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정말 변하고 있을까. 매일 날씨가 바뀌듯 기후도 장기간의 주기를 가지고 변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변화의 수준이 자연의 주기를 벗어나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는 데 있다.
유엔 산하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이하 IPCC)가 발표한 4차 보고서에 따르면 1900년 이후 전지구의 평균 기온은 0.74℃ 증가했고 최근 12년(1995~2006) 중 11년이 온도가 가장 높은 해로 기록됐다. 이런 근거로 지구온난화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이라고 단정지었다.
2001년 발표한 3차 보고서에서는 인간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likely)면서 66% 수준의 확률을 제시했던 것과 달리 6년이 지난 4차 보고서에서는 그 가능성이 90% 이상을 의미하는 ‘매우 높다’(very likely)로 표현했다. 인류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임을 인정한 셈이다.
IPCC의 4차 보고서를 위해 6년간 130개국 2500명의 과학자가 기후에 관한 연구결과를 집대성했다. 전세계 전문가들의 역량이 집중된 것은 물론 모든 과정을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이 보고서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
기후예측 시나리오
기상청 홈페이지에 수십년 뒤의 한반도 기후변화에 대한 전망이 올라오면, 내일이나 모레의 날씨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데 도대체 어떻게 10년이나 20년 뒤, 심지어 100년 뒤의 기후를 예측할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여기서 기후변화 연구에 적용하는 ‘시나리오’(scenario)라는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는 향후 발생 가능한 인구, 기술, 사회, 경제의 변화를 가정해 만든 가상의 전망을 의미한다. IPCC에서 제시한 다양한 온실기체 배출 시나리오(SRES, Special Report on Emission Scenarios)는 미래의 온실기체 배출에 핵심이 되는 요소가 어떻게 변할지 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A1 시나리오’는 21세기 중반에 빠른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가 정점에 이르면서 더 효율적인 기술이 등장할 거란 가정을 했고 ‘B2 시나리오’는 사회 전체가 친환경적으로 변할 거라고 가정했다.
‘전구기후모델’과 ‘지역기후모델’은 달라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로 기후를 전망할 때는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가정한 뒤 기후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주목한다. 따라서 현재 시점으로부터 하루나 이틀 뒤 대기운동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일기예보와는 접근방법이 다르다.
미래의 기후전망은‘2100년 1월’ 같은 어느 특정 시점의 기후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기후 변화 양상을 가장 그럴듯한 확률로 보여준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상당히 존재하는데, 이는 ‘지구온난화의 몇 %가 온실효과에 의한 것인지’ ‘미래에는 온실기체 배출이 얼마나 증가할 것인지’ ‘지역적으로 지구온난화에 반응하는 정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처럼 정량적인 평가에 있어서 오차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내뿜는 온실기체가 지구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하기 위해서는 주로 전구기후모델(GCM, Global Climate Model)을 이용한다. 전구기후모델은 전지구를 동서, 남북, 연직방향의 3차원으로 조각내 각 격자마다 기온이나 강수, 습도 같은 물리량을 수치방정식으로 계산한다. 이때 격자의 간격을 조밀하게 나눌수록 예보결과는 정확해지지만 계산에 드는 시간과 계산의 결과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기후를 모사하기 위해서는 내일이나 모레 날씨를 예보하듯 계산시간이 2~3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수년에서 수십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통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엄청난 양의 적분을 하는 일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한다 할지라도 전지구를 세밀하게 모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전구기후모델은 전지구나 대륙 규모의 기후는 잘 예측하지만 각 지역의 상세한 기후를 모사하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경우 전구기후모델에서 한 개나 두 개의 격자로 표현되기 때문에 서울과 나주, 대구가 같은 격자 안에 속할 수 있다.
이는 세 지역에서 같은 기후가 나타난다는 얘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구에서는 사과가, 나주에서는 배가 더 유명한 이유는 각 지역의 기후 조건이 사과와 배가 영글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평균기온이 계속 올라간다면 한반도에서는 어떤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전구기후모델이 생산한 성긴 격자 간격의 기후조건을 한반도에 세분화시키면 그 비밀을 풀 수 있다. 실제로 지역기후모델(RCM, Regional Climate Model)은 장기간의 지역기후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전구기후모델보다 우수하고 집중호우나 가뭄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도 잘 재현한다.
특히 수자원의 경우 강수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한반도에 초점을 맞춘 좀 더 구체적인 기후예측자료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과와 배의 품종을 찾기 위해서는 대구와 나주 지역에 알맞은 기후정보가 필요하다.
