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시대의 또다른 주역은 인류다. 인류는 빙하시대를 통해 현재의 '인간으로' 빚어졌다.
빙하시대, 현생인류의 진화를 부르다
인류가 최초로 지구에 나타난 것은 신생대 제3기 후반인 700만 년 전, 동아프리카나 사하라 동부 지방이었다. 초기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진화했다. 이들은 크게 두 종류의 인류로 나뉘어 각각 진화했는데, 하나는 갸름한 얼굴을 가진 아프리카누스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에는 파란트로푸스라고 불리는 로부스투스 계열이다. 250만 년 전인 플라이스토세 초기에는 완전히 새로운 인류 종인 호모 속이 등장했다. 최초의 호모로 추정되는 호모 하빌리스는 연약한 인류였던 아프리카누스에서 진화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진화에 기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빙하시대에는 춥고 따뜻한 기후가 반복적인 사이클을 그렸고, 인류는 이런 기후변동에 적응하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대표적인 게 돌로 만든 도구, 석기였다. 석기는 플라이스토세로 접어들어 지구 기후가 한랭해지면서 나타났다. 이것은 당시 호모 속 인류의 식성 변화와 관련이 깊었다. 초식 위주의 잡식 생활을 하던 인류가 육류 섭취, 즉 단백질 섭취를 늘린 것이다. 고기를 손질하거나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했고, 석기는 바로 이런 요구에 맞춰 탄생했다.
다른 길을 간 인류를 보자. 로부스투스 그룹의 인류는 계속 초식을 고집했다. 기후변동으로 환경이 척박해졌고 식물도 많이 거칠어진 시기였다. 하지만 이 인류는 변화를 거부하고 거친 식물을 먹었다. 어금니가 커지고 턱이 강해졌지만 한계에 이르렀고, 약 100만 년 뒤인 지금부터 150만 년 전에 멸종했다. 고기를 먹게 된 진화가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인류는 석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동물 사체를 확보하거나 사냥하는 과정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뇌를 복잡하게 썼다. 특히 석기를 만드는 과정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일종의 학습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학습된 기술은 누적됐고, 이는 오늘날 문명사회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의 혁신을 낳았다.
추운 세계로 진출하다
빙하시대에는 또 다른 큰 사건이 있었다. 200만 년 전, 인류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났다. 바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다. 이 때 인류는 처음으로 사시사철 더운 사바나나 숲을 벗어나 ‘추위’가 있는 온대지방으로 진출했다. 인류는 이후 빠른 속도로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됐다. 유럽으로의 확산은 좀 느렸다.
동서로 퍼진 인류는 각기 흔적(석기)을 남겼다. 인류의 진화는 석기의 진화와 나란히 일어나기 때문에, 석기를 통해 반대로 인류의 진화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초기의 원시적인 석기는 올도완이라고 부르며 약 100만 년 지속됐다. 150만 년 전, 이 석기는 아슐리안 석기로 진화했 다. 아슐리안 석기는 큼직한 돌의 전면을 계획적으로 다듬어서 만든, 도끼형태의 다목적 석기다. 이 석기가 제작된 시기는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시기와 엇비슷하 다. 즉 이 석기의 발명자는 호모 에렉투 스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오직 서양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동서양의 문화 진화에 차이가 있다거나 (서양에서만 세련된 문화가 나타났다) 인류 진화의 갈래가 아예 다르다는 주 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의 전곡구석기유적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지역에도 비슷한 석기가 많이 발견되고 있어, 지역적인 변화일 뿐이라고 생각하 고 있다. ‘인간성’의 탄생과 현생인류의 탄생 플라이스토세 후반, 즉 30만 년 전 이후의 호모 에렉투스나 하이델베르겐시 스 유적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보인다. 바 로 예술의 희미한 흔적이다. 인간성이 서서히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이후에 유럽 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했다. 네안 데르탈인은 유럽과 중근동, 시베리아 알 타이 지역까지 퍼져 살았다. 여기에 최근 알타이의 데니소바동굴에서 화석이 발 견된 데니소바인과, 인도네시아 플로레 스 섬의 1만7000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까지, 플라이스토 세 후반에는 세계에 여러 종의 인류가 흩 어져 살았다.
이 와중에 빙하시대의 인류진화 가운 데 두 번째로 큰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현생인류의 등장과 ‘인간성’의 폭발이다. 현생인류는 약 30만~20만 년 전 사이에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나타났다. 완전한 현생인류 화석은 에티오피아 헤 르토 유적의 17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됐 다. 지난 연말 필자도 이 화석의 원본을 보고 왔지만, 이미 진화가 상당히 많이 일어난 상태라 많은 학자들이 이보다 앞 서 완전한 현생인류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 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현생인류는 이후 10만 년 전쯤에 이스라엘을 비롯한 근동 지방까지 진출하고, 7만~6만 년 전후에 동아시아로 확산됐다. 현생인류는 워낙 적응력이 뛰어나 다른 고인류들이 모두 절멸한 뒤 오늘날 지구의 유일한 인류 종 으로 살아남았다.
현생인류는 가장 추운 시기에 거대동 물을 사냥하기 위해 최고의 석기제작기 술인 석인석기 또는 세석인석기를 발명 했고, 악기나 동굴벽화, 조각품 등의 예술품을 제작했다. 석인석기가 나온 시기 는 빙하시대 중에서도 매우 추운 시기였 지만, 역설적으로 인류는 이 때 가장 섬 세한 기술을 꽃피웠다. 또 무덤을 만들었 던 것으로 보아 내세를 생각하는 능력도 있었다. 이러한 ‘인간적인’ 능력은 오늘날 우리와 같다. 이들은 뛰어난 적응력으로 극지까지 퍼졌고, 멀리 바다 건너 오스트 레일리아 대륙과 태평양 섬까지 퍼져나 갔다.
한반도는 어땠을까. 중국 베이징 지역 에서 100만 년 이상 되는 화석과 고고학 유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호모 에렉투 스 단계의 인류가 확산돼 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곡리 유적에서 보이는 주먹 도끼가 그 흔적이다. 또 북한 평양 일대 에서 발견된 화석 중에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형’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현생인류 단계의 화석 인류로는 용곡인이나 만달인 등이 있다.
석인석기와 세석인석기
석인은 길고 폭이 좁으며 양쪽 날이 날카로운 돌 박편이고 세석인은 그 중 작은 석인석기다.
이들이 만들어지던 시대는 약 4만~1만 년 전인데, 기후가 매우 추웠다.
용곡인과 만달인
각각 북한의 평남 용곡리와 평양 만달리에서 발굴된 현생인류로 약 4만~2만 년 사이에 살았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동굴 벽화에 그려진 코뿔소. 약 3만 년 전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사냥 대상이었던 걸까.
빙하시대는 혹독한 추위가 반복적으 로 찾아오는 시기였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고기를 먹고, 도구를 사용 하며, 예술혼을 꽃피웠다. 이 과정이 바 로 현재의 인류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빙 하기 인류와 거대동물은 어떤 관련이 있 었을까. 거대동물의 멸종은 과연 누구 때문이었을까. 다음 파트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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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매머드왕국의 최후
PART 1. “2015년, 지금은 빙하시대”
PART 2. 빙하동물의 천국, 매머드 스텝
PART 3. 빙하시대의 거대동물들
PART 4. 추위가 불러온 '인간성'의 폭발
PART 5. 무엇이 매머드 왕국을 무너뜨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