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종류의 쿼크(업, 다운, 참, 스트레인지, 톱, 바텀)와 여섯 종류의 렙톤(전자, 뮤온, 타우,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은 우주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다. 이중 대부분은 성질이 충분히 밝혀졌지만, 아직까지도 비밀을 꽁꽁 숨기고 있는 입자가 있으니 바로 중성미자(뉴트리노) 삼인방이다. 우주가 탄생할 때 생긴 중성미자는 우주 어디에나 있지만 워낙 다른 물질과 반응을 하지 않아 검출하거나 물리적 성질을 연구하기 매우 힘들다.
그런데 최근 중성미자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한 거대한 망원경이 남극에 완공되는가 하면 우리나라도 최초로 검출기를 만들어 중성미자 레이스에 출사표를 던졌다. 중성미자가 그동안 감춰 왔던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지 주목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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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바로 옆 얼음 아래 깊숙한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성미자망원경이 묻혀 있다. 지난해 12월 완성된 중성미자망원경 ‘아이스큐브’는 부피가 대략 1km3인 얼음속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광센서 5160
개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깊이 1.5~2.5km에 묻힌 아이스큐브는 지구 중심을 향하고 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관측하려면 하늘을 바라봐야 할 텐데 오히려 지하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하늘을 바라보면 우주선(우주를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입자)이 대기 분자와 부딪칠 때 생기는 뮤온이 중성미자 관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하를 향하고 있으면 뮤온이 검출기에 도착하기 전에 대부분 지구에 걸러진다. 지구 전체를 필터로 사용하는 셈이다. 지구 중심을 향하고 있어도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1초에 수백조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지만 평생 동안 한개가 반응을 할까 말까 한다. 1광년 두께의 강철이 있다고 해도 중성미자는 대부분 쉽게 통과한다.
그래도 아주 드물게 중성미자가 물질과 충돌하기도 한다. 중성미자 검출기는 이 반응을 이용해 중성미자의 존재를 확인한다. 아이스큐브는 얼음을 매개물질로 이용한다. 남극의 얼음은 먼지 같은 이물질이 없어 순수하고 압력이 높아 기포가 거의 없어서 중성미자가 충돌할 때 나오는 빛이 산란될 가능성이 적다. 아이스큐브를 남극점 부근에 만든 이유다. 서선희 스웨덴 스톡홀름대 물리학과 교수는 “중성미자가 얼음을 통과하다가 분자와 충돌하면 거기서 뮤온이라는 입자가 나오는데, 뮤온이 얼음을 통과할 때 나오는 빛을 광증폭센서로 검출한다”고 설명했다. 충돌로 생긴 뮤온은 원래 중성미자가 움직이던 방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그 방향을 측정하면 중성미자가 날아온 방향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우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중성미자가 관측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우주선이 지구 대기에 부딪칠 때도 중성미자가 생기는데, 대기중성미자는 우주 중성미자보다 훨씬 많아 관측을 방해한다. 아이스큐브가 지하를 바라보고 있어도 대기중성미자를 걸러내지는 못한다. 대기중성미자를 걸러 내기 위해서는 자료를 분석할 때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필터를 이용한다.
