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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짓말이다.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고 해서 원망하지는 말자.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자녀차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얻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엄마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뿐.

누가 번식 가치가 높지?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차별하는 건 포괄적합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포괄적합도는 영국의 진화심
리학자인 윌리엄 해밀턴이 1960년대 발표한 개념으로 자연 선택에 유전적 근연도라는 개념을 추가해 설명한다. 부모는 단순히 자손을 생산하는 행위를 넘어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유리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울수록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해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판 모르는 남보다 가족을 더 아끼는 게 당연하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전적 근연도는 50%다. 형제자매끼리도 50%다. 조부모와 손자손녀는 25%다. 가족 또는 가까운 친척이 번성할수록 자기 유전자가 널리 퍼질 확률이 높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은 자기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족을 돕도록 진화해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수학 공식처럼 적용할 수는 없다.

자녀는 50%고 조카는 25%라고 해서 조카보다 자녀에게 2배 더 잘해 준다고 할 수 없다. 유전적 근연도 외에도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자녀끼리도 마찬가지다. 자녀와 부모의 유전적 근연도는 모두 50%지만, 성별, 출생 순서, 건강, 성격 등 유전자를 퍼뜨리는 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부모로서는 한정된 자원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보다는 이런 ‘번식 가치’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 여러 자녀 중에서 내 유전자를 후세에 더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자녀를 더 아낀다는 게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다.

예를 들면, 건강하고 인기가 좋은 아이는 성장해서도 배우자를 만나 자손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번식 가치가 높은 것이다. 같은 자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선천적으로 질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는 무사히 자라서 자손을 퍼뜨릴 가능성이 더 낮다. 실제로 부모가 선천적으로 이상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를 홀대하는 비율은 정상적인 아이를 홀대하는 비율보다 높다.



또한, 번식 가치는 아이의 나이가 많을수록 높다. 7살짜리 아이와 3살짜리 아이가 있을 때 앞으로 성공적으로 성인이 돼 번식에 성공할 확률은 7살짜리 아이가 높다. 3살짜리 아이는 4년을 더 투자해야 현재 7살짜리 아이만큼의 번식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엄마가 모든 아이에게 먹을 것을 똑같이 나눠 줬다고 생각해 보자. 7살짜리는 5살짜리보다 성장하는 데 필요한 양이 더 많다. 똑같은 양의 음식이 5살짜리에게는 충분해도 7살짜리에게는 부족할 수 있다. 5살짜리 아이는 적은 양으로도 필요량을 충족시킬 수 있어 오히려 똑같은 자원으로 얻을 수 있는 효율이 더 크다. 진화심리학자 프랭크 설로웨이는 자녀가 2명 있을 때 엄마는 자원을 똑같이 배분하지만 3명 이상이면 V자 형태로 배분한다고 주장했다. 번식 가치는 맏이일수록 크고 작은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도는 막내일수록 크기 때문에 중간에 낀 아이가 가장 적은 자원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전 교수의 이론은 다르다. 전 교수는 2008년 ‘행동생태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모델링을 통해 나이 차가 나는 자녀에게 부모가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는지 연구했다. 논문에 따르면 설로웨이의 주장과 달리 부모는 항상 나이가 더 많은 아이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한다. 같은 양의 자원을 줬을 때 생존률은 더 어린 아이가 높았음에도, 부모는 나이가 더 많은 아이에게 자원을 배분하고 싶어했다. 나이 차이가 클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했다.
 

투자 효율을 높여라

효율적인 활용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건강한 아이보다는 허약한 아이에게 자원을 투자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같은 자원으로 생존률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통 엄마가 얼마나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원이 부족한 엄마는 허약한 아이에게 투자를 덜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원이 풍족한 엄마는 반대다. 허약한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한다고 해도 남는 자원으로 충분히 다른 아이를 보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모가 가진 자원 또한 어떤 자녀를 선호하는지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와 댄 윌러드는 부모의 자원에 따라 선호하는 성별이 달라진다는 트리버스-윌러드 가설을 제안했다.

남녀의 수가 비슷하고 일부일처제가 확립된 곳에서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남자와 여자 모두 자손을 생산할 확률이 비슷하다. 그런데 부모의 자원이 풍족할 때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은 자손을 만들 수 있다. 과거에는 남자가 돈 많고 능력이 있으면 여러 여자를 아내로 맞아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여자는 아무리 자원이 풍족해도 평생 낳을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남자는 식구를 부양할 자원이 부족하면 결혼해 아이를 갖기가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여자는 눈만 낮추면 어떻게든 결혼하기 쉽다. 따라서 부모는 형편이 좋을 때는 아들에게, 형편이 나쁠 때는 딸에게 투자하는 경향이 생긴다.
 

