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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 에볼라가 보내 온 편지

"밀림을 베자 내가 나타났지"

BRIDGE. 에볼라가 보내 온 편지 “밀림을 베자내가 나타났지 에볼라가 발생한 서아프리카 3개국은전 세계에서가장 밀림개발이심한 곳이다.”
* 2012년 콩고민주공화국 국립생의학연구소의 저스틴 마스무 박사와 공동연구진이 온더스테푸어트 수의학 연구저널에 발표한 논문
** 국제적으로 불법 벌목을 감시하는 일리걸로깅포털 (Ilegal Logging Portal) 2009년 4월 30일자 기사
*** 가디언 2012년 7월 5일자 기사
**** 2002년 미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센터 지구물리연구실과 세계보건기구(WHO) 타이숲 에볼라프로젝트 공동연구팀이 ‘사진측량공학 및 원격탐사(PE&RS)’ 저널에 발표한 논문


쌀뤼! 쥬마뻴 에볼라(안녕! 내 이름은 에볼라야). 기니에서 프랑스 말을 좀 배웠는데, 이젠 한국어도 좀 배워야겠어. 우리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 그동안 아프리카의 아주 좁은 지역에서만 활동했는데 이제 나도 싸이처럼 세계로 무대를 넓혀보려고. 근데 만나기도 전에 오해가 있으면 안 되잖아? 어, 설마 벌써 날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농담이야, 농담. *^^*


나 생각보다 여려

며칠 전 TV를 보다 깜짝 놀랐어. 날 악마처럼 그려놓았지 뭐야! 그날 정말 크게 상처받았어. 나 사실 보기보다 여려.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라는 별명 탓에 못 믿겠지만 진짜야. 동물 몸 밖으로 나가면 몇 시간도 안 돼서 죽는단 말야. ㅠ.ㅠ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건 자외선이야. 내 몸은 안쪽에 유전물질인 RNA가 들어있고 바깥쪽이 지질막으로 덮여 있어. 지질막에는 단백질 수용체가 붙어 있지. 이 단백질이 있어야 열쇠처럼 세포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어. 그런데 못된 자외선이 내 단백질 수용체를 망가뜨린단 말이야! 이것뿐만이 아냐.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야생에는 RNA 분해효소가 널려 있어. 여기 걸려도 꼼짝없이 분해돼. 난 축축하고 습기 많은 곳을 좋아하는데, 몸 밖에 나가면 건조해서 힘을 쓸 수가 없어. 내 소중한 단백질도 망가져버리고.

자외선, 분해효소, 건조(탈수). 이 세 가지에 꼼짝없이 무너지는데, 이래도 내가 여리지 않아? 진짜 강한 애는 노로바이러스(식중독균)처럼 음식이든 땅속이든 아무 데서나 잘 사는 친구지. 난 혈액이나 침처럼 체액을 통해서만 간신히 이사를 할 수 있어. 그런데 어떻게 말린 박쥐고기에서 살아남아 사람으로 전염될 수 있냐고? 그거야 간단하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반건조 오징어 먹어봤지? 그 안에 물이 하나도 없을까? 근육 속에 남아있는 아주 적은 양의 피에서도 우리는 축제를 벌일 수 있어. 크기가 고작 1μm(100만 분의 1m)밖에 안 되거든. 동물 고기를 끓는 물에 넣거나 구워도 어딘가에 우리 동무가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전염이 될 수 있다는 소리야. 이 지역에는 단백질 공급원이 별로 없어. 그래서 서부와 중부 아프리카는 아마존 유역보다 야생동물 고기를 4배나 많이 먹어. 우리 같은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이렇게 좋은 곳이 없지.


날 먼저 찾은 건 바로 너희들이야

사실 난 아직도 사람이 낯설어. 원래 과일박쥐나 침팬지, 고릴라들과 밀림에서 사이좋게 살고 있었어. 물론 침팬지나 고릴라는 종종 괴롭혔지만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밀림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거야. 내가 낯가림이 좀 있거든. 동물 몸속에 있던 날 사람들이 만지자 흥분해서 그만…(죽여버렸어). 앞으로 차차 적응하면 사람하고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지. 하여튼 당장은 아니야. 내가 사람에게도 문제없도록 진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거든.


얼마 전 인간들이 쓴 논문*에도 이런 말이 있어. “1994년 이후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out break)은 열대아프리카 삼림 생태계의 극단적인 변화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야생동물을 많이 잡고, 농사를 짓거나 금광을 캐기 위해 밀림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우리랑 만나는 일이 잦아진 거야. 요즘 우리가 뜨는(?) 곳을 잘 살펴 봐. 묘하게 공통점이 있어.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모두 나무를 가장 많이 잘라내는 곳이야. 기니의 열대우림은 최근 몇 년 사이에 5분의 1 이하로 줄었지. 이 자리에는 대규모 코코아 농장이 들어섰어. 시에라리온의 밀림은 국제단체에서 ‘심각하게 초토화된(seriously threatened)’ 상태라고 경고할 정도야**. 아프리카 사람들 너무한다고? 글쎄. 오랜 내전으로 황폐화된 나라를 복구하려고 외국 벌목회사에 숲을 통째로 내주다보니. 라이베리아는 재작년 나라의 밀림 절반 이상을 벌목회사에 팔아버렸어***.


