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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반쯤은 엉뚱한 실험이 과학을 발전시킨다. 이런 실험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진행 중이다.
게다가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며 돈을 벌 수 있단다. 팔도를 누비는 장돌뱅이의 심정으로 전국을 누비며 이상한 실험실에서 알바를 직접 해봤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그곳에는 진짜 과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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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은 알바 괴담의 원조 같은 곳이다. 해부학교실이나 장례식장에서 할 수 있는 시체닦이 알바를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다행히도 기자가 찾은 경북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이런 무시무시한 알바는 없었다. 벚꽃이 살랑살랑 날리던 어느 봄날, 한 실험실에서는 털이 날리고 있었다.
기자를 고용한 오지원 경북대 의대 교수는 모발을 연구하는 의과학자다. 그는 실제로 탈모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며 쥐를 이용해 털의 길이를 조절하는 기초연구를 진행 중이다. 쥐의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약을 발랐을 때 털의 길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알바다.
살아있는 쥐의 털을 어찌 뽑아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에 오 교수가 실험용 플레이트 위에 이상한 것을 내어왔다. 자세히 보니 포를 뜨듯 얇게 벗겨진 쥐의 껍데기였다. 피부조직을 아랫배부터 갈라, 팔·코·입이 있던 자리는 볼펜심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과정은 알바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오 교수가 전날 직접 작업을 해왔다.
털을 뽑을 때는 양손에 핀셋을 든 채 한 손으론 가죽을 단단히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털의 아랫부분을 잡고 부드럽게 뽑는다. 흰머리를 뽑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 번에 50가닥 정도를 뽑아 깨끗한 플레이트로 옮긴다.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위에 생리식염수 한두 방울을 살짝 떨어뜨린다. 탈모로 고민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50가닥은 큰 것이지만, 쥐의 털은 무척 얇고 길이가 짧아 사람 머리 두세 가닥보다 양이 적어 보였다. 플레이트에 코를 박고 들여다봤지만 중간 중간에 삐쭉 튀어나온 가장 긴 털도 1cm가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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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게 긴 털은 보호털(guard hair)입니다. 네 가지 털 중 가장 길고 가는 털이죠. 두 번째로 길고 보호털보다 굵은 털이 송곳털(awl hair)이고, 중간에 한번 꺾인 털은 오킨털(auchene hair)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 꺾인 것은 지그재그털(zigzag hair)이라고 부릅니다.”
설명을 듣고도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어 현미경의 도움을 받았다. 20배율 현미경 위에 올려놓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지그재그털이다. 알파벳 Z모양으로 접힌 털은 외관으로 다른 털과 확연히 구분됐다. 양도 지그재그털이 가장 많았다. 전체 털의 70% 정도다. ㄱ자 모양으로 한번 꺾인 오킨털도 역시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종류의 털 모두 꺾인 부위는 다른 부위와 비교해 확연히 가늘었다.
반대로 보호털과 송곳털은 현미경으로도 구분이 어려웠다. 접힌 부위가 없어 길이와 굵기만으로 비교를 해야 하는데, 정말 그 털이 그 털 같았다. 이럴 때는 배율을 높여 털의 단면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오 교수가 조언했다. 40배율로 살펴보니 보호털 특유의 쐐기모양 단면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네 가지 털을 구분할 수 있게 됐지만 현미경에 눈을 대고, 양손에 든 핀셋으로 털을 골라내는 것이 역시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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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문은 온전한 털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나쁜 마음을 품은 연구자들이 털을 잘라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구자들 사이에서 데이터로 사용할 수 있는 털 기준이 있다. 말단은 자연스럽게 뻗어 점점 가늘어져야 하며, 밑단은 곤봉털(club hair)이 보존돼야 한다. 곤봉털은 털이 자라는 뿌리 지점으로, 투명할 정도로 하얀 것이 특징이다. 오 교수는 “어떤 학생은 며칠을 헤매기도 하는데, 센스가 있는 학생은 한두 시간이면 너끈히 털을 구분할 수 있다”며 “실력을 지켜보겠다”는 말을 남기곤 해부학 실습 수업을 하러 유유히 떠났다.
