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도 외국대학 실험실로 연수 가는 연세대
해외인턴십 덕분에 세계로 눈 돌렸지요
TIP 해외 인턴십
방학을 이용해 미국, 일본 등 해외 유명대학의 실험실에서 현지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다.
학부생이 국내에서 이 같은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다.
“여성 공대생을 해외로 보내는 인턴십 프로그램 덕분에 세계로 눈을 돌릴 수 있었어요. 제 인생을 경영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고 온 느낌입니다.”
3월 초,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에서 만난 이 대학 화학공학과 3학년 곽혜린 씨에게선 어린 나이답지 않은 자신감이 묻어났다.
곽 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2007년과 지난해, 모두 2차례 인턴십을 이수했다. 연세대가 마련한 이 프로그램은 공대 학부에 재학 중인 여학생을 외국 유수대학에 보내 연구실 체험을 하도록 지원한다. 방학 기간에 진행되며, 인턴십 기간은 보통 두 달이다.
인턴십 모집 공고가 나자 그는 서슴없이 지원서를 냈다. 학부생이 외국대학 실험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치열한 면접 평가를 거쳐 합격한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개인과제가 주어졌다. 인턴십 기간 내내 그는 해당 연구실의 ‘연구원’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곽 씨가 일한 연구실에선 크리스털을 활용해 알츠하이머(치매)를 유발하는 독소를 감지하는 센서를 만들고 있었다. “연구원들과 함께 매일 실험을 했어요.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좋은 기회를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물질이 실용화되면 알츠하이머 발병 여부를 조기에 알 수 있다. 지난 삶이 머리에서 송두리째 사라지기 전에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곽 씨는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 분야의 가치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곽 씨가 인턴십을 두 번이나 다녀온 것도 첫 번째 인턴십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낸 덕택이다. 열정적으로 학업에 매진하는 그의 태도에 감탄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측이 교육비용 일체를 대겠다며 곽 씨를 다시 초청한 것이다.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번 기회를 바탕 삼아 앞으로 다양한 진로를 모색해 볼 생각입니다.”
이 대학 WIE 사업단에 있는 전기전자공학과 최정윤 교수는 곽 씨처럼 자기 진로를 스스로 헤쳐가려는 여성 공대생의 ‘역할 모델’이다. 최 교수는 음성인식 컴퓨터 연구의 권위자로 꼽힌다. 오늘의 그를 만든 건 바로 자신감이다.
“여자라서 공대에서 생활하기에 어려운 점이 없었냐고요? 물론 없진 않았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에 얽매이느냐 얽매이지 않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사와 석사과정을 국내에서 보내면서 제가 조장도 하고 남성보다 나은 성과를 낸 적도 수없이 많아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손해보지 않을까’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최 교수는 1999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5년간 현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면서 ‘단단한’ 공학인이 됐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능력 있는 한 사람의 공학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곽혜린 학생처럼 좋아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주위 조건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이 바뀌는 게 더 현명한 선택입니다.”
수업에서 자신감 키워주는 성균관대
성인지 수업 덕에 진짜 공대생 됐죠
TIP 성인지 수업
성균관대에선 여성 공대생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수업을 진행하는 데 주력한다. 주로 정규과목에 성인지 수업을 도입해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 성인지 수업에선 ‘조장은 남학생이 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은 인정되지 않는다.
“공대에는 팀 과제가 많아요. 몇 명의 수강생이 모인 뒤 각자 역할을 배분해야 하죠. 그런데 예전에 저는 정리나 검토 작업을 주로 맡았던 것 같아요. 과제의 핵심이 아닌 일이었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제 자신부터 중요한 일은 남학생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성인지 수업을 듣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과 3학년 임다예슬 씨는 성인지(性認知) 수업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전의 자신이 ‘공대 여학우’였다면 이젠 ‘공대생’이 됐다는 얘기였다.
