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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암의 절대다수는 ‘무작위’로 온다

흔히 사람들은 암의 원인이 유전 또는 환경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오류가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015년 암 학계는 시끌시끌했다.
그 해 1월 암 위험이 무작위적인 불운과 관련이 깊다는 연구가 ‘사이언스’에 실렸기 때문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네이처’에 곧바로 반박하는 논문이 나왔다. 그리고 약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한동안 잠잠했던 논란이 다시금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암이 불운’이라는, 새로운 유전체 분석 데이터를 앞세운 연구결과가 다시 한 번 ‘사이언스’에 실렸다.



“제가 도대체 왜 암에 걸렸나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운동을 하고, 술 담배는 하지도 않았는데! 평소에 탄 고기도 안 먹고 꼬박꼬박 건강검진도 받았어요. 가족 친지들도 모두 건강한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불쑥 환자가 질문을 던졌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간부 직함을 달 정도로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온 환자였다. 그의 질문은 암이라는 병이 어떤 기전으로 발생 했는지에 대한 학문적인 논쟁을 하고자 꺼낸 질문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암에 걸린 것인지,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외침에 가까웠다.


암의 근본 원인은 돌연변이
필자는 지난 2월까지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는 동안 이런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설령 건강을 열심히 챙기지 않았던 환자들도, 가족에게 암 병력이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물었다.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린 것이냐고. 가끔 담배를 많이 피우는 환자에게는 “담배 때문이에요”라고 겁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에게는 정해놓은 대답이 있었다. “당신의 잘못, 그리고 그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실은 우리 의사들도 정확한 원인은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암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 돌연변이가 하필 세포의 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축적되면서 세포가 끊임없이 증식해, 주위 조직을 침범하고 전이되는 것이 바로 암이다. 돌연변이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다. 돌연변이는 유전에 의해, 환경에 의해, 또 끊임없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류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이다. 암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돌연변이가 어떻게 생겨나 암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주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그동안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미 발생한 암세포에 어떤 약을 투약해야 암세포가 효과적으로 사멸될 것인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암세포가 한 종류의 돌연변이를 가진 하나의 클론(세포군)이 증식해 덩어리를 이뤘다고 생각했다. 암을 일으키는 주요 클론을 하나씩 제압하면 암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실제로 특정 유전자 변이가 과한 활동을 일으켜 암화 과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정복할 수 있었고, 유방암과 폐암 등 일부 암에서 치료 성적이 향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암세포의 반격도 끈질겼다. 수십~수백만 종류의 새로운 클론을 만들고 증식해 저항군을 형성한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기 시작했다(2파트 참조).


암은 ‘불운’이라는 불편한 진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암유전학자 버트 보겔스타인 박사팀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클론의 암세포가 처음 발생할 때, 어떤 원인으로 생기는가에 주목한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의 상당수가 자체적인 세포 분열 과정에서 ‘무작위로’ 생긴다는 사실이다. 기존에는 유전 또는 환경적 이유로 주로 암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었다. 보겔스타인 박사는 지난 4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사이언스’에 논문도 실었다(doi:10.1126/science.aaf9011).

보겔스타인 박사팀은 줄기세포의 세포 분화가 많은 장기일수록 암 발병률이 특히 높다는 데 착안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이 2015년 미국인들의 암 발병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5가지 인체 조직 가운데 정상적인 줄기세포 분열이 많은 기관일수록 발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오류가 암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일 수 있다는 추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가설을 더 정확히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전세계 69개 나라, 48억 명의 암 발병률을 분석했다.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제공하는 423개의 암 등록부를 토대로 17가지 암에 대한 발병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모든 국가에서 조직의 평생 줄기세포 분열 횟수와 암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다(69쪽 참조).

영국에서 수집된 암 유전체 데이터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유전적인 이유로 돌연변이가 일어나 암이 발병한 경우는 전체의 5%에 불과했다. 환경적인 이유로 돌연변이가 일어난 경우도 전체의 3분의 1에 조금 못 미쳤다(29%). 반면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가 암으로 발전한 경우는 전체의 3분의 2(66%)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암의 3분의 2는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암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동안 무작위 요인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연구자들에게도 놀라운 수치였다. 특히 흡연이나 간접흡연 같은 환경적인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을 줄 알았던 폐암도 3분의 1 가량은 무작위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췌장, 뇌, 뼈, 전립선과 같은 조직의 암은 무작위 요인에 의해 생길 확률이 특히 높았다.
 
담배를 끊는 등 환경적인 노력이 절대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미래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가령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면, 현재의 치료 방침이 그렇듯, 선천적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의 취약한 장기를 암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 덕에 유명해진 BRCA 유전자 돌연변이나, 대장암을 일으키는 APC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생식세포 단계에서 이런 돌연변이를 정상으로 치환한 후 착상시키는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현재도 CRISPRCAS9등의 기술을 이용하면 가능하지만 윤리적인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한편 살아가면서 접하는 환경적인 요인이 가장 큰 경우, 식습관을 고치고 발암물질 노출을 줄이며 담배를 끊는 등의 방법으로 암 발생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무작위 요인. 현재로서는 무작위로 발생하는 DNA 복제 오류를 줄이거나, 발생한 오류를 치료할 확실한 방법이 없다(체내 DNA 복구 시스템이 있지만 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구되지 않는 경우 중에 발생한다). CRISPR-CAS9과 같은 유전자 가위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긴 부분을 일일이 정상 유전자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나마도 국소적으로 퍼진 암세포에만 가능할 뿐이다.

보겔스타인 박사는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암의 크기가 작고 초기 단계일수록 덩어리 안에 클론의 종류가 적고, 이러한 경우 항암 치료가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3파트 참조). 보겔스타인 박사와 같은 암유전학 대가의 말 한 마디는 2~3년 뒤의 연구 트렌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그간 수십만 개 클론의 암세포에 일대일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지나치게 소모됐던 연구 자원이, 조기진단을 위한 기술력 확보에 더 중요하게 이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옥찬영_ock.chanyoung@gmail.com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의 및 내과 전공의 수료, 혈액종양내과 임상강사를 마쳤다. 서울대병원 근무 중 15편의 SCI 논문을 포함해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암연구학회 중 가장 저명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Merit award를 받았고, 서울시의사회 젊은연구자상, 한국암재단장학금, 서울대병원 앙드레김 어워드 등을 받았다. 종양 유전체학과 임상을 연결할 수 있는 중개연구가 주된 관심사이며, 유전체 분석 기업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및 신약개발 기업 메드팩토에서 임상시험본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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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옥찬영 임상시험본부장(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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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진행] 이영혜
  • 에디터

    이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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