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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미라가 알려주는 조선 양반 사망 사건의 전말

* 편집자주
조선시대 김 씨와 정 씨 부인의 이야기는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공동연구팀의 미라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가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643년 인조 21년, 경북 청도군에 사는 양반인 60대 남성 김 씨는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잠에서 깼다. 누군가 멱살을 잡은 듯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지 꽤 오래됐다. 얼마 전부터는 숨을 쉴 때마다 기침이 났다. 눈알이 빠질 것처럼 기침을 하고 나면 피 섞인 가래가 나왔다.

 

오늘 아침에도 벌써 세 차례나 그랬다. 하나뿐인 아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들여다봤다. 보름 전, 아버지를 생각해 직접 강가로 나가 잡아온 가재를 곱게 갈아 보약으로 지어먹인 뒤부터 아버지 건강이 안좋은 것 같다. 이 고통은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밤새 힘들어하던 김 씨는 피가 엉겨 붙은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 숨과 함께 가쁘게 삼켰다.

 

한편 산 넘고 물 건너 경남 하동. 여기에는 명문가인 정 씨 가문이 있었다. 훌륭한 조상도 많고 재물도 많아 남부러울 게 없는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웃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였다. 둘째 아이를 가진 30대 부인이 시름시름 앓으며 피를 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 씨는 첫째 아이를 낳고 기력이 쇠했던 부인을 위해 당대 최고급 보약이라는 민물가재 즙을 두 번이나 먹였지만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늘 아침 정 씨 부인은 아이를 세상에 꺼내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두 가문은 마을에서 가장 잘 나가던 집안이었다. 그래서 집안 유족들은 김 씨와 정 씨 부인의 장례에 매우 신경을 썼다. 시신에게 빳빳하게 다린 흰 옷을 입히고, 회반죽으로 네모반듯하게 빚은 관에 넣었다. 그리고 김 씨의 장죽과 책 여러 권, 옷가지들, 정 씨 부인이 직접 꽃과 나비를 수놓은 저고리와 화첩 등 본인들이 살아 있을 때 가장 소중하게 여긴 물건들을 담았다.

 

먼 길을 떠나는데 혹시나 들짐승이 방해라도 할까봐, 역시 회반죽으로 빚은 뚜껑으로 관을 닫았다. 개미새끼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빈틈없이 만들었다. 가족들은 울음과 함께 관을 땅에 묻었다.

 

370년이 훌쩍 넘은 최근, 한국 과학자들은 김씨와 정 씨 부인이 어떤 병을 앓았는지 밝혀냈다. 그리고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새로운 사실도 최초로 밝혔다. 김 씨와 정 씨 부인이 장기가 온전히 보존된 미라로 발견된 덕분이다.

 

 

기생충으로 질병 추적


국내에서 미라를 연구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였다.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미라가 발견됐는데, 대개는 출토복식 전문가들이 미라가 입고 있는 옷이나, 시신이 흔들리지 않게 관 속을 가득 채운 옷가지들을 복원하고 분석해 당시 의복 문화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래서 미라가 주로 발견되는 조선시대 중기(16~18세기) 조선시대 복식사는 사실상 완성 단계다.

 

국내에서 발견되는 미라는 특히 의학 연구용으로 가치가 높다. 고대 이집트 미라는 수천 년 전에 만들어져 문화적인 가치는 훨씬 높지만 인위적으로 방부 처리를 했다는 한계가 있다. 시신이 썩지 않게 장기를 바깥으로 꺼내고 몸의 안팎을 알코올과 천연소금으로 소독했다. 미라가 생존하던 당시 환경을 추적할 단서가 없다. 반면 국내 미라는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져 모든 장기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면 살아 있을 때 건강 상태와 사망 원인 등을 추정할 수 있다.

 

 

 

신동훈 서울대 의대 생물인류학및고병리연구실 교수는 2003년부터 미라를 의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묘에서 갓 발굴한 미라를 컴퓨터단층촬영(CT)하면 내부 장기까지 확인할 수 있다. 신 교수는 “미라의 장기는 수분이 하나도 없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이며, 시신이 수백 년간 누워있었기 때문에 등 쪽이 눌어붙어 있다”며 “하지만 놀랍게도 심장과 간, 장, 심지어 뇌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라를 3차원으로 촬영하는 기술이 발달해 내부 장기는 물론, 살아 있을 때 얼굴도 복원이 가능해졌다. 이를 활용해 김 씨와 정 씨 부인의 미라를 조사하자 내부 장기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게 발견됐다. 하지만 사망 원인을 추정하려면 이보다 구체적인 단서가 필요하다.

 

장기 내에 남아 있는 유기물을 추출하면 여러가지를 밝힐 수 있다. 신 교수는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와 손을 잡았다. 미라의 장에 남아 있는 분변이나, 농양(고름덩어리)에서 기생충 알을 찾으면 기생충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시신의 DNA는 추출 과정에서 쉽게 오염되는 반면 기생충 알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꺼낼 수 있다. 기생충 알껍데기 표면이 단단한 키틴질로 이뤄져있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미경으로 알의 형태를 관찰하거나 알에 남아있는 유전정보를 분석하면 어떤 기생충에 감염됐는지, 감염 정도는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알 안에 들어 있는 기생충 유충은 이미 죽고 없어졌기 때문에 감염 위험은 없다.