이 학교 건축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수미 씨도 성인지 수업 예찬론자다. 이 씨는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는 공대에 지원한 선택을 한때는 후회하기도 했지만 성인지 수업을 만나고선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당당한 여성 공학인으로 만든 성인지 수업의 핵심은 여성을 남성과 같은 반열의 동료로 만드는 것이다. 여자 공대생들에게서 ‘여자라서 난 못한다’는 의식을 걷어내는 것이 이 수업의 우선적인 목표다. 공대에서 개설한 정규과목 중 15개에 성인지 수업을 적용한 성균관대에선 ‘듣기 정말 잘 했다’는 호평이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공학컴퓨터 프로그래밍이란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으레 있기 마련인 남학생 중심의 수업 분위기를 느낄 수 없더라고요. 보통 공대 수업에서 조장은 남자가 맡거든요. 자연스럽게 여학생들은 소외되는 일이 많죠. 하지만 이 수업에선 교수님이 조를 구성할 때 성비를 적절히 조절해 주셔서 남녀가 모두 적극적으로 과제에 다가갈 수 있었어요.”
임다예슬 씨는 체계적이고 깔끔한 작업을 지향하는 여학생의 자세가 프로그래밍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과제의 주변부가 아니라 성패를 좌우하는 일까지도 여학생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수업에서 주어진 과제도 ‘이성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라’였기 때문에 남녀의 협동을 더욱 촉진할 수 있었다고 임 씨는 전했다.
이수미 씨가 수강한 ‘인디비주얼 스터디’는 그가 건축공학도로서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한 전환점이었다. “이 수업의 골자는 전공을 살려 취직한 여자 동문들을 강사로 모셔 얘기를 듣는 것이었어요. 여학생들의 질문은 대부분 ‘여자라서 손해 보는 일이 없느냐’였지만 의외로 선배들은 ‘여자라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걱정 마라’라는 대답을 내놓더라고요.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전공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두 학생 모두 학부 연구생으로 일하고 있는 건 이 같은 성인지 수업의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임 씨는 바이오전자공학, 이 씨는 건축환경 분야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일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학교 WIE 단장을 맡고 있는 화학공학과 이준영 교수는 앞으로도 정규 과목에 성인지 수업을 적용하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단발성 특강보다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정규 과목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성인지 수업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동등한 동료로서 공존해야 하는 남성도 성인지 수업의 중요한 축이에요. 전체 공대교수회의 때 성인지 수업에 관한 토의 시간을 꼭 갖는 것도 이런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자 선·후배의 실속 있는 네트워크 구축한 부경대
언니 따라 여성 공학인 될래요
TIP
WIE 엘리트 여학생 멤버십 프로그램
부경대는 여학생 공학교육 선도사업(WIE) 가운데 하나로 ‘엘리트 여학생’을 선발해 후배 여학생들의 역할 모델이 되도록
돕는다. 이들은 후배들의 학업과 취업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튜티 또는 튜터가 돼 여자 선·후배 사이에 실질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공대 전공을 살려 취업할 자신이 없어서 전과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언니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부경대 시스템경영공학전공 3학년 정상미 씨는 같은 과 4학년 이새미 씨와 튜티-튜터 관계다. 튜터와 튜티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함께하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이나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선배와 후배 짝이다.
전체 공학계 학생 7700명 중 여학생 1800명. 여학생 규모로는 전국 2위인 부경대는 여학생 공학교육 선도사업(WIE)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부터 ‘엘리트 여학생 멤버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엘리트 여학생은 서류 면접과 구술 면접으로 6: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은 ‘엘리트 언니’들이다. 선발된 20명의 선배들은 후배 여학생들의 역할 모델로서 학업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직접 튜티 또는 튜터가 돼 여자 선·후배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형식적이고 일회성이 되기 쉬운데 부경대의 프로그램은 실속이 있다. 엘리트 여학생들은 전공 책을 싸게 구하는 방법부터 학교 구석구석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준다. 전공기초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하니 후배들은 기댈 수 있는 언니가 생겨 좋고, 언니들은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키우는 윈윈 프로그램인 셈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전공 선배 인터뷰였어요. 그 선배와 꾸준히 연락하면서 제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회사들을 여러 군데 알게 됐어요.”
