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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는 없다, 216초와 137초의 아픔을 잊어라.’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KSLV-Ⅰ)’가 모든 채비를 마쳤다. 10월 26일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세 번째 도전에 나선다. 2009년 8월 25일 첫 시도에선 발사 216초 후 페어링(위성 보호덮개) 비정상 분리로 위성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2010년 6월 10일 2차 발사에선 137초 만에 통신 두절로 다시 한 번 꿈을 접었다. 이제 뒤는 없다. 3차 발사를 앞둔 나로호는 1, 2차 발사때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연 한국형 독자 발사체의 초석이 다져질까. 마지막 발사를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나로호를 다시 한번 샅샅이 점검해 보자.






“그동안 실패 원인 규명, 개선 보완 작업 및 검증 실험을 착실히 해왔습니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은 지난 9월 13일 나로우주센터에서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번이 마지막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갖춰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사실이 그랬다. 나로호 1단 발사체를 책임지는 러시아 흐루니체프사가 최대 3번만 발사체를 공급하기로 돼 있기 때문에 이번 발사가 마지막 시도다. 두 번의 실패에서 얻은 숙제를 지금까지 풀었다. 항우연의 과학자들은 실패 원인을 아예 원천 봉쇄했다. 러시아와 책임 공방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도 없앴다. ‘삼 세번’ 해야 성공한다는 우리나라만의 정서에 과연 나로호는 부합할 수 있을까.

두 번의 실패

2009년 8월 25일 오후 5시, 외국에서만 일어날 법한 일이 전라남도의 한 작은 섬에서 진행됐다. 로켓처럼 보이는 하얀색의 발사체가 거대한 화염과 굉음을 뿜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환호와 탄성도 잠시, 채 4분이 되지 않아 나로호에 실린 과학기술 위성이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페어링 분리 실패로 발사 9분 뒤 목표로 했던 고도 306㎞에서 과학기술위성 2호가 분리되지 못하고 고도 340㎞에서 분리된 게 원인이었다. 페어링 한 쪽이 분리되지 않으면서 위성 자세제어가 불가능해졌다. 2단 킥모터가 연소됐지만 궤도 진입에 필요한 초속 8km에 이르지 못하고 약 6.2km의 속도로 분리됐다. 예상고도보다 34㎞ 정도 더 올라가 분리되면서 대기권에 진입했고 불타 소멸돼 브라질 연안에 떨어졌다.

조사 결과 페어링 분리에 필요한 화약이 터지기 위해서는 고전압 전류가 출력돼야 하는데 방전현상이 발생해 216초에 화약이 폭발하지 않았다는 게 원인이었다. 이에 따라 페어링 분리기구가 불완전하게 움직이면서 기계적으로 페어링이 끼는 현상이 발생했다. 두 번째 발사는 2010년 6월10일 오후 5시1분. 발사 후 137.19초, 고도 70㎞ 지점에서 페어링 분리가 확인이 안됐고 통신이 두절됐다. 한·러 공동조사단은 실패 원인을 발표했다. 한국측은 △1단 추진시스템 이상작동에 의한 ‘1·2단 연결부 구조물’ 부분파손과 △‘산화제 재순환라인 및 공압라인’ 등의 부분파손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러시아 측이 제공한 1단 발사체에 이상이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러시아 측은 ‘상단 비행종단시스템(FTS) 오작동’ 의견을 제시했다. 양 측은 지리한 공방을 시작했고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은 한국 및 러시아 측 가설을 모두 인정하고 개선 및 보완 조치를 취했다.





3차 발사대에 선 나로호, 뭐가 달라졌나

3차 발사를 앞둔 나로호는 크게 두 가지를 확 바꿨다. 우선 페어링 분리를 위한 전압시스템을 저전압으로 변경했다. 2차 발사 실패의 원인으로 러시아 측이 지목한 비행종단시스템(FTS)의 기폭장치도 없앴다.

페어링 분리를 위한 전압시스템은 정확하게 화약장치의 기폭 시스템인데 기존 고전압(2400V)에서 저전압 방식(28V)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페어링 분리를 위한 기폭장치(FSDU)와 기폭관의 설계를 변경했다. 기폭관을 바꾸면서 페어링의 구조 자체를 수정했다. 1단 발사체가 동작할 때 높은 전압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회로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만큼 오류를 없애는 과정이다(페어링 분리 저전압 시스템에 대해선 뒤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자).

