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로 신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의학 분야가 성형외과학이라면, ‘성형정신약물학’은 약물로 모난 성격을 둥글게 깎아내 좋은 성격으로 만드는 분야다. 즉 약물로 마음을 성형한다는 의미다.
성형정신약물학은 1990년대 미국에서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이라는 약물이 개발됨으로써 시작됐다. 하나의 약물로 인해 새로운 학문 분야가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이 약물이 오르내리며, 심지어 드라마에서조차 기분이 우울한 친구에게 프로작을 권하는 대사가 나오는 걸 보면, 과연 프로작이 어떤 작용을 통해 기분을 좋게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뇌 정보전달의 중심 신경전달물질
뇌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뉴런)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뇌는 신경세포 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무수한 신경세포들 사이에는 ‘시냅스’라는 간격이 있다. 시냅스에는 신경세포들 간의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신경전달물질이 존재한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은 알려진 것만 해도 200여 종류가 넘는다.
신경전달물질은 각각의 신경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 세로토닌은 감정, 수면, 식욕 등, 도파민은 정신기능, 중독, 의욕, 운동기능 등, 노르아드레날린은 불안, 감정 등과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기면 해당 기능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신분열증은 도파민 기능의 이상이 원인이고 우울증은 세로토닌이나 노르아드레날린의 기능 저하가 주된 원인이다. 항우울제인 프로작은 시냅스에서 이용될 수 있는 세로토닌의 양을 증가시켜 우울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이다. 즉 약물에 의해 증가한 세로토닌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럼 세로토닌이 증가하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신경세포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뇌에서 정보의 전달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로 일어난다. 신경세포는 다음 신경세포로 전기적 흥분을 전달한다. 신경세포의 전기적 흥분이란 세포막에 활동전위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이 활동전위는 세포막을 따라 축삭이라고 불리는 길게 뻗은 돌기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진행하다가 축삭의 말단에 이르면 그곳에 저장돼 있던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한다. 이렇게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은 이 축삭과 가까이 접해 있는 또다른 신경세포 돌기에 위치한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에 결합한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그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국 뇌에서의 정보 전달은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와 신경말단에서 분비되는 화학 신호에 의해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구조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신경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마음을 보는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론이다. 프로이드는 마음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눠 의식은 정신의 가장 바깥부분에서 외부 세계나 신체 내부에서 오는 자극을 지각하는 부분이고, 전의식은 의식 밖에 있지만 정신을 집중하면 기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무의식은 본능적인 욕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했다. 무의식은 우리 마음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의식이 수면 위에 뜬 빙산의 일각이라면 무의식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거대한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프로이드는 마음이 구조적으로 이드, 자아, 초자아의 3부분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 중 이드는 조직화되지 않은 본능적 욕구이고, 자아는 정신작용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운동, 감각기능을 통제하고 외부 현실과 접촉하며 본능적 욕구의 만족을 지연시키거나 조절한다고 했다. 이에 비해 초자아는 자신을 관찰하고 평가해 그 결과를 비판 또는 보답하기도 하며 양심이나 도덕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은 기계적이고 환원적인 프로이드의 이론과 인간관을 비판하면서 좀더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측면에서 마음에 대한 이론을 설명했다. 융은 개인의 특수한 체험과 관련이 있는 개인적 무의식과 달리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발견되는 보편적인 무의식인 집단적 무의식도 있다고 가정했다. 또한 무의식이 없어져야 할 위험한 충동이기보다, 의식에 결여돼 있는 것을 보충하는 역할도 하며 정신의 전체성을 이루려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도 현대과학은 마음에 대한 대표적인 심리이론인 무의식이나 의식, 자아개념 등이 뇌의 어떤 부위에서 어떻게 작용해 생기는지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뇌기능 연구는 과거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마음의 이론이 실제 뇌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활발히 검증하고 있다.
부위별 기능 나타낸 뇌지도
뇌의 어떤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할까. 이 답을 쉽게 풀기 위해서는 뇌지도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뇌지도를 통해 정확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기존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현 지식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뇌지도 위에 표현돼야 할 변수들은 신경세포의 구조, 화학물질의 성분, 뇌혈류의 분포, 대사율, 행동학적 정보, 병리적 정보 등 무수히 많다.
