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문화는 대륙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예로부터 빵은 주로 서양에서 주식으로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가 글로벌화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밥 대신 빵을 먹는다. 인류는 언제부터 빵을 먹기 시작했을까. 빵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을까. 어디로부터 어디로 전해져 지금처럼 수없이 다양한 빵이 탄생했을까.
빵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면 기원전 6000년 경에 그려진 스위스 동굴벽화에 빵이 처음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에 기록된 빵은 그저 떨어진 곡식 낟알들이 물에 불고 뜨거운 햇볕에 건조된 상태였다. 오히려 빵의 주재료가 밀가루인 점을 감안하면, 곡식이 풍요롭게 자랐던 지중해 연안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빵의 고향으로 꼽을 수 있다.
기원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파피로니아에서는 이미 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반죽을 발효시킨 게 아니라, 밀을 그대로 사용 하거나 잘게 부숴서 납작하게 구운 딱딱한 전병 형태였다. 그 자체로 먹거나 다른 음식을 만들 때 재료로 사용했다. 중동 지방의 납작한 빵, 이탈리아의 피자, 인도의 차파티, 그리고 멕시코의 토르티야 등 많은 전통 음식들도 이런 식으로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졌다.
‘진정한’ 빵은 효모 이용한 고대 이집트에서 탄생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먹는 것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발효 빵은 언제, 어디서 탄생한 걸까. 전문가들은 기원전 2000년 경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시대로 본다. 당시 전쟁이 잦았던 탓에 군사들을 먹이기 위한 식량이나, 피라미드 건설 같은 노역에 동원되는 백성들에게 지불하는 수단으로써 빵을 만들었다. 특히 맥주와 빵을 임금으로 지불했다거나, 맥주를 이용해 빵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의 빵 생산량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자란 밀은 가루로 빻은 뒤 반죽을 했을 때 잘 뭉쳐지는 종이었다. 또한 기후가 온난다습해 미생물들이 반죽을 발효시키기에 최적이었다. 발효빵과 맥주가 발달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전날 빵을 만들다가 남은 시큼한 발효반죽을 다음 날 새로 만든 반죽에 섞어, 훨씬 향기롭고 부드러운 빵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방법은 현재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방법과 같다. 즉, 오늘날과 같은 빵이 이때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기원전 1000년 경, 그리스에서 해상 문화가 발전하고 과실을 풍부하게 재배하면서 빵에도 여러 종류의 부재료가 더해지게 됐다. 빵을 주식으로만이 아닌, 기호 음식으로도 즐기게 된 것이다. 이때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유럽으로 기술이 활발히 전파된 시기이기도 하다.
◀ 로마 시대에 가장 번창했던 도시, 폼페이에 있었던 빵집과 화덕의 모습.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을 때, 사람들과 함께 화산재에 파묻혀 본 모습대로 남았다.
이어 로마 시대에는 상업적으로 협동조합(guild)이 생기고 대중을 대상으로 판매가 이뤄지면서 빵이 더욱 대중화됐다. 당시에는 각자 반죽을 만든 다음, 나라에서 운영하는 대형 오븐을 이용해 구워서 시민에게 팔기도 했다. 오늘날 빵집의 시초다. 이미 기원전 312년에 로마 시내에만 빵집이 254개나 있었으며, 제빵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 훈련원도 있었다. 또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재에 묻힌 폼페이에서는 빵집과 제빵 과정을 설명하는 벽화, 까맣게 타버린 빵이 발굴되기도 했다.
이로부터 한참 뒤인 1860년 경, 프랑스 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가 빵이 발효되는 과정을 밝혀내면서 빵은 또 한 번 폭발적인 발달을 하게 된다. 이후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면서 제빵개량제 같은 특별한 재료나, 반죽을 최적의 상태에서 발효시키는 기계가 탄생하게 됐다. 아주 기나긴 시간 동안 역사적인 경험과, 제빵사 개개인의 노하우로 만들어져 왔던 빵이 과학의 도움으로 더욱 더 맛있게 재탄생한 셈이다.
한국의 빵은 광복 이후 탄생
그렇다면 오랫동안 서양에서 주식이었던 빵이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을까. 전문가들은 구한말 무렵인 1900년 경 외국 선교사들이 지금의 호텔과 같은 정동 구락부에서 면포(빵)와 설고(카스텔라)를 팔았던 것을 효시로 본다. 그러나 바다에서 표류해 1628년 제주에 도착했던 박연 일행이 빵(마른 떡)을 먹었으며, 비슷하게 우리나라에 표류했던 하멜 일행이 1653년 탈출할 때 빵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찍이 서양으로부터 빵을 비롯한 여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인들이 1902년 한반도에 빵집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과제빵 기술이 국내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빵은 대중이 아닌, 소수 사람들만 특별한 목적 하에 먹을 수 있었다.
◀ 1945년 황해도 옹진에 생긴 작은 빵집.
빵과 과자, 사탕을 팔았다. 3년 뒤 서울로 자리를 옮긴 뒤 점점 커져 삼립식품, 이어 SPC그룹이 됐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광복 이후에 국내 제빵사들이 빵집을 낸 것을 효시로 볼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야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가 원활하게 공급됐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인 빵 역사는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서양으로부터 빵과 제빵 기술을 전해 받은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밀을 재배했으며, 밀가루를 이용해 빵을 만들었다. 중국과 왕래가 잦았던 한반도에도 이와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효모로 발효시킨 한과도 여럿 있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빵의 기원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이전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빵 역사를 좀 더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광석
한국 최초의 제과제빵 교수. 성균관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트퍼드대에서 MBA, 경희대 식품가공학 석사와 동국대에서 식품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과거 덕수제과를 운영하기도 했고, 해외 여러 유관기관의 연수를 거쳤다. 지금까지 25년 넘게 경희대에서 제과제빵 이론과 실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70여 편의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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