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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토종 제빵효모 ‘빵 한류 시대’ 이끌까

프랑스에는 바게트, 이탈리아에는 치아바타, 멕시코는 토르티야가 있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빵은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마도 단팥빵”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아마도’라 할 만큼, 모두들 확신하지 못 했다). 기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골 빵집의 대표빵이 단팥빵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팥빵의 고향은 옆 나라 일본이다.

같은 질문에 이광석 경희대 조리·서비스 경영학과 교수는 “없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 전통빵이 (아직까지) 없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쌀을 주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에서 자라는 밀은 글루텐이 적은 탓에 반죽을 해도 잘 뭉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194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나 서양에서 유래하는 빵을 먹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부터는 개인 제과점이 성장한 제빵회사가 여럿 탄생했다. 이 가운데 지금도 국내 제빵업계를 대표하는 한 기업은 최근 ‘한국의 토종 천연 제빵효모’를 찾는 데 성공했다. 한국적인 맛을 내는 빵이 탄생하는 데 한걸음 다가간 셈이다.


한국의 토종 제빵효모 ‘SPC-SNU 70-1’
2005년, SPC 그룹에서는 한국 토종 제빵효모의 필요성을 느꼈다. 국내에 살고 있는 효모를 이용해 한국적인 빵 맛을 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SPC 식품생명공학연구소와 함께 토종 제빵효모를 발굴한 서진호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이전까지 국내 제빵업계들이 사용해온 효모는 대개 프랑스 등에서 수입했거나, 제빵 능력에 대한 분석을 한 적이 없는 국내산이었다”면서 “특히 프랑스산 효모는 발견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생물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따라 진화하기 때문에 빵맛을 점점 잃는다”고 설명했다. 발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효모가 발효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결국 SPC 그룹 연구팀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새로운 한국 토종 효모를 찾아 나섰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막걸리나 된장, 청국장, 김치 같은 발효음식이 발달했다. 연구팀은 그 중에서도 막걸리 누룩에 주목했다. 술과 빵은 둘 다 같은 종인 맥주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공통적으로 이 효모가 당을 분해해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원리를 사용하는데, 술은 주로 에탄올이, 빵은 이산화탄소(부풀림)와 약간의 에탄올(향미)이 중요하다. SPC 연구팀은 2005년부터 11년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전국의 가정이나 양조장, 시장에서 술이나 장을 담글 때 사용하는 누룩을 모았다. 누룩에는 효모를 비롯해 유산균이나 곰팡이 등 음식을 발효시키는 여러 미생물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한국 토종 효모 1만여 종을 분리해냈다.

문제는 모든 효모가 빵을 만들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효모만 600가지가 넘지만, 빵을 만들 수 있는 건 몇 개 없다(98쪽 참조). 또 제빵이 가능하다고 해도 제빵능력은 각각 다르다. 빵을 만드는 데 적합한 효모는 반죽에 섞여 있는 상태에서 발효를 잘 시켜야 하고, 발효 과정 동안 향긋한 성분과 이산화탄소를 충분히 내야 하며,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빵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2011년, SPC 그룹은 30년 넘게 효모를 연구해온 서진호 교수팀과 손을 잡았다. 서 교수팀은 SPC 그룹에서 찾은 한국 토종 효모 1만여 종 가운데 발효 능력이 뛰어난 것을 골라낸 다음, 실제로 반죽에 섞인 상태에서 살아남도록 적응시켰다. 사람이 말을 타고 다니기 위해 야생마를 데려와 길들이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리고 빵을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수십 t 만큼 대량으로 배양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결국 지난해 4월, 연구팀은 제빵에 가장 적합한 종인 ‘SPC-SNU 70-1’을 찾아냈다. 이 효모 종은 제빵에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죽을 발효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지금까지 SPC 그룹은 이 효모를 이용해 총 167가지의 빵을 출시했다. 서 교수는 “이 토종 효모로 만든 빵은 일반 빵과 비교해 시큼한 냄새가 덜하고 맛이 담백하다”고 밝혔다.


미래의 한국 빵 책임질 차세대 한국 토종 천연효모
서진호 교수는 “한국 토종 천연효모인 SPC-SNU 70-1을 찾았지만 이제 겨우 1세대일 뿐”이라면서 “앞으로 이 균주의 한계를 보완하는 2세대, 3세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빵이나 바게트처럼 설탕이 적게 들어가는 빵을 만드는 데에는 SPC-SNU 70-1이 탁월하지만, 단팥빵처럼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반죽에서는 발효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다양한 천연발효빵을 만들려면 다양한 환경마다 발효성능이 뛰어난 효모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SPC 식품생명공학연구소와 서 교수팀은 현재 다양한 식재료에서 제빵에 적합한 새로운 효모를 찾고 있다. 또 SPC-SNU 70-1의 유전정보를 분석해, 유전자마다 어떤 기능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맛있는 유전자만 골라 합성하면 완벽한 제빵사 효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서 교수는 “GMO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많이 검증됐지만, 아직도 소비자들이 GMO로 만든 식품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효모 중에 원하는 능력을 가진 것을 찾거나, 효모에게 자연적인 돌연변이를 유도하면서 발효 능력을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맛있는 한국 빵을 찾기 위한 연구팀의 노력은 비단 효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연구팀은 ‘신맛이 나지 않는 사워도우’를 개발하고 있다. 반죽을 천연발효시키는 사워도우에는 효모뿐만 아니라 유산균이 들어 있어서 풍미가 훨씬 풍부하다. 하지만 유산균은 젖산과 함께 신맛이 나는 초산을 낸다.

연구팀은 반죽 속에서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인 효모와 유산균이 어떤 비율로 살고 있을 때 빵 맛이 좋은지 찾고, 그 비율을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김치와 막걸리 누룩에서 젖산만을 만들어내는 유산균을 찾아냈다. 서 교수는 “가까운 미래에는 상쾌하게 시큼한 맛을 자랑하는 사워도우 빵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효모는 진핵생물이지만 유전체가 작고 배양하기가 쉬워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실험할 때 사용하는 재료다. 하지만 제빵용으로 효모를 연구한 사례는 거의 없다. 또한 제빵사마다 발효종을 만들어 키울 뿐, 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부족하다. 그래서 맛있는 빵을 만드는 효모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더욱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한 제빵사들의 노력과, 살아 있는 효모에 대한 식품생명공학자들의 애정 어린 연구가 만나 가까운 미래에는 모두가 맛보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한국 빵’이 탄생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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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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