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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한 아이언맨 문명 이끈 진정한 영웅, 철

세상을 바꾼 원소 ❻ 철

 

최근 10년간 SF영화에서 가장 인기를 끈 캐릭터는 ‘아이언맨’이 아닐까. 마블의 슈퍼 히어로들을 이끄는 주인공 아이언맨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자신을 희생해 지구를 구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아이언맨을 직역하면 말 그대로 ‘철인(鐵人)’이다. 철의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원작자의 의도가 담긴 이름이 아닐까. 필자는 여기에 인류 문명을 이끌어온 진정한 영웅, 철을 기념한다는 의미를 추가하고 싶다.

 

철의 영문명은 ‘아이언(iron)’이다. 고대영어인 ‘아이렌(iren)’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주기율표에서 철의 원소 기호는 ‘Fe’로 표기한다. 이는 철을 뜻하는 라틴어인 페룸(ferrum)에서 유래했다. 


역사상 철기를 처음 사용한 시기와 장소는 확실하지 않지만, 학계에서는 기원전 1500년경 히타이트 왕국에서 최초로 철기를 제작해 사용했으며 이후 그 제조법이 다른 나라로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철의 제조법이 전 세계로 전파되고 이후 제철·제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원전 12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철기시대가 시작됐다.

 

 

철이 지구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이유 


철기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통틀어 철은 인류 발전에 핵심적인 원소였다. 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철이 지구상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금속이기 때문이다. 무게로 따졌을 때 지구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가 철이고(32.1%), 지각에서만 5.6%를 차지하며, 금속 중에서는 알루미늄(8.3%) 다음으로 많이 존재한다. 


인류 문명은 철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는점은 1538도로 구리(1085도)나 납(327도)에 비해 높다. 이로 인해 실제로 철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두 금속에 비해 늦은 편이다. 하지만 철은 구하기 쉬우면서 구리나 납 등에 비해 강도가 높아 항공기, 선박, 차량, 건축물, 각종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필수불가결한 금속이 됐다. 


이 때문에 6·25전쟁 이후 가난한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야도 다름 아닌 철강산업이었다. 철강산업을 키우기 위해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설립됐고, 포항제철은 국가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룬 데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했던 국민의 노력과 함께 자동차, 조선, 건설 등과 같이 규모가 큰 기간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던 철강산업의 역할이 컸다. 


그렇다면 지구에는 왜 다른 금속들에 비해 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일까. 이는 우주와 별의 생성 원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우주가 생성될 때 핵융합, 핵분열 등 수많은 핵반응을 통해 다양한 금속이 만들어진다. 이들 중 철은 다른 금속과 달리 핵반응 과정에서 생성되면 더이상 핵융합이 일어나기 어려운 안정적인 원소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다른 금속 원소에 비해 지구상에 가장 많이 분포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영화 ‘아이언맨’을 살펴보자. 영화에서 아이언맨은 특이하게도 팔라듐(Pd)이라는 원소의 핵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확보한다. 팔라듐 또한 중성자 수에 따라서 핵분열이 가능하고 더 작은 금속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철은 다른 금속에 비해 핵분열과 같은 핵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이에 따라 자연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존재한다. 


철을 포함해 주기율표에서 철 주위에 있는 금속들(크로뮴, 망가니즈, 코발트, 니켈)이 지구상에는 비교적 많이 존재하는데,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철 고점(iron peak)’이라고 한다. 양이 많은 만큼 철이 포함된 4주기의 전이금속이 5, 6주기의 전이금속보다 월등히 저렴하며,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존재하는 철의 가격이 가장 저렴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철은 약하다? ‘하이브리드 철’이 나온 이유 


철은 매우 다양한 형태의 화합물로 존재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산화수’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산화수란 원자 내부의 양성자 수 대비 전자의 수로, 양성자와 전자의 수가 같으면 0, 전자가 하나 적으면 +1, 전자가 하나 많으면 –1과 같은 형태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순수한 물질의 산화수는 0이다. 화합물에서는 전자를 내놓으며 반응하는 금속의 경우 산화수가 양수인 경우가 많고, 전자를 받아들이며 반응하는 비금속의 경우에는 산화수가 음수인 경우가 많다. 


