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가다’를 좀 했죠.”
케이스타(KSTAR)의 산증인이라는 소개에, 양형렬 국가핵융합연구소 토카막공학기술부 부장이 경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편안한 가디건 차림의 복장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공학자다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몰랐다. 그가 정말로 케이스타의 현장 조립을 진두지휘한 주인공이라는 걸. 양 부장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짜맞춰야 하는 복잡한 장비들을 무려 40개월에 걸쳐 현장에서 꼼꼼히 조립해 냈다. 조립설계 기간까지 합하면 4년 반이 걸린 대사업이었다. 그는 “혼자 한 것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어려움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는 남모를 고생을 털어놨다. “중압감이 컸죠. 토카막형 핵융합 장치는 각각의 단계마다 조립공정이 지나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어요. 매 순간이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었어요. 더구나 세계에서 거의 처음으로 진행하는 조립공정이다 보니 참고할 자료도 없었어요.”
한국을 변방에서 핵심으로 이끈 주역
케이스타는 세계적으로도 깜짝 놀랄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은 서울대와 카이스트,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서 실험실 규모의 소형 토카막 장치들로 기초연구들을 하던 이 분야의 변방이었다. 그런 한국이 난데없이 중형 핵융합 장치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초전도자석을 이용한 첨단 토카막이었다. 유럽과 일본 등에서 상전도 자석을 이용한 토카막은 꽤 연구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상전도 자석은 전류가 높아졌을 때 저항 때문에 고열이 발생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모두가 초전도 방식의 토카막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생각은 1980년대중반 이터(ITER, 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가 출범하면서 현실이 됐다.
변방에 불과하던 한국은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이 연구 축소로 주춤하는 틈새를 노려 최초의 초전도 토카막인 케이스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중국은 뒤늦게 다른 재료를 쓰는 초전도 토카막 장치 ‘이스트(EAST)’를 개발하며 케이스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나이오븀-티타늄 합금을 초전도 선재로 썼는데, 제작 시간이 빨랐다. 반면 나이오븀-주석 합금을 초전도선재로 쓰는 케이스타는 재료 특성상 열처리가 필요했다. 전자석 하나를 열처리하는 데 한 달 반이 걸릴 정도였다. 자연히 제작 기간도 길어졌다. 결국 중국의 EAST에 비해 2년 남짓 완공이 늦어졌지만, 케이스타가 사용한 재료가 같은 운전조건에서 더 안정성이 뛰어나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008년 첫 운전에서 플라스마 발생에 성공하고 2010년 플라스마의 감금효율이 급상승하는 ‘H-모드’를 달성했다. 더구나 케이스타는 이터에서 건설할 대형 실험로와 똑같은 재료를 쓰고 있어 이터 건설에 좋은 참고가 되고 있다.
지난 9월 1만 번 째 실험 돌파한 케이스타
현재 케이스타는 연구원들의 노력과 끊임없는 성능 개량으로 꾸준히 좋은 연구 결과를 내고 있다. 지난 9월에는 1만 번째 실험을 돌파하기도 했다. 양형렬 부장은 “1만 번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숱한 실험에도 기기가 안정적으로 운전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초전도 토카막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케이스타는 고효율 작동 상태인 H-모드의 지속 시간을 수십 초 수준으로 늘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 플라스마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성 문제(ELM)를 억제하고, 케이스타 만의 장점(예를 들어 매우 낮은 자기장 오차)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 주제다. 하지만 이런 연구를 위해 필요한 제반 장치, 시설의 확충이 필요하다.
케이스타는 ‘미니 이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면에서 닮았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케이스타는 이터를 축소해 작은 규모로 실험하는 소극적인 장치가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이터 이후’를 준비하는 미래형 실험장치라는 뜻이다. 양 부장은 “케이스타는 처음부터 이터의 운전 영역을 넘어서는 고성능 운전 시나리오 개발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며 “한국형 핵융합로를 건설할 때까지 반드시 돌파해야 할 공학적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할 게 더 많은 장비라는 뜻이다. 케이스타는 한국을 핵융합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단번에 진입시킨 빼어난 장비다. 더구나 수십 년 뒤까지 연구할 수 있는 미래형 시설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양 부장은 4년이 넘는 시간을 잠 못 들며 지름 높이 10m의 거대한 기계를 조립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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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핵융합의 원리
PART3. 핵융합의 장점과 발전
PART4. 핵융합 실현 기술
PART5. 핵융합의 난관
PART6. 핵융합 선진국의 주역 케이스타
BRIDGE. 김기만 국가핵융합연구소 신임 소장 인터뷰
PART7. 인류의 꿈이 모였다 이터(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