그렇게 한 시간을 현미경 앞에 매달려 있었지만 50가닥 중 절반밖에 구분하지 못했다. 밝은 현미경 빛 때문에 눈도 침침했다. 마지막으로, 구분한 털을 종류별로 현미경 슬라이드에 옮겨 사진을 찍어 길이를 잰다. 털을 단정하게 세우는 데도 역시 핀셋을 잘 다루지 못하는 초보자들은 애를 먹는다. 논문 한편을 쓰기 위해서는 종류 별로 적게는 수십 가닥 이상, 많게는 수백 가닥을 골라 길이를 재야한다. 능숙한 연구자라고 해도 지루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눈을 마사지하고 있는 기자에게 오 교수가 “왜 알바를 쓰는지 아시겠죠?”라고 웃으며 물었다. 대답 없이 격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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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뒤로 당기세요. 완전 거북목이에요. 여기서는 다 보이니까 제대로 자세 교정하고 가세요.”
모니터링 시스템 앞에서 강화영 UNIST 디자인및인간공학부 연구원(석사 2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곳에 와서 자세교정을 하고 가는 사람이 기자뿐만은 아닌듯, 그녀는 익숙하게 좋은 자세로 책상 앞에 서게 했다. 몸에는 총 8개의 근전도 센서와 동작을 인식하는 마커 7개가 붙어 있었다. 발의 압력을 체크하는 특수 신발은 덤이었다. 실험을 도와주는 같은 실험실 박정민 연구원(석사 1년)이 기자의 몸에 센서를 붙이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이제는 책상 앞에 서서 준비된 문서를 똑같이 만드는 작업을 한다. 나사의 우주 탐사계획에 관련된 영어 문서였는데, 단순 키보드 작업 외에도 마우스를 이용해 그림을 삽입하고 표를 그려야 했다. 실제로 사무직들이 작업할 만한 문서였다. 다음으로 등받이 의자에 앉아서, 다음은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서 문서 작업을 한다. 자세를 바꿔가며 두 시간 가량을 작업했다. 그동안 근전도 센서는 근육의 최대 수축 정도를 측정해 작업량을 측정하고, 동작 센서는 행동 패턴을 낱낱이 기록했다. 압력 센서도 기자의 체중이 발바닥에 얼마나 실리는지 꾸준히 체크한다. 눈치챘겠지만 자세별로 어떤 근육이 활성화되고 신체 어디에 과부
하가 걸리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실험의 목표다.
약 3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신청자가 몰려 순식간에 자리가 꽉 찼다. 교내에서 시간당 만 원에 간단히 알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필을 한 것이다. 다만, 이 작업의 정확한 명칭은 알바가 아니고 피실험자다. 연구를 이끄는 신관섭 UNIST 디자인및인간공학부 교수는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기준에 맞는 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실험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근골격계 질환이 없어야 하며, 특수 신발을 신기 위해 남자는 발 사이즈가 265mm여야 했다.