‘엘리트 여학생’ 1기 소방방재시스템전공 4학년 이아현 씨는 진로를 결정할 때 전공 선배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선배의 덕을 톡톡히 봤다. 전공 선배 인터뷰는 엘리트 여학생에게 주어지는 활동과제로, 같은 전공으로 사회에 먼저 진출한 선배에게서 졸업 후 진로나 알짜배기 취업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엘리트 여학생의 또 다른 활동과제는 여학생 공학교육의 실태를 조사하는 일이다. 남학생 위주의 차가운 공대 캠퍼스를 여학생을 ‘끌어안는’ 따듯한 공간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엘리트 여학생들이 앞장서고 있다. 실태 조사 이후 흡연구역이 따로 지정되고, 카페테리아가 생기면서 전체 여학생들을 위한 복지가 크게 향상됐다. 이 밖에도 엘리트 여학생들은 ‘신입생 캠퍼스 투어’를 함께하며 신입생들의 학교적응을 돕고, 고등학생이나 산업계를 대상으로 공학계 여학생들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부경대는 엘리트 여학생들이 후배 여학생들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초청 강연이나 포럼 등의 각종 WIE 프로그램에 우선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부경대 WIE 단장을 맡고 있는 화상정보공학부 윤종태 교수는 “여자 CEO의 초청 강연이 학생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며 “엘리트 여학생 수를 점차 늘려서 더 많은 여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엘리트 여학생 1기 인쇄정보공학전공 대학원 1학년 최송아 씨는 “나도 성공한 CEO가 돼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연을 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현장에 강한 여성 엔지니어 키우는 군산대
육중한 기계 조작 문제없어요
TIP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
군산대 캠프 위(Camp-WE) 사업단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기본 공구를 사용하는 방법부터 복잡한 기계를 이해하고 직접 다루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전공마다 필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4학년 때 여성 엔지니어를 위한 실험실습을 마치면 최대 2학점까지 전공 선택 학점으로 인정된다.
“처음엔 실습을 따라가기조차 힘들었는데 지금은 실습 시간이 즐거워요.”
군산대 신소재공학과 4학년 노지현 씨는 처음 공대에 입학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남학생만큼’ 기계 장비를 잘 다룬다. 반도체를 플라스마로 코팅하는 육중한 장비인 스포터링을 다루는 솜씨도 전문가처럼 자연스럽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지망했던 ‘부산소녀’ 김수진 씨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군산까지 왔다. 자동차의 ‘ㅈ’도 몰랐던 김 씨였지만 기계자동차공학부에 입학한 뒤 사륜차를 만들어 작년 7월 ‘2008 국제 대학생 자작자동차대회’ 내구부문에서 1위를 했다.
군산대 공대 여학생들은 ‘공대는 남자가 가는 곳’이라는 편견을 깨고 남학생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엇이 군산대 공대 여학생들을 ‘자신만만 엔지니어’로 만들었을까. 바로 군산대에서 운영하는 ‘캠프 위(CaMP-WE, 다양한 현장 업무능력을 갖춘 여성 엔지니어 양성)사업’ 가운데 하나인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 덕분이다. 군산대에서는 2004년부터 여학생이 공학을 이해하고 기계 장비를 다루도록 도와주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제 공대는 더 이상 ‘남자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전공과 취업에서 공대 여학생 비율도 예전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기계자동차공학부 같은 학과는 아직도 여학생 비율이 1.3% 정도로 낮고, 졸업한 뒤 전공계열로 취업하는 남학생 비율이 83.1%인 반면 여학생 비율은 고작 16.9%다.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선천적으로 공학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군산대에서 캠프 위 사업을 이끄는 단장인 김동익 교수는 이 질문에 ‘NO’라고 대답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이론 수업에는 여학생이 더 잘 따라 온다”며 치켜세웠다. 그는 여학생의 공대 진학률이 낮고 실습을 어려워하는 이유로 ‘기계를 다루는 경험 부족’을 들었다.
적어도 한 번은 텔레비전 같은 전자제품을 뜯어본 경험이 있는 남학생과 달리, 기계를 만질 일이 거의 없었던 여학생은 기계에 친근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처음 보는 기계라도 직접 작동해서 배우려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은 대부분 전원을 켜기조차 겁을 낸다.
