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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5. 어떻게 살 것인가

팟캐스트 ‘과학동아 Live’



송준섭 기자(이하 송) : 후성유전학이 최근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DNA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우리의 운명이 DNA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는 DNA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다. 자신이 DNA를 복제하고 남기기 위한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노유선 교수(이하 노) :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DNA 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예를 들어 20년 전 한국에서 석사를 할 때 전공 서적을 엄청 많이 샀다. 불법 복제본인데 정작 책을 사고는 바빠서 읽지 못했다. 그 책들이 내게 의미가 있으려면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니라 읽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유전정보가 저장돼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DNA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바로 후성유전학이다. 이 분야를 연구하면서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 : 그런 부분이 사람을 자극하는 것 같다. DNA에 지배받지 않고 우리 의지대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부분 말이다. 게다가 요즘엔 여기에 한 가
지 흥미로운 문제가 더해졌다. 바로 후성유전적 유전이다. 후성유전적 변화가 나의 자식에게까지 유전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키가 작은건 할아버지 때문?

이대엽 교수(이하 이) : 네덜란드 대기근 사례가 굉장히 유명하다. 1944년 겨울 2차 세계대전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나치는 저항하는 네덜란드를 굴복시키기 위해 네덜란드 서부지역의 식량을 차단했다. 단 한 번의 겨울 동안 1만8000명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를 앓았다. 그런데 이때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 저체중, 정신분열증, 당뇨 등의 발병 비율이 다른 집단보다 높았다. DNA 메틸화 패턴이 바뀐 것이다. 후성유전적 유전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손자들의 체형도 정상보다 작았다는 것이다.

송 : 비슷한 결과로 할아버지가 사춘기 이전에 영양결핍에 시달리면 손자들이 당뇨와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노 : DNA 외에 새겨진 정보가 한 세대를 건너뛰고 다시 발현된다는 것을 후성유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임신 중인 여성에 스트레스를 주면 태
아의 세포 중 생식세포에 후성유전적 변이가 생긴다는 보고가 있었다.

송 : 이대엽 교수가 실험하는 효모는 어떤가.

이 : 효모에서도 후성유전적 정보가 대를 넘어 전달되는 것이 발견된다. 효모도 짝짓기를 하는데 이때 효모마다 좋아하는 페로몬 분비 패턴이 있다. 이 선호성이 대를 이어 전달되기도 한다.

송 : 자신의 특별한 경험이 유전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 같은데 왜 이제야 공론화 된 것인가.

이 : 분자생물학이 센트럴 도그마가 나온 1950년에 시작됐다면, 후성유

전학이 시작된 것은 1980~ 1990년이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기 때문에 연구도 덜 된 것이다.

노 :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는 히스톤 단백질의 역할을 단순히 DNA를 감는 실패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것이 DNA의 사용을 조절한다
는 것을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경험은 어떻게 저장되고 전달되는가

송 :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증거가 있는데도 아직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 : 경험과 기억의 유전은 아직 두 가지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경험하고 학습한 것이 어떻게 우리 몸에 기록되는가’와 ‘기록된 정보가 다음 세대로 어떻게 넘어가는가’다. 현재는 두 질문 모두 현상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외에 다른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송 : 지난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가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에모리대 연구팀은 수컷 쥐의 발바닥에 자극을 주면서 아몬드향을 맡게 했다. 3일 동안 하루 다섯 번씩 이것을 반복하자 쥐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때도 아몬드향에 공포를 느꼈다. 10일 뒤 공포를 학습한 쥐와 정상 암컷을 교배시켰다. 이 새끼들은 다른 냄새보다 아몬드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몬드향이 있을 때는 작은 자극에도 놀랐다.  이런 결과는 처음으로 공포를 학습한 쥐의 손자까지 지속됐다. 연구팀은 손자 쥐의 정자를 조사해 냄새와 관련된 유전자가 메틸화가 적게 된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후각세포를 초과 발현시켜 냄새에 대한 민감도를 증가시켰다고 추측했다. 기억이 메틸화로 저장되고, 이 메틸화가 정자에 기록됨으로써 자식에게 전달된 것이다.

최지원 기자(이하 최) : 공포 조건화는 복잡한 과정인데, 이런 뇌의 아주 복잡한 활동도 후성유전적으로 저장되고 유전되는 게 가능한가.

노 :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냄새에 민감해지고 행복을 느끼는 복잡한 행동도 세포 수준에서 보면 결국 어떤 효소가 활성화되느냐에 달렸다. 예를 들어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포 안의 칼슘과 호르몬 같은 신호 물질의 농도가 바뀐다. 스트레스가 메틸화효소에 영향을 주지 말란 법은 없다. 스트레스가 DNA 메틸화를 증가시키는 효소를 활성화시키고 그것이 DNA에 기록될 수 있다. 후성유전적 기록을 남기는 게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 반복된 자극이 유전될 확률을 높였을 것이다. 후성유전적 표식들은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될수록 더 높은 확률로 유전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습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여기에 영향을 받은 자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체 자손 중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생긴다는 것이지 100% 유전된다고 보긴 어렵다.

