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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과학수사는 물에서 시작하지만, 물 밖까지 이어진다. 수중과학수사대가 찾은 증거를 육상에서 분석하는 연구도 중요하다. 전북지방경찰청(이하 전북청) 과학수사대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수중증거·사체 분석실험을 했다. 유전자, 지문, 부패 세 분야에 걸친 실험은 기존 과학수사와 비슷한 듯 달랐다. 어떤 분석기법을 사용하는지 들여다봤다.

시체가 곧 증거, 수중 부패

2015년 11월 3일, 전북 김제의 한 저수지. 빨간 팻말에 큰 글씨로 ‘출입금지-수중과학 실험 중(위험)’이라고 적힌 철문을 열어젖히자 실험장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전북청 과학수사대의 현철호 검시관이 길을 안내했다. “이 저수지에서 돌멩이에 묶인 시체가 얼마 전 떠올랐어요. 근데 언제 물에 들어간 시체인지도 알 수가 없고…, 답답했습니다.”

미궁에 빠진 수중시체사건을 계기로 이곳에서 수중과학수사 연구가 시작됐다. 현 검시관이 맡은 임무는 수중 부패 실험. 돼지를 익사시킨 뒤 부패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물 위에 떠오르는 시간을 측정하는 실험이다. 물에 잠긴 시체에선 혐기성세균이 유기물을 분해해 이산화탄소, 황화수소, 메탄 같은 부패가스를 만든다. 내장 및 세포(근육) 사이의 빈 공간마다 기체가 들어차면 중력보다 부력이 커져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저수지 실험장에서 기자를 처음 맞이한 건 수면에 떠오른 돼지 사체였다. 물에 잠겨있는 오른쪽 절반은 이끼가 잔뜩 껴 있었고 물 밖에 나온 왼쪽 절반은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러있었다. 왼쪽 목덜미에는 구더기들이 구멍을 파고 열심히 식사 중이었다. 하얀 기포가 부글부글 흘러나왔다. 엉덩이에는 검정파리 한 무리가 모여 마치 일광욕을 즐기듯 앉아있었다.

실제 사건현장에선 사람 시체가 똑같이 물 위로 떠오른다. 수중과학수사의 가장 중요한 단서다. 시체가 떠오른 시각을 알면, 처음 물에 들어간 시각을 역으로 계산할 수 있다. 시간 정보는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시체가 떠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수온이 높을수록 짧아지고, 수심이 깊거나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길어진다. 수사관들의 경험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하고 수치화시키기 위해 현 검시관은 실험을 시도했다. 아주 기초적인 부분도 아무런 자료가 없어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씩 배워갔다.

“익사 실험을 해야 되는데, 돼지를 산 채로 물에 빠뜨릴 순 없잖아요. 고민하다가 호스로 폐에 물을 강제 주입해 물 밖에서 익사시켰죠. 그러고 나서 물에 던지려고 하는데, 이게 안 가라앉으면 어쩌나 걱정이 드는 거예요. 누가 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행히 잘 가라앉더라고요.”

30kg 무게의 돼지 6마리를 빠뜨린 결과, 사인(익사·비익사)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48~60시간 만에 떠올랐다. 돼지를 빠뜨린 곳은 수심이 5m였고, 수온은 19℃였다. 현 검시관은 “앞으로 수많은 추가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온·수심·몸무게 조건을 바꿔가며 실험하면 부유시간에 대한 식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수심 5m, 수온 19℃에서 60kg 돼지, 90kg 돼지를 빠뜨려보는 식으로요.”







피 한 방울에 들어있는 DNA, 수중 유전자

전북청 과학수사대는 피 묻은 칼을 며칠간 저수지에 담가놓은 뒤 꺼내서 유전자를 분석하는 실험도 했다. 여기서 꽤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물에 넣은 지 열흘 지난 칼에서 개인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동안 물속에서 꺼낸 증거물엔 유전자가 남아있지 않다는 게 일선 경찰들의 통념이었다. 아예 유전자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실험을 주도했던 이창선 경사 역시 결과가 잘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는 물에 녹잖아요. 당연히 모두 사라질 거라 생각했죠.”

