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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가면'우주법'따르라

국제우주정거장 벽에 1000원 지폐 붙여도 될까


한자리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은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생활하는 만큼‘우주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러시아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지 올해로 46년이 지났다. 반세기 가까이 400명이 넘는 사람이 우주를 방문하면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는 ‘우주풍습’도 생겼다. 안전한 비행을 기원하는 의식부터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까지. 최근에는 우주에서 지켜야 할 이슬람교인의 생활지침을 담은 책까지 나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우주에 가면 ‘우주법’을 따라야 한다.

발사장 가는 길 ‘자연의 부름’에 응해야
 

러시아의 우주탐사 전통 중에는 발사장으로 가는 길에 우주인이 버스 바퀴에 소변을 보는 의식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우주로 내보낸 러시아에는 그 역사만큼 ‘우주문화’도 다채롭다. 특히 바이코누르 기지를 거쳐 간 세계의 우주인들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러시아의 독특한 ‘우주의식’을 모두 치러야 한다.

출발하기 전날 오후 마지막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우주인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영화감상을 한다. ‘사막의 흰 태양’이라는 제목의 1970년대 러시아식 서부영화다. 이 전통이 언제 왜 생겼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우주인은 호텔을 나온 뒤 러시아정교회 신부로부터 축복을 받는다. 그리고 샴페인을 한 잔씩 마시는데, 경건한 분위기에서 건배는 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주선 소유즈를 실은 기차는 시속 5km의 느린 속도로 발사장으로 이동한다. 이때 러시아 우주국의 관료들은 동전을 레일 위에 올려놓고 이번 비행이 성공적일지 점친다. 로켓을 실은 기차가 지나간 뒤 동전을 확인했을 때 동전이 납작해졌으면 비행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100톤이 넘는 기차가 밟고 지나가는데 찌그러지지 않는 동전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만큼 러시아의 우주선 발사는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다.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국 관계자에게 마지막 신고를 하고 발사장으로 향하기 전까지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이때 환송하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할 때 우주인이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절대 악수를 하지 말 것. 악수가 우주비행에 불운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많은 환송객을 뒤로하고 우주인은 발사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몇km 떨어진 발사장으로 향하는 도중 잠시 멈춘다. 그리고 안전한 비행을 기원하는 가장 ‘거룩한’(?) 의식을 시작한다. 우주복을 잠시 열고 버스 바퀴에다 소변을 보는 것.

러시아의 우주탐사 전통 중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 의식은 1961년 4월 12일 세계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발사장으로 향하던 도중 버스에서 내려 바퀴에다 소변을 본 뒤 생겼다. 가가린은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자연의 부름’(call of nature)이라고 답했다. 물론 여자 우주인은 이 풍습을 안지켜도 된다.

가가린부터 가장 최근 소유즈를 탄 미국의 민간우주여행객 찰스 시모니까지 ‘거의 모든’ 우주인이 자신의 ‘요의’에 관계없이 자연의 부름에 응해왔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1995년 3월 14일 미국인으로 처음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탄 노르만 타가드는 누군가 자신이 소변을 보는 장면을 멀리서 찍고 있을지 모른다고 두려워 한 나머지 2명의 동료 러시아 우주인이 ‘의식’을 행하는 동안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미국에도 우주탐사를 떠나기 전에 치르는 전통이 있다. 우주왕복선 발사를 2주 앞두고 바로 전에 비행한 팀의 배우자들이 출발을 앞둔 우주인들의 부인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 여기에는 여자우주비행사가 함께 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남자는 절대로 참가할 수 없다.

발사 당일에는 우주인을 위한 특별한 아침식사가 준비된다. 준비된 음식은 간단하지만 긴 식탁 한가운데 우주선 휘장으로 장식한 케이크가 놓인다. 이 케이크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냉동시켜 놓는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전쟁터에 나가며 ‘따뜻한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ISS 모듈 벽에 붙은 1달러의 진실
 

01미르우주정거장에서 1997년 발견된 맥주 캔. 공식적으로 술은 우주정거장에 가져갈 수 없다. 02ISS 즈베즈다 모듈 벽에 붙어있는 1달러 지폐와 50루블 지폐(원 안). 이 지폐의 용도는 무엇일까?


