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전기차 기술의 완성도는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현재 과제는 내구성을 향상시키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수소전기차 기술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찾았다. 장종현 연료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DOE)가 올해 6월 작성한 ‘연료전지 연구개발 개관’이라는 보고서를 보여주며 이 같이 말했다.
수소전기차는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물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이용해 모터를 돌려 주행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일반 전기차가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충전소에서 받아 배터리에 충전해서 쓰는 것과 달리, 수소전기차는 수소연료전지를 이용해 자동차의 연료탱크에 저장된 수소와 공기 중 산소를 반응시켜 직접 전기를 생산한다. 수소전기차의 핵심 기술이 수소연료전지인 셈이다.
에너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의 kg당 출력은 최고 650W(와트), 최고 에너지 효율은 약 58%, L(리터)당 전력 밀도는 약 640W, 내구성은 약 4000시간(하루 1시간 주행했을 때 약 11년) 등으로 2025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치에 가깝다. 모자라는 부분은 내구성과 가격 경쟁력이 꼽혔다.
최고 시속 179km로 질주
수소전기차는 이제 막 양산이 시작됐다. 그런 수소전기차의 성능이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내용은 사실일까.
가장 중요한 요소인 1회 충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와 최고 속력의 경우 내연기관 차량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3월 출시한 수소전기차 ‘넥쏘(NEXO)’는 1회 충전으로 최장 609km를 주행할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고도 남는다. 넥쏘와 유사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투싼’과 ‘산타페’가 연료탱크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710~770km를 주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결코 짧지 않은 주행거리다. 현재 일반 전기차는 1회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최고 400km 수준이다.
최고 속력의 경우 넥쏘는 시속 약 179km로, 시속 200km 이상인 투싼과 산타페에 비해서는 다소 느리다. 하지만 실제 주행에서 시속 150km 이상으로 주행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속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전기차의 최고 속력은 수소전기차와 비슷한 수준이다.
NASA 우주왕복선에 쓰이며 개발 시작
현재까지 수소전기차를 양산하는 자동차회사는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와 일본의 토요타, 혼다 등 3개 회사에 불과하다.
현대자동차는 1998년부터 수소전기차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토요타와 혼다는 한 발 늦게 합류했다. 불과 20년 만에 내연기관 차량에 필적할 정도로 수소전기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배경에는 약 150년 동안 축적된 수소연료전지 연구개발의 역사가 있다.
수소연료전지를 처음 개발한 인물은 19세기 영국의 판사이자 물리학자였던 윌리엄 그로브다. 그는 1839년 산소와 수소를 반응시켜서 물을 만드는 수소연료전지의 개념을 고안해냈고, 1842년 최초의 수소연료전지를 시연했다.
혁신적이고 친환경적인 아이디어였지만 당시로서는 상용화하기 어려웠고, 연구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근근이 연구의 명맥이 이어져 오던 수소연료전지는 20세기 중반 격변을 맞았다. 196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제미니’와 ‘아폴로’ 우주선의 전력 공급원으로 수소연료전지를 채택한
것이다. 우주선에서 수소연료전지의 가능성을 확인한 미국 에너지부는 그때부터 수소연료전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우주선에 쓰인 수소연료전지를 가장 처음 응용한 분야가 자동차였다. 제너럴모터스(GM)가 최초의 수소전기차 ‘일렉트로 밴’을 1966년에 선보인 것이다. 일렉트로밴은 1회 충전으로 약 193km를 주행할 수 있었고, 최고 속력은 시속 약 113km였다.
하지만 일렉트로밴은 양산되지 못했다. 차는 승합차 크기인데 좌석 두 개를 제외하면 수소와 산소 탱크, 연료전지로 가득 채워져 비효율적이었을 뿐 아니라 제작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장 책임연구원은 “당시에는 자동차의 연료인 석유 자원이 풍부하고 기후변화 등 환경오염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점도 수소전기차 개발이 진척되지 못했던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 연료탱크 ‘다이어트’ 성공
2000년대 이후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수소전기차 상용화를 이끈 기술 발전의 핵심을 한 단어로 설명하면 ‘다이어트’라고 할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와 수소탱크의 크기를 줄이고 전기를 발생시키는 효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막전극접합체(MEA·Membrane Electrode Assembly)는 양쪽의 전극에서 들어온 수소 이온과 산소 이온을 반응시켜 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막전극접합체 사이사이에는 분리판이 들어가는데, 이 분리판을 얇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수소연료전지
의 부피가 대폭 줄어들었다.
