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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육 따라 울고 웃었다

가짜 미소 가려내는 법

MBC 개그 프로그램 ‘개그야’에는 ‘아마데우스’라는 코너가 있다. 중세 유럽 황실 복장을 한 삼총사가 등장해 대사는 한 마디도 없이 온갖 표정만으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다. 이들은 얼굴 근육의 움직임만으로 인간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은 모두 보여준다. 삼총사 중 한 명은 어느 인터뷰에서 “얼굴에 근육이 발달해 ‘왕’(王)자가 생겼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1만개의 얼굴 표정


힐끗 쳐다보고,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입가엔 씨익 웃음이 번지고, 이내 입꼬리가 실룩이더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오만가지 표정’이란 말이 과학적으로 그리 틀린 표현은 아니다.


얼굴에는 근육이 40여개 있다. 이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조합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표정 연구의 대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대 심리학과 폴 에크먼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얼굴 근육 2개만으로 300가지의 표정을 만들 수 있다. 근육 3개로는 4000가지가, 5개로는 1만개 이상의 표정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때 근육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육이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피부의 주름, 코나 입의 움직임을 볼 뿐이다. 또 시선이나 머리의 움직임, 안색의 변화, 동공의 확장 같은 얼굴의 물리적인 반응을 관찰하기도 한다.

그런데 표정을 인식한다는 얘기가 단순히 얼굴에 나타나는 물리적인 변화를 감지하는 것만은 아니다. 물리적인 변화에 따른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 상태까지 파악해야 표정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표정은 언어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하고 복잡한 의사소통 신호라 불린다.

표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19세기 과학자들은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생기면 이에 따라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이 반응을 감지해 감정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긴장하기 때문에 손에 땀이 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자극으로 손에 땀이 나고 손에 땀이 났다는 사실로부터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미소를 지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미소 짓기 캠페인이나 웃을수록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는 웃음 훈련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 과학자들은 정서적인 반응이 생리적인 반응보다 일찍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생리적인 변화가 나타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주입해도 특정한 감정이 유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테면 긴장을 유발하는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을 주사한다고 갑자기 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표정은 생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정서적인 반응으로 만들어진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사람은 웃을 때 눈이 유난히 작아지고, 어떤 사람은 웃을 때 오른쪽 입꼬리가 왼쪽보다 유독 많이 올라간다. 입을 크게 벌리는 사람도 있고, 눈썹을 치켜뜨는 사람도 있다. 웃을 때 나타나는 표정 하나만 해도 각양각색인데, 신기하게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표정을 읽기가 어렵지 않다. 왜 그럴까.

표정은 타고난다?


팬터마임으로 유명한 찰리 채플린. 그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대사를 듣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다.


1872년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인간의 표정이 나라나 인종에 상관없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다. 표정은 타고나는 것이며, 인류 초기에 형성된 뒤 진화를 거듭해 보편적인 표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967년 에크먼 교수는 문명과 접촉이 거의 없는 파푸아뉴기니의 남동부 고원지대에 사는 포레족을 찾아갔다. 그는 포레족에게 자신이 가져간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의 표정을 짓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지금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일일이 물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포레족은 미국의 대학생과 일치하는 대답을 했다. 이는 다윈의 주장과 일치하는 얘기였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표현하고 상대방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타고났다. 인간에게 ‘표정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하이파대 진화연구소의 길리 펠레그 박사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표정을 연구했다. 펠레그 박사는 이들에게 기쁘고 슬프고 화나는 경험을 떠올리도록 주문하고 얼굴 표정을 비교했다. 그랬더니 시각장애인은 가족의 얼굴 표정을 본 일이 한 번도 없었지만 갖가지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 표정을 가족과 놀랄 만큼 비슷하게 나타냈다.

특히 윗입술을 안으로 말거나 혀를 내미는 등 화난 표정은 매우 비슷했다. 이는 특징적인 표정이 유전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특정한 얼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관여하는 ‘표정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쌍둥이 실험도 ‘표정 유전자’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유전정보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는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웃음이나 공포에 대한 얼굴 반응에서 훨씬 유사한 표정을 나타낸다.

물론 표정이 형성되는데 후천적인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가족은 표정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외부 환경이다. 2004년 미국 애리조나대 심리학과 칼로스 발리엔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부모를 둔 아이는 자신의 기분을 표정으로 훨씬 잘 표현하고, 동일한 자극을 받았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표출하는 어머니를 둔 아이는 부정적인 표정을 짓는 횟수가 많다.

