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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산신령이라 불렸던 사나이


쿠어스 필드는 우리나라 투수들과 인연이 깊다. 김병현이 2005년부터 세 시즌 동안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뛴 적이 있다. 은퇴 후 해설자로 변신한 김선우는 2005년 선수 시절 이 구장에서 단 2안타만을 내주며 완봉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뛰었던 쿠어스 필드는 메이저리그에서 타자에게 가장 유리한 구장이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쿠어스필드의 ESPN 파크팩터는 133으로 압도적인 1위다(100을 기준으로 높을수록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다. 지난 달 베이수볼 참조). 2위권 구장의 파크팩터가 110이 채 안된다는 걸 생각하면, 쿠어스 필드가 얼마나 투수들에게 가혹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김병현은 쿠어스 필드에서 뛰면서 9이닝당 홈런 허용 개수가 20% 가량 늘었고, 김선우가 완봉을 했을 때는 ‘투수들의 무덤에서 일어난 기적’이라며 미국 언론이 대서특필을 했었다.

토드 헬튼은 어떤 선수로 기억될까

투수들의 지옥, 쿠어스 필드는 타자들에겐 천국이다. 선수생활 내내 쿠어스 필드에서 뛴 토드 헬튼이 대표적인 경우다. 메이저리그에서 17년을 뛴 그의 홈 경기의 통산 타율은 0.340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지만, 원정 경기는 0.280 이하로 평범하다. 기록을 조금 더 세세히 살펴보기 위해 연도별 OPS 추세를 살펴보면 홈과 원정의 기록 차이가 뚜렷하다(OPS는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타자 평가 지표다). 보통 OPS가 0.05만 차이가 나도 타격 능력이 한 단계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는데, 토드 헬튼은 2002년부터 은퇴시즌인 2013년까지 홈의 OPS가 원정보다 0.1 이상 높았다(오른쪽 그래프 참조). 그가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2000년대 초반에는 홈과 원정 OPS가 0.25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훌륭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항상 비아냥 이 따라다녔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다른 로키스 선수들과 비교하며 ‘그들에 비하면 차이가 크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가 타자가 유리한 구장에서 뛰며 이득을 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정답은 ‘높은 고도’다. 쿠어스 필드가 있는 덴버는 해발고도가 1600m다. 설악산 대청봉(1708m)과 비슷한 고도다. 이런 높은 고도 때문에 공기 밀도가 낮아지고, 공기 저항이 줄어 타구의 비거리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해발 0m에 위치한 구장보다 5% 더 멀리 날아간다. 이외에도 콜로라도의 더운 날씨와 건조한 환경도 투수를 괴롭혔다.

온도가 올라가면 분자의 운동이 활발해져 공기 밀도가 낮아지고, 대기가 건조해지면 공과 배트의 탄성력이 높아진다. 투수들이 족족 맞아나가자 콜로라도 구단은 2000년대 초반 야구공을 저온가습실에 넣어 반발력을 줄이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경기 시작 전까지 5℃ 내외의 온도에 40% 습도를 유지하는 야구공 냉장고(?)에 야구공을 보관했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LG의 승부수, X존

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구장은 잠실야구장이다. 잠실은 좌우 펜스 100m, 좌우중앙 펜스 120m, 중앙 펜스 125m로 전 세계 프로구장 중에서 손꼽히게 크다. 구장이 너무 크다 보니 원래라면 펜스를 넘어갈 홈런성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히는 경우가 많다. 장타력이 떨어지는 팀은 점수를 내기 무척 힘들다.

2009년 시즌을 앞둔 LG가 바로 그랬다. 2006~2008년까지 잠실의 ESPN 파크팩터를 살펴보면 96, 91, 94로 역시 투수에게 꽤 유리했다. 결국 LG는 2009년 시즌을 앞두고 ‘X존’을 설치했다. 담장 앞에 X존이라는 이동식 펜스를 설치해 펜스의 길이를 4m 정도 당긴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2008년 LG의 팀 홈런은 66개였는데, 2009년에는 129개로 거의 2배가 증가했다. 팀장타율 역시 2000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4할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LG의 순위는 겨우 한 단계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홈런과 장타율이 급증한 것은 LG타자들뿐만이 아니었다. 200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타자에게 유리한 시즌이었고, 리그 전반적으로 홈런과 장타가 크게 늘었다. 이런 ‘타고투저’와 X존의 설치가 맞물려 LG 투수들은 악몽 같은 2009년을 보내야 했다. 2009년 이전에는 투수력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외야 덕분에 피홈런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2009년에는 그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결국 X존은 이듬해인 2010년 시즌이 끝나고 사라졌다.

내년에는 넥센과 삼성이 새로운 구장으로 옮길 예정이다. 그 구장에서는 또 어떤 스토리가 만들어질까. 새로운 구장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이야기에 야구팬들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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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송준섭 기자
  • 이희원
  • 글 및 사진

    bizball project
  • 일러스트

    황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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