순수한 철은 순물질답게 산화수가 0이다. 하지만 화합물을 이룰 때는 다른 금속과 달리 0부터 +6까지 다양한 산화수를 띨 수 있다. 즉, 전자를 적게 잃거나 많이 잃으면서 화합물을 만들 수 있고 안정한 상태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일반적으로 지각에서 채취하는 철광석은 산화수가 +3인 산화철(Ⅲ)이다. 


철광석을 우리가 사용하는 순수한 철로 만들기 위해서는, 산화철을 환원시켜 산화수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환원시켜 만든 철이라고 하더라도 공기 중의 산소나 물과 반응해 쉽게 산화가 일어나 부식되고 만다. 


이를 우리는 흔히 ‘녹이 슨다’고 표현하는데, 특히 지구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산화철(Ⅲ)의 경우 그 조직이 치밀하지 않아 부식이 연쇄적으로 계속 일어난다. 철기시대 유물이 더 오래된 청동기시대 유물보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가 이런 부식 작용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술자들은 산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더 강하고 내구성이 좋은 철 합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나온 대표적인 결과물 중 하나가 강철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강인한 느낌의 철은 대부분 강철이다. 순수한 철은 경도나 강도가 약한 편이다. 만약 아이언맨의 슈트가 순수한 철로 이뤄졌다면 지구를 구하기도 전에 박살 났을 것이다. 


강철은 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금속 합금이다. 강도, 연성, 자성, 내열성 등 철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킨 ‘하이브리드 철’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탄소가 0.3~2% 함유된 경우 강철로 정의하지만, 0.3% 이하인 스테인리스강이나 내열강 등도 강철에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강은 순수한 철에 크로뮴(최소 10.5% 이상)과 니켈, 몰리브데넘, 타이타늄, 구리 등 다양한 금속이 첨가돼 내부식성(산화 반응이나 다른 화학 반응에 대해 저항성이 큰 성질)이 우수하고 강도도 높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철과 혈액이 무슨 상관?


철은 생명 유지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혈액에 존재하는 헤모글로빈에서는 철이 산소와 배위결합*을 이뤄 온몸의 세포에 산소를 배달한다. 언젠가는 인공 혈액을 제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헤모글로빈 내에서 철이 어떻게 산소와 결합하는지 과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거듭했다. 이는 생무기화학의 발전으로도 이어졌다. 


남원우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전공 교수팀은 철이 헤모글로빈 내에 있을 때와 같은 구조에서만 산소 분자와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구조를 띠더라도 산소 분자와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정 구조 분석을 통해 밝혀 국제학술지 ‘네이처’ 2011년 10월 26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doi: 10.1038/nature10535


철은 자연계에서 질소를 암모니아로 만드는 효소의 역할도 하고 있다. 자연뿐만 아니라 인공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대표적인 방법인 ‘하버-보슈법’에서도 철은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핵심 촉매로 사용된다. 


철을 촉매로 사용하면 다른 희귀 금속을 촉매로 사용할 때보다 비용을 훨씬 절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분야에서 철을 촉매로 사용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졌지만, 철이 산화수가 많아 반응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철을 촉매로 활용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탄소-수소 결합을 탄소-산소 결합으로 산화시키는 반응과 천연고무를 인공적으로 합성할 때 사용하는 촉매를 철로 대체하려는 연구가 있다. 


그동안 철은 현대문명의 핵심 원소로서 인류가 윤택한 삶은 누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원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산업혁명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과거보다는 철의 중요성이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동차, 조선, 우주, 무기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원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원소계의 아이언맨, 철이 계속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은성 
포항공대(현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무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뒤 현재 포스텍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무기화학 및 유기금속화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대한화학회와 한국화학연구원, 네이버TV가 주관하는 ‘주기율표와 원소, 150년의 이야기’ 동영상 시리즈 제작에도 참여했다. eslee@postech.ac.kr

 

 

용어정리

* 배위결합
공유결합 중 전자가 한쪽 원자에서만 제공되는 결합. 일반적으로 금속과 금속을 안정시키는 비금속이 이루는 금속-비금속 간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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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은성
  • 에디터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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