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수중시체를 가장 많이 검시한 법의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99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입사해 법의학과장, 서부분소장을 거쳐 2009년 퇴임할 때까지 10년 넘게 검시를 했다. 그동안 호남(전북, 전남, 광주) 일대에서 발생한 수중시체는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그에게 검시 경험을 들어봤다.

“법의학자에게 수중시체는 도전”
수중시체를 500구 이상 검시한 김 교수도 수중시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물속이 육상보다 부패속도는 느리지만, 대개 수중시체는 더디 발견되죠. 부패가 심해 가족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겉모습이 끔찍하게 변한 시체들이 많습니다.”
김 교수가 보여준 사진에는 피부가 온통 통갑옷처럼 두툼하게 변한 시체가 있었다. “이걸 시랍화현상이라고 합니다. 피하지방이 고형의 지방산으로 변해 젖은 분필가루처럼 쉽게 부스러지죠.” 이 정도면 이미 뼈와 피부를 연결해주는 근육이 용해된 상태. 잘못 건드리면 시신이 상한다. “피부를 잡아당기면 갑옷 벗듯 뼈에서 피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자연적으로 생기는 훼손도 상당하다. “이 상처를 보세요. 딱 총알자국처럼 보이죠? 그런데 뒤쪽엔 손상이 없어요. 새우나 게가 파먹은 흔적입니다. 가족들이 이런 상처를 보면 당연히 뭐냐고 물어보죠.” 사진 속 시체는 입술이 군데군데 푹 파여 있었고 귓불이 톱으로 자른 듯 불규칙하게 뜯겨있었다. 수중생물은 연한 부위를 좋아한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연한 부위는 눈. 한 시체는 아이스크림 숟갈로 떠낸 것처럼 눈 주위가 동그랗게 파여 있었다. 불가사리나 고둥이 붙어서 빨아먹은 흔적이다. 멀리서 보면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듯했다. 따개비가 잔뜩 붙어있는 시체도 있었다.
표류시체는 모래톱에 쓸리거나 바위에 부딪히면서 몸이 긁힌다. 연조직이 손상돼 뼈가 노출된 상태에서 계속 파도를 맞으면 힘줄이 끊어진다. “생선뼈를 잡아당기면 끊어지는 것처럼 사람 몸도 동강납니다. 수중시체 중에는 목이 떨어진 시체가 은근히 많습니다.” 지나가는 배의 프로펠러에 맞아 몸이 잘린 시체도 종종 있다. “이런 시체는 프로펠러에 맞아 죽었는지, 죽어서 가라앉아있다 떠오르면서 수중을 부유하던 중에 프로펠러에 맞았는지 참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법의학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사인불명의 시체다. “수중시체에 대한 감정서를 보면요, 사인을 확실히 결론내지 못하고 ‘익사 추정’이라고 적은 경우가 많습니다. 폐 팽창 같은 익사의 흔적들이 시체가 썩으면서 사라지거든요.” 사인을 밝힐 증거가 부족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던 적이 많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육지에서 살인을 저지른 뒤 범행을 숨기기 위해 시체를 물에 집어넣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건을 맡게 되면 온몸의 솜털까지 솟는 듯한 긴장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있을 때 수‘ 중시체 일보전진’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경찰이나 법의학자도 사람인지라, 부패한 수중시체에는 덜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마련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안 그래도 사인을 밝히기 어려운데,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중시체는 오히려 애정을 가지고 한발 더 다가가자 다짐했죠.”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
김 교수는 익사인지 아닌지 가릴 방법을 찾기 위해 수년간 골몰했다. 그가 가능성을 본 건 플랑크톤이었다. 해외 논문을 뒤져보니 익사체의 장기에서 플랑크톤이 발견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비익사체와 구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플랑크톤을 장기에서 분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강산이 여러 부작용을 일으켜 검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었다(3파트 참조).

김 교수는 강산을 대체할 새로운 분리법을 찾아200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생활을 정리하고 모교인 조선대에 교수로 부임했다. 직접 다이빙을 배워서 물에 들어가 플랑크톤을 건져오기도 하고, 수심 30m조건을 만드는 압력용기를 만들어 플랑크톤을 넣은 뒤 쥐를 익사시켜보기도 했다. 강산 대신 단백질 분해 효소를 이용해 사람의 조직을 제거하고 플랑크톤만 남기는 방법도 시도했다. 그러나 사람이 익사하면서 들이마시는 진흙, 모래, 풀 같은 이물질이 분석을 방해해, 실험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1월 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캐나다 마니토바주의 법의관사무소로 1년간 연수를 떠난다.
캐나다는 유럽과 더불어 수중과학수사 연구가 가장 활발한 나라다. 법의학자와 조류(녹조류 같은 원생생물)학자가 손을 잡고 익사체 내부의 플랑크톤을 분석해 논문을 쏟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스승인 황적준 고려대 교수를 보고 법의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황 교수는 1987년 서울대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시를 맡았던 법의학자로,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박 씨가 고문으로 죽었다는 진실을 밝혔다. 그 모습을 보며,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노력은 사람에 대한 연민과 철저한 직업정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배웠다. 김 교수가 수중시체를 계속 연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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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_“수중시체 검시, 특별한 애정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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