체내에 투입된다.

 

중입자를 이용한 암 치료는 기존의 X선이나 감마(γ)선 등 방사선을 이용한 치료보다 효과가 좋다. 암세포가 X선 등 높은 에너지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단백질의 구조가 변하거나 DNA가 끊어져 사멸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복구된다. 암의 경우, 파괴된 암세포의 DNA가 다시 본래대로 복구된다는 것은 재발을 의미한다.

 

방사선은 피부 밑 종양세포가 있는 깊이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방사선량, 즉 에너지를 잃는다. 종양세포까지 가는 길목에 놓인 다른 정상세포도 손상시켜 머리가 빠지는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입자로 암세포를 직접 겨냥해 조사할 경우 재발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박 교수는 “전자의 크기는 작은구슬, 양성자는 야구공, 중입자 같은 원소는 볼링공에 비유할 수 있다”며 “크기가 큰 중입자로 DNA를 직접 친다면 DNA가 다시 복구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난다”고 설명했다.

 

중입자는 암세포가 위치한 지점에서 방사선량이 최고에 이르는 만큼 치료 과정에서 주변 정상세포에 피해를 거의 입히지 않는다. 또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진 ‘저산소세포’까지 궤멸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중입자 치료가 기존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동시에 치료 효과도 더 높다는 의미다.

 

 

희귀동위원소로 새로운 치료법 개발


라온의 장점은 희귀동위원소 빔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정동위원소와 달리 희귀동위원소는 아직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암 치료에 주로 활용되는 탄소의 경우 탄소-12나 탄소-13이 안정동위원소다. 일본은 희귀동위원소의 영향을 세포 수준에서 검증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가속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낮아 조직 수준에서 영향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라온은 높은 에너지로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소까지 가속할 수 있다. 또 희귀동위원소의 생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알파(α)선이나 감마선을 영상의학 장비에 활용할 수 있다는 부수적인 장점도 있다. 박 교수는 “알파선을 이용하면 X선보다 10배가량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며 “특수약물을 섭취한 뒤 진행해야 하는 양전자단층촬영(PET)과 달리 체내에는 에너지만 흡수됐다 사라지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다”고 설명했다.

 

라온으로 생성한 다양한 희귀동위원소 빔의 분자생물학적 영향이 규명되면, 향후 이들 빔을 한 데 모아 치료에 활용하는 ‘콤비네이션 세러피(Combination Therapy)’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박 교수는 “피부, 근육, 뼈 등 신체의 각 부분에 가장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에너지의 크기는 모두 다르다”며 “각각의 장점을 모으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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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서울·청주·아산=권예슬 기자
  • 사진

    남윤중·이서연·고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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