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데이터와 표절이 난무한 ‘가짜’ 연구논문들이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에 게재돼 과학 학술지의 권위에 금이 가고 있다. 과연 과학 학술지의 권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4년여의 짧은 역사를 가진 성균관대 의과대학이 드디어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연구논문을 게재했다. 이로써 국내 최고의 연구기관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줘 무엇보다도 기쁘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물과학과 서연수 교수의 말이다. 그는 성균관대 의과대학 분자세포생물학교실의 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2001년 7월, 기존의 DNA 복제 과정의 정설을 뒤집는 탁월한 연구 논문을 네이처에 싣는 쾌거를 거뒀다.
하지만 “저명한 미국 과학자의 기존 이론을 뒤집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사실을 규명해놓고도 논문 발표마저 여러 차례 방해받아 마음고생이 심했다”라며 논문 게재의 기쁨 이면에 놓인 또다른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가 발표한 연구 결과는 DNA 복제과정에서 기존의 정설로 여겨지던 이론을 뒤집는 것이었다.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DNA 복제과정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Dna2 효소’는 이중나선의 DNA를 풀어 외가닥 DNA를 생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교수는 이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Dna2 효소가 DNA 복제과정에서 이중나선을 풀어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DNA조각을 복제할 때 일시적으로 필요했던 RNA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생물학 전공서적에는 서교수의 이론이 소개돼 있지 않다. 그러나 올해 미국에서 발간된 분자생물학 교재 ‘GENOMES’의 2002년 개정판에 서교수의 연구논문이 참고문헌으로 소개됐다. 서교수의 땀과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서연수 교수 vs 네이처
서교수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보낸 것은 지난 2000년 11월이었다. 대개 논문의 게재 여부는 1-2개월이면 연구자에게 통보되기 마련인데, 그의 경우 9개월이 지난 2001년 7월에야 연구 결과가 빛을 보게 됐다.
문제는 네이처의 논문 심사기준 중 하나인 해당분야 전문가의 심사(peer review) 과정에서 발생했다. 심사위원 중 한명이 그의 연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단은 모두 3명으로 구성됐는데, 이중 2명은 그의 논문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의 연구가 DNA 복제과정에서 중요한 효소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길을 개척한 훌륭한 논문이라는 평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명은 이들과 의견을 달리했다. 그는 서교수의 연구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하는데 끝까지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가 Dna2 효소가 이중나선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기존 이론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교수의 연구 결과가 공인되면 자신의 연구 결과는 자동적으로 틀렸음을 인정받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서교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후 “특히 저명한 학자의 옛 이론을 뒤집기 위해서는 학자도 싸워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회고하는 그는 당시 반대평을 제기한 심사위원을 심사위원단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이유를 네이처에 설명했다. 결국 추가로 선정된 심사위원은 그의 연구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반대평이 지나친 혹평이었다고 밝혔다.
2001년 7월 초 미국 실험생물학회연합(FASEB) 회의를 끝으로 서교수는 세계적인 학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누게 됐다. 회의에서는 기존 이론과 서교수의 이론을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학자들은 결국 새로운 이론에 손을 들어줬다.
99.9999%의 진실, 또는 거짓
최근 벨 연구소의 ‘스타’ 연구원이었던 독일 출신의 얀 헨드릭 쇤이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자신이 조작한 연구 데이터를 게재해 물의를 빚었다. 이 사건은 지금껏 잡지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신봉해오던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경고’였다.
‘과학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 중 90% 가량은 시간이 지나면 거짓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의 90%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 말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적인 성격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나간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과학의 이런 특징을 이용한 과학자들의 의도적인 부정 횟수가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1987년 당시 사이언스의 편집장이던 코시랜드는 “연구 논문의 99.9999%는 정확하고 진실하다”고 밝혔다. 10년이 조금 지난 후 네이처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1999년 3월 네이처는 학술지에 게재되는 연구논문들 중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매우 많다고 실토했다.
물론 과학 학술지의 목적이 이미 하나의 학설로 정립된 내용을 발표하는데 있지는 않다. 오히려 새로운 학설로 정립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이론들을 과학자 사회와 대중에게 알리고, 서로 간에 활발한 의사소통을 추진하는데 의의를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표절한 연구논문이 과학 학술지에 버젓이 게재되는 것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 학술지는 소위 ‘스크리닝’ 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를 통해 연구결과를 심사하고, 심사에 통과한 연구논문만이 학술지에 게재된다. 학술지는 논문심사 제도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유지한다.
