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 시작된 지 벌써 2년. 지구연 합 방위군은 그간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 스텔 스 전투기도, 항공모함도 무용지물이었다. 외계인의 막 강한 초대형 로봇 ‘데슬레이터(desolator; 방위군에선 이 로봇을 이렇게 불렀다)’ 때문이었다. 전선에 데슬레 이터만 등장하면 즉시 두 손 놓고 퇴각하는 수밖에 없 었다. 데슬레이터는 키가 30여 m에 달하는 초대형 로 봇이었다. 만화영화처럼 발사되는 두 팔은 물론 두 발 로 걸어 다녔고, 험준한 지형이나 작은 강, 웬만한 바리 케이드도 한 달음에 넘어섰다. 강력한 플라스마 빔을 내뿜어 방위군 기지를 초토화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 드는 전투기도, 최후의 수단으로 발사했던 핵미사일도 모두 요격해 버렸다.
불행 중 다행은 외계인도 이 정도의 고성능 무기는 여러 대를 만들기 어려웠는지 지구에는 단 한 대만 와 있었고, 한 번 맹활약을 펼치고 나면 3개월은 다시 찾 아보기 어려웠다. 수송선에 태워 달 뒤편 기지에서 점 검을 한다, 연료 보급을 위해 최후방으로 돌려보낸다, 등의 소문만 나돌았다.
3개월 안에 데슬레이터를 격퇴하라
“도대체 우리 보고 뭘 더 어쩌라는 겁니 까. 극초음속 미사일이나 초강력 지뢰를 만들어 봤 지만 다 쓸모가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 봤다고요.”
다혈질인 연민영 박사가 책상을 두들기며 말 했다. 밀리고 밀린 인류에게 남은 땅은 동북아시 아 지역뿐. 이곳마저 뚫린다면 더 이상 전세를 회복하 긴 불가능했다. 방위군은 한국에 본부가 있는 ‘아시아 방위기술연구부(AADD)’에 데슬레이터를 상대할 만한 신무기를 다음 번 출몰 전까지, 그러니까 늦어도 3개월 안에 반드시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전 더 이상 아무 생각도 안 떠오릅니다. 데슬레이터 가 무슨 파리 모기인 줄 압니까. 3개월 안에 때려잡으 라니요.” 연민영 박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파리나 모 기? 아 그래. 정말 그러면 되겠네. 인류에게는 아직 희 망이 있어.” 김전우 박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띠었다.
1만 마리 군집로봇 VS. 거대로봇 1대
3개월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 ‘쿵쿵’ 하며 땅 이 울렸다. 번쩍하며 섬광이 이는 듯 싶더니 공중에 떠 있던 아군 헬리콥터 한 대가 반 토막이 나 곤두박질쳤 다. 데슬레이터의 플라스마 빔이었다. 즉시 방위군의 미 사일 반격이 시작되면서 전선은 굉음으로 뒤덮였다.
“결국 왔군. 출동합시다.”
사령부의 준비 명령이 떨어지자 장갑차, 요격미사일 사이로 대형 트레일러 차량들이 잇따라 후진해 들어왔 다. 컨테이너 뚜껑을 열자, 날개가 달린 작은 새가 수없 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로봇 새였다. 병사 한 사람은 어 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제 우리 다 죽게 생겼구먼. 고작 이걸 가지고 저 로봇을 상대하겠다는 거야?”
그러나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전차장이 혀를 내두르 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이거 정말 기발한걸. 어 쩌면 우린 이 전쟁을 이길 수도 있을 거야.”
컨테이너 한 개에 들어있는 로봇 새는 대략 40대였 다. 방위군 사령부는 이런 컨테이너 300개를 준비했다. 모두 1만2000대의 로봇 새, 즉 드론(소형무인기)을 마련한 셈이다. 로봇 새는 가로 세로 50cm 남짓. 비행 가 능한 시간은 겨우 두 시간. 속도는 시속 50km도 되지 않았고 무게는 30kg 정도였다. 방위군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생산한 무인항공자폭기 ‘트러블후터’의 모습이었다.
드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장의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기 시작하자, 하늘을 올려다보던 현장 병사들은 경 악하기 시작했다. 드론 아래쪽에 붙어있는 선명한, 검고 노란 원형무늬 때문이었다. 외계인 침공 이전엔 ‘핵 배낭’이라고 부르던, 1960년대에 개발됐던 구닥다리 ‘특 수원자파괴탄’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비록 구식이지 만 파괴력은 2kt(킬로톤)에 달했다.
“일제 공격!”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트러블 후터는 시커멓게 데슬레이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전파 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움직이니 서로 충돌하는 일도 없 었고, 서너 대가 격추되면 높은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 던 예비 드론이 빈자리를 메우며 날아들었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이미 절반이 넘는 드론이 격추 됐다. 하지만 단 한 대가 데슬레이터의 다리 부분을 그 대로 들이받으며 맹렬한 핵폭발을 일으키자 전황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중심을 잃은 데슬레이터가 비 틀거렸고, 이 틈에 사방에서 달려든 드론들이 연달아 굉음을 내며 부딪치기 시작했다. 십수 분이 지나자 데 슬레이터는 땅 위로 나뒹굴었다. 뒤이어 달려든 방위군의 공격에 외계인 부대가 전선에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다.
“정말 턱없는 생각을 해냈네요.” 사령부에서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연민영 박사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 덕분에 지금까지와는 전쟁의 모습이 좀 달라지겠지.” 김전우 박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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