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볼라는 과거 수천만 명을 죽였다는 스페인독감처럼 대유행 전염병(팬데믹)으로 발전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공기로 전염돼야 한다. 영화 아웃브레이크(1995)는 이런 최악의 공포를 현실로 보여준다. 출혈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공기전염으로 변하는 순간,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생화학무기가 된다. 에이즈 바이러스처럼 잠복기가 5~10년으로 길어지거나 돌연변이를 일으켜 치료제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1 공기전염 발전 가능성 “거의 없다”
2012년 4월 25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한 논문으로 과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캐나다 국립미생물연구소 캐리 코빙거 박사팀이 “에볼라가 공기전염된 증거를 발견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구진은 에볼라에 감염된 돼지 옆에 원숭이를 두었는데, 둘 사이의 접촉이 전혀 없었는데도 원숭이에게 에볼라가 전염됐다. 정말 공기로 전염된 걸까.
“에볼라가 공기전염이 될 정도로 변하려면 수백 만 년은 있어야 합니다. 그 정도 차이면 아예 다른 종이라고 봐야 합니다. 생전에 그런 일은 못 볼 것 같습니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에볼라는 서식지와 감염방식이 공기전염 바이러스와 전혀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일단 에볼라는 공기 중에서 가만히 버티기조차 힘들다(브릿지 참조). 정 교수는 “기침에 섞여 나온 에볼라 바이러스가 주변 사람에게 전염되려면 ‘세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코털과 기도 속에 있는 섬모를 뚫고 기도로 진입하기 쉽지 않다. 어찌어찌 들어간다 해도 기도상피세포의 세포벽이 가로막는다. 여길 통과해도 기존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에볼라가 증식하고 복제하기 어렵다. 코빙거 박사가 발견한 공기전염 사례는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 그는 최근 자신의 연구를 뒤집는 논문을 발표했다. 7월 25일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는 “연구자들이 동물우리를 물로 청소하다가 체액이 튀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담겨 있다.
2 치료제와 백신 피하는 변종 “당분간 없을 것”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다. RNA바이러스는 DNA바이러스에 비해 돌연변이를 훨씬 잘 일으킨다. 에볼라도 RNA바이러스다. 혹시 인플루엔자처럼 치료제와 백신을 만든다 해도 이를 무력화시키는 변종이 금방 등장하지 않을까.
“에볼라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김상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대응연구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에볼라는 인플루엔자만큼 변종이 자주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플루엔자는 복제 과정에서 8개 유전자가 각각 따로 움직인다. 주변에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있으면 유전자를 뒤섞기도 하고, 변이도 그만큼 쉽게 일어난다. 반면 에볼라는 복제 과정에서 8개 유전자가 함께 움직인다. 에볼라에서 ‘대변이’가 드문 이유다.
김 단장은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게 되면 상당 기간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면서도 “에볼라를 박멸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인류 역사상 박멸단계까지 온 바이러스는 천연두와 소아마비뿐이다. 둘 다 사람이 유일한 숙주다. 하지만 에볼라는 사람과 동물에 함께 감염돼 그런 드라마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3 잠복기 늘어날 가능성 “거의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이틀에서 3주 만에 바로 발병한다. 잠복기가 매우 짧은 편인 데다, 그 기간 동안 전염되지도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몰래’ 다른 숙주에 잠입하기가 어렵다. 혹시 잠복기가 HIV처럼 길어지는 일은 없을까.
인류가 바이러스를 연구한 이래 잠복기가 극적으로 변화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바이러스의 진화와 잠복기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HIV는 인간 세상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잠복기가 지금처럼 길었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갑자기 길어진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바이러스와 사람이 오래 공존할수록 치사율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숙주를 오래 살려 놓아야 바이러스 자신의 번식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과학동아 2013년 8월 ‘바이러스의 인간사육’ 기사 참조).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에볼라도 감기처럼 ‘부드러운’ 질병으로 바뀔 것이다.
4 아프리카 대륙의 에볼라 “앞으로 훨씬 퍼진다”
당장은 에볼라가 아프리카에서 꽤 퍼질 것 같다. 8월 17일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에서는 곤봉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에볼라 치료소 문을 부수고 들어와 “에볼라는 없다”고 외치며 집기를 약탈해갔다. 괴한들은 환자의 타액과 혈흔이 묻은 담요와 매트리스를 가져갔고, 이 틈을 타 에볼라 양성판정을 받은 환자 17명이 탈출했다.
이처럼 에볼라가 퍼진 지역은 현재 사실상 무정부상태다. 취재를 위해 연락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에볼라가 금방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보건의식이 낮고 정부와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높은 인구밀도도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최근 에볼라 환자가 9명이나 발생한 나이지리아는 인구 1억7700만 명으로 세계 7위 인구대국이다.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왜 WHO가 비상사태까지 선언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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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에볼라의 모든 것
PART1.전염의 시작
BRIDGE. 에볼라가 보내 온 편지
PART2. 한국은 에볼라 무방비 국가
PART3. 인간에겐 아직 두 개의 무기가 남아 있습니다
EPILOGUE. 에볼라 대재앙 앞으로 어떻게? 대유행 팬데믹은 아직 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