그런데 뇌의 해부학적 지도는 땅과 같이 고유한 물리적 형태를 나타내는 지리학적 지도와 다르다. 사람에 따라 무수히 많은 다양한 형태의 뇌 모양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위별 위치 정보를 확률론적으로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전체 인구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뇌확률지도’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또한 뇌에서 전기생리학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는 수백분의 1초, 학습에는 수분, 발달과 노화에는 수십년, 그리고 진화가 일어나는데는 수천년이 걸린다. 이 같은 시간에 따라 뇌지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19세기 초반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으로 골상학이 유행했다. 골상학은 두개골 모양으로 사람의 성격이나 정신능력을 추정하던 학설이다. 독일 신경해부학자 조셉 갈은 두뇌에서 많이 사용하는 부분은 용적이 커져 두개골을 밀어내는 효과가 있고,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함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설은 실험적 증거를 찾기 위한 노력이 없었고, 때로 남녀차별이나 인종차별의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골상학은 뇌 각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긴 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타당한 증거가 없어 이후 사이비과학으로 간주됐다.
잘 알려진 대로 대뇌는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으로 나뉘어 있다. 전두엽은 각종 고위 기능인 주의력, 작동기억, 판단력과 관련이 있고, 측두엽은 기억력, 청각기능, 언어기능과 관련이 있다. 두정엽은 시공간기능, 시각, 청각, 촉각을 관장하며, 후두엽은 주로 시각정보를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뇌의 1/8 정도 크기인 소뇌는 우리 몸이 하는 많은 운동들이 서로 협력해 조화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소뇌가 각종 정신능력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협력하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뇌 각 부분의 기능에 대한 지도가 완성되면 뇌가 어떻게 마음을 형성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뇌는 인간 이해의 종착역
뇌는 어떻게 조직화돼 있고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각각의 신경세포들은 정신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은 ‘인지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태동시켰다. 1970년대 후반 뉴욕에서 만들어진 이 용어는 현대과학의 중요한 한 분야를 차지하게 된다.
이로써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복잡한 인지기능을 설명하고자 했던 많은 심리학자들도 지각, 언어, 주의력, 기억 같은 정신현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뇌의 작용기전을 탐색하는 쪽으로 관심을 옮기게 됐다. 이런 연구를 더욱 가속화시킨 것은 뇌 영상기술의 출현과 비약적 발전이다. 이 연구들의 최종 목표는 뇌 영역별로 기능 정보들을 지도화하는 것이다.
DNA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영국 물리학자 프란시스 크릭은 “그 어떤 과학도 우리 자신의 뇌에 관한 연구보다 인간에게 더 중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근래까지도 뇌의 신비를 밝혀내는 일은 요원한 미래의 과제로, 또는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이제 분명히 반전됐다. 현재 뇌과학과 인지과학의 발전 속도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마저도 당황스럽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 매년 엄청나게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량,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해내는 놀라운 기술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정교한 기계인 뇌를 모방한 각종 테크놀로지의 출현을 목격하고 이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즉 우리 환경은 우리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나름대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인간이 아닌’ 어떤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또 우리의 정신현상을 단지 ‘체험’하던 데서 그 기전을 ‘지적으로’ 이해하게 됨에 따라 또다른 차원에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결국 뇌의 이해는 뇌를 닮은 산물을 낳을 것이고, 그 산물과 우리의 모습은 점점 더 닮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너무나 섣부른 기우일는지 모르나, ‘바이센티니얼맨’이나 ‘A.I.’와 같은 SF영화들이 던져주는 문제의식이 가볍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최근 뇌과학의 발전 속도에 놀란 까닭이리라.
도전, 뇌과학
인간의 뇌는 두개골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 자리 잡은, 무게 1.5kg에 불과한 매우 연약한 조직이다. 그러나 신체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통합하고, 모든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총괄하는 집행기관이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갈등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게임을 즐기고, 예술적·창조적 행위를 창출해내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정신적 활동이 체중의 1/40에 불과한 이 작은 생물학적 조직에서 비롯된다. 뇌라는 조직이 얼마나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구성돼 있는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과학은 뇌에 관한 이해를 상당히 진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뇌의 구조와 기능의 신비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서 현재와 미래과학의 과제로 남아 있어 젊은 과학자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