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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혼례에는 신랑신부와 같이 등장하는 새 한쌍이 있다. 나무로 조각한 원앙이나 기러기 쌍이다. 신랑 들러리는 이 조각을 들고 신랑신부 앞에 서서 입장한다. 친정 엄마는 시집가는 딸에게 원앙을 수놓은 이불과 베개를 주는데 원앙금침이라 한다. 새 출발을 하는 신랑신부에게 원앙과 같이 살라고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원앙의 짝짓기 행동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선조들이 원앙을 결혼의 상징으로 결정했을지 모르겠다.
새들은 주로 일부일처다. 포유류는 약 3% 정도만 일부일처제지만, 새는 약 90%가 일부일처제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자식이 같은 부모의 소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적 일부일처제와 유전적 일부일처제는 다르다. 사회적 일부일처제는 암컷과 수컷이 같이 살고, 육아를 공동으로 한다. 우리 인간으로 비유하면 결혼이다.
그러나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유전적 일부일처제는 아니다. 둘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암컷이 바람을 피워 현재의 짝이 아닌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고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새의 약 90% 정도에서 이런 ‘짝외교미’ 현상이 나타난다.
최대한 많은 정자를 확보하라
짝외교미, 더 나아가 ‘일처다부’는 진화생물학의 큰 수수께끼다. 보통 수컷은 여러 마리의 암컷과 교미를 할 때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암컷이 가지고 있는 난자의 수는 한정적이다. 한 마리의 수컷이 가지고 있는 정자만으로도 모든 난자를 수정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를 한다고 반드시 번식성공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더욱이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하는 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성병과 같은 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다. 또 짝외교미가 들통날 경우 현재의 짝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암컷은 짝외교미를 시도할까.
짝외교미 또는 일처다부의 이익은 크게 물질적 이익과 유전적 이익으로 나눈다. 배추흰나비는 교미할 때 수컷이 ‘정포’를 암컷에게 전달한다. 정포는 거의 대부분이 영양물질이며, 여기에 정자가 붙어 있다. 암컷이 정포를 먹는 동안에 수정이 일어난다. 정포가 수컷 몸무게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큰 경우도 있다. 암컷은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할 일처다부제는 영아살해를 방지하는 데도 쓰인다. 인도의 랑구르원숭이는 종종 영아살해를 저지르는데, 보통 근처의 수컷들이 암컷과 교미를 목적으로 영아를 살해한다. 새끼의 사망은 암컷에게 큰 손실이다. 암컷은 이를 막기 위해 근처의 수컷과 모두 교미를 한다. 그러면 근처의 수컷은 모두 암컷 새끼의 아비일 가능성이 있다. 부성불확실성을 암컷에게 유리하게 이용해 영아살해를 방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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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랑구르원숭이 암컷은 영아살해를 막기 위해 근처의 수컷과 모두 교미한다.
암컷의 선택은 진화의 원동력
최근에는 물질적인 이익보다 일처다부제의 유전적 이익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교미할 때 정자 외에는 아무런 물질적 제공이 없음에도 암컷은 특정 수컷을 선택한다. 또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도 암컷은 짝외교미를 찾는다. 이런 행동은 암컷이 좋은 유전자를 찾을 수 있게 한다.
일처다부제의 유전적 이익에도 다산보증 가설, 유전적호환 가설, 좋은 유전자 가설 등이 있다. 암컷이 제공하는 난자는 만들기 비싸고 수도 적은 만큼, 불임이거나 정자가 충분하지 않은 수컷과 교미하면 암컷은 큰 손해를 본다. 그래서 암컷은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해 모든 난자가 수정되게 한다. 이것이 ‘다산보증 가설’이다. ‘유전적호환’은 특정 수컷의 DNA와 특정 암컷의 DNA가 잘 호환돼 자손들의 면역력이나 발현이 좋아지므로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해 이런 특정한 DNA를 만날 확률을 높인다는 가설이다.
암컷이 일처다부제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양질의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자식의 생존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유전자 가설’이다. 남미에 사는 노랑이빨기니피 그를 관찰한 결과 암컷이 제한 없이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할 때 자식이 조산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생존하는 개체수도 늘어났다. 이는 암컷의 일처다부제가 자식의 성선택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성선택을 처음 주장한 찰스 다윈 이래 암컷의 역할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싸움이나 경쟁같은 수컷의 행동과 달리 암컷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선택은 오랫동안 연구하기 어려웠다. 암컷의 성선택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80년대에도 암컷이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이유를 정확히 잘 몰랐다. 그러나 분자유전학 기술을 도입하면서 암컷의 선택과 일처다부제의 유전적 측면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암컷은 단순히 경쟁에서 이긴 수컷이 받는 트로피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양질의 유전자를 선택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실제로 암컷의 선택은 수컷의 화려하고 뚜렷한 짝짓기 형질의 발현, 다양한 짝짓기 전략, 심지어 새로운 종으로의 분화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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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수컷새는 진짜 자기 자식을 먹여 살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