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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하면, 우리는 흔히 에디슨을 먼저 떠올린다. 에디슨의 이미지엔 기계와 장비를 다루는 남성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 반면 여성과 발명을 한꺼번에 연상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에서 어머니는 원천을 의미하는 은유일 뿐 발명하는 주체로서의 여성,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발명은 남성의 고유 영역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만 봐도 1993년에 창립된 여성발명협회가 운영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세계여성발명대회도 열리고 있다. 남성에 비해 소수이기는 하지만 여성 발명가들은 발명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자취를 찾아 남성 중심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 여성학자들은 여성이 발명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들은 발명의 역사 또는 기술의 역사가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활동 무대(병기창, 공장, 산업체 연구소 등)를 중심으로 쓰이면서 여성의 발명, 기술개발 활동이 묻혀 버리게 됐다고 본다. 실제 여성들이 활동해온 영역에 눈을 돌리면 우리는 적지 않은 여성 발명가들을 만날 수 있다.

자동화된 가사기구 개발에 큰 몫
1809년에 미국 여성 마리 딕손 키즈(1752~1837)는 실크 직기를 발명해 여성으로서는 처음 특허권을 획득했다. 1843년에는 같은 미국 여성인 낸시 존슨이 수동식 아이스크림 냉각기를 발명해 아이스크림 산업화를 앞당겼다. 프랑스의 바르베 니콜 클리코(1777~1866)는 오늘날 일반화된 샴페인 저장 방식을 발명했고, 유명한 까망베르 치즈 발명가도 마리에 하렐(1761~1818)이라는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도시 직장인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캔 식품, 냉동 식품 등을 가능하게 해 준 이들도 여성 발명가였다. 1873년에 작가로서도 활동하던 아만다 존스(1835~1914)는 진공 캔 저장 방식을 발명해 미국 특허를 얻었고, 대학에서 화학을 배운 마리 엔글 페닝튼(1872~1952)은 냉동식품을 발명해 미국 냉동 엔지니어협회의 최초 여성 회원이 되기도 했다.

이밖에 독일 드레스덴의 평범한 주부 멜리타 벤츠(1873~1950)는 1908년에 커피 필터를 발명해 특허를 얻었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회사까지 설립했다. 오늘날 여성의 가사 노동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식기 세척기와 세탁기 역시 여성 발명가들이 만들었다. 1886년에 조셉 코크레인(1839~1913)이 처음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수동식 식기 세척기를 발명하는데 성공했고, 마가렛 플렁켓 콜빈(1828~1894)은 1871년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회전식 세탁기를 발명했다.

스크루, 어뢰조종시스템, 방탄 섬유에도 여성 손길
조금 더 눈을 돌리면 여성 발명가의 활동이 가정을 둘러싼 영역에만 머문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영국의 사라 제롬은 1630년에 벌채 도구를 발명했고, 타비타 바비트는 1810년에 둥근톱을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1845년에 사라 마터는 잠수 망원경과 램프를 발명해 해저 탐사 작업을 용이하게 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로 알려진 헨리타 밴시타트(1840~1883)는 스크루 프로펠러를 발명해 영국의 선박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여배우 헤디 라마르(1913~2000)는 주파수 도약방식을 발명해 비밀 통신 시스템과 무선을 이용한 어뢰 조종 시스템에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화학물질 중 하나인 케블라(방탄복에 쓰이는 강한 합성 섬유)를 발명한 이도 여성 화학자 스테파니 퀄렉(1923~)이다. 산업 연구소의 효시가 된 GE연구소에 여성으로는 처음 고용된 캐서린 블로제트(1898~1979)는 박막 필름 코팅을 발명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컴퓨터 분야에서도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는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베르누이 숫자 계산 프로그램을 작성했고, 그레이스 호퍼(1906~1992)는 최초 컴파일러 개발자이자 실질적인 코볼 창안자로 기록돼 있다.


여성 발명가 볼 수 없었던 건 사회적 편견 탓

최근 복원되고 있는 여성 발명의 역사는 여성이 결코 발명 혹은 기술과 분리돼 있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기계 작업장에서 남성 노동자들이 혹은 엔지니어들이 주어진 과제를 좀더 효율적으로 해결하고자 새로운 기계를 발명, 또는 개선하고 있었듯이 여성들은 가사 노동 공간에서 유사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나 남편의 후원으로 남성들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던 여성들, 대학의 문호가 개방되면서 정규 교육을 받고 남성 영역에 진출할 수 있던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은 능력까지 보여줬다.

우리가 이런 여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산업 혁명과 더불어 기술 혹은 발명이 남성적인 것으로 정의됐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성과 발명을 동시에 연상하기 어려운 것은 ‘여성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역사적으로 그런 인식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성과 발명의 연관을 역사 속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박진희 교수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연관을 폭넓게 공부하며 독일 베를린대에서 늦깎이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동국대에서 공대 학생들의 교양교육을 맡고 있다. 현대 기술의 사회적 형성, 과학기술과 페미니즘에 특히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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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희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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