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국에서 가장 우울한 날은 지난 1월 넷째 월요일인 23일이었다. 반대로 가장 행복한 날은 오는 6월 넷째 금요일인 23일이다. 영국 카디프대 심리학 교수인 클리프 아놀 박사가 개발한 ‘우울지수 공식’에 따라 계산한 결과다. 이 공식에는 날씨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행복은 날씨 순일까.
행복은 날씨 순이잖아요
아놀 박사는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들을 변수로 삼아 사람들이 가장 우울해지는 날을 집어내는 공식을 만들었다.
그가 밝힌 우울지수 공식은 [W+(D-d)×TQ]÷(M×NA). 여기서 W는 날씨, D는 채무, d는 월급, T는 성탄절이 지난 날짜 수, Q는 새해 맹세를 깨고 지난 날짜 수, M은 동기 수준, NA는 행동의 필요성을 나타낸다.
아놀 박사에 따르면 영국 날씨는 12월 21일 이후로 낮 길이는 길어지는 반면 1월에는 비바람이 몰아쳐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식에서 날씨에 해당하는 변수(W)를 따로 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서 6~7일이 지나면 금연, 다이어트 같은 ‘올해의 맹세’를 깨고 셋째 주가 되면 냉장고를 싹싹 비워 버린다. 23일쯤 되면 휴일의 들뜬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연말에 긁은 신용카드 빚만 쌓인 현실에 직면한다.
반대로 6월에는 날씨가 좋아 야외활동과 사교모임이 빈번하고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감도 커서 행복해진다. ‘월요병’이 없는 금요일은 행복감이 가중된다.
실제로 영국인의 3분의 1은 계절성 증후군(SAD)으로 불리는 겨울철 우울증을 앓고, 10명 중 9명은 겨울철에 더 자고 더 먹는다고 한다. 겨우내 짙은 구름에 덮인 모스크바에도 ‘극지방 히스테리’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반면 낮 길이가 길고 1년내내 해가 쨍쨍 내리쬐는 적도 남북 30도 범위의 지역에서는 계절성 우울증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3, 4월에 범죄 발생률이 높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 지중해를 지나면서 고온다습해져 불쾌지수가 매우 높아지고, 이에 따라 충동적인 범죄 발생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날씨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기상학자인 로센 박사는 깡마르거나 뚱뚱한 사람, 수줍음이 많고 감성이 풍부하거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날씨에 민감하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균형잡힌 체격의 중산층 남자들,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인 사람들은 날씨 변화에 무디다고 한다.
미니스커트 입을까, 말까
“오늘 최저기온은 0℃로 미니스커트를 입을 경우 체감온도는 영하 2℃로 떨어집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천식과 같은 호흡기질환의 발병률도 높으니 청바지를 입어 체감온도를 4℃ 정도로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기상청이 한국인의 ‘행복 챙기기’에 나섰다. 지난 3월 1일부터 산업기상정보허브(www.industry.kma.go.kr)를 새롭게 단장하고 천식, 뇌졸중, 피부질환, 폐질환 등 날씨와 상관관계가 높은 질병에 대해 건강예보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상청 기상산업진흥과 김용범 주무관은 “‘오늘의 날씨’에서 나의 건강상태에 맞춘 ‘내 날씨’로 맞춤형 날씨 정보를 예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보건기상정보는 사흘 단위로 매일 두 차례(새벽 3시, 오후 3시) 발표한다. 입원발생률을 기준으로 50% 이내면 보통(초록)으로, 50~85%는 주의(노랑)로, 85% 이상이면 위험(적색)의 3등급으로 나타낸다.
예를 들어 3월 17일 현재 천식은 전국적으로 발병확률이 높은 위험 단계로, 뇌졸중은 서울, 경기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위험한 것으로, 피부질환은 전국적으로 보통 단계로 나타난다.
김용범 주무관은 “흔히 뇌졸중은 겨울에 제일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 같은 봄에도 일교차가 커 발병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예측 모델을 개발한 인제대 환경공학과 박종길 교수는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하지만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모델 ”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팀은 의사, 환경학자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기상과 관련된 한국인의 10대 질병을 선정했다. 암과 같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질병이지만 기상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작은 질병은 제외했다.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1일 환자 등록수 통계자료를 넘겨받아 기온, 습도, 오존농도, 황사 등을 종합한 관측 자료를 대입해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박 교수는 “1994년 여름에 무더위로 한국에서 사망자가 180명이나 발생했을 때 이 중 40%는 뇌졸중 같은 순환기질환이었다”며 뇌졸중을 비롯한 4개 질환의 지수를 우선적으로 개발한 이유를 설명했다.
산업기상정보허브에서는 농업, 건설, 레저 등 8개 산업 분야에 대해서도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강수량이 없고 풍속이 5m/s 미만이면 농약을 살포하기 좋다, 맑고 풍속이 4~7m/s이면 오징어가 잘 마른다, 평균기온이 10~21℃이므로 오늘 하루는 우유를 27kg 짤 수 있겠다’는 식으로 구체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준다. 산업에서는 날씨가 곧 ‘돈’이기 때문이다.
날씨는 돈, 돈, 돈
한국도로공사는 기상정보시스템을 설치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데 활용해 3억원 가량을 절감했다. 롯데월드는 기상측정시설을 설치해 시간대별로 기온, 강수 등을 점검하며 냉동기 가동시간, 조명과 수영장 온도 등을 조절해 19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얻었다. 건국대 지리학과 이승호 교수는 “날씨 예보 서비스가 점점 전문화, 세밀화 되고 있는 추세”라며 “과거에는 ‘비가 오냐, 안 오냐’였지만 지금은 ‘몇 월, 몇 일, 몇 시, 어디에 내릴지’ 콕 찍어 예보해주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적과 나의 실정을 알고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손자는 지형과 기상을 알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최선의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이제 날씨는 싸움의 승패를 넘어 인간의 행복을 ‘간섭’하고 있다. 천기(天氣)를 누설하고 행복을 찾을 준비가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