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 밤 9시 20분 경.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르의 다타란 메르데카 광장 한쪽에 마련된 대형스크린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말레이시아 최초 우주인인 셰이크 무스자파가 탄 소유즈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다.
러시아의 소유즈는 미국의 우주왕복선과는 달리 카운트다운 없이 발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화면에서 우주선이 굉음을 내며 치솟자 사람들은 다 함께 외쳤다.
“말레이시아 볼레!”
말레이시아어로 ‘말레이시아는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같은 응원 구호다. 곧이어 소유즈 우주선이 안전하게 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를 밤새 이어갔다. 이로써 말레이시아는 세계에서 35번째로 우주인을 배출한 국가가 됐다.
1만1000대 1 경쟁률 뚫고 선발돼
소유즈는 6개월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우주인 3명을 실어 나른다. 따라서 말레이시아가 다음 발사 예정일인 2008년 4월 8일 첫 우주인을 배출하는 우리나라에 앞서 ‘한발 먼저’ 첫 우주인을 배출한 셈이다.
말레이시아의 첫 우주인 배출사업인 ‘앙카사완 프로그램’(앙카사완은 말레이시아어로 우주인이라는 뜻)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던 2003년 5월 시작됐다. 말레이시아가 약 9억 달러(8조1000억원)를 들여 러시아의 수호이 전투기 18대를 구입하면서 러시아에 자국의 우주인 배출사업에 협력하라는 조건을 단 것.
2003년 10월 말레이시아 우주청은 21세 이상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우주인 선발 공모를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한 지원자는 총 1만1275명. 서류평가를 한 뒤 무려 3년 동안 8단계를 거쳐 2006년 9월 우주인 후보 2명을 선발했다.
탑승우주인으로 선발된 정형외과 의사 무스자파와 예비우주인으로 선발된 치과 의사 파이즈 칼리드는 선발 직후부터 러시아의 스타시티에서 우주인 훈련을 받았다. 2007년 3월 스타시티의 우주인 훈련과정에 합류한 우리나라 우주인 후보 고산, 이소연 씨와는 그동안 함께 훈련하며 매우 친한 사이가 됐다.
1년 동안 훈련을 무사히 마친 무스자파는 지난 10월 10일 ISS로 향하는 소유즈에 올랐다. 그와 여정을 함께한 이들은 러시아의 유리 말렌첸코와 미국의 페기 휘슨. 소유즈의 선장을 맡은 말렌첸코는 이번이 4번째 우주 방문이다. 그는 2003년 ISS에서 지상에 있는 신부와 화상통신으로 결혼식을 올린 우주인으로 유명하다.
말렌첸코가 47시간 동안 궤도비행을 안전하게 이끈 뒤 ISS에 도착하면 휘슨에게 선장의 자리를 넘겨줄 예정이었다. 휘슨은 앞으로 6개월 동안 ISS의 모든 임무를 책임진다. 그는 출발 전 ISS 최초의 여성 선장이 된 기념으로 러시아우주국으로부터 카자흐스탄 전통 말회초리를 선물 받았는데, “우주에 머무는 동안 동료들에게 회초리를 사용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10월 13일 말레이시아 현지 시각으로 오전 0시 33분. 이들이 탑승한 소유즈가 ISS 도킹에 성공했다. 소유즈에서 ISS로 통하는 해치 뚜껑을 열고 나온 무스자파는 “기분이 매우 좋다”는 가벼운 소감으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곧바로 말레이시아 총리와 간단한 화상인터뷰를 마친 무스자파는 가족과 인사하는 잠시 동안 아버지와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눠 러시아 관제센터에 모인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무스자파의 아버지는 “아들이 우주인 후보로 선정됐을 때부터 아들과 함께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우주실험은 국제협력의 가교
말레이시아의 첫 우주인 배출 사업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의 소유즈를 타고 ISS에 가는 것이나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우주인을 선발했다는 점, 그리고 우주인이 ISS에서 할 실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이 닮았다.
