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6월의 일본 교토(京都) 거리는 부슬비로 연일 축축하기만 했다. 나는 5시간 동안을 꼬박 교토대학 도쿠다미토시 박사의 연구실에서 보냈다. 내 논문을 보신 선생께서는 불충분한 곳은 가필(加筆)하고 못마땅한 곳은 고치겠다고 했다. 모든 것을 선생에게 맡긴 나로서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해 12월 '산림 보호상으로 본 한국의 조수류상에 관한 연구'란 학위 논문이 전체 교수회의에서 무난히 통과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도쿠다 박사가 내게 쏟은 정성은 모두 갚을 길이 없다. 하지만 선생은 내게 항상 '사회적인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을 뿐'이라고 할 뿐이었다.
일본에서 첫째 가는 진화학자이자 동물계통분류학자였던 그분 밑에서 학위 과정을 밟았던 적지 않은 대학원생들은 엄한 성품을 가진 선생과 감히 접촉하기조차 어려웠다. 선생이 작고한 후 학회에서는 추모 기념 학술지를 간행하기도 했고 그 분의 학덕을 중심으로 한 모임도 가졌다.
현재 동경 농공대학에는 수제자 한분이 교수로 재직중인데, 필자는 정년을 앞둔 그와 함께 은사이신 도쿠다 박사의 명복을 빌며 살아계신 부인에게 항시 고마움과 조의를 표하고 있다.
나를 지금의 길로 이끈 은사에 대한 기억은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