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유명한 반려견 행동 전문가가 강아지는 매일 산책을 시켜야 한다고 조언하더라고요. 산책을 못 할 바에야 강아지를 키우지 말라고요. 저는 강아지와 여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요. 우리집 강아지는 겁이 너무 많아서 산책을 시킬 수가 없거든요. 바람이 불어도, 나뭇잎이 굴러가도, 차가 지나가도, 멀리서 사람이나 강아지가 지나가도 얼어붙어요.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아서 결국 15kg이나 나가는 녀석을 안아들고 가야 하죠. 심지어 버스정류장 대형 광고판에 있는 사람 사진만 봐도 가까이 못 가요. 간식으로 겨우 달래서 광고판 근처까지 가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는 불안장애(anxiety disorder)의 한 가지로 불안상태가 지속되는 질병이다. 강아지에게 범불안장애가 생기면 심장 박동이 빠르게 증가하고 호흡이 빨라지며, 몸을 떨거나 땀을 흘리고, 배변이나 배뇨에 어려움을 겪으며 근육이 긴장될 수 있다. 숨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보이고, 심해지면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작은 일에도 매번 짖으면 범불안장애
범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물은 평상시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자다가도 작은 소리에 깜짝 놀라서 깨기도 하고, 오랫동안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겁이 많고 예민해 낯선 사람이 주는 간식은 먹지 않는다.
범불안장애를 앓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무엇보다도 과도하게 짖는 행동이다.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짖고, 사람이 움직여도 짖고, 벨을 눌러도 짖는다. 손님이 와도 짖고, 길에서 사람이나 개를 만나도 짖는다. 조금이라도 환경의 변화가 있으면 짖는다.
범불안장애가 있는 강아지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우선 이 세상 모든 강아지가 산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불안 증상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산책을 하지 않고 집에서 놀이운동을 해주는 편이 오히려 좋다.
그리고 증상이 나아져 산책을 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강아지가 예측 가능한 패턴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매일 같은 시간, 동일한 경로로 가능한 조용한 환경에서 산책하는 것이다.
집에서는 소리가 차단되는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백색소음을 틀어주거나, 조용한 클래식을 들려주는 것도 좋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반응하고 짖는다면 창문을 항상 닫아두고 창문 근처에 백색소음이나 클래식을 틀어준다.
집에 손님이 방문한 경우에는 강아지가 방에서 혼자 간식을 먹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간혹 분리불안증이 있어 가족과 떨어져 혼자 방에 있지 못하는 강아지라면 손님이 강아지를 쳐다보거나 만지지 않게끔 해야 한다.
신경전달물질 균형 맞추는 약물 치료
다행히 범불안장애는 치료할 수 있다. 심각한 불안장애는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이나 불균형으로 나타나는 증상인 만큼 약물치료가 중요하다. 그리고 무섭지 않을 정도의 작은 자극을 조금씩 경험하게 하는 행동치료도 도움이 된다.
오늘 한 반려견 보호자에게서 e메일을 받았다. 그는 범불안장애를 겪는 강아지를 3년째 치료해도 효과가 없어 필자가 근무하는 UC데이비스대 대학병원으로 데려왔던 사람이었다. 보호자는 환경적 관리는 너무 잘하고 있었지만, 동일한 약을 3년째 먹이고 있었다. 일단 다른 약으로 바꾸기 전에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의 용량을 늘렸다.
그랬더니 4주 뒤 이 강아지는 전혀 새로운 강아지가 됐다. 보호자는 강아지가 이제는 세상을 덜 무서워하고 조용한 동네에서는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됐다며 e메일에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불안장애를 치료하는 약물은 다양하지만, 사실 어떤 약이 이 강아지에게 가장 효과가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적합한 약물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동물도 마음이 편안해야 세상이 살 만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