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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문명」시대가 오고 있다

정보문화센터 설립을 계기로 살펴본다


참여하는 상설전시장인「데이콤플라자」의 정보통신 실습실.


우리나라도 90년대에는 1천만대의 단말기가 보급되고 컴퓨터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정보사회가 실현된다는데… 우리의 정보문화는 어느 수준인가.
 

"춘향이는 옥중에 갇혀서 서울간 이도령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신념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춘향의 모친은 월매는 이도령의 무심함과 세상의 냉정함을 탓하며 애를 태우다가 방자편에 편지를 써서 보낸다. 월매가 알고싶었던 것은 '이도령이 서울에 가서 과거에 급제했는지' '언제나 남원땅에 올것인지' '온다고 해도 춘향이를 구해줄 수 있는지' 등이 궁금하였고 그것에 대한 확실한 답을 이도령으로부터 받고 싶었다. 방자란 녀석은 편지를 받아들고 바람처럼 달려가 기쁜 소식 받아들고 번개같이 오고 싶지만 천리먼길을…"
 

이는 정보사회와 관련된 어느 지역 세미나에서나 행해진 강의 내용의 맨 첫머리이다. 삼척동자도 다아는 진부한 춘향전이야기를 굳이 왜하는지, 강의를 듣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 내용에는 정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도령의 과거급제 여부' '춘향에 대한 이도령의 애정' 등은 개인의 소식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충족되는 것하고 그렇지 않은 것하고는 천양지차임에 틀림없다.
 

현대에 있어서 정보는 '개인의 소식' 정도가 아니다. 개인의 소식에는 알면 좋지만, 몰라도 이도령이 암행어사로 출두해 춘향이를 구해주는 결과에서 하등의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도령의 소식을 몰라야만 춘향이의 정절이 더욱 빛날 수 있다. 사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모르는 게 약' '아는 것이 병'이라는 표현을 자주 써왔다. 그렇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는 당연히 '모르는 게 병' '아는 것이 약' 이다.

 

정보의 홍수와 가뭄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정보와 접하고 산다. 아침이면 신문을 통해 어제밤에 일어난 대규모 교통소동, 미소가 합의한 중거리미사일 폐기협정, 야당통합에 관한 양당의 의견, 새내각의 구성, 증권시세 등을 대충 훑어본다. 직장에 나가서는 오늘 할 일에 관한 업무 지시를 받고 그에 대한 결과를 분석하여 보고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행동이 정보를 전해듣고 판단하고, 정보를 찾아서 다른 형태로 가공하여 새로운 정보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요즘 현대인이 접하는 정보의 양은 직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로 엄청나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국내의 일간지 월간지 부정기간행물 사보 학회지 등에서 쏟아지는 인쇄정보만 해도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다 하겠다. 세계적으로 인쇄매체에만 수록되는 1년간의 기록정보가 문자수로 계산하여 70년대 초에 4천조(兆) 자를 넘어섰고, 서기 원년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창출한 지식의 총량이 곱으로 늘었을 때가 1650년, 그것이 또다시 곱으로 늘었을 때가 1900년, 또 곱으로 늘었을 때가 1950년이었으며, 1960년에 그것이 다시 곱으로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추세대로 라면 요즘은 몇일, 아니 몇시간만에 기하급수적으로 는다고 할 수도 있다. 이른바 '정보홍수' 이다.
 

정보홍수는 다른 이면을 갖고 있다. 넘쳐흐르는 정보홍수 속에서 정말 필요하고 유익한 정보가 제대로 선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자료가 책상 위에 쌓여 있다 하더라도, 모든 기록이 캐비넷에 모아져 있다 하더라도 막상 정보를 사용하려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혼돈스러울 뿐이다. 이른바 '홍수속의 가뭄'인 셈이다.
 

컴퓨터는 이러한 정보의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문명의 이기로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기억량, 빠른 검색, 방대한 네트워크는 아무리 많은 양의 정보라도 자그마한 디스크 안에 모아놓을 수 있으며 기억된 정보는 필요에 따라서 간단한 조작으로 적재적소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개인이 소장한 정보뿐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든 정보원들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컴퓨터의 덕이다. 컴퓨터는 일상적이고 틀에 박혀있는 번거로운 일을 도맡아 인간을 보다 창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그 주요업무이다.
 