노 : 자손에게 후성유전적 특징을 넘기기 위해서는 세포의 ‘리셋’을 피해야 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고등동물의 수정란은 부모로부터 받은 후성유전적 표식을 두 번에 걸쳐 지운다. 이를 ‘리프로그래밍’이라고 한다. 깐깐한 이 과정을 피하는 것은 단순 기억보다 훨씬 어렵다.

이 : 모든 후성유전적 표식이 리셋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성염색체에 기록된 메틸화 패턴인 유전체 각인은 세대를 넘어서도 잘 보존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리프로그램밍을 피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최 : 식물에서 밝혀진 것은 없나.

노 : 식물에서도 리셋을 피하는 방법은 모른다. 대신 식물에서는 RNA가 정자와 난자를 후성유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발견됐다. 예컨대 부모세대에서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하면 정자와 난자 주변에서 생식세포의 형성을 돕는 세포들의 RNA 조성이 바뀐다. 그중 크기가 작은 간섭RNA는 바로 옆의 생식세포로 넘어가 DNA의 발현을 조절한다. 동물에서도 작은 크기의 RNA가 세포와 조직 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보통 세포와 생식세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도 사용돼 체세포의 기억을 생식세포에 전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마르크의 유령과 아버지의 죄

송 : 어떤 이들은 기억과 경험이 후대에 전달될 수 있다는 주장이 라마르크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라마르크의 나뭇가지 위에 달린 열매를 먹기 위해 목이 길어진 조상 기린의 형질이 후대에 전달돼 자식의 목이 길어진다고 주장했다.

노 : 생물학적으로는 ‘획득형질 유전’이라고 부른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많이 하면 유연성이 좋아지고 근육이 많아지는 형질을 획득하는데 이것
이 자식에게 유전된다는 것이다. 라마르크는 획득형질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을 증명하지 못해 인정받지 못했다. 후성유전적 유전의 발전으로 라마르크가 새롭게 인정받을 여지가 생긴 것은 맞다.

이 : 하지만 라마르크의 주장은 너무 극단적이다. 사고로 팔이 잘린다고 해서 그 자식도 팔이 잘린 채 태어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라마르크는 하
나의 형질이 고스란히 후세로 전달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이 당뇨에 걸려 팔이 잘렸기 때문에 자식도 팔이 잘렸을 것이라는 게 라마르크의 주장이고, 후성유전학은 당뇨에 걸려 신체의 일부가 손상된 트라우마를 세포가 기억하고 후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설명한다.

송 : 인터뷰를 하러 노유선 교수의 사무실에 갔다가 아이가 쓴 붓글씨를 봤다. 꼬깃꼬깃한 한지에 서툴게 아버지의 이름을 적어 선물을 주는 꼬마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물론 그 아이는 이미 유전자를 받았지만, 후성유전학은 어떤 의민가. 아이들이 아빠의 잘못이 각인된 유전자를 받게 되는 게 아닌가.

노 : 아이를 낳기 전에 이걸 알았어야 하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웃음). 예전 생물학에 따르면 우리 세포에 문제가 생겨도 우리 당대만 고생하면 됐다. 잘못된 습관으로 생긴 내 암세포가 생식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자식까지 고생해야 될지도모른다. 오죽하면 지난해 네이처에 나온 후성유전학 기사의 부제가 ‘아버지의 죄’였겠나. 이제 임신을 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조심해야 된다.

이 : 과학이 윤리를 이야기 할 순 없지만 후성유전학은 어쩌면 우리가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했던 모든 경험의 총합이 우리 자식에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인 동시에 나의 후손의 것이다.

노 : 정말로 무서운 것은 우리의 경험이 얼마만큼 기록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몸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해도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내가 나쁜 행동을 한 게 유전자에 기록되고 그것이 전달될지 모른다는 가능성뿐이다.

최 : 좋은 연구인데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항상 조심해야 되는 것 아닌가.

노 : 너무 신경 쓰며 걱정하는 게 오히려 더 안 좋을 것이다.

이 : 그래서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노 : 그래서 이대엽 교수가 항상 그렇게 웃으셨구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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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쌍둥이는 왜 다를까
PART1. 후성유전학이 태어나다
PART2. 세포의 DNA 사용 설명서
PART3. 쓰레기 RNA가 암 정복한다
PART4. 그들이 ‘변신’하는 이유
PART5.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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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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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사이언스
  • 기타

    [정리] 송준섭 기자
  • 기타

    [참여] 노유선 서울대 교수
  • 기타

    [참여] 이대엽 KAIST 교수
  • 기타

    [참여] 송준섭 기자
  • 기타

    [참여]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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