아이스큐브를 ‘검출기’가 아닌 ‘망원경’으로 부르는 이유는 망원경이 별에서 나오는 빛을 관측하듯이 별이나 천체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해 위치를 알아내기 때문이다. 모든 별은 핵융합 과정에서 중성미자를 방출한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별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는 지구에서 관측하기에는 희박하다. 아이스큐브는 주로 초신성이나 블랙홀이 순식간에 쏟아 내는 높은 에너지의 중성미자를 관측하기에 적합하다. 서 교수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방출하는 천체의 위치를 밝히고, 그곳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아이스큐브는 앞으로 감마선 폭발이나 활동성 은하핵의 고에너지 중성미자 방출여부, 암흑물질의 정체, 우주선과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연관성 등을 밝히는 연구에 쓰일 계획이다. 현재 미국, 스웨덴, 독일 등의 과학자 및 공학자 250명 정도가 아이스큐브에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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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미자 변환상수 누가 먼저 찾나
중성미자 자체의 성질을 밝히는 연구도 활발하다.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중성미자가 질량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힘 중 세 가지인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과 기본 입자의 존재와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중성미자가 질량이 없다는 전제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8년 과학자들은 일본의 수퍼카미오칸데 중성미자검출기를 이용해 중성미자 사이에 서로 변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선이 대기 분자와 부딪칠 때 나오는 뮤온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는 현상을 관측한 것이다. ‘중성미자 변환’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증거다. 표준모형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2001년에는 태양에서 나오는 전자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는 현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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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지막 남은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한 국제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6년부터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 근처에 국내 최초의 중성미자검출기 ‘레노(RENO)’를 건설하기 시작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경쟁 상대인 프랑스의 ‘더블 슈(Double Chooz)’ 검출기와 중국의 ‘다야 베이(Daya Bay)’ 검출기보다 3~4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한국중성미자연구센터장인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3년 정도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과학기술부를 설득해 연구비 116억 원을 받아 검출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레노는 3월부터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다른 경쟁자에 비해 1년 이상 빠르다. 김 교수는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나라가 최초로 마지막 변환상수를 발견할 수 있다”며 “처음에는 외국 과학자들이 의구심을 표했지만 지금은 학회에서 세 나라가 발표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주목을 받는다”고 말했다.
늦게 출발해서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데는 지리적인 이점도 컸다. 김성현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영광은 중성미자검출기를 건설하기 위한 천혜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자중성미자를 이용한다. 영광원자력발전소는 용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 원자로 하나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수가 많다. 원자로 여섯 개도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배열돼있다. 하늘에서 보면 두 검출기를 잇는 선이 여섯 개의 원자로 한가운데 부근을 지나고 있어 각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균일하게 관측할 수 있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터널만 뚫으면 쉽게 지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검출기를 지하에 설치해야 실험을 방해하는 우주선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을 가를 2%
레노는 원자로에서 각각 290m, 1.4km 떨어진 곳에 있는 똑같은 검출기 두 대로 이뤄져 있다. 영광원전의 원자로 하나에서는 1초에 1000경(1019) 개의 전자중성미자가 나온다. 이중 검출기에 잡히는 수는 근거리의 경우 하루에 1000개, 원거리는 하루에 50개 정도에 불과하다. 원자로에서 나온 전자중성미자는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검출기에 잡히는 수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줄어든다. 거리의 차이를 감안해 각 검출기에 잡히는 전자중성미자의 수를 계산하면 근거리 검출기에서 원거리 검출기 사이의 거리를 움직이는 동안 얼마나 많
