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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살다 보면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실감할 때가 꽤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운전자들은 누가 더 기세등등하게 보이나 내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차에서 내리기 일쑤다. 재미있는 건 그러다가도 어느 한쪽이 “선생님, 놀라셨죠?”하고 나가면 상대방도 “아니, 뭐 괜찮습니다”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반말을 하거나 거칠게 나오면 ‘그래, 끝장 보지 뭐’ 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다.

필자를 찾아와서 상담하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문제도 알고 보면 분노의 표현에서 생겨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번은 화를 잘 내기로 소문난 한 기업의 임원이 상담을 받았다. 그는 분노를 자제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 잘 알았다. 그런데 그게 영 조절이 안 되니 고민일 수밖에. 그는 직원들한테 화낸 뒤 아차 싶어 회식을 시켜 주거나 선물을 사주곤 했다. 사소한 일에 또 화를 낸 자신의 행동을 그런 식으로 보상했다. 하지만 그때를 제외하곤 계속해서 뭔가 석연치 않은 불편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점차 그런 감정이 쌓이면서 스트레스가 커져 화를 못 참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졌다. 결국 회사에서도 문제가 돼 회사 차원에서 그의 상담을 의뢰해 왔다.

필자는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에게 몇 가지 숙제를 냈다. 자신이 자주 화를 폭발시키는 순간의 상황을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써보고 그때 느낀 감정을 백분율 점수로 환산하는 과제였다. 더불어 그런 감정을 느끼기 전에 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과 기억을 쓰게 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언어’를 통해 ‘이야기’로 재구성해 보게 한 것이다. 상담을 할 때마다 이런 훈련을 거듭 반복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러자 비로소 그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차츰 잦은 분노에서 벗어나게 됐다.

말로 표현만 해도 문제가 단순해져

언어는 일차적으로 감정의 발산을 ‘연기(延期)’하는 기능이 있다.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언어를 통해 생각을 재정리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필자의 임상경험으로 볼 때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다. 한걸음 더 나가서, 쓰기는 말하기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연기시키는 효과가 더 뛰어나다. 임원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상담을 시작할 때 내담자로부터 흔히 듣는 얘기가 하나 있다. 과연 ‘말로 털어놓는다고 자신의 문제가 정리되겠냐’며 의구심을 품는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거의 100%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듣게 된다.

“얘기를 하면서 정말 나 자신을 다른 각도로 보게 됐다. 그리고 문제가 정리되는 걸 느낀다.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도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그때마다 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준다. “말은 정신의 강력한 도구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온갖 혼란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것도 언어다. 또 그와 같은 작업에는 에너지가 들어간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즉 말이나 글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게 마련이다.”

실제로 요즘 그것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가벼운 예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면서 일기만 써도 몸 안의 혈류가 증가해 몸과 뇌 사이의 정보 교환이 잘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언어는 인간을 다스리는 자기 자신만의 ‘정부기관’인 셈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생각을 가리켜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고 했다. 일기를 쓰는 것 역시 자신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기와의 대화를 시도할 때 흔히 언어영역이라고 부르는 좌측하부 전두대뇌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이 실제로 밝혀졌다. 그리고 뇌의 좌측하부 전두대뇌피질의 앞쪽 부위가 실행능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특히 아이들을 교육할 때 언어의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일기를 쓰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아이들은 자기를 돌아보는 힘을 얻지 못하고 결국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좌측하부 전두대뇌피질
인간의 대뇌피질은 크게 5개의 엽(lobe)으로 나눠진다. 그중 전두엽이 가장 크다. 전두엽은 상부와 하부로 나눌 수 있으며 하부 전두엽에 언어영역이라고 부르는 브로카영역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런던대의 맥과이어 교수는 자신과 대화를 시도할 때 이 영역이 자리 잡고 있는 좌측하부 전두대뇌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언어 구사 능력을 키우면 개념을 이해하고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춤을 추거나 운동을 하는 신체적 능력까지 발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야구를 하거나 춤을 배우는 아이들이 자신의 동작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연습할 때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도시 한복판에서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에 접속하는 현대인도, 아마존에서 짐승과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조에족도 모두 자신들만의 언어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언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지닌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 대인관계 연구소 소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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