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시대를 주름잡던 동물들은 지 금은 상당수 멸종했다.
왜 멸종했을 까. 털매머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인간이 문제인가
털매머드는 약 1만4000~1만 년 전에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시기에 인간은 빠르게 늘어났다. 인간이 새로운 사냥법 으로 지나치게 많은 털매머드를 죽였기 때문일까. 또 이 시기는 기후가 급격하게 바뀌던 때이기도 하다. 이는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이들을 몰살시킨 원흉이라는 주 장으로 이어진다. 진실은 무엇일까.
먼저 인류의 과도한 사냥을 생각해 보 자. 당시의 털매머드는 지금의 소나 돼지 만큼이나 인간에게 유용한 동물이었다. 인류는 털매머드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 먼저 털매머드를 잡으면 온 가족 이 고기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한 마리를 잡으면 대략 토끼 천 마리에 해당 하는 고기가 나왔다. 25명이 한 달을 먹 을 수 있는 양이었다. 남은 고기는 육포 로 만들었다. 폴란드에서는 털매머드의 설골이 예리하게 잘려나간 흔적이 발견 됐는데, 털매머드의 혀도 식용으로 이용 했다는 뜻이었다.
털매머드의 두개골이나 아래턱은 크 고 단단했기 때문에 집을 만들 때 주춧 돌과 뼈대로 사용했다. 우크라이나와 러 시아에서는 1만8000년 전에 털매머드로 만든 집이 70여 채 발굴됐다. 집 한 채를 만드는 데 사용된 털매머드 아래턱의 숫 자는 자그마치 95개였다(위 복원 사진). 또다른 뼈는 연료로도 사용됐다. 뼈에 남 은 콜라겐과 지방 성분이 불에 잘 타는데 다, 뜨겁게 달궈진 뼈가 오랜 시간 고온을 유지하며 숯과 같은 역할을 했다. 뼈, 가 죽, 상아로는 칼, 삽, 주걱, 의복, 모자, 이 불, 악기, 장신구를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메랑 역시 털매머드의 상 아로 만든 것이다.
살아남은 자와 사라진 자
2011년 국제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 결과. 마지막 빙하기 때 대표적인 동물의 서식 가능 범위를 화석과 기후 자료 등으로 추정했다. 매머드 스텝에서 번성하는 털코뿔소는 멸종한 반면 사슴류나 말, 바이슨 등은 살아남았다.
기후가 문제인가
두 번째 멸종 원인 후보는 기후변화다. 플라이스토세 후기인 1만4000년 전, 기 온이 올라가고 빙하가 물러갔다. 이 때 기온의 상승 속도는 매우 빨랐다. 20년 동안 5℃ 정도씩 급격히 올라갔다. 기후 변화가 심각하다고 떠들어댄 지난 100 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이 약 0.75℃ 올 랐다는 걸 생각하면, 당시의 기후변화가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후가 급변하자 금세 식생이 변했다. 시 베리아의 건조한 스텝(나무가 없는 대초 원. 매머드 스텝) 지역에서 자라던 식물 이 사라졌다. 따뜻해진 기후 때문에 눈 과 비가 함께 섞여 내리면서 토양 속의 영양분이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 지역 은 툰드라 지역으로 변했다.
이끼와, 영 양분이 거의 없는 사초류(부피 생장을 하지 않고 벼나 보리처럼 길이 생장만 하 는 식물)가 풀 대신 자라기 시작했다. 매 머드는 이끼와 사초류를 먹긴 했지만 영 양이 부족했다.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에 발견된 털매머드는 이전보다 작아졌다. 결국, 1만3800년을 기점으로 털매머드 의 숫자는 급감했다. 털매머드의 멸종은 남쪽부터 북쪽방향으로 일어났고, 가장 마지막까지 털매머드가 살아남은 곳은 시베리아 최북단이었다. 1만3500년 전, 유럽에서 스텝 지역이 완전히 사라지고 산림지대가 나타났다. 유럽의 털매머드 는 이 때 사라졌다. 1만3300년 전에는 미 국 알래스카에 툰드라와 북방침엽수림 (가문비나무속, 전나무속)이 생겨났고, 털매머드는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다양한 동물, 다양한 멸종 원인
최근 학자들은 두 가지 멸종 원인을 지 역별로 따로 적용하기도 한다. 유라시아 에서는 기후와 식생 변화로 털매머드가 멸종했고, 북아메리카에서는 인간의 사 냥으로 멸종했다는 식이다. 무엇이 옳을 까. 사라진 매머드는 말이 없다. 다른 동물의 운명도 매머드와 크게 다 르지 않았다. 털코뿔소는 빙하기가 끝날 무렵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없 어지자 서서히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
마 스토돈 역시 인간들의 과도한 포획과 기 후변화로 멸종했다. 메갈로케로스는 천 적이었던 검치호랑이나 늑대, 그리고 인 간에게 잡혀 먹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글 립토돈은 갑옷처럼 생긴 등갑 구조를 노 린 인간들에게 사냥 당했다. 함께 살던 대다수의 초식동물이 멸종하면서 육식 동물도 자연스럽게 멸종했다.
티타니스를 포함하는 ‘공포새’들은 조 금 다른 시기에 다른 이유로 멸종했다. 이들은 모두 180만 년 전에 멸종했기 때 문이다. 이들은 다른 육식동물 특히 포 유류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대표적인 천 적은 베링해협을 거쳐 북미대륙으로 넘 어 온 흑곰이었다. 이들은 직접 티타니스 와 싸워 이길 만큼 힘이 강했다. 늑대나 검치호도 무리를 이뤄서 티타니스를 공 격할 수 있었다. 티타니스의 사냥 대상이 었던 설치류는 방향을 바꿔가면서 도망 을 갈 수 있게 진화해, 직선 질주만 가능 한 티타니스의 사냥을 피했다. 많은 빙하시대 거대 동물이 사라지는 동안, 인류는 살아남아 번성했다. 하지만 자랑스러워 할 수만은 없다. 그들은 어쩌 면 우리가 살아남은 대가로 사라졌을지 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 은 동물들이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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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빙하시대의 거대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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