김 교수는 “이런 남녀차이는 선천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경험에서 비롯되는 일이기 때문에 기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배운다면 여학생도 남학생에게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캠프 위 사업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여학생이 기계 장비와 친해지고 스스럼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로그램마다 학생 3~4명을 교수 1명이 담당해 뒤처지는 학생이 생기면 이끌어준다. 여학생이 실습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보충 수업인 셈이다.
김 교수는 “여학생이 공학에서 쓰이는 기본 장비를 다루는 방법만 알아도 각자 알아서 훌륭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군산대에서는 남학생도 기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고 싶다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신소재공학과에 입학해 3년째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는 도우리 씨는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군산대에 입학했다”며 “실습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 성적이 향상된 데다가 실력 있는 전문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세계로 뻗어 가는 학술활동의 서포터 강원대
국내외 학회 참가하며 자신감 충전해요
TIP
전공 관련 국내외 학술활동 지원 사업
여학생이 전공 관련 국내외 학회에 참가하거나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참가 학생은 전공 분야의 지식을 쌓고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국내 학회는 1인당 25만 원, 국외 학회는 1인당 150만 원 내외를 지원한다.
“터치스크린, 시선 추적 장치 등이 장착된 첨단 전시물을 보며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에 관한 기술의 흐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제 전공이 어떻게 활용될지 가늠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강원대 컴퓨터공학부 3학년 공민지, 홍초희 씨는 올해 2월 9~11일 강원 평창에서 열린 ‘HCI 2009 학술대회’에 다녀온 뒤 전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학부생이지만 당당히 실력으로 자연어처리연구실의 자리를 거머쥔 두 사람은 강원대 WIE 사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실의 김학수 교수와 함께 이 학회에 참가했다.
2006년부터 강원대 WIE 사업단은 현장 적응력 향상 프로그램의 하나로 여학생이 전공 관련 국내외 학회에 참가하는 활동을 지원해오고 있다. 김 교수는 “HCI는 휴대전화 디자인, 애니메이션 제작,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컴퓨터 개발 등에 관련된 분야”라며 “학생들에게 IT가 딱딱하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학회 참가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번 HCI 학회에서는 논문 발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실감형 오락기처럼 HCI 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도 많이 전시됐다.
홍초희 씨와 공민지 씨는 내년에 졸업논문을 잘 쓰기 위해 자연어처리 분야와 관련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홍초희 씨는 “이번 겨울 방학에 민지와 함께 정보검색 프로그램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 활동 역시 강원대 WIE 사업단에서 지원하는 대학자율 동아리 프로그램의 하나다.
환경공학과 석사과정 이지현 씨도 전공 관련 학술활동 지원 사업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지난해 11월 19일~21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일본 폐기물학회에 참가해 논문을 포스터로 발표하며 많은 학자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폐식용유 연료화시설 같은 환경연구시설을 직접 견학할 수 있었다. 특히 이지현 씨는 교토 시민들이 폐식용유를 자발적으로 모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학회에선 소각재를 활용해 시멘트 대체소재인 무기페이스트를 개발하는 연구논문을 영어 포스터로 준비했고 일본 학자를 만나서는 일본어로 설명했어요. 학회에 다녀와서는 환경 선진국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싶어졌어요.” 이지현 씨는 대학 2학년 때부터 ‘꽃보다 남자’ 같은 일본 드라마를 보며 일본어를 배웠고, 현재는 일어 뉴스를 듣고 한자도 공부하며 일본 유학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그는 “올해 5월 춘계 한국폐기물학회에서 구두 발표를 하는데, 이제 떨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환경 폐기물 분야에서 박사 과정의 지도를 받을 일본 연구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현 씨는 후배인 공민지, 홍초희 씨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정보를 찾아야 한다”며 “가고 싶은 회사에 대한 정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자격 조건 등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학부 때 중소기업 인턴 경험을 살려 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 이 기업 산하 환경연구소에 취업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전공 관련 학술활동 지원 사업에 대해 “학부생한테는 전공 친화력을 높이며 ‘이렇게 활용되니까 해볼 만하지 않냐’는 점을 일깨워 주고, 석사과정생 이상에게는 외국에서 발표하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공민지, 홍초희 씨는 WIE 사업단의 지원을 기대하며 올해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제 자연어처리학회에 가고 싶다는 꿈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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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이 국내에서 이 같은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다.