은 전자중성미자가 뮤온중성미자로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전자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려면 100km 정도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보다 휠씬 짧은 거리에서 사라진 전자중성미자는 뮤온중성미자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노는 중성미자를 검출하기 위한 매개물질로 벤젠 계통의 투명한 유기용액을 이용한다. 이 용액을 ‘섬광액체’라고 부른다. 중성미자가 섬광액체 속을 통과하다가 양성자와 충돌하면 양전자와 중성자가 나온다.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는 곧바로 전자와 쌍소멸해 빛을 발한다. 중성자는 약 200μs(마이크로초, 100만 분의 1초) 뒤 수소 원자에 잡혀 빛을 낸다. 이 빛을 광센서로 관측해 중성미자를 검출한다. 김수봉 교수는 “원리는 50년 전과 비슷하지만 섬광액체가 예전보다 화학적 특성이 좋아졌으며 개선된 광센서를 이용해 기존의 검출기보다 감도가 좋다”고 레노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광센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은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레노가 변환상수를 측정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레노의 감도로는 변환상수가 2% 이상일 때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승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이론적으로 예측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검출기로 3년 정도 자료를 쌓으면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변환상수가 2% 보다 작을 가능성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당장 앞서 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중성미자검출기가 세계 최초로 중성미자의 비밀을 밝히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까. 3년 뒤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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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중성미자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한 거대한 망원경이 남극에 완공되는가 하면 우리나라도 최초로 검출기를 만들어 중성미자 레이스에 출사표를 던졌다. 중성미자가 그동안 감춰 왔던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지 주목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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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바로 옆 얼음 아래 깊숙한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성미자망원경이 묻혀 있다. 지난해 12월 완성된 중성미자망원경 ‘아이스큐브’는 부피가 대략 1km3인 얼음속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광센서 5160
개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깊이 1.5~2.5km에 묻힌 아이스큐브는 지구 중심을 향하고 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관측하려면 하늘을 바라봐야 할 텐데 오히려 지하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하늘을 바라보면 우주선(우주를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입자)이 대기 분자와 부딪칠 때 생기는 뮤온이 중성미자 관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하를 향하고 있으면 뮤온이 검출기에 도착하기 전에 대부분 지구에 걸러진다. 지구 전체를 필터로 사용하는 셈이다. 지구 중심을 향하고 있어도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1초에 수백조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지만 평생 동안 한개가 반응을 할까 말까 한다. 1광년 두께의 강철이 있다고 해도 중성미자는 대부분 쉽게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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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주 드물게 중성미자가 물질과 충돌하기도 한다. 중성미자 검출기는 이 반응을 이용해 중성미자의 존재를 확인한다. 아이스큐브는 얼음을 매개물질로 이용한다. 남극의 얼음은 먼지 같은 이물질이 없어 순수하고 압력이 높아 기포가 거의 없어서 중성미자가 충돌할 때 나오는 빛이 산란될 가능성이 적다. 아이스큐브를 남극점 부근에 만든 이유다. 서선희 스웨덴 스톡홀름대 물리학과 교수는 “중성미자가 얼음을 통과하다가 분자와 충돌하면 거기서 뮤온이라는 입자가 나오는데, 뮤온이 얼음을 통과할 때 나오는 빛을 광증폭센서로 검출한다”고 설명했다. 충돌로 생긴 뮤온은 원래 중성미자가 움직이던 방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그 방향을 측정하면 중성미자가 날아온 방향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우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중성미자가 관측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우주선이 지구 대기에 부딪칠 때도 중성미자가 생기는데, 대기중성미자는 우주 중성미자보다 훨씬 많아 관측을 방해한다. 아이스큐브가 지하를 바라보고 있어도 대기중성미자를 걸러내지는 못한다. 대기중성미자를 걸러 내기 위해서는 자료를 분석할 때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필터를 이용한다.
아이스큐브를 ‘검출기’가 아닌 ‘망원경’으로 부르는 이유는 망원경이 별에서 나오는 빛을 관측하듯이 별이나 천체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해 위치를 알아내기 때문이다. 모든 별은 핵융합 과정에서 중성미자를 방출한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별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는 지구에서 관측하기에는 희박하다. 아이스큐브는 주로 초신성이나 블랙홀이 순식간에 쏟아 내는 높은 에너지의 중성미자를 관측하기에 적합하다. 서 교수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방출하는 천체의 위치를 밝히고, 그곳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아이스큐브는 앞으로 감마선 폭발이나 활동성 은하핵의 고에너지 중성미자 방출여부, 암흑물질의 정체, 우주선과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연관성 등을 밝히는 연구에 쓰일 계획이다. 현재 미국, 스웨덴, 독일 등의 과학자 및 공학자 250명 정도가 아이스큐브에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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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미자 변환상수 누가 먼저 찾나