[농경 사회에서 비롯된 남아선호 사상은 ‘집안에 제사를 모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믿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아들 선호 사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때로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도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지 않는가. 이것은 뿌리 깊은 문화의 탓일까. 전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먼저 그 문화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지켜야 할 게 많아지고 남자들의 연합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농장을 이어받을 아들의 중요성이 커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들 선호 사상도 예전 같지는 않다. 요즘에는 딸을 지극히 아끼는 아빠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을 가리켜 부르는 ‘딸 바보’라는 별명도 생겼다. 전 교수는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남자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여자를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 부모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하는 “딸 둘이면 금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은메달, 아들 둘이면 목매달”이라는 농담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 애가 정말 내 앨까?

부모가 자녀를 차별하는 이유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더 있다. 자녀를 부모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해 주는 존재로 보고 그 일을 더 잘 수행할 자녀를 편애한다면 그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자기가 돌보고 있는 자녀가 진짜 자기 자녀냐는 것이다. 뚱딴지같은 소리지만 실제로 인간 세상이나 자연에는 다른 이의 자녀를 자기 자녀로 알고 기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것은 엄마보다는 아빠의 문제다. 엄마는 자녀를 직접 낳기 때문에 자기 자녀라는 점을 확신한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낳은 자녀일 가능성이 엄연히 있다. 어떤 경우에도 엄마와 자녀와의 유전적 근연도는 50%지만, 아빠는 까딱하다가 유전적 근연도가 0%인 아이를 먹여 살리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를 ‘부성불확실성의 문제’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보통 아빠보다는 엄마가 자녀를 더 많이 아끼고 보살핀다는 사실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아빠는 자신과 닮은 아이를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외모는 아이가 자기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유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근거로 들어 설명했다.

“남녀에게 여러 아기 사진을 보여주고 뇌에서 친밀감을 느끼는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남자는 자기와 닮은 아기 사진을 봤을 때 뇌가 더 활성화됐지요. 하지만, 여자는 아기의 외모에 상관없이 활성화됐습니다.”

한편, 부모는 자녀를 기르는 데 투자하는 자원과 그 자원으로 대신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놓고 저울질하기도 한다. 아이를 기르는 데 들어가는 자원을 새로운 짝짓기에 들이는 게 더 유리하면 아이를 방조하거나 심지어는 살해하기도 한다. 젊은 미혼모가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그런 예다. 당장 아이를 기르는 데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그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면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미래의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자녀로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에게 밀려버린 셈이다. 반대로 나이가 많아 아이를 낳아 기를 기회가 적은 여자는 아이를 낳는 일을 미루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딸 바보’로 불리는 미국의 영화배우 톰 크루즈. 최근 인터넷에서는 이렇게 딸을 지극히 여기는 유명인이 ‘딸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둘 중에서 어떤 상황을 편애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같은 양의 밥을 준 것이나, 나이에 맞게 밥을 준 것이나 모두 어떤 면에서는 공평하다고
부를 수 있다. 이처럼 편애를 규정하기는 매우 애매하다.]

쉿! 그건 절대 비밀

이렇게 부모가 자녀를 편애한다는 사실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일단 전 교수는 “편애를 규정하기가 너무 애매하다”고 밝혔다. 3살짜리 아이와 5살짜리 아이에게 먹을 것을 다르게 주는 건 편애일까. 모두 똑같이 줘야 할까. 5살짜리 아이가 3살 때 먹었던 것과 똑같은 양을 지금 3살짜리 동생에게 주면 공평한 걸까. 아니면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제공한 자원의 총량이 모두 똑같다면 공평한 걸까.

자신이 사랑을 덜 받았다고 느낀 자녀는 우울증이나 낮은 자존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편애를 받은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자기 때문에 사랑을 덜 받은 형제나 자매에 대해 죄책감도 느낀다. 물론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자라면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서운한 기억을 잊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이 최선일까?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편애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지난해 자녀 차별에 대한 연구를 다룬 저서 ‘형제자매 효과(The Sibling Effect)’를 발표한 저널리스트 제프리 클루거는 “자녀 차별의 영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부모가 자녀를 차별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한다’는 말은 선의의 거짓말일지언정 그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괜히 엄마에게 “한 명만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랑 형(혹은 언니? 오빠? 등등)이랑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야?” 따위의 곤란한 질문은 하지 말자. 어떤 진실은 모르고 있어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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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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