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과학소설(SF)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의 허버트 웰스가 소설‘투명인간’을 발표한지 꼭 110년이 되는 해다. 소설에서 그리핀이라는 과학자는 빛의 성질을 연구하다가 몸속 붉은 피와 검은 머리카락의 굴절률을 공기의 굴절률과 똑같이 만드는 실험에 성공해 스스로 투명인간이 된다.
투명인간은 영화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매력적인 소재다.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도 다양하다. 영화‘할로우 맨’에서는 약을 마시고‘반지의 제왕’에서는 절대 반지를 낀다. 영화‘해리포터’시리즈에서는 망토를 뒤집어 쓰기도 한다. 투명인간은 정말 가능할까. 투명해진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굴절률 같은 두 물체 구별할 수 없어
우리가 물체를 볼 수 있는 이유는 물체에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망막에 상을 맺기 때문이다. 이 정보가 뇌로 전달돼 물체의 색깔과 크기를 파악한다.
하지만 투명한 물체를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공중에 튄 물방울은 자체가 투명하더라도 주변과 구별돼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방울과 공기의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빛이 물방울에 닿으면 물방울 안으로 들어가면서 꺾이고, 다시 물방울에서 공기 중으로 나올 때 또 한번 꺾인다. 이처럼 물방울을 통과한 빛은 경로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이 일그러져 보인다.
그렇다면 굴절률이 같은 두 물체는 우리 눈으로 구별할 수 없다는 얘기일까? 그렇다. 물속에 있는 물의 일부분을 다른 부분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물질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하지만 다른 물질이면서도 굴절률이 같아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파이렉스라는 특수유리로 만든 막대를 식용유 속에 넣으면 파이렉스 막대는 감쪽 같이 사라진다. 파이렉스 막대와 식용유의 굴절률이 거의 같아 빛이 두 물질 사이를 지나면서 굴절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이렉스 막대와 식용유 사이에 경계면은 있지만 광학적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눈금이 그려진 파이렉스 막대를 식용유 안에 넣으면 막대는 보이지 않고 눈금만 보인다.
이 원리를 이용해 간단한 마술을 할 수 있다. 우선 파이렉스로 만든 온전한 컵을 식용유 안에 미리 넣어 두고 한쪽 끝이 깨진 파이렉스 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깨진 파이렉스 컵을 식용유 안에 넣은 뒤‘마법의 식용유가 깨진 컵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다’는 주문을 외운다. 끝으로 한쪽 끝이 깨진 파이렉스 컵 대신 처음에 넣은 온전한 파이렉스 컵을 꺼내면 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투명인간이 가능할까. 우리 몸의 굴절률을 공기의 굴절률과 같게 만들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눈만 둥둥 떠다니는 투명인간?
우리가 사물을 보려면 눈에 들어온 빛이 수정체에서 굴절돼 망막에 상을 맺어야 한다. 그런데 수정체가 공기와 굴절률이같으면 빛이 굴절되지 않으므로 망막에 상을 맺을 수 없다.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물체를 제대로 구분할 수도 없다. 게다가 망막마저 투명하면 빛은 상을 맺지못하고 그대로 통과해 버린다.
남에게 보이지 않지만 자신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투명인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따라서 투명인간이 주위를 볼 수 있으려면 눈만큼은 굴절률이 다른 수정체, 주위에서 들어오는 빛을 막아줄 어둠상자 그리고 불투명한 망막이 있어야 한다. 까만 눈만 둥둥 떠다니는 투명인간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사람은 아니지만 물고기 중에 이와 비슷한 모습을 한 투명물고기가 있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 대부분의 굴절률이 물과 같도록 진화한‘고스트 글래스 캣피시’가 주인공이다. 이 물고기는 까만 눈과 뼈만 빼고 다른 모든 부분이 투명하다.
우리 몸을 투명하게 만들기 어렵다면 영화‘해리포터’시리즈에 나오는 투명망토에 도전해 보자. 해리포터는‘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한 해에 마법의 투명망토를 선물 받는다. 이 망토를 뒤집어쓰면 몸 전체가 투명해져 주위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르게 돌아다닐 수 있다.
2003년 영화 속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투명망토가 실제로 등장해 사람들을 깜짝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일본 도쿄대 스스무 다치 교수팀이‘광학적 위장기술’을 이용해 비옷처럼 생긴 투명망토를 만들었다.
다치 교수팀이 만든 투명망토의 비밀은‘역반사 물질’로 밝혀졌다. 거울처럼 매끈한 표면에 입사한 빛은‘반사의 법칙’에 따라 입사각과 같은 각을 이루며 반사된다. 또 거친 표면에 부딪힌 빛은 여러 방향으로 반사돼 퍼져나간다. 이를‘난반사’라고 한다.
투명망토의 비밀은 역반사물질
역반사 물질은 빛을 입사한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반사한다. 연구팀은 역반사 물질로 수십만 개의 투명한 작은 유리구슬을 사용했다. 이 유리구슬에 입사한 빛은 구슬 속에서 굴절과 반사를 반복한 뒤 입사한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다시 나간다.
이런 역반사 물질은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빛을 받으면 환하게 빛나는 차도의 경계판이나 신호등이 그 예다. 밤에 자동차 라이트를 어떤 방향에서 비추더라도 반사된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안전운전에 도움을 준다.
그럼 역반사 물질은 투명망토를 만드는데 어떻게 쓰인 걸까. 먼저 디지털 카메라로 망토를 쓴 사람 뒤의 풍경을 찍는다. 컴퓨터가 이 영상에 위치정보와 거리정보를 더해 프로젝터로 보낸다. 이 정보를 넘겨받은 프로젝터는 반투명 거울을 통해 사람이 입은 망토에 영상을 쏜다. 프로젝터에서 나온 빛이 망토의 작은 유리구슬에 입사하면 빛이 들어온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그대로 반사된다. 망토에서 반사된 빛은 망토를 입은 사람의 뒤쪽 풍경을 담고 있다. 즉 마법의 투명망토는 망토를 입은 사람 뒤편의 영상을 보여주는 스크린인 셈이다.
아직 영화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이나 투명망토가 실제로 개발된 적은 없다. 하지만‘투명인간이 되면 무엇을 할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투명인간이 과학의 힘으로 실현될 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