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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원전, 바다를 넘보다

더 작게, 더 빠르게, 더 다양하게



3월 11일은 역사상 가장 큰 원전 사고인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과 에너지 대안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더 안전한 차세대 고성능 원전 개발부터 소형화와 집적화를 통해 새로운 활용처를 찾으려는 시도까지, 원전 연구의 최전선을 점검해 봤다.

“선박 동력 기술의 발전사를 보면 최근 거의 10년 단위로 배의 동력원이 바뀌었어요. 그 자리를 원전이 차지할 날도 머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정익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의 연구실 이름은 ‘원자력 발전 및 동력 연구실’이다. 발전 뒤에 붙은 ‘동력’이라는 말이 이색적이다. 원전을 배나 로켓에 싣기라도 한다는 걸까.

“맞습니다. 원전의 활용처를 다양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전제 조건은 소형 원전이죠.”

30세에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고, 곧바로 아랍에미리트에 가서 명문 칼리파과학기술연구대 원자력공학과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한국형 표준원전의 우수함을 전수하던 젊은 학자는 의외로 원전의 활로를 발전소와는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다. 바로 소형화와 동력원이다.

소형화는 원전의 미래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작고 가벼우면서도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효율성이 뒤지지 않은 원전을 개발하는 것이다. 소형 원전은 얼마나 작은 걸까. 전기 출력 기준으로 오늘날 원전의 10분의 1~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원전은 크게 짓는 것이 기본이었다.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한꺼번에 많은 열을 내서 큰 터빈을 돌리고, 이를 이용해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방식이 다른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를 생산하는 비결이었다. 여기에 조절만 정교하게 해주면 외부 조건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일정하게 많은 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원전이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 비해 장점으로 내세우는 “기저전력화(언제나 일정한 전기를 생산함)에 유리하다”는 장점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 가능했다.

하지만 대형 원전은 한계가 많다. 우선 작은 나라나 도시에 활용하기에는 부담이 많다. 입지도 자유롭지 않다. 오늘날 많이 사용하는 원전은 물을 냉각재와 감속재로 이용하는 수형 원자로다. 우리나라 원자로의 대부분인 가압경수로와 월성의 가압중수로, 그리고 후쿠시마 제1원전에 사용된 비등수로가 모두 수형 원자로다. 이들은 물이 풍부한 곳에 위치해야 해 바닷가나 강에 자리잡는다. 내륙이나 건조한 지역에서는 그만한 물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두 번째 이유는 더 절실하다. 전력 생산 외에 다른 활용처를 찾을 수 없다. 이는 화력이나 수력 등 다른 발전 방법도 마찬가지인데, 화석 연료를 이용하거나 자연을 이용하는 기존 발전 방식과 차별화된 원전만의 특성이 없다.

하지만 원전을 작게 만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중소형 원전은 캡슐에 들어 있는 형태로 개발된다. 즉 ‘일체형’이다. 일체형으로 만든 원전 중 규모가 작고(소형) 집적도가 높으며 부품의 표준화가 잘 돼 있는 원전을 ‘모듈화 원전’이라 한다. 마치 건전지를 직렬 또는 병렬로 연결하듯 손쉽게 여러 개를 모아 건설하거나 조립할 수 있다. 소형 모듈화 원전은 냉각이 쉬워 꼭 물이 많은 장소를 고집하지 않아도 돼 건설이 자유롭다. 작은 도시국가나 인구밀도가 낮은 오지에도 건설할 수 있다. 많은 양의 전력이 필요할 때는 여러 개를 모아 건설하면 된다.





안전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현재의 원전은 우라늄을 태워 물을 끓인 뒤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이런 구조다 보니,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하고 증기를 식히기 위해 수많은 파이프가 노심과 압력용기를 드나든다. 이런 파이프가 망가져 냉각수가 새고 노심의 온도가 올라가면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중대사고’가 일어난다. 하지만 원전을 작은 일체형으로 만들면 압력용기 안에 파이프와 설비 상당수가 들어갈 수 있어 안전성이 훨씬 높아진다.

소형 원전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분야다. 세계 최초로 중소형 원전을 개발해 표준설계 인허가까지 마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스마트(SMART)’다. 표준형 원전의 10분의 1 정도의 전력을 생산하며(전기 외 수소도 생산하므로 전체 열출력은 더 크다. 표준형의 3분의 1이다), 일체형으로 설계됐다. 스마트는 2010년 말 교육과학기술부에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했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실사를 통해 인허가를 받았다. 일체형 원자로는 세계 어디에서도 규격 표준화 단계까지 나아간 적이 없다. 이 교수는 “이미 세계 주요 연구기관들이 일체형 중소형 원전의 표준화 경험을 살피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SMART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모듈형이 아닌데다 크기도 큰 편이라는 비판도 많다).

