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따르릉” “네, 여보세요.”
“김민정 씨?”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여 귀를 기울였지만, 무슨 대화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 전화 이후 민정이는 말이 없었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이들에게 으레 있는 일이리라’고 생각했다.
“민정아, 들어가. 내일 청첩장 약속 잊지 않았지?”
“으응….”
힘 없이 대답하는 그 모습이 내가 본 민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민정은 다음 날 사라졌다.
#2
“이야, 최성준이. 오랜만이다.”
간만에 찾아온 친구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며칠은 잠을 못 잔 듯한 모양새다. 분위기를 살려보려 즐거운 척을 해봤지만, 녀석의 표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민정이가… 사라졌어. 집에 가봤는데 급하게 짐을 싸서 나간 것 같아. 전화도 꺼져있고, 회사도 안 나가고. 그냥 갑자기 사라졌어. 나 좀 도와주라.”
이게 무슨 소린가. 결혼을 한 달 앞둔 신부가 사라졌다니. 큰 일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에 잠수를 타는 이들도 있다고 하지만,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에 직장까지 관두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얼마 전 만난 그녀는 잠수를 타거나 할 성격이 아니었다. 반짝거리는 머릿결, 뽀얀 피부는 고생 한 번 안 해본 듯한 인상이었지만, 묘하게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가 있었다. 과학수사관으로 7년째 일해온 내 직감이 ‘평범한 사건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3
10년 지기 친구 진원의 직업은 과학수사관이다. 경찰에서는 단순한 실종이라고 믿는 듯 했고, 나는 무조건 민정이를 찾아야 한다.
“공식적으로 수사하는 건 불가능해. 너도 알겠지만, 나는 수사권이 없을뿐더러, 경찰에서는 아마 며칠 후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할 거야. 내가 일단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알아볼게.”
다행히도 진원은 내 부탁을 들어줬다. 실력 있는 수사관으로 어린 나이에 승승장구한 녀석이니, 믿고 맡겨도 될 것이다. 덕분에 조금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정의 집을 다녀온 진원의 전화 한 통은 다시금 내 마음에 소용돌이를 불러왔다.
“여기, 민정 씨 혼자 살던 게 아닌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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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그날’의 사건을 해독한다 新 DNA 과학수사
Prologue. 당신, 도대체 누구야?
Part 1. DNA는 의외로 수다스럽다
Part 2. 미생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Part 3. DNA로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까
Bridge. DNA 메틸화로 기자의 신상을 털다?!
Part 4. 시체 없이도 살인을 증명할 수 있다
Epilogue.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