따라서 과학 학술지의 논문심사 제도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믿을만한가에 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3년 영국의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는 과학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6-9%는 자신의 동료 중에서 데이터를 표절하거나 조작한 연구논문을 과학 학술지에 게재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근 노벨 물리학상 수상 후보자로까지 거론됐던 쇤의 경우에도 심사위원회가 다시 꾸려져 결국 그의 부정이 밝혀졌다. 과학 학술지의 논문심사 제도가 무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심사위원 객관적인가?
서교수의 경우 과학 학술지의 논문심사 제도가 가진 또다른 허점을 보여준다. 권위있고 저명한 학술지일수록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엄격한 논문심사 기준은 기본이다. 한술 더 떠서 심사대상이 되는 연구자의 연구결과와 완전히 상반되는 입장을 가진 과학자에게 논문심사를 맡긴다.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면 훌륭한 수준의 연구논문이라는 판단 아래서다.
사실 자신과 정반대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는 네이처의 요구는 학문적으로 타당하다. 문제는 심사위원의 반대 이유다. 서교수의 경우 네이처는 3쪽에 걸친 강력한 논문 게재 반대평을 받았다. ‘대다수 실험이 모델의 잘못을 입증하기보다 모델을 옹호하기 위해 꿰맞춰졌다’는 엉뚱한 이유까지 거론됐다. 게다가 논문 게재를 찬성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많은 분량으로 반대평을 보내는 일은 흔치 않다. 이는 3명의 심사위원 중 2명이 긍정적인 심사평을 내리면 논문이 잡지에 게재되는 관행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네이처는 처음에 강력히 반대한 심사위원의 견해에 따라 서교수의 논문 게재를 거절했다. 하지만 서교수는 자신의 연구결과에 자신이 있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네이처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는 13쪽에 이르는 긴 글을 통해 심사위원의 반대평을 하나씩 차근차근 반박했다. 그리고 네이처의 편집장에게도 2쪽 분량의 글을 따로 보내 해당 분야의 가장 유명한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연구 논문을 심사받게 해달라고 자청했다. 결국 네이처가 추가로 선정한 전문가들이 그의 논문을 격찬함으로써 승리의 여신은 그의 편이 됐다.
하지만 서교수가 네이처와의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생물학의 역사를 새로 쓸 새로운 이론이 사람들 앞에 모습도 드러내지 못한 채 잊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술지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인재의 등용과 발굴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행태가 젊은 과학자들의 사기를 꺾어놓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영향력 계수, 무조건 믿을 것인가?
그렇다면 과학 학술지의 순위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한 전문지가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학술지의 ‘영향력 계수’(impact factor)로 가늠된다. 영향력 계수란 특정기간 동안 한 학술지에 수록된 하나의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된 평균 횟수를 의미한다. 즉 한 학술지의 영향력 계수를 산출하려면 학술지에 논문이 인용된 총 횟수를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의 총수로 나누면 된다.
최근 10년 사이에 학술지의 영향력 계수는 학술지의 권위와 평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대학교 도서관에서 구독하거나 소장하고 있는 학술지들을 관리할 때 흔히 잡지의 영향력 계수가 사용된다. 또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연구기관이나 실험실의 업무를 평가하는 지표로 영향력 계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해당 연구기관이나 실험실 소속 연구자들의 논문이 영향력 계수가 높은 학술지에 얼마나 많이 실렸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한편 연구자 개인에게는 자신의 연구논문이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 또는 다른 연구자의 연구논문이 자신의 연구에 인용할만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네이처, 사이언스 등의 영향력 계수는 평균 25를 웃돈다. 만약 한 학술지에 논문이 10편 게재된다면, 최소 2백50명의 연구자가 이 학술지의 논문을 인용한다는 뜻이다. 수백가지의 학술지들 중 대부분은 영향력 계수가 한 자리를 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25라는 숫자는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학술지의 영향력 계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의 절대 권위가 생각만큼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된 것이다. 1996년 미국정보과학학회지(JASIS)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상당수 학술지의 영향력 계수가 30-40% 부풀린 값이다. 여기에는 네이처를 비롯해 사이언스, 영국 의학 전문지 랜셋(Lancet), 뉴잉글랜드 의학지(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등 영향력 계수 상위 20위내에 포함되는 대부분의 학술지들이 거론됐다.