지난 20세기 동안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약 1.5℃ 상승했고 20세기 후반부터 기후 변화로 강수의 패턴이 변하면서 집중호우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수년 동안 필자는 최신의 지역기후모델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20km 격자 크기의 상세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생산하고 분석했다.
기온 꾸준히 늘고 지역별 강수 격차 커진다
‘B2 온실기체 배출 시나리오’(210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약 600ppm까지 증가)로 한반도의 기후를 전망했더니 환경지향적인 배출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평균기온이 꾸준히 증가해 2070년대에는 현재(1971~2000년)의 평균기온보다 3.2℃ 더 상승했다. 추운 날은 눈에 띄게 줄고 푹푹 찌는 더운 날은 증가했다.
지구온난화 경향은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에 뚜렷이 나타나며 고위도로 갈수록 심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눈의 면적이 줄고 지표면이 햇빛을 반사하는 정도인 알베도가 감소하는 탓이다. 지표면이 더 많은 태양복사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온도 상승폭은 점점 커진다.
기온과 달리 강수량은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계절이나 해마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지구온난화 때문에 대기 중 수증기량이 많아지면서 강수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강수가 특정 지역에만 치우치면서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질 거란 점이다. 어느 지역에는 극심한 가뭄이, 어느 지역에는 위협적인 홍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혼재하는 셈이다. 더욱이 이런 지역적 분포는 하루 80mm 이상 퍼붓는 강도 높은 강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다.
미국의 전 부통령인 엘 고어가 1000번이 넘는 강연을 기반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에서 그는 지구온난화를 ‘지구와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고, 미래에는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하나뿐인 지구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구가 보낸 경고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일은 과학자들의 몫이다. 과거에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이 부족했다. 그러나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눈부시게 발전하며 과학에 근거한 수많은 온난화의 증거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희망적인 ‘온실기체 감축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
2030년
“지구온난화에 열섬효과까지 더해진 서울은 이제 더 이상 살기 힘든 곳이 돼버린 걸까. 아직 6월이건만 수십명이 더위 때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2005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지난 10년(1994~2003년) 동안 여름철 이상고온으로 사망한 사람이 다른 기상재해의 사망자 수보다 2배 정도 많았다면서 2030년경에는 혹서 사망자가 서울에서만 수십명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2050년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농경지와 가옥이 침수된다. 비가 한번 내리면 수백mm씩 퍼부어 마치‘물폭탄’이 쏟아지는 듯하다. 올해 금강유역은‘상습홍수지역’으로 정해졌다.”
2006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2051~2080년 금강유역에서 평년보다 최고 3배나 많은 2억4900만원의 홍수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과 동진강 유역이었다.
2070년
“강원도 태백시에서 벼농사를 짓는 이모씨는 벼의 발육속도가 빨라지고 수량이 증가해 지구온난화의 덕을 보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농림기상학회지에 실린‘지구온난화에 따른 우리나라 벼농사지대의 생산성 재평가’란 논문에 따르면 조생종 오대벼, 중생종 화성벼, 만생종 동진벼 모두 2011~2040년 무렵 출수기가 1주일 빨라지고 2071~2100년에는 최대 20일까지 단축될 가능성이 있다. 산악지대에서도 벼의 발육속도가 빨라지며 수확량이 늘 수 있다.
2100년
“제주도의 해안지역이 물에 잠기며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2007년 국립해양조사원은 제주도의 해수면이 매년 0.5cm씩 상승해 지난 43년(1964~2006년)간 약 22cm나 올라갔다면서 이대로라면 금세기 말에는 연안지역의 상당 부분이 침수될 것으로 전망했다.
“ 개나리와 진달래가 2월 무렵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가 지난 83년간 (1922~2004년) 서울의 봄꽃 개화시기를 조사한 결과 개나리의 개화시기가 10년마다 2.4일씩 앞당겨졌다. 같은 기간 서울의 연평균기온은 2℃나 높아졌다. 이 추세대로라면 2100년경 서울에서는 2월에도 봄꽃을 볼 수 있다.
“2003년의 매미 같은 태풍이 2100년에는 더 강력한 태풍으로 성장했다. 태풍을 키운 건 8할이 뜨거운 바다였다.”
부경대 대기과학과 오재호 교수는 2003년 발생했던 태풍 매미가 2100년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가정하고 태풍의 강도를 예측했다. 해수면 온도를 제외한 다른 조건을 모두 동일하게 유지했더니 뜨거운 바다에서 태어난 미래의 태풍은 동해안을 빠져나가면서도 세력이 약해지지 않았다. 특히 부산 근처 해안가의 풍속이 과거보다 6~7m/s 증가하고 하루 최대강수량도과거 240mm에서 350mm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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