비행종단시스템의 경우 모든 화약 장치를 제거했다. 2단 발사체에 탑재된 비행종단시스템은 궤도를 벗어나는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때 화약을 터뜨려 나로호를 폭파시킨다. 혹시나 궤도를 벗어나 민가에 떨어질 경우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장치다. 비행종단시스템의 화약 장치를 제거하면 발사 관제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바꿔 사고를 막아야 한다. 나로호발사추진단은 비행 안전성을 검토한 결과, 기폭장치가 없어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페어링 분리, 저전압 시스템으로 바꾼 이유는

1차 발사 실패의 표면적인 원인은 페어링 분리 오작동이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인정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났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고전압 기폭 장치의 방전이 거론됐는가 하면, 기계적인 결함도 지적됐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오작동 원인을 아예 모두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래서 발사 후 방전에 의해 고전압 기폭장치를 작동하는 데 충분한 전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가설에 대한 해결책이 저전압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방전 논란은 1차 발사 후 지상에서 실험을 통해 방전 현상이 실제로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발사추진단은 페어링이 분리되는 시점에 페어링 내부에 압력이 어느 정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압력 때문에 100% 진공 상태가 아닌 이른바 ‘저진공 상태’에 놓인다. 저진공 상태와 방전 현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장영순 발사체구조팀장은 “전기 특성상 완전 진공이나 대기 상태보다 저진공 상태에서 방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저진공 상태로 페어링 기폭 장치를 작동시켜 보니 방전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추진단은 1차 실패 후 전자박스와 연결케이블, 커넥터 등 전기장치에 몰딩 처리를 했다. 방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2차 발사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고전압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페어링 분리시스템을 우선 살펴봐야 한다. 페어링 분리 시스템은 두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페어링을 기계적으로 붙들고 있는 분리 기구다. 기계적인 장치와 이를 분리시키기 위한 화약 장치를 포함한다. 또다른 하나는 분리 기구에 기폭 에너지를 전달하는 기폭 시스템이다.

고전압이냐, 저전압이냐는 앞서 설명한 기폭 에너지를 고전압으로 전달하느냐, 저전압으로 전달하느냐를 말한다. 이에 따라 설계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고전압 시스템은 배터리로 전기에너지를 상당량 저장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방출하지만, 저전압 시스템은 스위치로 차단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전압을 흘려준다.

두 시스템의 장단점도 확연히 다르다. 고전압 시스템은 기폭 장치나 기폭관이 높은 전기에너지에 작동하기 때문에 외부의 잘못된 신호에도 작동하지 않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방전 때문에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저전압 시스템은 외부 충격에 민감한 게 단점인 동시에 지상에서 취급할 때 좀 더 주의해야 한다.

추진단은 저전압시스템으로 전환한 후 수백회 지상실험을 진행했다. 회로 설계를 바꾼 후 정상 동작하는지, 진공 상태에서 괜찮은지, 여러 충격을 가한 후 발사시에 정상으로 작동하는지, 기폭은 제대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장영순 팀장은 “나로호 개발 초기에는 고전압용 기폭관밖에 없었지만 2차 발사 후 저전압 기폭관이 개발됐기 때문에 고전압 시스템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며 “수백회 지상실험 후 발사 시와 똑같은 페어링 분리 모의 실험을 3회 진행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까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나로호 비행종단시스템, ‘계륵’이었나

1차와 2차 나로호 발사 때는 항우연이 설계제작한 2단 고체 킥모터에 FTS가 탑재됐다. 1단에 FTS 기능이 있는데도 2단에 별도로 탑재한 이유는 FTS 기능을 독자 설계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 2단의 FTS가 작동하면 최종적으로 화약장치를 기폭시켜 2단 추진기관인 킥모터 케이스를 일부 파괴한다. 이렇게 되면 내부 압력이 낮아져 추력이 제대로 생기지 않는다.

