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자를 변화시키지 않고도 유전 정보를 바꾸는 ‘후성유전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DNA에 메틸기가 붙으면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DNA 메틸화’가 그 사람의 연령이나 생활 습관을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4파트 참조). 과학수사에서도 이런 좋은 정보를 놓칠 리가 없다. 기자와 익명을 요구한 H 기자, L 연구원의 DNA로 신상을 털어봤다.
DNA 메틸화를 연구하는 이환영 연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를 찾은 건 폭우가 내리던 7월 6일이었다. 침만 뱉으면 된다는 이 교수의 말에 ‘왕년에 침 꽤나 뱉었다’는 H 기자와 함께 소풍 가는 기분으로 연세대를 찾았다. 하지만 이게 웬 일, 이 교수는 5mL는 돼 보이는 병을 내밀며 선이 표시된 부분까지 침을 채우라고 말했다.
“퉤, 퉤, 퉤에엣.”
말도 하지 않고 침만 뱉던 두 기자가 기진맥진해질때쯤 원하는 용량의(?) 침을 얻을 수 있었다. 분석할 시료는 총 세 개. 기자, H 기자, L 연구원의 DNA를 분석해 연령과 흡연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연령 추정은 과학수사에서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가장 많이 연구돼 있어 정확도가 높
기도 하거니와, 가장 쉽게 눈에 드러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현재 혈액의 DNA를 이용해 가장 정확하
게 연령 추정이 가능한 모델은 미국 UCLA 생물통계학과 스티브 호바스 교수가 2013년에 발표한 모델이다(과학동아 5월호 특집 기사 참조). 호바스 교수는 나이에 따라 DNA 메틸화 정도가 변하는 DNA 부위 353곳을 발견했고, 이를 이용해 연령 추정 시 오차를 3세 이하로 낮췄다. 정확하긴 하지만 이 과정에는 최소 250ng 이상의 DNA가 필요한데, 보통 현장에서 발견되는 DNA 양은 고작해야 1ng 정도다. 즉, 좀 더 나이에 민감한 DNA 부위를 찾아야 한다. 이 교수는 DNA 부위 7곳만 확인해도 되는 새로운 연령 추정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로 세 개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가 7월 16일에 나왔다. 올해 만 41세인 L 연구원은 38세로 추정돼 3세 이하의 오차를 보였다. 그렇다면 기자와 H 기자의 연령은 어땠을까(모든 나이는 만으로 계산한다). 올해 29세인 기자는 27.7세, 36세인 H 기자는 35.9세로 모두 1~2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 교수는 “95%의 피험자는 실제 만 나이보다 ±8.3세 범위로 추정 나이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흡연 여부도 정확하게 나왔다. 비흡연자인 기자는 ‘Never Smoker’로 추정됐고, 흡연자인 H 기자와 L 연구원은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경계 값에 위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인 흡연자는 다이 결과가 나온다. 이 교수는 “완전한 흡연자로 추정되려면 하루에 한 갑씩 수년간 흡연해 온 헤비 스모커(Heavy Smoker)여야 한다”며 “다른 생활 방식에 비해 흡연은 DNA 메틸화가 원래 상태로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그날’의 사건을 해독한다 新 DNA 과학수사
Prologue. 당신, 도대체 누구야?
Part 1. DNA는 의외로 수다스럽다
Part 2. 미생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Part 3. DNA로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까
Bridge. DNA 메틸화로 기자의 신상을 털다?!
Part 4. 시체 없이도 살인을 증명할 수 있다
Epilogue.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DNA 메틸화를 연구하는 이환영 연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를 찾은 건 폭우가 내리던 7월 6일이었다. 침만 뱉으면 된다는 이 교수의 말에 ‘왕년에 침 꽤나 뱉었다’는 H 기자와 함께 소풍 가는 기분으로 연세대를 찾았다. 하지만 이게 웬 일, 이 교수는 5mL는 돼 보이는 병을 내밀며 선이 표시된 부분까지 침을 채우라고 말했다.
“퉤, 퉤, 퉤에엣.”
말도 하지 않고 침만 뱉던 두 기자가 기진맥진해질때쯤 원하는 용량의(?) 침을 얻을 수 있었다. 분석할 시료는 총 세 개. 기자, H 기자, L 연구원의 DNA를 분석해 연령과 흡연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연령 추정은 과학수사에서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가장 많이 연구돼 있어 정확도가 높
기도 하거니와, 가장 쉽게 눈에 드러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현재 혈액의 DNA를 이용해 가장 정확하
게 연령 추정이 가능한 모델은 미국 UCLA 생물통계학과 스티브 호바스 교수가 2013년에 발표한 모델이다(과학동아 5월호 특집 기사 참조). 호바스 교수는 나이에 따라 DNA 메틸화 정도가 변하는 DNA 부위 353곳을 발견했고, 이를 이용해 연령 추정 시 오차를 3세 이하로 낮췄다. 정확하긴 하지만 이 과정에는 최소 250ng 이상의 DNA가 필요한데, 보통 현장에서 발견되는 DNA 양은 고작해야 1ng 정도다. 즉, 좀 더 나이에 민감한 DNA 부위를 찾아야 한다. 이 교수는 DNA 부위 7곳만 확인해도 되는 새로운 연령 추정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로 세 개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가 7월 16일에 나왔다. 올해 만 41세인 L 연구원은 38세로 추정돼 3세 이하의 오차를 보였다. 그렇다면 기자와 H 기자의 연령은 어땠을까(모든 나이는 만으로 계산한다). 올해 29세인 기자는 27.7세, 36세인 H 기자는 35.9세로 모두 1~2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 교수는 “95%의 피험자는 실제 만 나이보다 ±8.3세 범위로 추정 나이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흡연 여부도 정확하게 나왔다. 비흡연자인 기자는 ‘Never Smoker’로 추정됐고, 흡연자인 H 기자와 L 연구원은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경계 값에 위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인 흡연자는 다이 결과가 나온다. 이 교수는 “완전한 흡연자로 추정되려면 하루에 한 갑씩 수년간 흡연해 온 헤비 스모커(Heavy Smoker)여야 한다”며 “다른 생활 방식에 비해 흡연은 DNA 메틸화가 원래 상태로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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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그날’의 사건을 해독한다 新 DNA 과학수사
Prologue. 당신, 도대체 누구야?
Part 1. DNA는 의외로 수다스럽다
Part 2. 미생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Part 3. DNA로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까
Bridge. DNA 메틸화로 기자의 신상을 털다?!
Part 4. 시체 없이도 살인을 증명할 수 있다
Epilogue.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