“여성 공대생을 해외로 보내는 인턴십 프로그램 덕분에 세계로 눈을 돌릴 수 있었어요. 제 인생을 경영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고 온 느낌입니다.”
3월 초,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에서 만난 이 대학 화학공학과 3학년 곽혜린 씨에게선 어린 나이답지 않은 자신감이 묻어났다.
곽 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2007년과 지난해, 모두 2차례 인턴십을 이수했다. 연세대가 마련한 이 프로그램은 공대 학부에 재학 중인 여학생을 외국 유수대학에 보내 연구실 체험을 하도록 지원한다. 방학 기간에 진행되며, 인턴십 기간은 보통 두 달이다.
인턴십 모집 공고가 나자 그는 서슴없이 지원서를 냈다. 학부생이 외국대학 실험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치열한 면접 평가를 거쳐 합격한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개인과제가 주어졌다. 인턴십 기간 내내 그는 해당 연구실의 ‘연구원’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곽 씨가 일한 연구실에선 크리스털을 활용해 알츠하이머(치매)를 유발하는 독소를 감지하는 센서를 만들고 있었다. “연구원들과 함께 매일 실험을 했어요.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좋은 기회를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물질이 실용화되면 알츠하이머 발병 여부를 조기에 알 수 있다. 지난 삶이 머리에서 송두리째 사라지기 전에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곽 씨는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 분야의 가치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곽 씨가 인턴십을 두 번이나 다녀온 것도 첫 번째 인턴십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낸 덕택이다. 열정적으로 학업에 매진하는 그의 태도에 감탄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측이 교육비용 일체를 대겠다며 곽 씨를 다시 초청한 것이다.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번 기회를 바탕 삼아 앞으로 다양한 진로를 모색해 볼 생각입니다.”
이 대학 WIE 사업단에 있는 전기전자공학과 최정윤 교수는 곽 씨처럼 자기 진로를 스스로 헤쳐가려는 여성 공대생의 ‘역할 모델’이다. 최 교수는 음성인식 컴퓨터 연구의 권위자로 꼽힌다. 오늘의 그를 만든 건 바로 자신감이다.
“여자라서 공대에서 생활하기에 어려운 점이 없었냐고요? 물론 없진 않았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에 얽매이느냐 얽매이지 않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사와 석사과정을 국내에서 보내면서 제가 조장도 하고 남성보다 나은 성과를 낸 적도 수없이 많아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손해보지 않을까’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최 교수는 1999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5년간 현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면서 ‘단단한’ 공학인이 됐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능력 있는 한 사람의 공학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곽혜린 학생처럼 좋아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주위 조건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이 바뀌는 게 더 현명한 선택입니다.”
수업에서 자신감 키워주는 성균관대
성인지 수업 덕에 진짜 공대생 됐죠
TIP 성인지 수업
성균관대에선 여성 공대생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수업을 진행하는 데 주력한다. 주로 정규과목에 성인지 수업을 도입해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 성인지 수업에선 ‘조장은 남학생이 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은 인정되지 않는다.
“공대에는 팀 과제가 많아요. 몇 명의 수강생이 모인 뒤 각자 역할을 배분해야 하죠. 그런데 예전에 저는 정리나 검토 작업을 주로 맡았던 것 같아요. 과제의 핵심이 아닌 일이었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제 자신부터 중요한 일은 남학생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성인지 수업을 듣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과 3학년 임다예슬 씨는 성인지(性認知) 수업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전의 자신이 ‘공대 여학우’였다면 이젠 ‘공대생’이 됐다는 얘기였다.
