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철새보호만을 외치는 감상주의자가 아닙니다"
"낙동강은 천연의 빛과 숨소리를 잃어가고 있다. 푸른 하늘과 맑게 투영되던 강심은 이제 흐려져, 그 하늘빛과 그 구름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 수려한 강변과 모래톱은 남루하여 강은 애타게 신음하고 있다. 푸르른 강물에 독한 갖가지 폐수를 버리는 자연파괴의 손길 때문에 어족들은 병들어가고, 새들은 오염된 강구의 모래톱에서 사라져가는 먹이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 빛과 푸르름과 생기와 숨소리를 잃어가는 낙동강을 살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고유한 임무요, 권리이다."
이 글은 모잡지에서 한국의 대표적 명문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던 '낙동강보존회선언문'의 서두다. 낙동강의 자연환경파괴를 가슴 아파하며 그 보존을 다짐하는 결의가 단어 하나, 하나에 깊이 스며있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특정지역의 환경보존을 위해 결성된 순수민간단체인 낙동강보존회의 구철회(具鐵會·60)회장을 만나 을숙도하구둑공사 등 낙동강을 둘러싼 환경문제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하구둑건설은 왜 문제인가
-선언문을 보면 낙동강의 환경파괴에 대해 심각할 정도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데, 한마디로 현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시다시피 을숙도하구둑공사가 오랜 논란끝에 지난 84년 봄에 정식으로 착공돼 지금 상당한 정도까지 진척되고 있읍니다. 저희들 생각으로는 사전에 환경영향평가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예상되는 자연파괴 및 부작용이 너무나 심각하므로 낙동강은 이제 사활의 기로에 놓여있는 형편입니다."
-을숙도하구둑건설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구둑의 건설이유는 무엇이고, 예상되는 부작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부산시 서구 하단쪽에서 을숙도를 가로질러 명지쪽을 둑으로 연결하는 1천6백여억원의 토목공사가 바로 하구둑공사입니다. 이 지역에 둑을 쌓으면 바닷물의 역류를 둑으로 막게 되므로 낙동강물을 식수와 공업용수 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둑위로 길을 내 진해까지의 거리를 10㎞단축시킨다는 것이 목적으로 돼있읍니다."
을숙도하구둑 얘기가 나오자 구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 될 '낙동강의 황폐화 전망'을 들어보자.
"간단히 정리하면 하구둑공사로 인해 식수원의 오염과 홍수 그리고 철새도래지의 상실을 들 수 있읍니다.
현재 부산시민의 식수원은 하구둑에서 불과 10㎞ 위인 물금부근의 낙동강물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미 3급상수도원의 허용기준치를 초과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하구둑이 건설되면 사상공단과 양산공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 특히 중금속물질이 하구둑 안으로 흘러들어와 퇴사와 함께 누적될 것이므로 그나마 수질이 더욱 오염될 전망입니다. 하구둑 때문에 오염된 강물이 바다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얘기지요.
두번째로 홍수피해가 더욱 우려되는데, 이는 낙동강하류의 하상이 주변의 사상이나 구포 김해보다 해발고도가 같거나 높은 천정천(天井川)으로 돼있는데서 비롯됩니다. 이같은 하천의 특성은 낙동강 중·상류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리면 하류가 범람하게 되지요. 여기에 하구둑까지 건설되면 하구둑내의 수위가 1.5m 높아지게 될 것이고, 또 낙동강 중·상류에서 운반돼온 막대한 양의 퇴사가 하구밖으로 유출되지 못한채 둑안에 퇴적하게 돼 하상이 더욱 높아지게 될 겁니다. 따라서 홍수피해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상당히 심각한 결과를 예상하고 계시는데, 당국에서는 별 대책이 없어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하구둑공사와 함께 사상공단에서 배출되는 중금속류를 선별해 별도의 파이프를 설치, 하구두밖의 바다쪽으로 흘려보낸다든가 홍수예방을 위해 하구둑건설후 해마다 둑안에 퇴적된 퇴사를 준설하는 방안이 강구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정도의 대책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안되리라는게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인간답게 살려는 최소한의 주장
-일반인들은 오염이나 홍수피해보다는 오히려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을숙도가 피폐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있읍니다만…….
"을숙도파괴도 물론 심각한 일입니다. 하구둑이 건설되면 하구로 흘러드는 영양염류가 감소되는 대신 오염물질이 증가하게 될것이므로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될 것은 뻔합니다. 이렇게 철새들의 서식조건이 악화되면 철새도래지로서의 을숙도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하구둑공사가 벌어진 후 을숙도에는 이미 새들이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그나마 공사가 끝나면 둑안쪽에 해당되는 을숙도의 3분의1은 수몰돼버릴 것이고, 나머지 둑바깥의 3분의 2부분도 침식작용이 일어나 원형이 파괴될것으로 저희는 추측하고 있읍니다."
-얘기를 듣고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닌것 같은데요. 낙동강보존회에서는 그동안 어떻게 대처해 왔읍니까.
"78년 5월20일 창립했으니까 벌써 9년이 돼가는 셈입니다. 78년12월에 정부에서 자연보호헌장을 제정하는 등 자연보호를 부르짖었으니까 그보다도 먼저 자연보호를 외친 셈이지요.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대충 일별해보면 낙동강수질보존에 관한 건의문 발송, 낙동강하구개발과 보존에 관한 세미나와 토론회, 낙동강걷기대회, 탐조회, 낙동강사진전, 을숙도걷기대회, 낙동강하구둑건설에 대한 부산시민의식조사 등등 다양하게 활동해오고 있는 중입니다."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층들이 많아요. 교수나 의사 언론인 등 전문직 종사자도 많고, 예술가와 문학인들도 참여하고 있읍니다. 회원수는 6천명이 넘습니다."
부산시 광복동에 사무실을 두고 '洛東江'이라는 회지까지 발간하고있는 낙동강보존회는 우리 사회에 보기 드문 환경보전민간단체인 셈이다. 의사의 신분으로 이 모임을 이끌게된 사정을 물어봤다.
"낙동강변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관심을 안가질 수가 없는 일이죠. 고향은 경남 창녕입니다만 60년부터 부산에서 살았으니까 누구 못지 않게 낙동강의 자연에 애착을 갖고 있읍니다. 그리고 제가 부산시산악연맹회장도 맡았었고 수석동호회장도 했으니까 자연에 대해 평소 많은 관심을 쏟고있었던 셈입니다."
- 앞으로의 낙동강보존회 활동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하구둑건설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금년에는 보존회에서 낙동강에 대한 수질조사 철새조사 어패류조사 등 학술연구활동을 계속할 예정이고, 이외에 탐사회 학술강연회 그리고 낙동강보존기념비건립 등을 계획하고 있읍니다.
하구둑은 이미 건설중에 있으니까 없앨수도 없고 해서 차선책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면 수질오염대책으로 공장폐수정화시설이라든가 둑안쪽에 쌓일 토사의 준설문제를 당국에 촉구하고 있어요.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을숙도와 명지 사이의 조간대를 매립해 대규모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하려는 계획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대안을 내놓을 작정입니다. 이 문제는어찌 보면 하구둑건설보다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한가지 다행스런 일은 하구둑공사에 차관을 제공하고 있는 IBRD측에서 '철새도래지는 최소한 확보해야 된다'는 요구를 해오고 있고, 환경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낙동강과 을숙도에 관한 얘기라면 끝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이곳이 파괴돼버릴지도 모른다는데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구회장은 마지막으로 "낙동강보존회가 마치 철새들의 보호만 부르짖는 감상주의자들의 모임으로 오해하는 일부의 시각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인간답게 살려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을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