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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모 얼굴, 골라 닮을 수 있을까?

‘우연’이 만들어 낸 붕어빵 가족

차범근과 차두리, 김을동과 송일국, 태진아와 이루, 추송웅과 추상미…. ‘붕어빵’ 연예인 가족이다. 멋진 얼굴이 가족내력이라도 되듯, 보면 볼수록 눈, 코, 입이 빼다 박았다.

자녀가 부모를 닮는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이왕 닮을 거라면 예쁜 부분만 닮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쌍꺼풀이 있는 엄마의 예쁜 눈과 오똑하게 솟은 아빠의 코를 골라 닮을 수 있을까?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됐다고 떠들썩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얼굴 형태를 만드는 유전자를 찾는다면 ‘골라 닮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외모형성 비밀 담고 있는 유전자
 

01초파리는 Antp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더듬이가 날 자리에 다리가 나온다. 02정상적인 개의 뒷발(위)과 덧발톱이 난 개의 뒷발을 X선으로 찍은 사진. 덧발톱의 발생은 개의 16번 염색체에 있는 LMBR1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동물의 경우 어떤 유전자가 몸의 어떤 부분을 만드는데 관여하는지 꽤 밝혀졌다. 사람과 유전자를 70% 공유하는 초파리는 Antp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더듬이가 날 자리에 다리가 나온다. 또 보통 초파리의 눈은 빨간색이지만 white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초파리의 눈은 하얀색이다.

쥐도 외모를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가 부분적으로 밝혀졌다. 일본 구마모토대 타쿠이치로 히데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쥐의 아래턱과 두개골을 만드는데 Otx2와 Alx4 유전자가 관계한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아래턱이나 두개골이 매우 작거나 아예 없는 쥐가 태어난다.

또 연세대 구강생물학교실 정한성 교수팀은 세포 내에 Bmp4 유전자가 많으면 팔, 다리가 등 쪽에 가깝게 만들어지고 Tbx3 유전자가 많으면 배 쪽 가깝게 팔다리가 만들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1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개에 대한 연구도 있다. KAIST 생명과학과 박찬규 교수팀은 개의 뒷발에 1~2개 정도 생겨나는 덧발톱이 16번 염색체에 위치하는 LMBR1 유전자와 관련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는 2004년 ‘제노믹스’(Genomics)에 실렸다.

사람 얼굴 형태와 관련된 유전자 연구는 얼마나 돼 있을까? 사람은 동물처럼 마음대로 실험하기 어려워 쉽지 않지만 질병과 관계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얼굴 형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얼굴뼈와 관계된 병인 구개순열은 대표적인 예다. 구개순열은 임신 초기에 태아의 얼굴뼈와 입천장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아 생기는 병으로 유전 요인이 매우 강하다. 이 병을 가진 형제가 있는 경우 같은 기형이 발생할 위험이 30~40배 높다.

얼짱 유전자 찾는 법?


엄마 닮았을까, 아빠 닮았을까? 얼굴 형태를 결정짓는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의 무작위적인 조합에 의해 이뤄진다.


사람들의 DNA 염기서열은 거의 99.9%가 같다. 흥미로운 점은 나머지 0.1%의 차이가 얼굴 생김새는 물론 질병에 걸릴 위험과 약물에 대한 반응 같은 개인적인 특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이 개개인의 유전형질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SNP(단일염기다형성)다.

