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월드컵조직위원회가 소행성 ‘에로스’(사진)를 준결승 장소로 결정하자 여러 나라에서 말이 많았다. 왜 하필 그런 곳에서 축구를 하느냐는 불평이다. 도대체 에로스가 어떤 곳이기에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소행성은 주로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 모여 띠를 이루고 있지만, 에로스는 가끔 지구에 접근하는 특이한 소행성이다. 조직위는 우주월드컵 기간에 에로스가 지구에 2250만km까지 다가온다는 사실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선수단을 실어 나르는 우주선은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오는 도중 에로스에 들러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
에로스는 크기가 대략 11×11×34km이고 표면적은 서울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모양은 길쭉한 고구마나 뚱뚱한 바나나를 닮았다. 지난 2000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니어-슈메이커’호가 1년간에 걸쳐 에로스를 자세히 탐사했다.
에로스에서 축구를 하려면 선수들의 애로 사항이 많다. 중력이 지구에 비해 수천배나 작아 선수의 체중은 무척 가벼워진다. 하지만 너무 빨리 움직이거나 높이 뛰면 소행성을 벗어나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게 문제다. 과연 이런 곳에서 축구를 할 수 있을까.
준결승전이 열린 축구장은 에로스의 사각형 크레이터에 건설됐다. 이 소행성에는 우주를 떠돌던 암석 덩어리가 부딪쳐 만들어진 구덩이인 크레이터가 많다. 크레이터는 대개 원형인데, 사각형 크레이터는 상당히 특이하다. 사각형 크레이터 구장에는 ‘함부로 뛰거나 점프하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이 여러 군데 붙어있다.
함부로 점프하지 말 것!
만일 지구에서 체중이 60kg인 사람이 에로스에 가면 체중이 14~34g으로 엄청나게 가벼워진다. 두 손으로 날갯짓을 한다면 새처럼 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행성에서는 100m를 33초보다 더 빨리 달리면 우주로 벗어나게 된다. 에로스의 중력권을 벗어나는 탈출속도가 초속 3~17m로 측정됐기 때문이다.
평소 100m를 10초대에 달리는 선수들은 모두 경보선수처럼 어기적거리며 움직일 수밖에 없다. 100m를 33초보다 느리게 이동해야 한다면 뛸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행성 구장 밖으로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헤딩을 하거나 골키퍼가 공을 잡기 위해 함부로 점프해도 안된다. 지구에서 1m 점프하던 힘으로 에로스에서 뛰어오를 경우 1km 높이까지 상승해 에로스 궤도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그나마 적응할 수 있는데, 슛한 공을 막으려고 골키퍼가 본능적으로 점프하는 평소 감각은 제어하기 힘들다. 각 팀의 선수들이 소행성을 벗어나는 장면이 속출했다. 조직위는 우주로 날아가는 선수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경기장 주변을 ‘거미줄 그물’로 둘러쌌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벗어난 선수가 되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려 소속팀은 잠시 적은 수로 상대팀과 싸워야 했다.
세게 찬 공은 어떡하느냐고? 공은 시속 11km만 넘으면 소행성 구장을 떠나 우주로 날아간다. 초등학생도 이 정도는 찬다. 조직위는 공이 경기장에서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면 스스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인공지능 전자칩’을 장착했다.
사람 몸무게만한 힘 가진 공
일부 선수들은 공을 강하게 차 상대선수를 맞히면 그 선수를 우주로 내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자기편 선수가 패스 받은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하다 혹시 우주로 탈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공기가 없는 에로스에서 400g짜리 공을 시속 120km로 찰 때 우주복을 입어 총 질량이 100kg인 선수가 이 공을 정통으로 맞는다고 생각해보자. 공의 질량에 속력을 곱한 공의 운동량이 선수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선수의 속력은 초속 0.13m이다. 우주복이 딱딱하다면 1초에 13cm 정도 뒤로 밀린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영화 ‘소림축구’의 상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행히 공을 맞은 선수가 ‘우주 미아’가 될 정도는 아니다.
선수가 받는 충격은 어느 정도일까. 시속 120km의 400g짜리 공이 선수에게 맞아 20cm 찌그러진다고 가정해보자. 대학 일반물리에 따르면 선수가 받는 평균 힘은 0.5×공 질량×공 속력²을 찌그러진 길이로 나눈 양이므로 1089kg·m/s²이다. 따라서 우주복을 입은 선수(100kg)는 지구중력가속도와 비슷한 가속도를 받는다. 축구공이 사람 몸무게만한 힘을 가하는 셈이다. 보호 장치가 없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이변은 왜 1-0이 많을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4시즌 동안 평균을 내보면 상위 5팀(강팀)과 하위 5팀(약팀)의 득점력은 7:3 정도의 비율이다. 이를 바탕으로 강팀의 득점 확률을 0.7, 약팀의 득점 확률 0.3이라고 가정해보자.
약팀이 먼저 한골을 성공시키고 경기가 끝나면, 0.3의 확률로 약팀이 강팀을 이긴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약팀이 강팀을 1-0으로 이길 확률은 30%인 셈이다. 2-0으로 약팀이 강팀을 물리칠 가능성은 0.3×0.3=0.09로 채 10%도 되지 않는다.
한 경기에서 3골이 나올 경우는 어떨까. 약팀은 3-0이나 2-1로 이길 수 있다. 3-0으로 이길 확률은 0.3×0.3×0.3=0.027로 3%도 안된다. 2-1로 약팀이 이길 경우는 3가지가 있다. 즉 강팀이 먼저 한골을 넣은 뒤 약팀이 두골을 성공시켜 이길 수 있고, 약팀이 먼저 한골을 넣고 강팀이 한골을 만회한 뒤 약팀이 다시 한골을 넣어 이길 수 있으며 약팀이 내리 2골을 넣은 뒤 강팀이 한골을 추격하는데 그쳐 약팀이 승리할 수 있다. 따라서 2-1로 약팀이 강팀을 물리칠 확률은 (0.3×0.3×0.7)×3=0.189이다. 약팀이 2-1로 승리할 가능성은 20%에 육박해 2-0 승리 가능성보다 2배가량 높다.
결국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이변은 확률로 따져볼 때 1-0 가능성이 가장 높고 2-1 가능성이 그 다음이다. 실제 월드컵 역사에 나타난 약팀의 반란도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1950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미국이 잉글랜드를,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각각 1-0으로 눌렀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선 알제리가 서독을 2-1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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