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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수중시체를 찾아온 살아있는 단서들


수중시체는 하나의 생태계다. 물에 들어간 순간부터 수많은 수중생물들이 시체를 찾는다. 이들 생물의 생태를 연구해 사건이 일어난 일시나 환경 등 수사의 단서를 얻는 것도 수중과학수사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이번 파트는 독자 여러분이 직접 수사관이 되어 바닷가에 나타난 연쇄살인범을 쫓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수중시체에는 수서곤충, 복족류, 플랑크톤, 갑각류, 어류, 연체동물, 극피동물 등 갖가지 생물이 찾아온다. 수서곤충이나 복족류 같은 부착생물을 분석하면 시체가 물에 처음 들어온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플랑크톤을 분석하면 시체의 사인을 밝힐 수 있다. 갑각류나 어류처럼 시체를 먹어치우는 생물은 찾아오는 순서가 있다. 생물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있는 증거다.



단서 1 파리가 물에 남긴 고치

수중과학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는 곤충이다. 곤충은 땅에만 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애 전체 또는 일부를 물에서 보내는 ‘수서곤충’이 전체 곤충의 3%가량 된다. 이들 중 사체를 찾는 종은 하루살이, 잠자리, 강도래, 뱀잠자리, 날도래, 노린재, 딱정벌레, 파리 등 8개 목(目)에 걸쳐 있다. 특히 파리는 민물부터 바닷물까지 가리지 않고 찾아든다. 온천이나 석유 웅덩이, 소금호수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생존력이 강하다.

수서곤충으로 실제 사건을 해결한 사례가 미국에 있다. 1989년 6월 말, 미국 미시간주의 어느 강에서 차 한 대가 발견됐다. 수심 4.5m 깊이에 잠겨있던 차에는 머리에 타박상 흔적이 있는 여자 시체가 들어있었다. 여자의 남편은 “아내와 봄까지 연락이 닿았고, 이후로 완전히 소식이 끊겼다”고 경찰에게 진술했다.

물에서 건져 올린 차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단 하나, 곤충의 고치가 곳곳에 달라붙어있는 걸 제외하고는. 경찰은 이 유일한 단서를 미시간주립대 곤충학과의 리처드 메리트 교수에게 맡겼다. 메리트 교수는 먹파리 번데기가 탈피하고 남긴 고치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먹파리의 생애주기를 따져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먹파리는 생애의 대부분을 물속에서 보낸다. 5월 초·중순경 고치를 벗고 물 밖으로 나온 먹파리 성충은 1~2개월 동안 날아다니며 짝짓기를 하고, 개울에 알을 낳는다. 이 알은 개울 바닥의 흙속으로 가라앉아 휴면기를 보낸다. 초겨울(11월 말~1월)에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바위나 식물에 달라붙어 그 자리에서 번데기까지 자란다.

중요한 점은 먹파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딱딱한 물체를 찾아 달라붙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차에 번데기가 붙으려면, 늦어도 1989년 1월경에는 차가 물에 빠져있는 상태여야 했다. 1989년 봄까지 아내와 연락이 닿았다는 남편의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수상하다고 느낀 경찰은 추가적인 증거를 찾아 나섰고, 결국 남편의 죄를 밝혀냈다. 먹파리의 고치도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고, 남편은 살인죄로 징역 20년형을 받았다.

미국에선 이처럼 곤충으로 사건을 해결한 사례가 적지 않다. 수서곤충은 수온에 따라 일정한 성장속도를 가지고 있어, 시체가 물에 언제 들어왔는지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리나라에선 수서곤충을 수사에 활용한 경험이 아직 없다. 해양시체를 찾아온 수서곤충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집하고 키워 본 김일평 전남영광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전 해양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수중시체에서 발견된 곤충을 증거로 생각하고 수집하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곤충의 분류와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건현장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며 “기록이 쌓여야 미국처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서 2 피를 타고 흐르는 플랑크톤

수중시체가 익사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일은 수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육지에서 살해한 뒤 시체를 은폐하기 위해 물속에 집어넣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법의학자들은 익사여부를 가릴 때 장기에서 플랑크톤을 검출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플랑크톤은 물에 떠다니는 작은 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물과 함께 폐로 들어온다. 물에 빠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강하게 숨을 쉬는데, 이때 물이 폐포를 넘어 혈액으로 들어간다. 플랑크톤은 심장박동으로 인해 몸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장기에서 플랑크톤이 보인다면, 산 채로 물에 빠져 죽었다(익사)는 뜻이다.

플랑크톤 중에서도 주 검출대상은 규조류다. 규조류는 외부골격이 이산화규소(콘크리트의 주성분)로 이뤄져 있어 강산에도 비교적 잘 견딘다. 그래서 현재는 수중시체의 장기에 든 이물질을 강산으로 녹인 뒤 규조류가 남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쓴다. 하지만 규조류라고 무적은 아니다. 강산에 미세구조가 파괴돼 종을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수도 대폭 줄어든다.