지난 12월 13일 과학기술부는 2만5000개의 한국인 SNP 표준정보를 국제 SNP 데이터베이스 등록기관인 dbSNP 웹사이트에 등재했다. 이 정보는 한국인 90명의 DNA를 분석한 것으로 인종 간 비교분석 연구, 유전질환 연구 등에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SNP 정보를 모아서 뒤지면 ‘예쁜 눈 유전자’ ‘예쁜 입술 유전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KAIST 분자생리학실험실 박기연 연구원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먼저 눈, 코, 입 등 얼굴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형태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고 각 기관으로 분화하는 과정을 알아낸다. 예를 들어 눈과 관계된 유전자라면 눈의 위치를 결정하는 유전자부터 눈동자의 색, 눈꺼풀의 모양, 크기 등과 관련된 유전자 후보들을 찾는다. 그리고 예쁜 눈의 기준을 정한다. 예쁜 눈은 쌍꺼풀이 있고, 눈이 좌우로 위아래로 동그랗게 크며, 속눈썹이 긴 눈으로 정의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제 예쁜 눈의 형질을 만드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찾는다. 긴 속눈썹부터 찾아보자. 속눈썹이 긴 사람의 집단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집단을 나누고 각각 유전자 샘플을 확보한다. 그런 다음 속눈썹 길이와 관련된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비교하면 속눈썹이 긴 사람의 집단에만 나타나는 SNP의 염기서열을 알 수 있다. 예쁜 눈, 코, 입의 유전자도 같은 과정으로 찾는다.

‘운명’을 만드는 ‘우연’


성형 수술로 달라진 얼굴은 유전되지 않는다. 9년 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팝스타 마이클잭슨의 두 아이가 지난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금발에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들의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두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정자은행에서 백인의 정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해 의문은 곧 풀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과정 중 어느 하나 쉬운 과정이 없다고 말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선영 교수는 “‘얼짱 유전자’를 찾을 수 있을 정도라면 생명의 비밀은 다 풀린 셈”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 교수는 “사람은 동물처럼 유전자를 마음대로 변환시키는 실험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사람의 기본적인 골격이 배아나 태아 상태에서 결정되는데 유전자가 바뀌면 대부분 유산되기 때문이다.

연세대 해부학교실 박형우 교수는 외모를 결정하는 표현형을 독립적으로 나누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람의 얼굴은 각 부분이 조립된 형태가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에 의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코의 높이는 코의 연골 조직의 형태, 광대뼈의 높이, 위턱뼈의 구조 등 복잡하게 얽힌 얼굴의 다른 부위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독립된 표현형으로 보기 어렵다.

한편 을지병원 소아과 김교찬 교수는 “독립된 표현형질을 나눴다고 해도 그와 관계된 유전자의 수는 한 두 개가 아닐 것”이라며 “유전자 한 개와 얼굴의 특징 한 개가 ‘일대 일’ 관계를 맺고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유전자가 수많은 특징들에 영향을 미치는 ‘다(多)대 다(多)’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미묘한 얼굴 형태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유전질병인 다지증(육손이)만 하더라도 Gli3, SHH, Alx4 를 포함한 유전자 수 십 개가 관련된다.

이밖에 유전 말고 얼굴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얼굴의 기본틀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지만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에 의해 많이 바뀐다.

페이스라인 성형외과 이태희 원장은 “요즘 청소년들이 부모 세대에 비해 턱이 좁아져 부정교합(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리지 않는 상태)이 상대적으로 많다”며 “이 현상은 유전자 변이로 만들어졌다기보다 부드러운 음식을 많이 먹는 식습관의 변화가 주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설사 얼짱 유전자를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전자를 선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분히 우연적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이윤호 교수는 “쌍으로 존재하는 염색체는 부모로부터 하나씩 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녀는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지만, 유전자를 결정하는 염색체의 조합은 무작위적”이라고 말했다. 외모가 출중한 부모 밑에서 못 생긴 아이가 태어나거나 평범하게 생긴 부모 밑에서 예쁜 얼굴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이유다.

정자가 수많은 죽음의 위협을 건너 난자와 만날 확률은 30억 분의 1이다. 결합에 성공하면 난자와 정자가 가진 유전자들의 경쟁이 시작된다. 염색체는 말 그대로 무작위로 조합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이 유산되지 않고 태어날 확률은 3분의 1이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은 환경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달라지며 ‘나’를 만든다.

부모의 얼굴을 ‘운명’적으로 내려 받아야 하는 얼굴은 이 모든 과정을 담고 있는 ‘우연’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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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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