이 학교 건축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수미 씨도 성인지 수업 예찬론자다. 이 씨는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는 공대에 지원한 선택을 한때는 후회하기도 했지만 성인지 수업을 만나고선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당당한 여성 공학인으로 만든 성인지 수업의 핵심은 여성을 남성과 같은 반열의 동료로 만드는 것이다. 여자 공대생들에게서 ‘여자라서 난 못한다’는 의식을 걷어내는 것이 이 수업의 우선적인 목표다. 공대에서 개설한 정규과목 중 15개에 성인지 수업을 적용한 성균관대에선 ‘듣기 정말 잘 했다’는 호평이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공학컴퓨터 프로그래밍이란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으레 있기 마련인 남학생 중심의 수업 분위기를 느낄 수 없더라고요. 보통 공대 수업에서 조장은 남자가 맡거든요. 자연스럽게 여학생들은 소외되는 일이 많죠. 하지만 이 수업에선 교수님이 조를 구성할 때 성비를 적절히 조절해 주셔서 남녀가 모두 적극적으로 과제에 다가갈 수 있었어요.”
임다예슬 씨는 체계적이고 깔끔한 작업을 지향하는 여학생의 자세가 프로그래밍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과제의 주변부가 아니라 성패를 좌우하는 일까지도 여학생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수업에서 주어진 과제도 ‘이성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라’였기 때문에 남녀의 협동을 더욱 촉진할 수 있었다고 임 씨는 전했다.
이수미 씨가 수강한 ‘인디비주얼 스터디’는 그가 건축공학도로서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한 전환점이었다. “이 수업의 골자는 전공을 살려 취직한 여자 동문들을 강사로 모셔 얘기를 듣는 것이었어요. 여학생들의 질문은 대부분 ‘여자라서 손해 보는 일이 없느냐’였지만 의외로 선배들은 ‘여자라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걱정 마라’라는 대답을 내놓더라고요.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전공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두 학생 모두 학부 연구생으로 일하고 있는 건 이 같은 성인지 수업의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임 씨는 바이오전자공학, 이 씨는 건축환경 분야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일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학교 WIE 단장을 맡고 있는 화학공학과 이준영 교수는 앞으로도 정규 과목에 성인지 수업을 적용하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단발성 특강보다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정규 과목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성인지 수업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동등한 동료로서 공존해야 하는 남성도 성인지 수업의 중요한 축이에요. 전체 공대교수회의 때 성인지 수업에 관한 토의 시간을 꼭 갖는 것도 이런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자 선·후배의 실속 있는 네트워크 구축한 부경대
언니 따라 여성 공학인 될래요
TIP
WIE 엘리트 여학생 멤버십 프로그램
부경대는 여학생 공학교육 선도사업(WIE) 가운데 하나로 ‘엘리트 여학생’을 선발해 후배 여학생들의 역할 모델이 되도록
돕는다. 이들은 후배들의 학업과 취업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튜티 또는 튜터가 돼 여자 선·후배 사이에 실질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공대 전공을 살려 취업할 자신이 없어서 전과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언니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부경대 시스템경영공학전공 3학년 정상미 씨는 같은 과 4학년 이새미 씨와 튜티-튜터 관계다. 튜터와 튜티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함께하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이나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선배와 후배 짝이다.
전체 공학계 학생 7700명 중 여학생 1800명. 여학생 규모로는 전국 2위인 부경대는 여학생 공학교육 선도사업(WIE)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부터 ‘엘리트 여학생 멤버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엘리트 여학생은 서류 면접과 구술 면접으로 6: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은 ‘엘리트 언니’들이다. 선발된 20명의 선배들은 후배 여학생들의 역할 모델로서 학업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직접 튜티 또는 튜터가 돼 여자 선·후배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형식적이고 일회성이 되기 쉬운데 부경대의 프로그램은 실속이 있다. 엘리트 여학생들은 전공 책을 싸게 구하는 방법부터 학교 구석구석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준다. 전공기초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하니 후배들은 기댈 수 있는 언니가 생겨 좋고, 언니들은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키우는 윈윈 프로그램인 셈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전공 선배 인터뷰였어요. 그 선배와 꾸준히 연락하면서 제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회사들을 여러 군데 알게 됐어요.”