과학동아 3월호에 소개된 것처럼, 아직까지 서서 일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연구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략적인 경향만 미리 귀띔해줄 수 없냐고 묻자 아직까지는 분석 단계라고 답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30명 이상 실험을 반복할 계획이다. 만약 좋은 결과가 나와 논문 출판으로 이어진다면, 과학동아가 한몫 거들게 된 셈이다.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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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수천 마리가 사는 집(위). 높이 10cm의 플라스틱 병 아래에는 초파리의 밥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근전도 센서와 동작 마커를 붙인 채 서서 작업하는 모습(오른쪽). 특수 제작된 신발로 발압이 어떻게 변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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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실험동물로 마우스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초파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다. 성장 속도가 빨라 표현형을 확인하기 쉽고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싼 가격에 키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국내의 웬만한 대학에는 초파리 연구를 하는 학자가 한 명씩은 꼭 있을 정도다. 때문에 생명과학과 출신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초파리 실험실에서 알바를 모집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기자도 그렇다. 그렇게 스쳐만 가던 알바를 직접 하러 신촌의 연세대 치대를 찾았다. 이곳은 초파리를 활용해 맛을 느끼는 미각 단백질을 연구하고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초파리 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실험실에서는 주로 높이 10cm 정도의 원통형 플라스틱 병에 초파리를 가둬놓고 키운다. 입구를 솜뭉치로 막아두고 필요할 때 기체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초파리를 기절시켜 사용한다. 이런 병이 실험실에 수천 개가 넘고, 그 안에 사는 초파리는 수만 마리가 넘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식사시간에 맞춰 밥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대신 초파리가 먹을 밥을 병속에 잔뜩 넣어두고 그 위에서 초파리를 기르는 방법을 쓴다. 사람에 비유하면 초콜릿으로 만든 커다란 집 안에서 몇 달을 갇혀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
기자와 함께 초파리 밥을 만든 유윤정 연세대 치대 연구원은 실험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초파리 밥을 만드는 ‘초파리의 엄마’다. 유 연구원은 “냄새가 고약하다”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인적이 드문 실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가장 먼저 커다란 솥이 눈에 들어왔다. 옆의 수납장을 열자 노란 옥수수 가루 한 뭉치와 여러 시약이 들어 있었다. 모두 초파리 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이다. 하나씩 꺼내 차곡차곡 쌓아 준비를 마친 뒤 레시피대로 섞으면 된다. 먼저 물을 600L 이상 솥에 부은 뒤 옥수수 가루를 녹인다. 이어서 점성을 주는 한천을 넣고 끓인다. 한천은 탕수육소스를 찐득찐득하게 만드는 전분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한천은 금방 굳기 때문에 고온으로 가열하며 계속 저어줘야 한다. 때문에 한 번 밥을 만들기 시작하면 자리를 비울 수 없다.
한천과 옥수수 가루가 완전히 녹으면, 단맛을 내는 시럽을 추가한다. 노란 색을 띠던 초파리 밥에 시럽이 들어가자 예쁜 캐러멜 색으로 변했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밀크캐러멜 색이었다. 초파리가 단맛을 좋아하므로 맛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달게 만들어도 곤란하다. 유 연구원은 “실수로 설
탕을 많이 넣은 적이 있는데 초파리가 밥에 파묻혀 나오질 않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간은 산성 용액으로 한다. 이것 역시 초파리의 기호에 맞춘 것이다. 초파리는 주로 부패한 환경에서 자라는데, 부패가 일어나는 동안 주변은 산성을 띤다. 두세 종류의 산성용액을 적절히 섞으면 이때부터 냄새가 아주 고약해진다. 실수로 식초 뚜껑에 코를 갖다 댔을 때보다 다섯 배 정도는 더 독하다. 냄
새가 조금 날아가면 사과식초 냄새와 비슷해진다. 자취방 구석의 오래된 사과 껍질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던 초파리가 생각났다. 여기까지 대략 40분 정도가 걸렸다. 바닥이 타서 눌어붙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오래 끓여서도 안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파리 밥을 원통형 플라스틱 병에 옮겨 담으면 초파리 집이 완성된다. 한천이 금방 굳기 때문에 재빨리 옮겨야 하는데, 여기서 전문가의 ‘스킬’이 등장한다. 유 연구원이 호스가 달린 고무물통을 잡고 날렵하게 직직 뿌리며 거북이처럼 느린 기자를 앞섰다(위 그림❺ 참고). 기자가 100개를 만들 때, 유 연구원은 600개를 만들었다. 이날 총 1000개의 초파리 밥을 만들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초파리 밥의 레시피에 따라 초파리의 행동이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항상 일정한 방식대로 초파리 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문석준 연세대 치대 교수는 “연구실마다 레시피가 조금씩 다른데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레시피를 통일하자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고 말했다. 한두 번 해보면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연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알바생을 많이 쓴다고 한다. 이외에도 초파리 개체 수 세기, 표현형 확인하기 등 알바가 할 일이 산더미니, 생명과학과 게시판을 지난다면 초파리 알바를 한번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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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대학생들이 주로 알바를 구할 때 사용하는 SNS 페이지에서 꿀알바(?)를 찾았다. 돈 대신 공짜로 요가를 배울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멀리 울산을 찾았다.