소형 원전이 활용될 곳은 다양하다. 최근 이 교수를 비롯해 원전 연구자들은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항이 심한 육상에서 활용처를 찾기 전에, 바다를 운항하는 배나 해상 파워플랜트, 석유시추선용 소규모 발전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해상에서 원전 발전부를 기존 디젤 발전기로 교체한 뒤 입항시키거나 아예 항구가 공해 선박 쪽으로 움직여 물자를 실어나르는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44~45쪽 참조).

선주회사와 선박 연구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KAIST에서는 지난 2월 처음으로 선박 회사와 원전, 조선 연구자들이 모이는 학술행사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필승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교수는 해상 2~3km 연안에 지지대를 짓고 원전을 세우는 해양플랜트 건설 가능성을(47쪽 위 그림), 정현 교수는 과감하게 선박형 LNG 시추-정제시설인 FPSO에 원전을 탑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연구해 발표했다.

물론 대부분 아이디어 단계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국제법과 규제, 시민과의 합의 등 첩첩산중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원전을 써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에도 답을 해야 한다. 여기에 답하기 위한 노력에 원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원전의 개념을 바꾸는 차세대 원전

“이미 일체형 소형 원전이 있는데, 비슷한 가압경수 방식의 소형모듈형원전(SMR)을 개발할 필요가 있을까요.”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식경제부의 미래산업선도기술개발산업에서 소형모듈형원전이 탈락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황 교수팀과 다른 두 팀이 공동으로 응모했는데 작년 11월 사업 자체가 탈락했다. 탈락 뒤 재응모를 위해 자체적으로 하나의 모형을 선정했는데, 다시 가압수형원전(경수로)이 1위로 뽑혔다. 표준설계인허가까지 난 SMART와 비슷한 형식이다.

“차세대 원전을 이용한 소형모듈화원전으로 연구를 다각화하길 바랐는데 아쉬워요.”

황 교수의 연구실 이름은 ‘핵재료연구실’이다. 핵재료라는 이름에는 차세대 원전의 핵심 개념이 숨어 있다. 원전은 우라늄을 연료로 쓰지만, 오늘날의 원전은 우라늄 전체 양의 0.7%밖에 차지하지 않는 ‘우라늄-235’ 동위원소를 쓴다(우라늄 외에 ‘토륨’을 쓰는 원전도 최근 연구 중이다. 과학동아 2012년 2월호 참조).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238’은 핵분열에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 기존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연소 뒤 그대로 다른 핵폐기물과 함께 버리고 있다. 여기에는 ‘플루토늄-239’나 다른 초우라늄 핵종(우라늄보다 원자가가 높은 핵종들)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 역시 핵분열시키면 연료로 쓸 수 있지만, 기존 원전으로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핵폐기물에서 쓸만한 우라늄-238과 초우라늄 핵종을 골라 발전을 하면 우라늄 활용도도 월등히 높이고 핵폐기물 양과 독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초우라늄핵종은 반감기가 길어서 수만 년까지 독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또 플루토늄처럼 방사능과 함께 화학 독성이 강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초우라늄핵종과 우라늄-238을 연소시킬 수 있는 원전을 ‘고속로’라고 한다.

고속로가 차세대 원전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지만 모든 차세대 원전이 고속로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처음으로 4세대 원전 연구를 위해 국제 공조(GIF)를 시작했을 때 대표 모형을 여섯 가지 선정했다. 이 가운데 고속로는 세 가지. 나머지 셋은 고속로의 중성자를 약화시킨 ‘열중성자’를 쓴다. 열중성자를 쓰고서도 3세대의 불안정함이나 폐기물 문제 등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황 교수팀은 고속로 중 냉각재로 납과 비스무스를 넣은 ‘납냉각고속로’를 연구하는 국내 유일한 연구자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축이 돼 나트륨(소듐)을 쓰는 또다른 고속로인 ‘소듐냉각고속로’를 연구하고 있다. 열중성자를 이용하는 차세대 원전으로는 ‘고온가스로’가 있다(46쪽 그림 참조). 황 교수로서는 가압 수형 원전은 물론, 고속로 연구의 세계적 주류인 소듐냉각로와도 경쟁할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다. 연구 다각화와 집중화 가운데, 정부는 집중화의 손을 들어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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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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