‘엘리트 여학생’ 1기 소방방재시스템전공 4학년 이아현 씨는 진로를 결정할 때 전공 선배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선배의 덕을 톡톡히 봤다. 전공 선배 인터뷰는 엘리트 여학생에게 주어지는 활동과제로, 같은 전공으로 사회에 먼저 진출한 선배에게서 졸업 후 진로나 알짜배기 취업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엘리트 여학생의 또 다른 활동과제는 여학생 공학교육의 실태를 조사하는 일이다. 남학생 위주의 차가운 공대 캠퍼스를 여학생을 ‘끌어안는’ 따듯한 공간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엘리트 여학생들이 앞장서고 있다. 실태 조사 이후 흡연구역이 따로 지정되고, 카페테리아가 생기면서 전체 여학생들을 위한 복지가 크게 향상됐다. 이 밖에도 엘리트 여학생들은 ‘신입생 캠퍼스 투어’를 함께하며 신입생들의 학교적응을 돕고, 고등학생이나 산업계를 대상으로 공학계 여학생들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부경대는 엘리트 여학생들이 후배 여학생들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초청 강연이나 포럼 등의 각종 WIE 프로그램에 우선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부경대 WIE 단장을 맡고 있는 화상정보공학부 윤종태 교수는 “여자 CEO의 초청 강연이 학생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며 “엘리트 여학생 수를 점차 늘려서 더 많은 여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엘리트 여학생 1기 인쇄정보공학전공 대학원 1학년 최송아 씨는 “나도 성공한 CEO가 돼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연을 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현장에 강한 여성 엔지니어 키우는 군산대
육중한 기계 조작 문제없어요
TIP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
군산대 캠프 위(Camp-WE) 사업단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기본 공구를 사용하는 방법부터 복잡한 기계를 이해하고 직접 다루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전공마다 필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4학년 때 여성 엔지니어를 위한 실험실습을 마치면 최대 2학점까지 전공 선택 학점으로 인정된다.
“처음엔 실습을 따라가기조차 힘들었는데 지금은 실습 시간이 즐거워요.”
군산대 신소재공학과 4학년 노지현 씨는 처음 공대에 입학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남학생만큼’ 기계 장비를 잘 다룬다. 반도체를 플라스마로 코팅하는 육중한 장비인 스포터링을 다루는 솜씨도 전문가처럼 자연스럽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지망했던 ‘부산소녀’ 김수진 씨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군산까지 왔다. 자동차의 ‘ㅈ’도 몰랐던 김 씨였지만 기계자동차공학부에 입학한 뒤 사륜차를 만들어 작년 7월 ‘2008 국제 대학생 자작자동차대회’ 내구부문에서 1위를 했다.
군산대 공대 여학생들은 ‘공대는 남자가 가는 곳’이라는 편견을 깨고 남학생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엇이 군산대 공대 여학생들을 ‘자신만만 엔지니어’로 만들었을까. 바로 군산대에서 운영하는 ‘캠프 위(CaMP-WE, 다양한 현장 업무능력을 갖춘 여성 엔지니어 양성)사업’ 가운데 하나인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 덕분이다. 군산대에서는 2004년부터 여학생이 공학을 이해하고 기계 장비를 다루도록 도와주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제 공대는 더 이상 ‘남자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전공과 취업에서 공대 여학생 비율도 예전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기계자동차공학부 같은 학과는 아직도 여학생 비율이 1.3% 정도로 낮고, 졸업한 뒤 전공계열로 취업하는 남학생 비율이 83.1%인 반면 여학생 비율은 고작 16.9%다.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선천적으로 공학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군산대에서 캠프 위 사업을 이끄는 단장인 김동익 교수는 이 질문에 ‘NO’라고 대답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이론 수업에는 여학생이 더 잘 따라 온다”며 치켜세웠다. 그는 여학생의 공대 진학률이 낮고 실습을 어려워하는 이유로 ‘기계를 다루는 경험 부족’을 들었다.
적어도 한 번은 텔레비전 같은 전자제품을 뜯어본 경험이 있는 남학생과 달리, 기계를 만질 일이 거의 없었던 여학생은 기계에 친근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처음 보는 기계라도 직접 작동해서 배우려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은 대부분 전원을 켜기조차 겁을 낸다.
김 교수는 “이런 남녀차이는 선천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경험에서 비롯되는 일이기 때문에 기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배운다면 여학생도 남학생에게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캠프 위 사업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여학생이 기계 장비와 친해지고 스스럼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로그램마다 학생 3~4명을 교수 1명이 담당해 뒤처지는 학생이 생기면 이끌어준다. 여학생이 실습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보충 수업인 셈이다.