금남의 영역 같은 요가교실에는 벌써 두 명의 남학생이 와 있었다. 이날은 남학생 두 명과 여학생 세 명, 그리고 기자 이렇게 여섯 명이서 요가 수업을 받았다. 양옆에는 못난 몸짓을 기록할 카메라 두 대가 서 있었다. 요가는 초등학교 때 배웠던 웅변 같았다. 초반에는 잔잔하게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격해지더니 마지막에는 탈진상태로 끝났다. 서툴다보니 정확히 어디서 얼마만큼 동작을 해야 될지 잘 몰라 헤매기도 했다. 잘 하려는 욕심에 무리를 했는지 다음날에는 아파서 한참을 고생했다. 웅변대회에 나가서 강약 조절 없이 꽥꽥 소리만 지르다, 마지막에 목이 쉬어 버렸던 아픈 과거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평소에 숨쉬기 외에 운동을 하지 않는 기자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마친 뒤 옆에서 지켜보던 ‘Three K’ 팀이 바쁘게 움직였다. UNIST 창의디자인공학 전문 석사과정 1년 차 세 명(김가이, 김지민, 정기혁)이 뭉친 이 팀은, 대학원 수업인 ‘통합디자인 프로젝트’를 위해 요가 알바를 모집했다. 이 과목은 초기 조사부터 제품 구현까지 직접 해보며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는 과목이다. 집에서 스스로 요가를 할 때 도움이 될 제품을 만들기 위해 참가자를 모집했다. 기자와 같이 수업을 받았던 이들은 이전에 한 번 요가를 배웠고, 그 뒤로 며칠 동안 혼자 요가를 연습했다. 이날은 두 번째 수업으로 그동안에 비뚤어진 자세를 다시 교정한 뒤 심층 인터뷰가 진행됐다.
심층 인터뷰에서는 그간 요가를 연습하면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한다. 참가자들이 직접 찍은 셀프 동영상과 요가 일기를 토대로 피드백을 한다. 프로젝트 팀원들은 선생님이 없어서 불편했던 점이나, 반대로 혼자 요가를 해서 좋았던 점을 꼼꼼히 물었다. 상대의 체험을 분해하고 뜯으며 이렇게 사용자의 경험을 통해 제품 설계의 영감을 얻는 방법을 ‘사용자 중심 디자인 작업’이라고 부른다. 제품 설계의 교과서적인 방법이다.
특별히 요가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팀원 중에 요가 능력자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김지민 학생은 “뭔가 움직이는 작업을 도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너무 동작이 격렬하거나 복잡한 다른 운동은 고려해야 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적은 요가를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기자에게는 무척이나 동적인 활동이었다). 덕분에 꿀알바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KTX에서 기자는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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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인근의 한 돼지 도축장. 얼마 전 발생한 돼지 구제역 때문에 소독차들이 경계를 서는 군인처럼 때마다 나타났다. 삼년째 이 알바를 하고 있는 성재호 씨는 서울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며, 밤에는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 원장님이다.
그는 이 광경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고 옷을 갈아입었다. 짙은 녹색 방호복을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머리에는 흰 망을 썼다. 마스크를 귀에 걸고 코끝까지 올려 썼다. 부대에 방금 온 이등병처럼 기자도 선배를 흘겨보며 비슷한 차림새를 갖췄다. 얕은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에 크게 걸린 귀여운 돼지캐릭터들이 보였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맛있는 고기를 즐기라’는 문구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몇 개의 문을 열고, 몇 개의 세면대를 지나자 굉음이 났다. B급 영화에서나 듣던 전기톱 소리였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라는 선배의 말에 한숨을 크게 마시고 문을 열었다.