말레이시아 우주청은 2003년 여러 대학의 연구팀으로부터 40개의 우주실험을 제안받아 이 중 3개의 의학 관련 실험을 최종 선정했다. 두 우주인 후보가 모두 의사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ISS에서 8일 동안 머물며 무스자파가 한 실험은 세포와 박테리아의 분열과 번식, 그리고 단백질 성장에 대한 실험이다.
중력이 있는 지구에서 세포가 2차원 평면으로 성장하는 것과 달리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세포가 3차원 공간으로 구형을 이루며 성장한다. 또 박테리아는 지구에서보다 빨리 번식하며 단백질도 더 빠르고 정교하게 합성된다.
무스자파는 이 실험을 하기 위해 세포와 박테리아, 그리고 배양액과 고정액을 담은 유체실험장치(FPA)라는 특수제작 실험장치를 갖고 소유즈에 올랐다. 그는 ISS에 도착한지 3일째 되는 날 실험장치를 ISS에 마련된 세포배양 인큐베이터 안에 넣고 실험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3일 동안 37℃ 온도에서 세포를 배양한 뒤 6일째 되는 날 세포의 성장을 막는 고정액을 뿌리고 실험을 마무리했다.
이 샘플은 그가 10월 21일 카자흐스탄 초원에 무사히 착륙한 뒤 바로 회수돼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킨 상태로 말레이시아 연구팀에 보내졌다. 연구팀은 앞으로 3개월 동안 이 샘플을 정밀분석할 예정이다.
무스자파는 외국의 우주실험도 의뢰받았다. 자력으로 우주인을 ISS에 보낼 수 있는 러시아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우주인을 배출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협력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우주국(ESA)은 무스자파에게 안구운동 추적장치를 이용해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신경이 우주멀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맡겼다. 또 일본우주국(JAXA)은 그의 호주머니에 작은 방사선량계를 넣어줬다. 태양에서 ISS까지 오는 방사선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고 그에 따라 신체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이다.
이런 우주실험 경험이 쌓이면 국제적인 우주개발협력연구에 참여하기도 수월해진다. 2008년 ISS에 자국의 실험 모듈을 띄워 올릴 예정인 일본은 말레이시아 과학자들과 협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러시아는 화성탐사 프로그램에 말레이시아 과학자의 참여를 요청해놓은 상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인개발단 최기혁 단장은 “ISS에 우주인을 보내 실험을 하는 일은 관련 인프라가 적은 나라가 우주개발 선진국에 진입하는 지름길”이라며 “2008년 고산 씨가 18가지 과학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나라 우주개발에 대한 국제적 위상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첫 우주인 셰이크 무스자파 e메일 인터뷰
우주인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10살 때부터 우주인을 꿈꿨다. 밤하늘을 보면서 지구 밖에 생명이 있을지 궁금했다. 우주에 대한 책을 읽으며 언젠가 내 꿈을 이루리라 다짐했다. 당시 우주는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였기 때문에 꿈을 간직한 채 과학을 공부했고 의사가 됐다. 우주인을 선발한다는 공고를 봤을 때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우주인이 되기 전에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는데.
우주인이 되기 전 정형외과 의사였다.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경영했는데 시작한지 1년 만에 말레이시아 최고의 레스토랑 상을 받기도 했다. 2년 동안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스스로 한계에 도전해보기 위해 한 분야에서 성공을 하면 또 다른 일을 찾는 편이다.
우주인 프로그램이 끝나면 파일럿에 도전할 생각이다.
스타시티에서 함께 훈련을 받은 한국 우주인 후보를 평가한다면?
스타시티에서 같은 아시아인과 훈련받아 정말 기쁘다.지난 6개월 동안 함께 지낸 한국우주인 후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두 사람 중 특히 이소연 씨와 친하다.우주인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를 만나러 한국에 갈 생각이다.그는 매력적이고 친절하며 재미있다. 아, 기절할 만큼 예쁘다는 말을 빼먹으면 안 되겠다.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일이면 일, 공부면 공부 뭐든 열심히 하길 바란다. 물론 놀 때도 열심히 놀아야 한다. 꿈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면 언제가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나는 내 꿈을 이루는데 25년이 걸렸다. 꿈을 가장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라. 바로 당신의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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