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인간이 나타난 이후, 인간은 자연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오면서 호기심과 경외감을 바탕으로 차츰 과학을 진보시켜 왔다. 고대에서 중세에 걸친 수천 년 동안 과학은 몇몇 선구자적인 과학 두뇌들에 의해 부분적이고 단속적인 발전을 해왔으나, 산업혁명을 분수령으로 하여 과학은 양적·질적으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확대되었고,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에 따라 차차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학의 발달이 인간 생활의 편리함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원초적 호기심 충족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음이 분명하나, 한편으론 환경의 파괴, 전쟁무기의 질적 발달로 인한 대량 살륙의 공포, 문명에 대한 인간 소외 문제를 야기시켜 왔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현대 과학의 발달에 대한 병폐가 큰 목소리로 지적되는 원인은 그 야누스적 성격에 있으나, 보다 근본적으론 이러한 양 측면이 본질적으로 논의, 비판되기 전에 현대 사회의 군사 경제적 필요에 의해 단지 과학적 지식만이 제도교육 내에서 대량으로 교육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결과 한 가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지난(至難)한 연구의 과정이 무시당한 채, 결과에 대한 환상이 난무하고, 반대로 과학에 대한 공포 내지 기피 현상도 나타나며, 급기야는 그 과학적 사실과 결과에만 집착하는 결과주의가 팽배, 사회적 병리현상이 되고 있다.
우리 과학교육의 경우도 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의 경제정책에 종속되어 여기에 맞는 기능적 인간의 양산이 교육의 과제가 되어 참된 과학의 정신과 목표에 입각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 방법마저도 치열한 입시 경쟁 하의 철저한 주입식이어서 애초 창조적 과학교육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나라 교육법에 명시된 과학 교육방침은 ‘진리탐구의 정신과 과학적 사고력을 함양하여 창조적 활동 및 합리적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철저히 홍익인간의 교육 이념에 종속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 교육 이념이 구체성과 실천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에 따른 과학교육 방침(목적)은 그 내부에 정확한 가치 규명이 없는 관념적 추상성에 머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규정을 보고 교사가 과학교육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해서 어떠한 인간을 키워야할 것인가가 분명하지 않다.
과학이 과학 자체만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제반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상호연관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명확히 인식되지 않음으로 인해 과학교육의 오류가 나타난다. 과학을 전체 사회 속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올바른 과학정신과 교육목표를 설정하여 현재의 기능 중심적 과학교육에서 탈피하여 인간 존엄의 철학적 바탕을 마련, 이것들이 조화된 과학지식이 교실, 실험실, 야외에서 가르쳐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이 그 사회의 올바른 발전에 대한 구체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확고한 철학과 인간 존엄의 자기신념을 지닐 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교육 내용도 역시 기존의 지식 및 결과 중심의 입시 위주에서 탈피되어야 한다. 이는 현행 입시 제도의 바람직한 개선을 전제로 하는데, 과학교육을 포함한 여타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제도적 장애는 극복되어져야 한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결과가 도출되었는가에 촛점이 맞춰져서 탐구 과정의 지난함과 그 보람을 함께 일깨워 겸허하고 성실한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인간’을 창출해야 한다.
아울러 과학의 부정적 측면을 숨김없이 교육하여 부정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과학 지식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보다 많은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과학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해도 된다는 과학만능주의적 사고 방식도 이러한 구체적 교육에 의해 극복될 것이다.
이럴 때 과학교육은 산업사회 내에서 기계적 활동을 하는 인간을 생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본래 위치를 되 찾을 수 있다.
이상의 올바른 과학교육으로의 복귀를 제한하는 요인들로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입시 제도를 위시한 교육제도, 일방적 입장만 담긴 교육 내용, 그리고 열악한 교육 환경등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 제한 요인들의 구체적 내용들은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제기되어온 문제이므로 다시 언급하는 것은 피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다만 그러한 제한 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해 현장 교사들이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되는가만 언급하기로 하겠다.
철저한 학생 중심의 교육 활동을 통해 개성의 계발 및 창조적 활동을 유도하여 주체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함과 동시에 외적인 제약 조건들에 대한 적극적 자세의 견지가 전제되어야 하겠다. 과학교육 발전에 가로놓인 제약을 그냥 제약으로만 생각, 안주하는 소극적 자세 보다는 그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 개선해 나가려는 강력한 의지와 실천력을 발휘할 때, 또 그것이 전체 교사들로 확대될 때 그 장애는 극복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