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구장에서 열린 우주월드컵 16강전 첫 경기. 한국에서 ‘제2의 베컴’이라 칭송받는 선수가 골문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프리킥을 한다. 상대 골키퍼는 바나나킥을 예상하고 있다가 골을 먹고 만다. 화성 구장에서 찬 공은 지구와 반대로 휘는 것이 아닌가.
우주월드컵조직위원회는 화성 구장을 특수하게 설계했다. 본선 조별 경기가 열리는 달과 준결승전이 열리는 소행성에는 공기가 없다는 걸 감안한 조치였다. 조직위는 화성 구장의 조건을 달이나 소행성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화성은 대기가 지구보다 200배 희박하다. 대기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희박해지므로 혹시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성의 올림푸스산(높이 25km) 정상에 축구장을 건설하면 어떨까. 이곳에서도 대기는 그리 희박해지지 않아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조직위는 바람을 빼내 공기가 희박한 돔 축구장을 화성 표면에 건설했다. 지구 대기보다 10만배 정도 희박한 조건이다. 돔 축구장은 화성에서 황사처럼 일어나는 모래바람을 막는데도 안성맞춤이었다.
바나나킥을 즐겨하던 선수들은 화성 구장에서 지구와 반대로 휘는 공에 적잖이 당황했다. 여태까지 지구에서 연습했던 것과는 반대로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회전을 걸어준 방향으로 공이 휘는데 화성 구장에서는 거꾸로 휜다. 예를 들어 반시계방향(왼쪽)으로 회전을 걸면 지구에서 왼쪽으로 휘던 공이 화성 구장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것이다. 선수들은 이미 본선 조별 경기가 열렸던 달에서 아무리 회전을 줘도 공이 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달에는 바나나킥이라는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공기가 없기 때문이다. 공기가 있어야 회전을 준 공이 휠 수 있다는 얘기다.
공기의 요술, 마그누스 힘
반면 한국팀은 달에서 포물선을 그리는 프리킥을 선보이며 2골을 넣고 외국팀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아리랑 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나나킥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공기가 공 주변에 어떻게 모일까. 공에 회전을 주면 공이 공기를 헤치고 날아갈 때 공의 좌우에 모이는 공기 양이 다르다. 진행방향이 회전방향과 같은 부분에서는 공기가 후딱 지나가 적게 남아있고, 서로 다른 반대편에서는 공표면을 따라 뒤쪽에서 흘러온 공기까지 합쳐져 공기가 많이 쌓인다. 공기가 많은 곳은 압력이 높고 적으면 압력이 낮다. 압력은 단위면적에 작용하는 힘이기 때문에 압력이 큰 쪽에서 작은 쪽으로 힘이 발생한다. 바로 ‘마그누스 힘’이다. 결국 회전하는 공은 마그누스 힘을 받아 진행방향이 회전방향과 다른 쪽으로 휜다. 즉 회전을 준 방향으로 휜다.
각국의 대표팀에는 화성 구장에서 일어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한국팀은 지구에서 이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인호 박사와 한국천문연구원 안상현 박사의 자문을 받고 비밀 훈련까지 거쳤다.
이 박사는 2003년 스웨덴 왕립공학원의 칼 보그 박사팀이 미국 유체물리학 전문지 ‘피직스 오브 플루이드즈’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한국 대표팀에 소개했다. 연구결과는 대기가 희박할 때 회전을 건 공이 지구에서와 반대 방향으로 휜다는 내용이다. 안 박사는 화성 구장만큼 공기가 희박하면 마그누스 효과보다 공기 분자와의 충돌 효과가 커져 바나나킥이 반대로 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학자의 자문 받은 비밀 훈련
공기가 희박하면 공 주변에 공기 흐름이 생기지 않는다. 즉 공기 분자가 충돌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축구공의 지름보다 길면 공기 분자는 단순히 공의 진행방향 앞쪽에만 모인다. 예를 들어 공이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할 때는 공기 분자가 공에 부딪치면서 공의 회전방향으로 튀어나간다. 그러면 공은 공기 분자가 튀어나간 방향과 반대로 힘을 받는다. 따라서 지구에서와 반대인 오른쪽으로 휜다.
조 2위로 16강에 오른 한국팀도 화성 구장에서 거꾸로 휘는 바나나킥을 맘대로 구사하기 위해 현장적응훈련에 돌입했다. 화성 구장에서 회전하는 공이 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화성에서 벌어진 16강전과 8강전에서 ‘프리킥의 마술사’로 알려진 외국 선수들은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휘는 방향이 반대라고 생각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른발을 사용하는 선수들은 보통 오른발의 안쪽으로 공을 감아 차는 인사이드킥을 선호한다. 이들에게 반대로 휘는 걸 감안해 오른발의 바깥쪽으로 공을 차는 아웃사이드킥을 연습해야 하는 건 또 다른 고역이었다.
프리킥 때 수비벽이 9.15m 떨어져야 하는 이유
프리킥에 대비할 때 한두 명에서 많게는 예닐곱 명까지 나란히 서있어야 하는 상황이 가끔 발생한다. 상대의 프리킥에 대비해 수비벽을 세워야 하는 순간이다. 규정에 따르면 수비벽은 프리킥을 하는 상대선수에게서 9.15m만큼 떨어져야 한다. 수비벽이 너무 가까우면 프리킥을 하는 선수에게 불리하니까 적당히 떨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왜 하필 9.15m만큼 떨어져야 하는 걸까.
1997년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수비벽을 완벽하게 옆으로 돌아 골망을 흔드는 ‘UFO슛’을 쏘며 세계 축구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카를로스의 프리킥은 시속 108km 이상의 속력에 초당 10번의 회전이 걸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정도로 빠른 공은 약 10m 거리까지 속력이 크게 줄지 않고 직선으로 날아간다. 회전이 걸렸음에도 공의 속력이 빨라 마그누스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공은 10m 정도 날아간 뒤부터 마그누스 효과 때문에 휘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회전이 걸린 강력한 공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구간에서는 축구공이 사람에게 매우 위협적일 수 있다. 카를로스 프리킥에서 이 구간은 킥을 한 지점에서 10m 거리까지다. 강한 슛을 날리는 선수의 프리킥은 약 9m 거리까지가 이 구간에 해당한다.
이 구간에 수비벽이 있다면 강한 공에 맞은 사람은 위험할 수 있다. 프리킥에서 수비벽이 9.15m 떨어져야 한다는 규칙은 강한 슛을 날리는 선수를 기준으로 해 수비선수를 보호하려고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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