이 방법이 문제인 까닭은 플랑크톤의 종이 수중시체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플랑크톤은 수심과 지역, 계절에 따라 우점종이 달라진다. 수중시체가 언제, 어느 지역, 어느 깊이를 거쳐 왔는지 플랑크톤을 보면 알 수 있다. 일종의 블랙박스인 셈이다. 예를 들어 진도 연안에서 발견된 시체에 제주도 플랑크톤이 보인다면, 시체가 해류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해왔다고 의심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김일평 과장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인천해양경찰서 관할 해역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 중 176건에서 나온 플랑크톤 정보를 정리해 2012년 한국법과학회지에 발표했다. 김 과장은 “지역별로 플랑크톤 우점종이 달라지는 모습을 관찰해보려 했지만, 플랑크톤의 속 단위(분류상 종의 상위단계)까지밖에 알 수 없어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속밖에 알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플랑크톤을 검출할 때 강산을 쓴다는 점이다. 김윤신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교수는 강산 대신 단백질 분해효소를 사용하는 대체방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90쪽 인터뷰 참조).

한편, 플랑크톤은 시체가 물에 들어간 시간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플랑크톤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시체에 붙고, 온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2004년 미국 밀러스빌대 생물학과 제임스 해프너 박사는 돼지사체에 붙은 플랑크톤이 시간에 따라 밀도가 증가하는 과정을 공식으로 만들었다(DOI: 10.1520/JFS2003283). 사체가 물에 들어간 뒤 지난 시간을 x축, 플랑크톤의 밀도를 y축으로 두고 'y=0.2307x-0.7705’라는 1차 방정식으로 표현했다(수온 등에 따라 관계식이 달라짐). 신현웅 순천향대 생명시스템학과 교수팀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와 비슷한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돼지피부 조각을 물에 넣은 뒤, 해조류인 파래의 포자를 뿌렸다. 이어 수온과 염분을 바꿔가며 파래포자의 발아율과 생존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수온이 높고 염분이 낮아 돼지피부의 부패가 빠를수록 파래포자의 생존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는 한국해양과학수사학회지 창간호(2016년 1월호)에 실렸다.








단서 3 마지막 바닷가재

많은 사체는 물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모든 사체가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있어 부패가스가 새어나가거나, 수심이 깊을 경우 아예 떠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가라앉은 사체는 바다에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캐나다 빅토리아대는 벤쿠버 연안의 비너스(VENUS) 수중관측소에서 돼지의 사체로 실험을 했다. 사람과 가장 비슷한 동물을 이용해 시체에 만들어지는 수중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각각 돼지사체 한 구씩을 수심 99m 지점에 묶어 놓고 원격조종카메라로 관측했다. 실험은 늦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진행됐고 용존산소와 온도, 염분, 밀도, 압력을 주기적으로 측정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2014년 10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온라인 학술지(PLOS ONE)에 발표됐다(DOI:10.1371/journal.pone.0110710).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범죄학과의 게일 앤더슨 교수가 제1저자를 맡았다. 결과를 보면, 돼지사체를 놓자마자 우선 갑각류가 달려들었다. 세점새우와 갑옷바닷가재, 대짜은행게가 가장 활발히 사체를 뜯어먹었다. 내장을 비롯해 부드러운 부위를 다 먹어치웠고 뼈에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자국(크레이터 자국)을 남겼다. 식스길상어, 해바라기불가사리, 동태평양붉은문어, 긴팔 옆새우, 가자미, 동해화살벌레 등도 시간차를 두고 찾아왔다.

연구진은 생물들이 찾아오는 순서와 시간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살펴봤다. 핵심 변수는 사체 주변의 용존산소량이었다. 용존산소량은 수심과 수온, 유기물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의 동물은 산소량이 물 1L 당 1mL 이하로 내려가면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하지만 갑옷바닷가재는 물 1L 당 0.1mL 수준으로 산소가 적어도 버티고 있었다. 사체 주변의 산소량이 변하면서 어떤 생물은 찾아오고, 어떤 생물은 떠났다.

생물끼리의 상호작용도 있었다. 덩치 큰 게들이 먼저 사체에 구멍을 내 줘야 비로소 갑옷바닷가재 같은 작은 생물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내장을 먹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통해 수중과학수사에 응용할 부분이 두 가지가 생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먼저 시체에 모인 생물의 종류와 양을 보고 입수시간을 계산할 수있다. 또 바다에 잠겨있는 시체의 현재상태를 예측해 시체를 인양하거나 수사할 때 참고할 수 있다.
 

201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글] 변지민 기자
  • 일러스트

    박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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