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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올여름 최악의 무더위 올까

출처도 근거도 없는‘폭염논쟁’이제 그만


올여름 최악의 무더위 올까


“최근 두 달 동안 북반구의 겨울철 기온은 기록적으로 높았다. 1997~1998년 엘니뇨 때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고로 올라갔던 것처럼 올해도 엘니뇨와 지구온난화로 가장 더운 한해가 될 것이다.”

지난 3월 21일 한국기상학회가 개최한 ‘기상학술심포지엄 2007’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노교수의 입가로 수많은 시선이 교차했다. 주인공은 바로 영국 이스트앙겔리아대의 필 존스 교수. 그는 전지구의 육지와 해양에서 온도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고, 밤 기온도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는 관측 결과를 발표하며 지구온난화의 증거를 조목조목 들었다. 그러나 유독 많은 플래시가 터진 것은 ‘올해가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는 대목에서였다.


물놀이


‘한반도 폭염’의 진실


지구와 한반도의 평균기온 Top 5


언론은 저명한 과학자의 발언을 발 빠르게 보도했다. ‘방한 영국 교수, 올해 여름 역사상 가장 더울 수도’ ‘역사상 가장 더운 올해, 슈퍼급 태풍 온다’라는 헤드라인이 신문지면을 뜨겁게 달궜다. 가전제품회사는 이때를 놓칠세라 에어컨을 서둘러 구매하라며 소비자를 재촉했다.

필 존스 교수의 발언은 언론 보도를 거치며 과장과 왜곡의 날개를 달았다.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란 말의 주어가 ‘전지구’에서 ‘한반도’로 탈바꿈하고 시제는 ‘올해 여름’으로 고정됐다. 게다가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는 ‘슈퍼급 태풍’이란 말도 갑자기 등장했다. 마치 올여름 한반도에 최악의 ‘더위 폭탄’에다가 ‘슈퍼태풍’까지 몰려올 것처럼 대재앙 시나리오를 펼친 셈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 한반도의 기온도 올라간다. 실제로 한반도 상공의 온실기체 농도는 전지구의 온실기체 평균 농도를 웃도는 추세이며 기온 상승폭도 더 크게 나타난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1.5℃나 상승해 같은 기간 전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0.74℃)보다 두 배나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어느 특정한 해에 지구의 평균기온이 높이 올라간다고 해서 반드시 한반도가 뜨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기상청 기후예측과 윤원태 과장은 “지난 30년간 한반도의 연평균기온을 지구의 연평균기온과 비교했을 때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2007년 전세계가 무더위에 시달린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나라도 더울 거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강력한 엘니뇨가 맹위를 떨치던 1998년, 지구촌과 한반도는 공통적으로 가장 더운 한해를 보냈다. 하지만 1998년을 뺀 나머지 해에는 지구촌과 한반도 평균기온 사이에 별다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제임스 한센 박사가 기온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던 2005년에도 우리나라는 평년과 비슷한 기온을 보였다. 당시 언론은 ‘한반도에 100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올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 예측은 빗나갔다.

여름철 기온과 연평균기온의 관계?

만약 2007년 한반도의 연평균기온이 급격히 올라간다고 가정해도 이 결과를 여름철 폭염으로 성급히 몰아갈 수는 없다. 연평균기온은 12달의 기온을 평균한 값이므로 계절에 따라 기온 변화폭이 달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대 대기과학과 하경자 교수는 “한반도에서 지구온난화는 무더운 여름보다 포근한 겨울을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의 연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해는 1998년, 1994년, 2004년, 1990년의 순서지만 가장 더웠던 여름은 여름철 평균기온(6~8월 기온의 평균)이 25.27℃를 기록했던 1994년이었다. 게다가 전지구와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1998년, 우리나라 여름철 평균기온은 23.2℃로 1994년보다 2℃나 낮았다.

결국 얼마 전 있었던 ‘한반도 폭염’ 보도는 ‘지구의 평균기온’과 ‘한반도의 평균기온’, 그리고 ‘여름철 평균기온’ 사이의 간극을 언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기자가 필 존스 교수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확인한 결과 그는 “지난 십년간 지구의 평균기온이 0.2℃ 상승했고 작년 말 엘니뇨까지 발생하면서 올해 지구가 좀 더 더워질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1~2월이 따뜻했다고 해서 그 해 여름도 더울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지구온난화는 한 지역에는 더위와 가뭄을, 또 다른 지역에는 홍수와 폭설을 불러오는 ‘야누스적인 얼굴’을 지녔다. 유럽에서는 해마다 폭염과 가뭄 피해가 늘고 있지만 아시아의 인구 밀집지역은 엄청난 홍수로 물난리를 겪는 것처럼 말이다.

오랜 경험과 첨단기술로도 어려운 장기예보


오랜 경험과 첨단기술로도 어려운 장기예보


그렇다면 과연 올여름의 날씨는 어떨까. 다가오는 여름과 겨울의 날씨를 알려주는 계절예보는 장기예보에 속한다. 현재 기상청은 매달 상순, 중순, 하순마다 1개월 예보를, 3개월마다 계절예보를 한다.

장기예보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1971~2000년 사이의 기후평년값을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동시에 해수면 온도 같은 관측 자료를 얻고, 기간 내에 이상기상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분석한다. 이렇게 얻은 자료가 기후예측모델이나 통계모델을 거치며 예보 초안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다른 나라의 계절예보 자료도 참고한다.