좁은 소유즈 캡슐에서 이틀 동안 지루한 여행을 끝내고 ISS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러시아 전통의 환영선물인 빵과 소금을 받는다. 그리고 ISS 모듈의 벽에 붙어있는 종을 울린다.

이 종은 2000년 미국의 우주인 윌리엄 셰퍼드가 ISS에 새로운 우주인이 도착했거나 지구로 떠날 때 이를 알리는데 사용하려고 가져왔다. 미국 해군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따왔다.

종 소리를 듣고 통제센터와 화상 인터뷰를 하면 이제 본격적인 우주생활이 시작된다. 적게는 2명, 많게는 10명까지 함께 지내는 ISS에 생활을 감독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주인은 러시아 우주국이 정한 규율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

그 중 우주에 술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규율이 있기는 하지만 우주인이 술을 우주복 안에 감춰서 조금씩 가져온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1997년 미르 정거장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공동임무 수행 중에 기계 장치 안에서 맥주 캔을 발견하기도 했다.

사실 사생활이 거의 보호되지 않는 ISS에서 이런 규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티켓이다. 2003년 11월 23일 러시아의 즈베즈다 서비스 모듈의 트레드밀(러닝머신)을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사진 왼쪽 귀퉁이에서 벽에 붙어 있는 1달러 지폐와 50루블 지폐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본 ‘지구인들’은 이 돈의 용도에 대해 궁금해했다. 우주인의 포커 내기용 돈, 최초의 우주 은행에 맡긴 돈, 또는 소유즈의 탑승의자의 떨림을 막기 위해 접어서 끼워 넣을 돈이라는 등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 돈은 ISS를 더 특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주인이 만든 새로운 전통임이 밝혀졌다. 이 전통은 미르정거장에서 한 미국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인에게 1달러를 건네며 “영화 한편을 봐도 되겠냐”고 장난스럽게 요청한데서 시작됐다. 현재 ISS에서 우주인은 서로 무언가 부탁할 때 자국의 화폐를 주면서 부탁한다.

우주에서도 지켜야 할 이슬람 율법
 

미국 우주인 브렌트 제트(왼쪽)와 윌리엄 셰퍼드가 ISS에서 종을 울리고 있다. 새로운 사람이 오거나 떠날 때 이를 알리는 풍습이다.


우주라는 새로운 환경에 가면 지구에서 지키던 풍습을 지키기 어려울 때도 있다. 종교적인 의식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 10월 첫 자국 우주인을 배출하는 말레이시아는 지난 4월 우주에서 지켜야 할 무슬림의 행동지침을 담은 책을 출판했다.

무슬림은 1년에 한 번 있는 라마단 기간 동안 하루 다섯 번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를 향해 절을 해야 하며 햇빛이 있는 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야 한다. 공교롭게도 말레이시아 우주인은 올해 10월 라마단 기간 동안 ISS를 방문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의 종교지도자 무스타파 압둘 라흐만은 “ISS의 환경은 지구와 많이 다르겠지만 무슬림 우주인이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에 태양이 16번 뜨는 ISS에서 이런 규율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우주인 재량껏 메카의 방향을 찾아 절을 하고, 금식을 실천하지 못할 경우 지구에 돌아와서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이슬람식 조리법인 ‘할랄’(Halaal) 의식을 거친 음식인지 의심이 들면 배가 고파 참지 못할 때에만 먹으라는 다소 ‘맥빠지는’ 지침을 내렸다.

우주라는 새로운 개척지에 맞는 문화와 풍습이 지금도 생기고 있다. 내년 4월 우주시대 개막을 알릴 우리 우주인도 우주공간에 새로운 풍습을 하나쯤 만들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ISS 모듈 벽에 1000원 지폐가 붙어 있는 장면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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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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