결과가 좋게 나온 건 미토콘드리아DNA(mtDNA)분석법을 사용한 덕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소기관인데, 세포핵의 DNA와 별도로 자신의 DNA를 가지고 있다. mtDNA는 핵DNA에 비해 개수가 많다. 세포 하나 당 2개(한 쌍)에 불과한 핵DNA와 달리, 세포 하나 당 200~1700개나 있다. 그래서 세포가 산산이 분해되는 와중에도 비교적 오랫동안 멀쩡한 mtDNA가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핵DNA 분석법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일반적인 현장에선 잘 쓰지 않는다. 보통은 시체에서 부패가 많이 진행돼 핵DNA를 검출하기 어려울 때mtDNA를 사용한다. 쉽게 말해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를 mtDNA로 분석했다. 수중 증거물에서도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유전자가 묻어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그동안 아무도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전북청 과학수사대는 이번 실험으로 mtDNA의 활용목록에 ‘수중과학수사’를 올려놓은 셈이다.

이 경사는 “수중 증거물에서 유전자를 채취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수중과학수사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물 한 방울에도 DNA가 씻겨나갈 수 있으니 증거물 인양과정에서 세포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 경사는 앞으로 타액이나 정액도 수중 증거물에서 실험을 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름기, 수중 지문

우리나라 경찰의 지문인식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전 국민의 지문이 데이터베이스화 돼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헌데 육지와 달리 수중 증거물에서 지문을 찾는 기술은 아직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지문이 물에 들어가면 쉽사리 없어지는 탓이다.

지문은 대부분이 물로 이뤄진 자국이다. 여기에 땀샘에서 나온 아미노산, 단백질, 젖산 등 유기화합물과 나트륨, 칼륨 이온 등 무기화합물도 소량 섞여있다. 손가락에서 나온 유·무기화합물의 특성을 이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지문(잠재지문)도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플라스틱이나 금속, 유리, 비닐 표면에 묻은 지문을 검출할 때는 주로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쓴다. 접착제 성분의 이 물질은 잠재지문에 남은 수분이나 젖산염 이온과 만나 중합반응을 일으킨다. 그 결과 융선 모양이 하얗게 드러난다.



수중 증거물에서 지문을 채취할 때는 방법을 잘 고민해야 한다. 특히 지문 중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을 노려야 한다. 스페인 발렌시아대 법의학과 페르난도 베르두 교수팀은 물에 잠겨있던 물체에서 지문을 검출할 때 지질성분에 달라붙는 ‘소립자 시약(SPR)’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2013년 학술지 ‘과학과 정의’에 발표했다.

소립자 시약은 이황화몰리브덴이나 이산화티타늄 같은 미립자를 계면활성제와 섞은 시약이다(계면활
성제는 친수성기와 소수성기를 모두 가진 물질이다). 비누가 때에 달라붙듯 시약의 소수성기가 지문의 지질성분에 달라붙는다. 이때 소수성기의 반대편인 친수성기에 붙은 미립자를 통해 지문을 검출할 수 있다. 다른 시약들은 물에 잠긴 지 5~7일이 지난 지문부터 검출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SPR은 15일이 지난 지문도 선명히 검출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지질을 염색하는 화합물인 ‘오일-레드-오’와 ‘수단 블랙’도 적합하다고 밝혔다.

유속과 수질에 따라 지문이 사라지는 속도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1년 9월 미국 조지메이슨대 브론윈 데브린 연구원은 유속이 빠른 곳에 놓은 증거물일수록 지문이 빨리 사라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연구결과지만, 그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에 착수해 수치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북청 과학수사대는 수질에 따라서 지문검출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저수지 수심 3m 지점에 담가놓은 칼에서는 7일 이후부터 미생물 오염으로 지문이 선명하게 검출되지 않은 반면 증류수는 14일까지 문제없이 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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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바다의 셜록에 도전하다 수중과학수사
PART 1. 수중과학수사대 훈련현장에 가다
PART 2. 물 밖으로 나온 수중과학수사
Interview_“수중시체 검시, 특별한 애정 필요해”
PART 3. 수중시체를 찾아온 살아있는 단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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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글]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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