지난해 인기를 끈 영화 ‘타짜’에는 포커페이스의 타짜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고니’는 자신의 장기인 포커페이스를 한 채 유유히 자신의 패를 꺼내 보인다. 하지만 고수인 ‘짝귀’에게 속마음을 읽혀 패배의 쓰라림을 맛본다. 짝귀는 고니의 가짜 표정을 읽었던 것이다.


영화‘타짜’에서 고니(조승우 분)의 트레이드마크는 무표정한 포커페이스다.


진짜 웃을 땐 눈 근육 움직여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왼쪽)이 가족과 흡사한 표정을 짓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표정은 유전되는 걸까.


가짜 표정을 지을 때는 대개 얼굴의 좌우 움직임이 비대칭이고 아래쪽이 주로 움직인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은 논리적인 판단을 관장하는 좌뇌와 감성적인 반응에 관여하는 우뇌의 기능이 분화돼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가짜 표정의 특징은 정점(peak)에서 표정이 유지되는 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정점에서 평상시 표정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도 길고 비연속적이다.

예를 들어 거짓 웃음을 지을 때는 웃음을 활짝 짓는 시간(정점)이 진짜 웃음을 웃는 시간에 비해 길다. 원래 감정이란 아주 짧은 순간 발생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표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미 100여년 전 프랑스의 신경학자인 뒤셴 드 브로뉴는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구분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눈 주위의 근육(눈둘레근)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수축시킬 수 없기 때문에 가짜로 웃을 때는 눈 주위의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기분이 좋아서 웃을 때는 눈 주위 근육이 움직인다.

실제로 관찰해보면 진짜 기분이 좋아서 웃을 때는 광대뼈로부터 입가 쪽으로 이어진 큰광대근과 눈둘레근이 함께 수축하지만 억지로 웃을 때는 큰광대근만 수축한다. 이런 현상은 10개월 된 아기에게도 나타난다. 아기가 낯선 사람에게는 눈 주위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 웃는 반면 엄마에게는 눈 주위를 움직이며 웃는다.

진짜 표정을 알아내는 방법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역겨울 때는 윗입술이 들리고, 화가 날 때는 얇아진다. 또 슬플 때는 눈썹 안쪽이 올라간다.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는 상대방에게 서로 다른 인상을 주기도 한다. 20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알리시아 그랜드니 교수는 배우들에게 호텔의 체크인 카운터 종업원 역할을 맡긴 뒤 한 그룹은 진짜 미소를 나머지 그룹은 가짜 미소를 짓게 했다. 그 결과 종업원과 손님 사이의 상호작용이 똑같아도 종업원이 진짜 미소를 지을 때 손님이 느끼는 친근감과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예로 2001년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리안 하커 박사와 대처 켈트너 박사는 졸업 앨범을 찍은 여성들을 30년 뒤 추적 조사한 결과 사진에서 눈둘레 근육을 움직여 진짜 미소를 보인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더 컸다. 진짜 미소가 미치는 영향이 생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셈이다.

앞으로 지인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는 :-), 이렇게 미소 한 번 날려주는 센스를 잊지 말기를.

 

표정과 얼굴 근육

인간의 얼굴에는 근육이 왼쪽, 오른쪽에 22개씩 44개 있다.이들이 홀로 또는 2, 3개씩 짝지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표현한다. 전문가가 구분할 수 있는 표정은 약 6000가지나 된다. 이 중 대표적인 표정과 그 근육을 소개한다.


표정과 얼굴 근육


01_기쁜 표정 : 진짜 기뻐서 웃을 때는 눈둘레근(03)과 큰광대근(12)이 함께 수축한다. 만족스럽거나 기분 좋은 감정을 표현할 때도 비슷한 표정이 나온다.

02_화난 표정 : 화가 나면 대개 눈살근(02)과 눈썹주름근(11)이 움직여 눈살을 찌푸린다. 눈꺼풀에도 힘이 들어간다. 못마땅하거나 불쾌할 때 이런 표정을 짓는다.

03_슬픈 표정 : 작은광대근(07)과 입꼬리내림근(14)이 수축해 입술이 입가 쪽으로 처진다. 위 눈꺼풀도 처진다.

04_역겨운 표정 : 윗입술콧방울올림근이 움직여 콧구멍이 커지고(05), 윗입술올림근이 수축해 입술이 약간 위로 올라간다(06). 업신여기거나 오만한 표정도 이와 비슷하다.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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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한재현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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