컴퓨터만 들여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컴퓨터의 사용은 전화사용하는 것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으며 자동차대수 증가하듯이 컴퓨터사용이 자연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이는 컴퓨터 사용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만이 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책상 앞에 개인용컴퓨터는 버젓이 놓여 있으면서도 필요한 자료 한번 찾으려면 책상정리 다시 해야하고 온갖 법석을 다떠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굳이 컴퓨터가 없다고해도 그지방 여행안내소에 찾아가면 여행에 관한 모든 정보를 친절히 안내해주는 나라도 있다.

 

교육과 계몽의 두바퀴


'정보문화운동'의 실체는 범람하는 정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것인가, 또는 많은 국민들이 컴퓨터를 보다 많이,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최근 문을 연 정보문화센터는 정보문화의 조기정착을 목적으로 교육 및 계몽활동을 범국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민간단체이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이제까지의 컴퓨터보급활동을 좀더 체계적으로 한단계 높여서 '운동'의 차원에서 진행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사회 실현의 2대 디딤돌은 '정보화의 공급능력'과 '정보화의 이용측면'이 있다. 공급능력에는 기술과 생산능력, 기본통신과 데이타통신의 충족정도, 개인용컴퓨터의 가격 대 성능비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수준이 정보사회를 실현하는데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의견이며, 생산능력에 있어서도 대미 PC(개인용컴퓨터)수출 1위국, 메모리소자(4MD램개발) 3위권, 전자부문 생산 세계 6위권이 허수만은 아니라는 것. 기본통신에 있어서도 전화 1천만회선 돌파로 명실상부한 1가구1전화시대를 가능케 했으며 고도통신인 데이타통신도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PC의 성능도 가격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자타의 공인을 받는다.
 

이처럼 공급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와 있으면서도 정보화의 이용측면인 교육과 계몽은 이에 따르지 못하는 실정. 현재 컴퓨터교육은 전문교육기관의 교육과 대학 중고등학교에서 실시되는 일반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문위탁교육기관은 이번에 정보문화센터로 확대 개편된 정보통신훈련센터, 컴퓨터요원훈련센터, 쌍용컴퓨터 부설 교육센터 등 몇군데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전문교육센터들도 시설투자에 따른 엄청난 예산문제로 수요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89학년부터 초중고의 교과과정에 컴퓨터과목, 내지 단원이 설치돼 운영된다는 것은 '가뭄속에 단비' 격으로 우리나라 컴퓨터교육의 일대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사회에 배출될 이들은 최소한 '컴퓨터문맹자' 소리는 듣지 않게 된다.
 

교육이 아직은 미진하나마 그런대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 씨앗을 뿌리고 있는 반면에 계몽적 차원의 시도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만해도 70년대 초에 '정보화 월간'을 설정하고 전시회 소프트웨어경진대회 등을 집중적으로 개최, 일종의 붐을 조성했고 대만 싱가폴 등도 정보월간 정보주간을 통해서 국민들의 컴퓨터마인드 확산에 집중적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대만은 1980년부터 정보문화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프랑스 또한 83년에 전국민적인 컴퓨터마인드 형성을 위해 전국에 1만5천여개소에 달하는 무료컴퓨터 강습소를 설치함과 동시에, 시범지역을 선정, 전자전화번호부인 '미니텔'을 무료로 보급하고 점차 이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기업차원에서 전시회 등을 개최한 바 있으나, 이는 국민계몽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영업 위주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회가 아니라 보여주는 쇼에 그쳤다는 것이다.
 

정보화의 공급능력이 어느정도 갖추어졌음에도 교육체계의 미비, 계몽정책의 부재는 정보문화운동이 절실해지는 주요 배경이다.

 

1991년에는 우리도 정보사회


정보사회인지 아닌지를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기준중의 하나는 지식정보부문 종사자수가 공업부문종사자수보다 많아지는 시점. 고려대학교 김정흠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50년대 후반에 이미 정보사회에 진입했고 일본은 7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1991년경에 정보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그림1). 즉 미국과는 35년의 차이고 일본과는 20년의 차인 셈이다.
 

미국은 1987년 기준으로 PC보급이 2천7백만대. 우리나라는 정확한 통계가 나와있지 않지만 대략 20~30만대로 추정하고 있다. 정보사회 진입시기를 나름대로 추정해보아도 개인용컴퓨터의 보급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처져있는 느낌이다.
 