이제 예보관들이 예보 초안을 놓고 고민에 빠질 때다. 예보 회의는 1, 2차를 거치는데, 예보관들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중?일 장기예보전문가 합동회의의 결과까지 고려해 최종 예보문을 완성한다. 지난 4월 4일부터 사흘간 중국 북경에서 열린 한?중?일 장기예보전문가 합동회의에서는 ‘2007년 여름 한국은 평년과 비슷한 기온을 보일 것’이라 전망했다. 이 회의에는 한?중?일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 등 23개국 1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석했다.

윤원태 과장은 “현재 엘니뇨가 정상상태로 접어든 데다가 앞으로 티벳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지고 오호츠크해고기압이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며 “올여름 대폭염이 올 것이란 전망은 명확한 출처도,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티벳고원 상층에서부터 동쪽으로 발달하는 티벳고기압은 북쪽의 찬 공기를 방패처럼 막아주는데 이 고기압의 힘이 약해지면 우리나라는 차가운 기압골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날씨를 알아야 돈을 버는데


올여름 무더위를 놓고 가전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무더위는 짧고 장마가 길어진다면 냉방제품의 매출은 크게 줄고 재고가 늘 것이다.


장기예보를 놓고 이렇듯 설왕설래하는 까닭은 장기예보 기간인 2주에서 1년 사이에 대기의 불확실성이 가장 커지기 때문이다.

장기예보는 어렵지만 정확한 장기예보에 대한 수요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가전제품이나 빙과류처럼 소위 ‘계절장사’를 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도 다가오는 여름 날씨예보에 귀를 곤두세운다. 민간 기상정보업체인 케이웨더 김경혜 기상컨설턴트는 “비록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많은 기업이 장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고 앞으로 맞춤형 기상정보에 대한 기업이나 개인의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여름 폭염 소식에 벌써부터 두려워진다면 일단 언론의 보도가 정확한지 꼼꼼히 따져보자. 그리고 작년 이맘때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월드컵 거리응원을 하며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장마 뒤 찾아온 열대야로 잠 못 들지 않았는지. 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겨라. 무책임한 ‘폭염선언’에 휘둘리지 말고 공포영화나 래프팅 같은 시원한 ‘무기’를 마련해두자.

장기예보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안중배 부산대 대기과학과 교수 jbahn@pusan.ac.kr


현재 기상청이 예보에 사용하는 슈퍼컴퓨터 ‘크레이X1E’는 1초당 18조번의 계산을 한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기예보의 한계는 불과 10여일에 지나지 않는다. 대기의 운동이 매우 혼돈스럽고 비선형적인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 탓에 2주 뒤의 날씨를 예측하는 장기예보는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상청이 내놓는 여름철 장기예보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까.

예보관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해서 기상예보를 생산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첨단 기상예보모델을 주로 이용한다. 기상예보모델이란 대기의 운동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법칙을 미분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이를 컴퓨터가 인식해 풀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예보가 빗나갔다면 가장 큰 원인은 기상예보모델이 아직 불완전하다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기상예보모델이 끊임없이 발전해왔지만 여전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미숙하게 처리하고 있는 수많은 물리 현상이 존재한다.

게다가 컴퓨터의 더딘 발전도 예측의 정확도를 낮추는 중요한 원인이다. 지구의 대기를 격자 모양으로 나눠 시시때때 바뀌는 기상요소를 모사하는 방정식을 몇분 간격으로 계산해내려면 엄청나게 빠른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고해상도 기상예보모델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용량이 큰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부정확한 자료도 오차를 크게 만든다. 모델이 예측하는 미래의 기상 상태는 모델에 입력하는 기온이나 바람, 습도, 기압분포 같은 현재의 상태, 즉 초기값에 의해 결정된다.

실제로 초기값 생산 과정은 예보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관측으로 얻은 결과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초기값에는 늘 오차가 생긴다. 여기에 대기의 비선형적인 성질까지 더해져 작은 오차가 매우 다른 결과를 빚어내기도 한다. 현재 2주를 일기예보의 한계로 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2주 뒤부터 수개월 뒤의 날씨까지 예측하는 장기예보를 할 때는 초기값뿐만 아니라 경계값도 결과를 좌우한다. 해수면 온도나 지표면 온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그 값이 변하며 기후모델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경계값이라고 한다. 예보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기값보다는 경계값의 중요성이 커진다.

매일의 날씨를 예측하는 단기예보나 온실기체가 증가하며 나타날 변화를 내다보는 기후예측의 경우 정확도가 비교적 높지만 계절예보 같은 장기예보는 초기값과 경계값 모두를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예측력이 떨어진다.

최근 장기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대기뿐만 아니라 해양과 지면, 해빙과 같은 전지구의 구성성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서 예측할 수 있는 ‘접합대순환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장기예보에 쏠리는뜨거운 관심만큼 적중률도 높아지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회오리 바람이나 구름은 몇 시간 단위로 예보하고 폭풍이나 전선의 이동으로 생기는 날씨 변화는 단 기·중기예보에 속한다. 10일이 넘 어가면 기압과 계절풍을 전망해 장 기예보를 하고 1년 뒤의 날씨 전 망은 기후예측에 포함된다. 전지 구적 규모의 기후예측일수록 불확 실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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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신방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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