문 너머의 풍경은 누군가에게 권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갓 도축된 돼지들이 갈고리에 걸려 하나씩 들어오면, 나란히 선 도축장 직원들이 내장을 걷어냈다. 손질된 내장은 종류별로 교실 책상만 한 쟁반으로 옮겨졌고, 속이 텅 빈 몸통은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전기톱으로 두 동강이 났다. 자동차조립 공장처럼 잘 분업화돼 있고, 돼지 한 마리를 손질하는 데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기자와 선배는 순대에 주로 쓰이는 대장, 소장, 창자 등 소화기관이 실려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역한 비린내가 났다. 오늘의 알바는 이곳에 서서 돼지의 난소를 찾아 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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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호 씨는 매일 두 번씩 도축장을 들러 돼지와 소의 난소 수백 개를 떼온다.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내장을 헤집어 식염수가 담긴 보온병 뚜껑에 난소를 담는다(왼쪽). 작업을 마친 뒤 충북대로 배달을 하는 것도 성 씨의 몫이다. 위 사진은 성 씨가 돼지 난소를 깨끗한 통으로 옮겨 피를 씻는 모습이다.]
한 잡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알바 1위로 꼽은 적이 있다.
성재호 씨는 충북대 농대 동물바이오신약장기개발사업단의 의뢰를 받아 일주일에 네 번, 도축장을 찾아 난소를 모아 온다. 오전에 경기도 안성의 소 도축장에서 난소를 떼 충북대에 맡긴 뒤, 오후에는 다시 돼지 난소 작업을 한다. 원래라면 버려지는 것들을 도축장의 도움을 받아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충북대 외에도 다른 대학과 연구소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난자를 얻고 있다. 남궁석 충북대 교수는 “난자를 구하기 쉽다는 점때문에 돼지와 소를 기반으로 한 복제와 발생 연구가 활발하다”며 “말처럼 거의 도축을 하지 않는 동물을 연구한다면 난자를 얻기 무척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 교수는 현재 난자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액틴(근육 단백질 중 하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내장이 지나가는 컨베이어 벨트 중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구간은 10m 정도였다. 성인 남성의 걸음 속도로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난소를 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초다. 먼저 멀리서 오는 내장을 보고 수컷인지 암컷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수컷은 난소가 없기 때문에 그냥 보낸다. 항문 주위에 있는 외부 생식기와 진한 회색을 띈 고환이 수컷의 상징이다. 반대로 암컷은 선홍빛 자궁이 특징이다. 자궁을 재빠르게 찾아내 뒤집으면 동그란 난소 한 쌍을 찾을 수 있다. 숙련된 조교는 2~3초면 충분하다.
관건은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10m 안에 모든 작업을 완료하지 못해, 질질 끌리다시피 하면서 컨베이어 벨트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아 성재호 씨가 암컷을 알려주면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해 난간 끝까지 쫓아간 경우가 많았다. 일단 난소를 찾으면 가위를 이용해서 난소를 잘라내고 준비한 식염수에 담근다. 하루에 보통 난소 300개를 채취한다. 시간으로는 2시간 정도 걸린다.
피가 뚝뚝 흐르는 돼지 머리가 옆을 지나가는 시각적인 고통보다 힘들었던 것은 냄새였다. 돼지 특유의 누린내와 피 비린내가 두터운 마스크를 파고들었다. 식염수를 담은 보온 통이 절반쯤 찼을 때, 기자는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세면대에서 장화와 손을 빡빡 씻고 긴 터널 같은 출구를 빠져나오고 나서야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얼마 뒤 성 씨도 작업을 마치고 나왔다. “힘들죠? 저도 처음 몇 달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쳐다도 못봤어요. 몇 번이나 그만둘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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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옷을 갈아입고 충북대로 돌아가 권정우 연구원(충북대 농대 박사과정 2년)에게 난소를 전했다. 50원짜리 동전만한 분홍색 난소에는 공기 방울 같은 것들이 10여 개 들어있는데, 이곳이 난자가 저장된 곳이다. 보통 주삿바늘을 찔러 난자를 채취한다. 권 연구원은 “한때는 연구원들이 직접 난자를 가져와야 했는데 지금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주사기 몸통에 누런 황체와 난자가 점점 늘었다. 인터뷰 와중에도 그의 손은 말보다 더 빨리 움직이며 신선한 난자를 채취했다. 방해가 될까 얼른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기자는 그날 밤 맛있게 순대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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