다시 3차 발사 얘기로 돌아가보자. 2단 고체 킥모터의 FTS 화약장치를 제거했다는 의미는 강제 종료 기능을 없앴다는 말과 같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2차 발사 실패 원인 중 FTS 오작동 문제를 러시아 측이 지속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항우연 측은 오작동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전에 제거하는 게 맞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나로호 비행의 안전성은 보장되는 것일까. 고정환 나로호체계종합팀 박사는 “1단 비행구간에서는 1단 FTS에 의해 필요할 경우 비행종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2단 비행구간에서 FTS 기능이 없어도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분석했다”며 “분석한 결과 1단이 정상 비행해 단분리가 진행되면 2단은 충분한 속도 및 고도를 지닌 상태에서 비행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위험한 일은 없다는 최종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호가 발사되면 제주도와 일본 서쪽 후쿠시마에서 각각 약 100km 떨어진 곳을 지나 비행한다. 발사 후 3분 이내에 고도 100km를 돌파하게 되는데 페어링 분리 단계까지 1단 비행구간이므로 페어링 분리 후 비행하는 구간을 분석해 보면 2단 비행구간의 예상 지상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 페어링과 1단 낙하 지역은 필리핀에서 500km 이상 떨어진 태평양 해상이므로 2단 구간의 안전성에는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어찌 됐든 러시아 측이 2차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한 2단 엔진 FTS 오작동 문제를 아예 없앤 상황에서 나로호는 3차 발사에 나선다.



운명의 540초! 관전포인트는 15분전, 215초, 395초, 453초

오는 10월 26일로 예정된 나로호의 세 번째 도전.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발사 15분 전이다. 이 때부터 발사체 이륙 직전까지 1단과 2단의 발사관제시스템에 따라 발사준비가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15분 전이 왜 중요할까. 이른바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간’에만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발사 후 540초도 중요하지만 발사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15분 전을 언제로 정하느냐도 초미의 관심사다.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상단에 실려가는 시험 위성을 위해서다. 위성은 태양 에너지가 주요 동력이기 때문에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후 위성의 태양 전지판이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궤도에 진입한 위성이 지구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자체 배터리를 사용해야 한다. 그만큼 수명이 짧아진다. 따라서 태양의 위치와 위성 궤도면을 계산해 태양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를 발사시간으로 정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나로호에 실려가는 시험 위성은 위성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일식’이 10% 이하 조건일 때 초기 운용에 필요한 전력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됐다. 즉 위성이 지구 때문에 태양 에너지를 못받는 시간이 2.4시간 이내일 때를 계산해 발사 시간을 정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조건을 고려해 3차 발사 시간은 오후 3시 30분에서 오후 7시 10분 내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발사가 순조롭게 이뤄진 후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이륙 후 215초다. 이 때는 위성을 감싸고 있는 페어링이 분리되는 시점이다. 앞서 언급한 저전압 시스템의 안정적인 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대다.

페어링이 정상적으로 분리된 후 395초 지점에서는 2단 킥모터의 점화가 이뤄진다. 1차 발사 때도 무리 없이 진행됐기 때문에 우려할 요소가 많지 않다. 발사 후 453초에는 2단 엔진의 연소가 끝나면서 시험 위성이 목표궤도에 진입한다. 운명의 540초에는 위성이 분리되며 나로호 발사 성공의 순간을 맞게 된다.



한국형 발사체 초석 다져지나

나로호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위한 첫 단계다. 1, 2차 실패 후 1단 액체엔진 발사체를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동안 기술 이전이 전혀 없어 ‘굴욕적 협력’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항우연 측은 공식적인 발사체 기술 이전은 계약 당시부터 불가능했다는 점, 1단 엔진 구매계약이 아니라 발사체 개발 및 발사, 발사장 인프라 구축 등이 포함된 종합 기술협력 계약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광래 단장은 “발사체의 기술적 검증과 비행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최종 단계가 발사 운영이며 발사운영의 기술과 경험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발사체 1단 액체엔진은 이미 선행연구를 통해 별도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사운영을 통해 발사체 이송·조립·지상지원설비 운용기술·관제 기술·발사체 임무운용 기술·발사결과분석기술 등 핵심 기술을 다수 확보했다는 얘기다.

한국형 발사체 사업은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저궤도(600~800km)에 투입할 수 있는 독자 우주발사체 개발이 목표다. 발사체 설계, 제작, 시험 및 발사운용 경험을 나로호를 통해 축적하고 오는 2018년 75t급 액체엔진 개발 후 시험발사를 통해 성능을 검증할 계획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나로호. 지난 5년 간 지난한 여정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발사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0번째로 ‘스페이스 클럽(space club)’에 가입한다.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나라를 일컫는 스페이스 클럽에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등이 포함된다. 나로호 발사 성공은 나로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독자 기술로 발사체를 확보하기 위한 사투였다. 예정된 10월 26일, 숨죽이며 온국민이 다시 한번 지켜볼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됐다. 나로호는 과연 한국형 발사체 기술의 초석을 다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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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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