김 교수는 “여학생이 공학에서 쓰이는 기본 장비를 다루는 방법만 알아도 각자 알아서 훌륭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군산대에서는 남학생도 기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고 싶다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신소재공학과에 입학해 3년째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는 도우리 씨는 “현장 적응능력 향상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군산대에 입학했다”며 “실습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 성적이 향상된 데다가 실력 있는 전문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세계로 뻗어 가는 학술활동의 서포터 강원대
국내외 학회 참가하며 자신감 충전해요
TIP
전공 관련 국내외 학술활동 지원 사업
여학생이 전공 관련 국내외 학회에 참가하거나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참가 학생은 전공 분야의 지식을 쌓고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국내 학회는 1인당 25만 원, 국외 학회는 1인당 150만 원 내외를 지원한다.
“터치스크린, 시선 추적 장치 등이 장착된 첨단 전시물을 보며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에 관한 기술의 흐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제 전공이 어떻게 활용될지 가늠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강원대 컴퓨터공학부 3학년 공민지, 홍초희 씨는 올해 2월 9~11일 강원 평창에서 열린 ‘HCI 2009 학술대회’에 다녀온 뒤 전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학부생이지만 당당히 실력으로 자연어처리연구실의 자리를 거머쥔 두 사람은 강원대 WIE 사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실의 김학수 교수와 함께 이 학회에 참가했다.
2006년부터 강원대 WIE 사업단은 현장 적응력 향상 프로그램의 하나로 여학생이 전공 관련 국내외 학회에 참가하는 활동을 지원해오고 있다. 김 교수는 “HCI는 휴대전화 디자인, 애니메이션 제작,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컴퓨터 개발 등에 관련된 분야”라며 “학생들에게 IT가 딱딱하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학회 참가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번 HCI 학회에서는 논문 발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실감형 오락기처럼 HCI 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도 많이 전시됐다.
홍초희 씨와 공민지 씨는 내년에 졸업논문을 잘 쓰기 위해 자연어처리 분야와 관련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홍초희 씨는 “이번 겨울 방학에 민지와 함께 정보검색 프로그램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 활동 역시 강원대 WIE 사업단에서 지원하는 대학자율 동아리 프로그램의 하나다.
환경공학과 석사과정 이지현 씨도 전공 관련 학술활동 지원 사업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지난해 11월 19일~21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일본 폐기물학회에 참가해 논문을 포스터로 발표하며 많은 학자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폐식용유 연료화시설 같은 환경연구시설을 직접 견학할 수 있었다. 특히 이지현 씨는 교토 시민들이 폐식용유를 자발적으로 모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학회에선 소각재를 활용해 시멘트 대체소재인 무기페이스트를 개발하는 연구논문을 영어 포스터로 준비했고 일본 학자를 만나서는 일본어로 설명했어요. 학회에 다녀와서는 환경 선진국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싶어졌어요.” 이지현 씨는 대학 2학년 때부터 ‘꽃보다 남자’ 같은 일본 드라마를 보며 일본어를 배웠고, 현재는 일어 뉴스를 듣고 한자도 공부하며 일본 유학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그는 “올해 5월 춘계 한국폐기물학회에서 구두 발표를 하는데, 이제 떨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환경 폐기물 분야에서 박사 과정의 지도를 받을 일본 연구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현 씨는 후배인 공민지, 홍초희 씨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정보를 찾아야 한다”며 “가고 싶은 회사에 대한 정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자격 조건 등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학부 때 중소기업 인턴 경험을 살려 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 이 기업 산하 환경연구소에 취업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전공 관련 학술활동 지원 사업에 대해 “학부생한테는 전공 친화력을 높이며 ‘이렇게 활용되니까 해볼 만하지 않냐’는 점을 일깨워 주고, 석사과정생 이상에게는 외국에서 발표하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공민지, 홍초희 씨는 WIE 사업단의 지원을 기대하며 올해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제 자연어처리학회에 가고 싶다는 꿈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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