컴퓨터문화는 분명 전통의 우리 문화와 태생이 다르다. 타자 치는 습관부터가 아무래도 이질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런 거부감없이 덥석덥석 컴퓨터를 받아들이리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정보사회는 필연적이며 정보권을 독점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정보문화 확산의 범국민적 계몽운동 전개는 시대적 요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정보문화를 확산시킬 것인가. 컴퓨터를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할 것인가. 컴퓨터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감정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미니텔'처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 무료로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취하기도 예산상 쉽지않고, 그렇다고 구매를 강제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정보문화센터에서 구상하는 계몽사업의 첫째 방법은 기존에 하고 있던 잡지 신문 방송의 홍보를 좀더 이용자 중심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 이제까지는 아무래도 기술적 차원의 홍보에 머물렀던 것을 손쉬운 이용방법, 이용후의 편리성 등을 강조해서 일반인들의 컴퓨터에 대한 친근감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컴퓨터이용자 클럽을 보다 조직적으로 운영,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운영중인 컴퓨터사랑방모임은 교수 문인 관리 등 여러분야의 지도급 인사로 구성돼 있어, 이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좀더 적극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홍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방모임을 지역별 직능별로 확산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림1) 미국 일본 한국의 정보사회 진입시기


참여하는 상설전시장


다음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컴퓨터 이용공간의 확대. 신문에 잡지에 컴퓨터 관계 기사 하나 더 실리는 것보다, TV에서 컴퓨터를 한번 더 비추는 것보다 직접 키보드를 두드려보면서 컴퓨터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컴퓨터 광장은 더욱 효과적이다.
 

작년말에 문을 연 '데이콤플라자'는 바로 참여하는 상설전시장인 컴퓨터광장으로 출발하였다. 데이타통신 빌딩 1~2층에 자리잡은 데이콤플라자는 정보통신전시장, 컴퓨터통신실습실, 상황실로 구성돼있다. 전시장에는 올림픽정보망(WINS) 생활정보서비스 DACOMNET서비스 한글전자사서함서비스 특정 통신회선서비스 등 10여가지의 데이타통신 관련 모형을 전시하여, 관람자들이 직접 조작하여 올림픽참가선수정보나 주식정보 등을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실습실은 총 1백여대의 PC와 각종 교육용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는데, 이를 통해 여러 계층의 컴퓨터초보자들을 1~2일 동안에 교육시키고 있다.
 

현재까지 교육받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산업대학원 최고관리자 과정, 어머니회, 대학생, 방송작가, 예술인, 언론인 등. 이들이 자기 분야에 돌아가 컴퓨터의 효율성을 느낀대로 홍보한다는 것을 가정할 때 이러한 상설전시장 및 교육장이 컴퓨터마인드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데이콤플라자와 같은 컴퓨터광장을 지역별로 확대 설치한다면 이 효과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초보자들은 "컴퓨터에 대해 느꼈던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가능하다면 빠른 시일 내에 자신부터 또한 주변에 컴퓨터구입을 적극 권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90년대 초에 1천만대의 단말기 보급'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진행하고 있는 정보문화운동은 이밖에도 지방순회강연, 농한기를 이용 농촌청소년들에게 컴퓨터교육 실시, 중소기업의 전산화 추진 지원 등을 사업목표로 잡고 있다.

 

제3의 축, 데이타베이스


정보문화운동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우리도 가까운 시일내에 1가구 1단말기 시대를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한번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컴퓨터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몇가지 정보만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전시용 데이타베이스는 컴퓨터보급에 역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도 컴퓨터를 통해 꺼내볼 수 있는 정보가 어느 정도 있으냐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축적된 정보가 모아져 정리되는 모습이 아쉬운 우리의 정보문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컴퓨터를 똑같이 구입하여 사용하더라도 평소 개인 습관이나 그 사회의 문화자체가 어떠냐에 따라 컴퓨터이용률은 크게 차이난다.
 

국내에서 제작한 데이타베이스를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한국데이타통신 산업연구원 한국증권전산 등 몇곳이 안된다. 최근에는 서비스목적보다는 자가충족용으로 데이타베이스를 제작하고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일반 국민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데이타뱅크는 극히 제한돼있다.
 

이는 외국에 비해 절대량이 부족한 실정. 앞에서 정보문화의 두 축을 정보화 공급능력과 정보화의 이용측면으로 보았을 때 제3의 축은 데이타베이스의 확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컴퓨터를 빨리 보급한다는 대명제에만 급급해, 국민 모두가 활용해볼 수 있는 공간 마련을 뒤로 한 채, 단순히 구매력이 있는 계층만을 위주로 계몽과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이또한 곧이어 닥칠 정보의 분배문제와 더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보문화운동은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이 정보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에 촛점지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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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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