 

 

폐, 간, 근육에서 폐디스토마 알 발견


연구팀은 청도에서 발굴한 김 씨 미라와, 하동에서 발굴한 정 씨 부인 미라를 조사한 결과 두 사람 모두 폐디스토마(Paragonimus westermani·폐흡충)에 감염된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정 씨 부인 미라에서는 알이 수천 개나 발견돼, 폐디스토마 감염이 사망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 폐디스토마는 대개 5~10마리만 감염돼도 기침이나 가래, 기관지염 등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폐디스토마가 발견된 장소도 특이했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지금까지 폐디스토마는 폐에만 기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소화기관에 살면서 대변을 통해 알을 퍼뜨리는 다른 기생충과 달리, 폐디스토마는 기침과 가래를 통해 알을 퍼뜨린다. 서민 교수는 “폐디스토마는 원래 폐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며 “그래서 폐디스토마 알은 미라의 분변보다는 폐 속 농양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연구팀이 미라에서 폐디스토마 알을 찾은 곳은 폐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메바에 감염된 흔적이라고 생각했던 청도 미라의 간농양에서 폐디스토마 알이 잔뜩 발견됐다. 하동 임신부 미라에서는 이 알이 폐와 간뿐 아니라 장과 대변에서도 발견됐다. 폐디스토마가 폐가 아닌 다른 장기로 옮겨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서 교수는 “간농양에서 폐디스토마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내용을 ‘미국기생충학회지’ 8월호에 발표했다(doi:10.1645/16-63).

 

폐디스토마는 어떻게 다른 장기까지 침투했을까. 서 교수는 “개체수가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폐를 찾아가던 도중, 길을 잃고 간이나 장 같은 다른 장기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 하동 임신부 미라의 경우 가래를 뱉지 못할 만큼 상태가 심각해, 피 섞인 가래를 뱉지 않고 삼켜 기생충 알이 소화기관에 쌓였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민물가재 보양식이 감염 원인


폐디스토마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2억3380명이 감염돼 있을 만큼 흔한 기생충이다. 연구팀이 지금까지 조선시대 미라 25구를 조사한 결과 당시 폐디스토마 감염률이 약 27.8%로 꽤 높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 교수는 “폐디스토마는 깨끗한 민물에 살고 있는 가재나 게, 새우가 중간숙주”라며 “김 씨와 정씨 부인은 민물갑각류를 날것으로 먹고 폐디스토마에 감염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팀은 조선시대 식문화와 민간요법이 적힌 문헌을 그 근거로 들었다. 농촌에서 필요한 생활비법을 묶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는 민물 게로 게장을 담그는 조리법이 쓰여 있다. 특히 ‘증보산림경제’에는 민물 게를 소금물과 간장에 담근 지 5~6일 뒤에 꺼내라고 적혀 있다. 이대로 민물 게장을 만든다면 폐디스토마에 감염될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

 

 

또한 조선 후기 의학책인 ‘의휘(宜彙)’에는 홍역에 대한 치료법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의학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인후통 치료법으로 민물가재를 생으로 갈아 즙을 내어 먹는 방법을 추천했다.

 

연구팀은 이외에도 간디스토마나 참굴큰입흡충 등에 감염되는 원인인 민물어패류도 당시 날 것으로 먹었다는 기록을 여러 문헌에서 찾았다. 즉 익히지 않은 수산물을 즐겨먹는 식문화가 당시 기생충 감염률을 높이는 데 일조한 셈이다.

 

비위생적인 식문화도 기생충 감염 위험을 높였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2012년 경복궁 담장과,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종묘 광장 아래에 묻혀 있는 14~19세기 지층의 토양을 추출했다. 그리고 흙에서 회충과 편충, 간디스토마 등 기생충 알을 발견했다. 특히 경복궁 담장 아래에서는 흙 1g당 최대 165개까지 발견됐다.

 

서 교수는 “채소를 키우는 데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거나, 15~17세기 인구가 급증하면서 분뇨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민물 갑각류 등 날 음식을 섭취하지 않더라도 흙에 섞인 기생충에 쉽게 감염될 수 있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미라 기생충 알면 현대 기생충 보인다


2003년부터 연구팀이 조사한 미라는 총 25구다. 연구팀은 이들 미라에서 얻은 기생충의 유전정보 데이터를 축적해 감염 예방이나 치료법을 찾는 데 활용하고 있다.

 

 

결핵균을 예로 들어 보자. 결핵치료제는 1950년대 처음 개발됐는데, 이후 약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이 나타났다. 반면 수백 년 된 미라에는 약에 대한 내성이 없는 ‘순수한’ 결핵균만 남아 있다. 서 교수는 “결핵치료제가 개발되기 훨씬 전의 순수한 결핵균과 지금의 결핵균 DNA를 비교 분석해 결핵균이 약제를 견뎌내며 진화한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현재 폐디스토마, 간디스토마, 편충, 회충, 요코가와흡충, 참굴큰입흡충 등 기생충 9종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서 교수는 “십이지장에 사는 구충은 알의 껍질이 얇아 미라에서 단 한 차례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조선시대 조상들의 질병은 상당 부분 밝혀냈다”며 “앞으로 다른 나라의 미라 연구 사례와 비교해 전 세계적으로 기생충과 전염병이 어떻게 전파됐는지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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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기타

    [일러스트] 정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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