분리판은 여러 개의 막전극접합체 사이를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분리판을 통해 수소와 산소가 공급되기 때문에 수소연료전지가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게 도와주는 부품이다. 과거에는 두꺼운 흑연을 깎아 만들었지만, 진동에 부서지기 쉬워서 자동차에 쓰기에는 내구성이 약했고 두께도 두꺼웠다. 게다가 제작비용도 비쌌다.
이 문제는 얇은 스테인리스 소재의 분리판이 개발되면서 해결됐다. 스테인리스 분리판은 막전극접합체와 접촉하는면에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 수준의 미세한 유로(流路)를 파서 수소와 산소를 공급한다. 장 책임연구원은 “금속을 얇게 가공하고 μm 수준으로 미세하게 유로를
파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연료전지의 부피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차량에 들어가는 연료 탱크도 산소와 수소에서 수소 하나로 줄었고, 탱크의 부피가 과거에 비해 훨씬 작아진 점도 수소전기차 상용화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기술적인 성과다. 과거에는 불순물 없는 깨끗한 산소와 수소를 탱크에 넣어 활용했는데, 점차 공기 중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기정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동차에 유입되는 공기에서 깨끗한 산소만 걸러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차량에 산소 탱크를 별도로 넣을 필요가 없어졌고, 차량이 달리면서 공기를 정화하는 ‘공기청정기’ 효과도 낼 수 있게 됐다. 현대자동차는 “넥쏘 1000대가 운행하면 디젤차 2000대가 내뿜는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고, 1시간 운행할 경우 성인 4만2600명이 1시간 동안 마시는 공기가 정화된다”고 밝혔다.
기존 350기압의 두 배인 700기압의 높은 압력으로 연료탱크에 수소를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수소탱크의 크기가 훨씬 작아진 점도 상용화를 이끈 요인이다.
내구성, 경제성, 수소 생산 극복해야
수소전기차의 성능이 이미 내연기관 자동차의 성능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 만큼, 현재 수소전기차 연구자들의 초점은 가격 경쟁력과 내구성을 갖춘 수소전기차를 만드는데 있다. 장 책임연구원은 “자동차에 공급할 수소 생산 시설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다”며 “내구성, 가격 경쟁력, 안전한 수소 생산 인프라 등 세 가지가 수소전기차 대중화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많은 연구팀이 수소전기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 하고 있다. KIST 연료전지연구센터의 경우 1989년 설립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수소연료전지 연구기관 가운데 하나인 만큼, 제조비용을 낮추고 내구성을 높이는 기술에서 충전용 수소 생산 기술까지 폭넓게 연구하고 있다.
김진영 KIST 연료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팀은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했던 막전극접합체의 불소계 전해질막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해 2017년 9월 국내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
전해질막은 막전극접합체에서 수소와 산소가 섞이지 않도록 분리해 주면서 동시에 수소이온만 통과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수 μm에서 수 mm 두께의 얇은 막으로, 전기 생성 효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재료다.
불소계 수지를 이용해서 이런 막을 만들기도 쉽지 않지만, 수소연료전지 내부의 가혹한 환경에서 이 전해질막이 손상되지 않게 해 주는 첨가제에 대한 기술이 특허로 묶여 있어서 국산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책임연구원은 “현재 전해질막의 내구성을 강화해 주는 첨가물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소전기차 시장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했다. 국제 시장조사업체인 IHS마킷은 2030년이면 약 220만 대 규모로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자동차가 한발 앞서서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했지만 자동차 산업의 전쟁터인 미국에서의 주도권은 일본 기업들이 쥐고 있다.
현재 BMW는 토요타와 함께 2020년을 목표로 수소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그룹은 아우디를 중심으로 현대자동차와 연료전지 기술을 공유하는 협약을 지난 6월 체결했다. GM도 혼다와 연료전지 시스템을 공동으로 생산하기로 하는 등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연합군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소전기차 춘추전국시대가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