가뭄 끝 폭우는 축제의 시간

또다른 비밀 하나 알려줄까? 우리 에볼라 바이러스가 기후변화랑 관련 있다는 거. 과학자들이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우리가 활개친 시점의 기후를 분석해봤는데, 공통적으로 극심한 가뭄 끝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였다고 해****. 무슨 바이러스 주제에 ‘살인의 추억’도 아니고 폭우에 희열을 느끼냐고? 쯧쯧. 우리가 아니고 동물들이 희열을 느끼는 거란다. 극심한 가뭄이 들면 과일박쥐고 원숭이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움직임을 멈춰. 그러다가 폭우가 내리면 수많은 동물들이 일제히 과일나무로 몰리지. 서로 다른 종이 한 곳에 모인다는 건? 잇츠 파뤼 타임! 우리 같은 바이러스들에게 흔치 않은 축제의 시간이지.

먹고 살기 위해 점점 더 원시림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인들. 고기를 얻기 위해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사람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 교통의 발달과 도시화. 이런 문제 덕분에 우리 바이러스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 나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바이러스들이 곧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고 있어(두근두근).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내 친구들을 다음 장에 소개해 놓았어.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널 만나러 갈 수 있을까? 반갑게 맞아주길 바래.

- 기니에서, 에볼라가



제2의 에볼라는 누구? 과일박쥐는 알고 있다

이번 에볼라 쇼크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 는 과일박쥐(fruit bats)다. 미국 콜로라도주 립대 생물학과 데이비드 헤이만 교수와 뉴욕 시민환경연합 케빈 올리발 연구팀은 학술지 ‘바 이러스(Viruses)’ 4월 17일자에 “과일박쥐가 에볼 라 바이러스 보균자(reservoir)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침팬지와 고릴라, 원숭이도 에볼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데 왜 연구진은 과일박쥐를 지목했을까. 영 장류는 에볼라의 최종숙주(Dead-End-Hosts)에 가 깝다. 인간보다는 덜하지만 치사율이 높다. 반면 과일 박쥐는 거의 죽지 않는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발병하지 않고 다른 종에 옮기기만 하는 병원균 중간보유체다.

박쥐는 에볼라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마르 부르크, 헨드라, 매냉글, 니파, 사스 등 위험한 바이러 스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과일박쥐과(Pteropodidae )에 속한 44속 173종은 유독 영장류에게 전염력이 높다. 과일이라는 먹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헤이만 연구팀은 과일박쥐 무리가 새끼를 출산했을 때 특히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하는 과정에서 영장류와 자주 접촉하기 때문이다. 에볼라의 가까운 친척인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도 정확히 과일박쥐의 출산 주기(반 년)에 맞춰 증감했다. 더구나 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과일박쥐를 조리하지 않고 먹는 문화까지 있었다.

PLUS | 야생에서 대도시까지 바이러스도 세계화!
 
사향고양이
2002~2003년 8000명 넘게 감염돼 774명이 사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SARS)이 퍼지는 양상도 이번 에볼라와 매우 비슷했다. 사스는 원래 중국 광동성 밀림에 사는 야생 사향고양이가 숙주인데, 언젠가부터 이 고양이를 사람들이 잡기 시작한다. 2002년, 한 사냥꾼이 바이러스에 처음으로 감염된다. 사냥꾼을 치료하다 전염된 의사는 홍콩에서 미국인과 캐나다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다. 그렇게 밀림에서 전 세계로 순식간에 바이러스가 퍼진다. 잘 살펴보면 이번 사태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숲 속 깊숙이 살고 있는 야생동물과 접촉한 점, 교통의 발달로 환자가 다른 지역으로 빠르기 이동한 점. 과거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병에 걸려도 혼자 죽고 끝났다. 기껏해야 마을 하나에서 멈췄다. 이제는 야생 원시림에서 전 세계 대도시까지, 바이러스도 세계화가 됐다.
▶ '코피루왁'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사향고양이(Civet). 2002년 사스는 과일박쥐에서 전염된 야생사향고양이에서 시작됐다.



과일박쥐 분포도와 에볼라 바이러스 발생지 사이의 관계(WHO 2009)에볼라 혈청 발견 지역(노란색)과 발병 지역(빨간색), 동물 감염 지역(짙은 파란색)은 모두과일박쥐가 사는 범위 안에서 나타났다. 에볼라 혈청은 과거 이곳에 에볼라 감염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최근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기니, 나이지리아가 발병 지역으로 추가됐다.


박쥐 무리는 바이러스가 살기 좋은 다섯 가지 환경 을 모두 갖추고 있다. ❶ 종이 다양하다. 포유류 4600종 중 박쥐가 925종이다(약 20%). ❷ 많은 무리가 모여 산다. 한 동굴에 수백만 마리가 모여 살아 바이러스가 퍼지기 쉽다 ❸ 수명이 길다. 약 25년을 사는데, 작은 포유동물치고는 매우 긴 편이라 바이러스가 천수를 누릴 수 있다. ❹ 널리 퍼져 있다. 인간과 설치류를 제외하고는 가장 넓은 영역에 걸쳐 살고 있다. ❺ 늘 체액을 분출한다. 길을 찾기 위해 초음파를 내는데, 이때 코에서 바이러스를 담은 분비물이 나온다.

박쥐는 바이러스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안전한 걸까. 오랜 세월 동안 바이러스와 같이 살면서 면역력을 높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수의학과 찰스 캘리셔와 공동연구진은 과일박쥐가 신생대 에오세 초기(약 5200만 년 전)부터 여러 바이러스와 공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2006년 7월 미국 미생물학회지(ASM)에 발표한 논문에서 과일박쥐 몸에 살고 있는 바이러스 66가지를 분석한 결과, 과일박쥐 대부분이 이들 바이러스에 중화항체(항원이 가진 생물학적 활성을 차단하거나 중화시켜 병원균의 공격에서 세포를 직접 지켜준다. 백혈구가 체내에서 바이러스와 전면전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박쥐가 있는 곳에 바이러스가 늘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1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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