중성미자 자체의 성질을 밝히는 연구도 활발하다.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중성미자가 질량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힘 중 세 가지인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과 기본 입자의 존재와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중성미자가 질량이 없다는 전제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8년 과학자들은 일본의 수퍼카미오칸데 중성미자검출기를 이용해 중성미자 사이에 서로 변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선이 대기 분자와 부딪칠 때 나오는 뮤온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는 현상을 관측한 것이다. ‘중성미자 변환’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증거다. 표준모형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2001년에는 태양에서 나오는 전자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는 현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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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중성미자가 서로 바뀌는 비율을 ‘중성미자 변환상수’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뮤온중성미자와 타우중성미자 사이의 변환상수, 전자중성미자와 타우중성미자 사이의 변환상수가 발견됐다. 각각 100%와 30%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전자중성미자와 뮤온중성미자 사이의 변환상수는 입자물리학계의 최대 관심사다. 프랑스의 중성미자검출기인 ‘슈(Chooz)’를 이용해 측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15% 이하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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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지막 남은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한 국제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6년부터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 근처에 국내 최초의 중성미자검출기 ‘레노(RENO)’를 건설하기 시작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경쟁 상대인 프랑스의 ‘더블 슈(Double Chooz)’ 검출기와 중국의 ‘다야 베이(Daya Bay)’ 검출기보다 3~4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한국중성미자연구센터장인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3년 정도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과학기술부를 설득해 연구비 116억 원을 받아 검출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레노는 3월부터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다른 경쟁자에 비해 1년 이상 빠르다. 김 교수는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나라가 최초로 마지막 변환상수를 발견할 수 있다”며 “처음에는 외국 과학자들이 의구심을 표했지만 지금은 학회에서 세 나라가 발표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주목을 받는다”고 말했다.
늦게 출발해서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데는 지리적인 이점도 컸다. 김성현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영광은 중성미자검출기를 건설하기 위한 천혜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자중성미자를 이용한다. 영광원자력발전소는 용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 원자로 하나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수가 많다. 원자로 여섯 개도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배열돼있다. 하늘에서 보면 두 검출기를 잇는 선이 여섯 개의 원자로 한가운데 부근을 지나고 있어 각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균일하게 관측할 수 있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터널만 뚫으면 쉽게 지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검출기를 지하에 설치해야 실험을 방해하는 우주선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을 가를 2%
레노는 원자로에서 각각 290m, 1.4km 떨어진 곳에 있는 똑같은 검출기 두 대로 이뤄져 있다. 영광원전의 원자로 하나에서는 1초에 1000경(1019) 개의 전자중성미자가 나온다. 이중 검출기에 잡히는 수는 근거리의 경우 하루에 1000개, 원거리는 하루에 50개 정도에 불과하다. 원자로에서 나온 전자중성미자는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검출기에 잡히는 수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줄어든다. 거리의 차이를 감안해 각 검출기에 잡히는 전자중성미자의 수를 계산하면 근거리 검출기에서 원거리 검출기 사이의 거리를 움직이는 동안 얼마나 많
은 전자중성미자가 뮤온중성미자로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전자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려면 100km 정도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보다 휠씬 짧은 거리에서 사라진 전자중성미자는 뮤온중성미자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노는 중성미자를 검출하기 위한 매개물질로 벤젠 계통의 투명한 유기용액을 이용한다. 이 용액을 ‘섬광액체’라고 부른다. 중성미자가 섬광액체 속을 통과하다가 양성자와 충돌하면 양전자와 중성자가 나온다.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는 곧바로 전자와 쌍소멸해 빛을 발한다. 중성자는 약 200μs(마이크로초, 100만 분의 1초) 뒤 수소 원자에 잡혀 빛을 낸다. 이 빛을 광센서로 관측해 중성미자를 검출한다. 김수봉 교수는 “원리는 50년 전과 비슷하지만 섬광액체가 예전보다 화학적 특성이 좋아졌으며 개선된 광센서를 이용해 기존의 검출기보다 감도가 좋다”고 레노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광센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은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레노가 변환상수를 측정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레노의 감도로는 변환상수가 2% 이상일 때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승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이론적으로 예측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검출기로 3년 정도 자료를 쌓으면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변환상수가 2% 보다 작을 가능성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당장 앞서 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중성미자검출기가 세계 최초로 중성미자의 비밀을 밝히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까. 3년 뒤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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