영향력 계수가 신뢰도를 잃은 것은 계수 산출에 사용되는 변수의 범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 계수를 산출하는 두가지 변수인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의 총 수’와 ‘논문의 인용 횟수’를 따질 때 각각에 포함되는 내용이 다르다.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의 총 수에는 편지나 논평, 논설 등이 모두 포함되지만, 인용된 논문 횟수를 따질 때에는 연구논문과 단보(note), 그리고 총설(review) 만 헤아리는 점이 지적됐다. 만약 한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의 총 수가 10편이고, 이 중 6편이 연구논문과 단보, 총설에 해당한다고 하자. 한 학술지의 영향력 계수가 25라면 실제로 논문을 인용한 사람은 2백50명이 아니라 1백50명이라는 결과가 된다. 결국 절대적인 것처럼 신봉되는 학술지의 영향력 계수는 다소 부풀려진 값이며, 학술지의 영향력은 부풀린 값만큼 줄어들게 된다.
과오를 줄여야 권위가 산다
‘가짜’ 연구논문이 과학계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크다. 일단 권위있는 과학학술지에 게재되면 다른 과학자에 의해서 인용되기 쉽다. 논문을 인용한 과학자는 이미 조작된 상태의 데이터를 자신의 연구논문에 사용했기 때문에 또다른 가짜 연구논문을 만들어낸다. 결국 한 과학자의 비양심적 행동으로 인해 무의식적이든 고의적이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과학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과학자 개인의 윤리적 태도에 그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과학학술지가 그 책임을 비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논문심사 제도와 기준을 갖추고 있는 전문지의 입장에서는 이런 과오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할 수 있다. 특히 논문심사 위원이 한 연구자의 입지를 뒤흔들 수 있을 만큼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과학 학술지는 심사위원들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는 관행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고의 권위’ ‘세계적인 과학학술지’라는 수식어의 참의미를 다시 찾게 될 그 날을 기대해본다.
과학 학술지 양대산맥 네이처·사이언스
오늘날 수백여종에 달하는 과학 학술지들 중 네이처(Nature)와 사이언스(Science)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선취권을 인정받기 원하는 잡지 1순위를 다투는 대표적인 과학 전문지다.
네이처는 1869년 영국의 로키어 경에 의해 탄생했다. 독학으로 천문학을 공부한 그는 태양 관측에 관한 많은 업적을 남겼고, ‘헬륨’이라는 이름을 지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과학계에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네이처를 발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과학자들 사이에 국제적인 협력과 정보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50년이 넘도록 편집장으로 지내면서 네이처를 과학자들의 메신저로 만들었다. 또한 더 나은 과학교육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거나 화학과 물리가 영국의 중등학교 교과과정에 도입되게 하는 등 과학의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매주 발행되는 네이처는 15개의 자매지를 함께 발행하고 있다. 오늘날 네이처는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과한 최고 수준의 논문들을 싣는 것을 목표로 표방하고 있다.
네이처가 영국 과학학술지의 대명사라면, 사이언스는 미국 과학학술지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사이언스의 탄생 스토리는 네이처보다 더많은 우여곡절을 갖고 있다. 사이언스는 뉴욕의 저널리스트인 미헬스가 창간했다. 그는 에디슨으로부터 1880-1881년에 1만달러에 달하는 잡지 발행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구독자 수는 예상을 밑돌았다. 결국 1881년 말 에디슨은 자금 지원을 중단했고, 1882년 3월 사이언스의 출판은 중단됐다.
이후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곤충학자였던 스커더에 의해, 중단된지 1년만인 1883년 2월 사이언스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과학자 사회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사이언스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목적이 어느 정도 성공해 1년 사이에 2천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사이언스가 미국 최초의 전문 과학학술지로 탈바꿈한 것은 1894년 당시 콜롬비아대의 심리학 교수였던 카텔이 5백달러에 사이언스를 사들인 후부터였다. 카텔은 로키어 경과 마찬가지로 50년 동안 사이언스의 편집장으로 지내면서 과학자들의 최신 연구와 소식들을 실었다. 특히 사이언스는 1896년 초 뢴트겐의 X선 발견에 관한 자세한 논의를 출판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도 매주 과학 분야의 최신 소식과 동향을 가장 광범위하게 다루는 학술지가 됐다. 오늘날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소위 ‘핫 이슈’가 되는 연구결과를 가장 먼저 게재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관계다. 한 예로 지난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온 세계가 떠들썩했던 무렵, 이 주제에 관한 연구결과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하루 차이로 발표되기도 했다. 앞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선의의 경쟁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